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 네가 보인다
도망자
한 때, 나만 사랑해주고 한 눈 팔지 않으며 내 아버지처럼 피붙이들에게 손찌검 하지 않는 헌신적인 사람을 그리워했다. 서울, 그 큰 도시 화려한 뒷면속 어두운 이면의 그림자. 매일같이 마약, 강간, 가정폭력 등 범죄가 일어나도 아무도 찾지않고 해결해 주지 않는 그 동네에서 나는 태어나고 자랐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7년전. 부모에게 일찌감치 버림받고 길거리에 나앉은 내 앞에, 아무 것도 없이 초라하게 내 입에 풀칠하기 급급했던 내 앞에 꿈에 그리던 남자가 나타났다. 비가 오던 그날 밤 이 지옥같은 곳에서 나를 구해준 민윤기는 나에게 한줄기 빛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나는 몰랐었다. 헌신적임도, 적당한 선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 사랑도 적당해야 달콤하다는 것을.
"이거 놔! 내가 병신이야? 아파 죽겠으니까 놓으라고!"
"냅둬라.쟤 저러는거 한 두번 이냐?"
"보스도 독하지만...너도 참 독하다. 얌전히만 있으면 상석에서 놀고 먹는건데. 참 무식해서 그런가?"
내 신경을 거칠게 긁어대는 소리들에 뒤에 여유롭게 서있는 놈들을 노려보았다. 내가 처음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했을때 그 때도 저 여섯 남자들이 나를 붙잡고 이곳에 데려왔었다. 5년이란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여전히. 나는 민윤기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긋지긋해. 입 다물어, 나 귀아파. 시끄러죽겠어. 그럼 다들 투덜거리면서도 입을 다문다. 내가 아프면 그들은 꼼짝 없이 내게 복종해야 한다. 내가 민윤기의 목숨같은 존재니까. 엄살도 심하지. 옆에서 조용히 듣고있던 김남준이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나를 조롱한다. 신경질적으로 반응하면 전정국이 나를 말린다. 아가씨. 그만하고 들어가지? 또 문 앞에서 입 아프게 굴지 말고. 우리도 뛰느라 다리 아파 죽겠거든. 그 말에 눈을 치켜뜨면서도 신경질적으로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그러시겠지, 밤낮 안 가리고 나 잡으니까. 뒤틀린 심보로 들어가면 쓸데없이 공허하게 넓고 화려한 사무실의 정중앙 책상에 앉아있는 익숙한 뒷모습이 보인다.
"민윤기."
"벌써 왔네? 좀 걸릴 줄 알았는데."
저 놈은 괴물이 틀림없다. 번번히 쓴 말을 뱉으며 도망치는 연인에게 태연하며, 여전히 손은 일을 하고 있으니까. 아까부터 나를 쫓는 눈빛이 끈질기다. 내가 무엇을 하든 절대로 나를 향한 시선을 놓지않고 끈질기게 쫓는다. 아, 벌써부터 숨이 막혀오려 한다. 나를 다정히 보는 저 두 눈은 충분히 숨통을 틀어막는다. 너무 따뜻해서. 이번에 내가 준 잭나이프도 썼다며. 벌써 사람도 찌를 줄 아는거야? 역시 너 답다. 역시 너 답다라니. 듣기 좋은 말은 아니다. 미간을 가득 좁힌 채 가까이 다가가 내려다 보면, 그는 들고있던 서류를 내려놓고 쓰고있던 안경을 벗은 채 말한다.
"근데 앞으로 휘두르진 마. 애들 다치면 어쩌려고 그래."
"쟤네들이 다치던 말던. 나만 안 다치면 그만이야."
"매정하네, 아가씨. 나 아까 팔에서 피가 뚝뚝 떨여졌는데."
엄살도 심하다. 그보다 더한 피를 매일 같이 남 속에서 꺼내드는 너가 고작 생채기 났다고 아플 놈일까. 지겨운 치근거림에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그를 내려다보다 몸을 돌려 나가려하면 그는 나지막히 말한다.
