펑! 하고 터지는 소리들이 내 속을 진동시키며 터질 듯이 크게 울린다. 하늘에서 날아오는 불길들이 온 세상을 태우고 있었다. 멍하게 올려 보면 멀리서 두꺼운 지팡이와 망토를 쓴 사람들이 주술을 빌며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오러를 담은 칼을 캉캉 대며 겨누고 있다. 악취가 나는 땅에 알아볼 수 없는 인영들이 엎어져 있다. 아 앞이 보이지 않아. 눈, 혹은 이마에서 피가 흘러내려 시야를 진득하게 가린다. 나는 무릎을 끌어 안고 그 관경에 멍하니 잠식 되어가고 있었다. 미동없이 앉아있을까, "정신차려!" 어깨를 붙잡고 흔드는 누군가가 보인다. "여기서 정신 잃으면 못 돌아와!" "기억해! 너는 -이고 난 널 무지무지 아끼는 사람이야!" 머리카락이 햇빛에 빛나 반짝이는 사람. 세상을 부수고 나를 구하러 와준 사람. 나를 끌어안은 그가 나를 쓰다듬어주고 내 피를 닦아주곤 더러운 나에게 입맞춤를 해준다. "잠깐만 기다려. 꼭 다시 올테니까." 아. 그 날 당신은 어디로 가버렸나? - 우리의 마지막을 장식할 날이 밝아오고 있다. 별만 가득하던 검은 하늘에 해가 떠오르니 햇빛이 모든 별을 감싸 가린다. "닝짱, 뭔 생각해?" 들어났던 목 위로 까슬까슬한 굳은살이 진 손길이 스치고 자켓이 걸쳐진다. 자기가 입고 있었는지 온기가 남아있는 자켓. 옆을 돌아보니 날이 날인만큼 많은 생각이 담겨 짙은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는 오이카와가 보인다. 본인의 옷을 준 것인지 얇은 남색 셔츠를 입은 채로, 갈색 머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그림같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지나버렸네- 이런 생각? 넌 안 추워?" "오이카와상 추우니까 안아줄래?" 푸스스 웃으면서 그의 어깨에 기대니 웃는 얼굴로 내 어깨를 감싸는 그. 그의 단단한 팔을 감싸 안으면 잠깐 차가워졌던 몸들이 금새 따듯해진다. "이 전투가 끝나면 가장 높은 곳에 세워줄게." 높은 곳에서는 모든 것이 보인다.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횃불들로 밝혀진 곳에 바글바글한 머리통들과 말들, 그리고 천막들과 그 곳에 있을 내 사랑하던 사람들. "네가 내 주인일텐데 뭘 또 가장 높은 곳이라 표현해." "내가 널 잘 못 대할리가 없잖아" 그가 내 손등과 눈꺼풀에 꿀이 닿듯 입을 맞춘다. "맹새하는거야?" 내가 눈을 마주치자 긴 속눈썹을 접으며 사르르 웃는 그. 오이카와의 뒤로 울창한 숲들 사이에 아직은 고요한 천막들과 그 앞에 쉬고 있는 근육질 말들이 가득하다. 저쪽에 사람이 많 듯, 우리쪽에도 사람은 많다. ... 다 너를 보고 온 사람들이야, 오이카와. - 멀리서 날라온 창을 칼로 쳐냈다. 창의 촉과 내 검의 날이 부딪쳐 깡!하는 소리와 함게 강한 파동감을 내 팔에 전한다. "닝짱! 괜찮아!?" 멀리서 들리는 소리에 "어!"하고 대답하며 나를 덥치는 기사의 갑옷을 부드럽게 배어낸다. 딱딱한 갑옷이 파란 오러가 담긴 칼날에 움푹 패이다가 결국 뚤리니, 물컹한 살을 배어내는 촉감이 느껴진다. 눈을 찌푸리면서 칼을 빼내니 피가 후두둑 묻어나온다. 숨을 몇번 고르며 하늘을 보면 날라다니는 불과 얼음의 창, 그리고 마법 특유의 노란 빛도 주위에 가득하다. 