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위한 교향곡 中
written by. 이요르
진료실. 신경외과 교수: 김 준면
대학병원 교수라던 삼촌의 말이 사실이었는지 진료실 문엔 신경외과 교수 김준면이라고 써 있었다. 진료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의자에 앉아 여러 사진을 보며 인상을 쓰고 있던 삼촌은 진료실로 들어오는 나를 보고는 표정을 풀고 내게 말했다.
"왔어? 백현인?"
"자. 삼촌이 중환자실에서 일인실로 옮겨줬다며?"
"응. 중환자실은 분위기가 너무 어두워서, 백현이한테 안 좋을까 봐."
"백현이가 고마워하더라."
삼촌과 나 사이엔 길고 긴 정적이 흘렀다. 감히 쉽게 깰 수 없는 정적이었다. 이 정적 뒤에 무슨 얘기가 나올지 우리 둘은 잘 알고 있었으니까. 어때? 백현이.. 정적을 먼저 깬 건 나였다. 내 말에 준면이 삼촌은 표정을 굳히며 보고 있던 사진들을 나에게 보여줬다. 여기 이거 보이지? ..백현이 뇌종양이야. 양성이어도 위험한데, 악성이다. 게다가 크기도 많이 커서 위험해. 지금까지 어떻게 버텼나 싶을 정도로. 많이 아팠을 거야.. 삼촌은 말끝을 살짝 흐렸다. 삼촌의 말은 내게 충격이었다. 변백현.. 이런 무서운 얘기를 너 혼자 들었던 거였어? 아무 준비도 없이? 어젯밤 펑펑 울던 너의 모습이 생각나 가슴이 먹먹해졌다.
"수술.. 해야해?"
"되도록 빨리. 백현이 보호자는 일단 삼촌으로 해놨어."
"..잘했어."
"..가봐. 네가 백현이 좀 많이 챙겨줘."
"응. 고마워"
"고맙긴. 나한테 백현이도 너와 같이 소중한 조카야."
삼촌에게 인사를 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도저히 지금 너의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질 않아 병원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은 공원처럼 잘 꾸며져 있었다. 제일 구석에 있는 벤치에 앉아 너를 생각했다. 얼마나 힘들까.. 백현아.. 나도 이렇게 아픈데. 넌 얼마나 아플까.. 왜.. 도대체 왜.. 너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까. 차라리 할 수만 있다면 내가 대신 아파해 주고 싶었고, 내가 죽어서 네가 건강해진다면 지금 당장 여기서 뛰어내려 죽고 싶었다. 왜 너야.. 왜 하필 너야.. 앞으로 아파할 네 모습이 상상이 돼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네 생각을 하느라 닦을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 울고 있는데 너에게 전화가 왔다.
"종인아, 어디야?"
"..일어났어?"
"응. 자고 일어나니까 아무도 없잖아.. 어디야?"
"잠깐 바람 쐬러 밖에."
"나만 놔두고? 나빴네, 김종인."
"기다려, 지금 바로 갈게."
"응. 빨리 와."
전화로 들려오는 너의 목소리에 다시 마음 한쪽이 아려왔다. 이렇게 예쁜 목소릴 가진 넌데.. 너에게 가는 나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변백현.. 네가 너무 보고 싶다.
***
"백현아 나 왔어."
"나 혼자 두고 밖에 갔다 오니까 좋았어?"
"미안해."
푸흐. 내가 이번만 용서해줄게! 그래, 착하다. 침대 옆 의자에 앉아 자느라 헝클어진 너의 머리카락을 정돈해주었다. 내 손길에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네가 입을 열어 내게 물었다.
"종인아, 나 수술 언제야?"
"..몰라. 최대한 빨리한대."
"..그래?"
"응."
"...찬열이 보고 싶다."
넌 네가 무심코 뱉은 말에 깜짝 놀라 감고 있던 눈을 떠 나의 눈치를 살폈다. 아마 내게 미안해서겠지.. 그런데 백현아. 내가 섭섭했던 건 네가 나한테 먼저 찬열이와 헤어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해놓고는 이제 와서 찬열이가 보고 싶다고 말한 네가 아니라, 아직도 너에겐 나보다 찬열이가 먼저라는 사실이야. 너의 그 말로 인해 나는 평생 너의 마음 일부분조차도 차지하지 못할 거란 것을 알아버렸으니까..