"그리고."
"그만 도망쳐. 봐주는 것도 이젠 한계야."
싸늘한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정말 그는 이제 한계에 도달한 것처럼 보였다. 언제까지 날 이렇게 붙잡아 둘래? 정말 민윤기 너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가시 돋힌 말들을 삼킨채 그의 사무실 문을 닫고 나왔다. 그리고선 내가 걸음을 한발자국 옮기면 여섯이 사방으로 둘러싸고 움직인다. 그러고선 동시에 입을 뗀다.
"보스 그만하면 많이 참은거다. 너도 이제 그만해."
"그래 보스 신경 긁으면 너만 손해야. 또 독방에서 갑갑하게 살기 싫잖아."
"들어먹는 눈치는 아니지만 참고는 해둬라."
충고에 그저 허탈하게 웃을 뿐이었다. 보스라며 어느새 목숨 같은 존재로 올라선 민윤기의 구속은 어디까지나 구속일 뿐이었다. 이렇게 가볍게 넘기려 들어도, 가끔 보는 그의 눈빛은 살벌하고 금방이라도 끔찍했던 그 시절로 되돌려 놓을것 같았다. 그래서 난 늘 도망친다. 그 순간이 꼭 오지 않더라도. 그 순간을 두려워하며 살지 않게 되도록. 멀거니 화려하게 장식된 복도를 걷는데 옆에 잠자코 있던 박지민이 붕대로 지혈한 팔을 내밀며 말했다. 이거 좀 아프다. 무슨 여자가 그렇게 무식하게 힘이 세? 아까 진짜 나 찔려서 죽는 줄 알았어. 그러면서 호 해줘 라고 덧붙인다. 그럼 나는 입술을 가까이 대고 이내 손으로 찰싹 피가 묻어난 곳을 때린다.
"아! 역시 매정해. 아가씨는 죄책감도 없어! 내가 다쳤는데."
"죄책감은 무슨, 없어 새끼야."
전혀 없어. 왜냐면 난 계속 도망칠거거든. 그리고 언젠가 도망쳐 이 곳을 벗어날 때가 다가온다면. 너희들과 붙어버린 이 짐 같은 정도 함께 버려야하거든.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멈춰서서 천천히 도착한 엘리베이터를 직시했다. 여전히 칭얼대는 박지민을 옆에 두고. 그렇게 여섯에게 둘러싸인 채 천천히 열리는 엘리베이터 안에선, 어머 또 잡혔나봐요? 민윤기의 약혼녀 되는 여자다. 젠장. 오늘 일진 안 좋다 껄끄러운 인간들을 도대체 몇이나 만나는건지. 그녀는 익숙하게 나를 훑어보며 스쳐지나간다. 그리고 태연히 말하고는 저 편으로 사라진다.
"언젠가 성공하길 빌게요. 빠르면 빠를 수록 나한테 좋지만."
이름이 김세나라고 했나. 민윤기의 조직과 합병을 한다는 그룹 대표라고 알고 있다. 몇달 전부터 민윤기에게 꾸준한 구애를 해온 그녀는 나의 존재를 꽤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다. 나로써도 굉장히 불편한 여자였다. 내가 원해서 그의 옆에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서러운 감정이 몰려왔다. 그런 복잡한 생각을 하고 걷다보니 어느새 내 방문 앞이었다.방문을 열고 신발을 벗었다. 그래도 독방이 아닌게 어딘가. 스스로를 위로하며 한숨을 쉰 내 등을 갑자기 떠미는 박지민이다. 도망갈 생각 하지 말고. 홀연히 그 말만을 남긴 채방문을 거칠게 닫고 족쇄를 잠군뒤 떠나는 여섯이다. 아무래도 그 말 지키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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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갑자기 소재가 떠올라 마구 싸지른 글입니다 정말 막 쓴티가 많이 나네요...열꽃보단 빨리 끝날 것 같습니다! 혹시나 글잡에서 비슷한 글을 보셨다면 제 글이에요! 짧은 형식으로 올린적이 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