누군가가 수류탄이라도 던졌는지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뿌연 공기가 매캐해 진다. 기침을 하다가도 감으로 날아오는 칼을 맞대며 싸우고 있을까. 갑자기 잠잠해진 주위를 둘러보았다. 뭐지? 아직 살을 가르지 못 했는데- 갑자기 날라온 무언가가 내 어깨를 쎄개 밀쳐서 뒤로 확 넘어진다. 흙바닥에 쾅하고 등을 부딪혔다가 내 몸을 제압하는 무언가에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올려 보았다. 그리고 보이는 익숙한 얼굴. 그의 흔들리고 땀에 젖은 검은 머리카락 뒤로 빨간 해가 점같이 보인다. 얼굴에 들어갔던 힘이 풀리고 내 앞으로 보이는 무언가만이 유일하게 내 시야에 남았다. "토비오." 능숙하게 내 배위에서 내 팔을 제압하더니, 내 목을 겨누는 칼은 또 부들부들 떨린다. 쭉빠지고 번뜩이는 칼은 장인의 손길이 닿은 것이었고, 이미 전투를 많이 했는지 아름답고 깔끔하던 그것은 손잡이부터 피칠갑이 되어있었다. 굵은 핏방울이 칼날을 도르륵 타고 내려와 내 목젓에 떨어진다. 나를 보는 눈이 그림자가 져서 그런지 칠흙같이 검다. 얇은 입술을 꽉 깨물어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고, 다쳤는지 볼에 실금같은 선에 흙과 피가 거뭇거뭇하게 묻어있다. "왜 그러셨습니까?"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정말 이유없이 웃음이 나온다. "칼은 절대 흔들리면 안 된다니까." "도대체 왜! 저를 버리셨습니까." 우리 불쌍한 토비오. 너를 버린게 아니야. 그를 버릴 수가 없던 것일 뿐이지. 그 끝이 반란이라고 하더라도. "다치지 말라니까." 손을 뻗어 얼굴을 쓰다듬고 싶었지만 그의 몸에 눌려 움직일 수 없었다. 칼을 잡은 손에 힘이 빠져 투둑 하는 소리와 함께 내 검이 흙바닥에 닫는다. 토비오의 얼굴에 그림자가 졌어서, 나는 그의 잔뜩 찡그려진 얼굴에 눈물이 흐르는 것도 몰랐다. "왜 대답을 안 해주시는 겁니까." 내 볼에 뜨거운 눈물이 후두둑 떨어진다. 그의 피묻은 제복 가슴팍이 오르락 내리락 하였고, 내 숨도 벅차졌다. 토비오가... 우네. "우와 죽기전에 토비오가 우는 모습도 보네." 살짝 너털 웃음을 내뱉었다. 어떤 반응을 보일까 많이 생각했었는데 화내고 따지는 건 생각했지만 우는건 생각도 못 했단 말야. 토비오가 눈을 닦으면서 뭐라뭐라 웅얼거리는데 못 알아듣겠다. 내 사랑하는 동생아, "내 목을 베어, 토비오." "제가, 제가 어떻게..." "괜찮아- 너는 괜찮아." 그래. 십년의 우정이 있잖아. 물론 6살과 8살의 나이차이로 내가 입궁할 때 마다 만난 결과 내가 거의 키운거나 다름 없지만-. 시간이 멈춘 마냥 참 오래도 망설이던 토비오가 갑자기 들리는 폭탄 소리에 번뜩 정신을 차린 듯 숨을 빠르게 몰아쉰다. 그러더니 결국 결심을 한 듯 나를 본다. 그래 토비오 너는 올곧은 길을 가. 나는 토비오의 눈을 보며 싱긋 웃었다가 눈을 감았다. "...용서해주세요." 칼이 햇빛이 번뜩인다. 내 위로 엎어져서 속에서부터 올라온 울음을 긁어 내뱉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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