"백현아, 나 짐 좀 가지러 집에 갔다 올게."
"응. 빨리 와."
그런데 그거 알아, 백현아? 네가 아무리 찬열이만 생각하고, 너의 마음속에 언제나 찬열이만 있다고 해도. 난 네가 좋아, 백현아.
***
먼저 내 원룸에 들려 옷가지들과 핸드폰 충전기, 헤드폰 그리고 너에게 읽어줄 책 몇 권을 가방에 챙기고 너의 집으로 갔다. 비밀번호는 1127. 찬열이의 생일이다. 너는 끝까지 찬열이구나. 너의 모든 게 박찬열이야.. 괜찮았다. 나는 지금 네가 내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니까. 문을 열고 들어가니 나를 반기는 건 쌀쌀한 한기와 너의 향기였다. 집안은 너를 닮아 깔끔했다. 너의 방으로 들어가 옷가지를 몇 벌 챙기고 침대에 앉아 챙겨야 하는 물건들 목록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며 주위를 둘러보다 책상 위에 있는 사진들을 발견해 나는 책상으로 가 사진들을 구경했다. 작년 여름에 셋이서 같이 계곡에 가서 물에 들어가기 전 기념으로 찍은 사진, 작년에 있었던 학교 축제 때 여장남자대회를 위해 예쁘게 화장을 한 너를 놀리고 있는 나와 찬열이가 찍힌 사진, 올해 겨울에 스키 타러 가서 찍은 사진. 그리고.. 찬열이의 옆모습이 찍혀있는 폴라로이드. 폴라로이드 모퉁이엔 너의 글씨체로 글자가 적혀있었다.
'내 사랑, 내 남자♥'
액자에서 그 사진을 꺼내 잠바 주머니에 넣었다. 네가 많이 힘들어 할때 보여주려고.
***
너의 집에서 짐을 다 챙기고 나오는데 맞은편 건물 앞에 찬열이가 서 있었다. 찬열이는 내가 나오는 소리에 고개를 천천히 들더니 이내 나와 눈이 마주쳤다. 얼굴에 생기가 없었다. 찬열이 너도 많이 힘들겠지.
"이제 집까지 드나드냐?"
"웬일이야."
"진짜냐? 변백현이랑 사귀는 거?"
"어. 어제 뭐 본 거야. 못 믿길래 눈앞에서 키스해줬더니."
"개새끼. 귀띔이라도 해주지. 난 그것도 모르고 변백현 손에서 놀아났네."
"말 함부로 하지 마."
"씨발. 그럼, 이 상황에서 변백현 칭찬이라도 해줄까? 누가 지 애인 아니랄까 봐 존나 챙기네, 꼴에."
"비켜. 너랑 말장난할 시간 없어."
"..나란히 학교 자퇴서 들고 가더니, 둘이서 여행이라도 가나 봐?"
"어. 백현이가 너 보기 싫대서."
"잘됐네. 나도 너희 둘 보기 싫었는데. 가서 잘 먹고 잘 살아라."
찬열이는 그대로 뒤돌아 갔다. 네가 여기에 없어서 다행이었다. 만약 네가 찬열이의 모습을 봤다면 바로 찬열이한테 갔을 테니까.
***
네가 병원에 온 지 벌써 반년이 지나 일주일 뒤면 병원에서 처음으로 맞는 너의 생일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너의 몸 상태는 나빠졌다. 이틀에 한 번씩 발작을 일으켰고, 시력이 점점 나빠져 안경을 써야 됐다. 그리고 몇 분 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가끔 기억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부드러웠던 머리카락 대신에 너의 머리엔 하얀 모자가 씌여있었다. 침대 옆 의자에 앉아 몇 분 전에 약을 먹고 잠들은 너를 바라보았다. 처음 병원에 왔을 때보다 살이 많이 빠져 얼굴이 핼쑥해졌고, 스트레스 때문에 피부가 많이 푸석해져 있었다. 지난 6개월 동안 너는 하루도 빠짐없이 항상 내게 미안해했다. 괜히 도와달라고 했다며 내 앞에서 운 적도 있었다. 초반엔 아니라며 너를 달랬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아무리 달래도 멈추지 않을 거란 걸 알기에 지금은 네가 미안하다고 말하면 너와 눈을 맞추고 환하게 웃어주었다.
