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로 승승장구중인 구남친 김종인 X 유학갔다온 구여친 김여주
02
그렇게 정신없이 욕을 한바탕 하다보니, 어느새 본가에 도착했다. 바로 계약해둔 오피스텔로 가려 했지만 엄마가 와서 밥 한끼 같이 먹고 그 김에 반찬도 좀 가져가라며 본가에 들리라고 하셨다. 호주에서 비행기를 탈 때에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속이 좋지 않아서 기내식을 족족 거절했기도 하고 아까는 공항에서 빈 속에 아메리카노를 마셔서 속도 약간 쓰렸고 방금 차에서는 오빠한테 실컷 욕을 했었던 터라 배가 조금씩 고파왔다. 아···, 오랜만에 우리 정여사표 집밥을 먹는구나, 괜히 설레여왔다. 많이 먹어야지!
"일단 우리 밥 먹고 천천히 대화 해보자 오빠"
먹다 체하겠다며 궁시렁거리는 오빠를 뒤로 하고, 차에서 내려 트렁크 문을 연 다음 기다렸다. 양심이 있으면 자기가 들겠지.
".."
"뭐해? 캐리어 가지고 나와"
"...."
"...?"
"....그래 알겠다 알겠어"
이번엔 무겁다며 궁시렁대는 오빠를 이젠 진짜 뒤로 하고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집쪽으로 뛰어갔다. 이게 몇년만이야! 여긴 아직도 그대로네, 저것도 그대로네. 저기 보이는 저 마트도 그대로 있고. 김종인이 맨날 저기서 사탕···,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거야..
괜히 우울해져 시무룩한 표정으로 대문 앞 도어락에 비밀번호를 쳤다. 3년이나 지났지만 18년동안 기억해온 비밀번호를 잊을 리가 없었다.
문을 여니 아직도 그대로인 마당이 보였다. 아. 하나 빼고.
내가 미친듯이 따먹었던 무화과 나무가 사라져 있었다.
"오빠 무화과 나무는 어디갔어?"
"그거 재작년인가 작년인가 태풍왔을 때 부러져서 베었어"
"아깝다.."
"야 너 짐 미리 부쳤다면서 무슨 캐리어가 이렇게 무겁냐?"
그때, 여주야! 하며 정겨운 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엄마가 고무장갑을 끼신 채로 나오셨다.
"여주야!!! 너 이 기집애 왔으면 인기척을 좀 내지"
"엄마 ㅠㅠㅠㅠㅠㅠㅠㅠ"
"살빠진 것 좀 봐.. 맨날 전화로는 밥 잘 챙겨 먹는다면서!"
"아 오자마자 잔소리는~ 나 배고파요 밥 먹자 밥!"
"얼른 옷 갈아입고 있어 금방 차려"
우리 엄마는 뭐 변한게 없냐, 나만 늙은 기분이다. 에이씨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익숙한 우리 집 냄새가 날 반겼고 추운 밖과 달리 되게 따뜻했다. 나 온다고 보일러 빵빵 틀어놨구나?
바로 내 방으로 들어가서 침대에 다이빙했다. 3년동안씩이나 비워뒀지만 온기가 그대로다. 매일 들어오셔서 청소하셨을 엄마를 생각하니 조금 뭉클해졌다.
오빠가 두고 간 캐리어에서 편한 옷을 꺼내 입고 화장실로 들어가 따뜻한 발로 손 발을 씻고 나와 부엌에 가보니 무슨 식당처럼 반찬이 어마어마했다.
한인식당의 한식은 정말 형편없었던 탓에 제대로 된 한식에 기분이 좋아졌다.
"엄마 이거 다 엄마가 했어?"
"당연하지 너 온다고 어제부터 장보고 고기 재워두고 허리 빠지는 줄 알았다 얘"
"와 엄마 차별대우 쩐다 나 있을 때는 귀찮다고 맨날 먹던 것만 먹였으면서~"
"먹지 말던가 그럼!"
"아니 먹을거야!!"
아빠는 오늘도 출장나가셨구나..
항상 어렸을 때 부터 잦은 출장 탓에 아빠랑은 같이 밥 먹어본 적이 별로 없다. 항상 내가 자고있을 새벽이나 잠깐 짬을 내셔서 오시곤 밥만 먹고 나가셨지. 그럴 때마다 내 머리 맡에는 봉투에 담긴 용돈과, 또 곳곳을 다니시며 사셨을 인형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걸 보곤 나가서 엄마에게 아빠 오셨다 갔냐고 물어보곤 했다.