"조,종인아! 종인아!!"
다급히 나를 외치며 우는 네 모습에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엉거주춤한 자세로 서 있다가 한 번 더 소리를 지르는 너의 모습에 너를 꽉 안아 주었다.
"종인아!! 누가 나를 자꾸 죽이려고 해!! 살려줘!! 나 좀 살려줘! 여기서 나가자 응?? 제발 좀 살려줘!! 저 사람들이 나를 죽이러 왔어!!"
"괜찮아, 백현아! 아니야. 아무것도 없어! 진정해!"
"날 죽이려고 해!! 날 죽이려고 하고 있어!!"
"변백현!! 정신차려!"
"아악!! 이거 놔!!! 나 좀 내버려두란 말이야!!!"
너를 안은 내 등 뒤로 너는 소리쳤다. 제발 저리 가!! 서둘러 호출버튼을 누르고 내게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는 너를 더 꽉 안았다. 백현아 제발..! 병실 문이 열리고 준면이삼촌이 간호사와 의사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삼촌.. 백현이가.."
"이거 놔!! 아아악!!! 살려줘!!"
"이간호사, 가서 진정제 가져와! 너희는 환자 좀 붙잡아!"
백현이 너는 밖에 나가 있어. 하지만.. 빨리. 내가 자리를 비키자 삼촌 옆에 서 있던 의사들이 백현이를 잡았다. 나는 소리를 지르는 백현이를 뒤로 한 채 병실을 나왔다.
***
"종인아."
"백현인..?"
"지금 진정제 맞고 잠들었어."
"삼촌, 백현이 또 많이 아파??"
"..환각증세야. ..이제 점점 암세포가 몸에 퍼지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어."
"...뭐? 종양은 수술했을 때 제거했다며!"
"종인아, 진정해."
"삼촌은.. 진정이 돼? 백현이가..저렇게 아픈데.."
"...너한테 뭐라고 해줘야할지 모르겠다. 들어가 봐."
삼촌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곤 의사와 간호사들을 데리고 가버렸다. 병실로 들어와 침대 옆 의자에 앉아 네 눈 주위의 눈물들을 휴지로 닦아주다 너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해 그 자리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백현아,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아파하는 널 멍청하게 쳐다보고 있는 것 뿐이야. 미안해, 백현아. 아무것도 해줄 수 없어서. 내가.. 너무 욕심을 부렸나 봐. 친구사이에서 그치지 않고, 너를 좋아해서.. 그래서 네가 이렇게 아픈 건가 봐. 미안해 백현아. 너를 좋아했던 나를 미워해... 그리고 지금까지도 너를 향한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너를 사랑하고 있는 나를.. 평생 용서하지 마.
***
안녕하세요 ㅜㅜ 이요르입니다!
새벽에 올리기로 했는데ㅜㅜ 지금 올리는 저를 돌로 치세요ㅜㅜ
그냥 감기에 걸렸는데 원래 보통 똥손이였던 손이
이젠 최고봉 똥손이 되어버렸네요ㅜㅜ
이렇게 좋은 소재를 제가 다 망쳐버린 것 같아 죄송해요ㅜㅜ
튼, 완전 사랑해요 저희 독자님들!!!
비밀닉은 마지막 편에서 한꺼번에 불러드릴게요!
텍파는.. 일단 시험끝나고 하려고 계획중인데요..
음.. 다 드릴까요, 아님 비밀닉 신청하신 분만 드릴까요?
텍파엔 번외편으로 찬열이 시점, 백현이 시점, 어렸을 때 종인이와 백현이를 넣을까 해요....
그냥 계획중!!
튼, 이런 망글 읽어주시러 와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ㅜㅜㅜ
엉엉 ㅜㅜㅜ 사랑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