식탁에는 내가 좋아하던 불고기, 김치찌개, 뭐 햄 등등 엄청나게 많았다. 뭐부터 먹어야 하지...
행복한 고민이었다.
"아 엄마 대박 겁나 맛있어ㅠㅠㅠㅠㅠㅠ"
'"여주야 이것도 먹어봐 기가 막혀 엄마가 직접 했어
이따가 좀 싸줄게 가서 먹어"
정신없이 밥만 먹었던 것 같다. 이렇게 많이 먹어본 적이 얼마만인가..
항상 싸돌아다니며 공부하고 밤 늦게 공부하다가 집에 오니까 식욕도 떨어지고 피곤하기도 해서 밥을 잘 안챙겨먹었었다.
그럼에도 목표가 있으니 힘들긴 했지만 나름 버틸만 했다.
밥을 다 먹고 쇼파에 앉아서 귤을 까먹다가 방에서 신나게 핸드폰을 하고 있을 오빠를 불렀다. 자 이제 얘기 좀 해야지?
"오빠~"
"오빠아아아아!!!!!!"
"얼른 나오라고!!!!"
"야 김종대!!!!!!!"
이름 석 자를 부르고 나서야 굳게 닫혀있던 방 문이 열렸다. 그러게 곱게 좀 나올 것이지..
"뭐? 김종대?"
"좀 나오랄 때 나와 어?"
"왜.."
"왜긴 왜야 얘기 좀 해"
"야.."
"뭐"
"나 밥 먹은 지 지금 한시간도 안됐는데
체하면 어떡해"
"그건 니 사정이구요 빨리 와서 앉으라고"
"뭐? 니? 이게 진짜!!?"
발끈하는 오빠를 가볍게 무시하고 다시 까놨던 귤을 먹었다. 하여튼 오빠 소리는 더럽게 집착해요 겨우 한살 차이 주제에~
옆에선 오빠가 앉는 소리가 들렸고 나는 또 한개의 귤을 까기 시작했다. 손톱에 노란 물 들었다. 지지..
"자 이제 얘기해봐"
"..."
"처음부터"
"아씨.."
"빨리"
"저번에 니가 한국에서 바로 잠깐 일 할 수 있는 곳 좀 알아봐달라며.."
"어"
"그래서 지인들 중에서 막 물어보다가 에스엠까지 네 얘기가 흘러들어갔나봐
어쩌다보니.."
"응"
"며칠 뒤에 연락 오길래 가서 네 서류랑 경력 이런거 보여주니까 엄청 좋아하면서 귀국하시는 데로 바로 회사로 오셨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 내가 대신 계약서랑 읽어 봤는데 조건도 괜찮고.. 거기 또 나름 알아주는 곳이잖아 그리고 네가 괜찮다 싶음 도장 찍으라며.. 그래서 찍었지"
"오빤 첨부터 걔가 엑손거 알았잖아 근데 그것도 생각 안하고 생각없이 그냥 도장을 찍었다고?"
"아니 처음에는 엑소 아니었어 나도 몰랐어"
"근데"
"에프엑스라고 너도 알지? 그 그룹이었는데
이번에 뭔 일 생겨서 앨범이 엎어졌데나 뭐래나..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아 진짜 짜증난다 걔 얼굴 어떻게 보는데.."
"거기서 그럼 내 동생 전남친이 카이라서 안되겠네요 하고 말하리?"
"카이?"
"걔 예명이 카이잖아"
김종인 그런거 싫어하는데.. 예명 쓰기 싫다고 투덜댔을 모습이 눈에 선했다. 예전부터 자기는 데뷔하면 절대 예명 쓰기 싫다고 그러더니 결국은 예명 쓰게 됐구나..
자꾸만 툭툭 터져나오는 김종인 생각에 곤혹스러워졌다. 호주에 있을 때는 나름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제와서 불쑥불쑥 생각이 나는건지.. 가슴이 답답해져 왔다.
김종인과 나는 16년동안은 친구사이였고 2년동안은 연인사이었다. 그리고 우리의 3년은 멈췄다.
솔직히 말하자면 김종인은 내 인생의 전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둘은 태어났을 때부터 붙어있었다. 초중고도 같이 나왔다. 물론 고등학교는 중간에 내가 유학을 가는 바람에 다닌 거라고 할 수도 없지만.
태어나서 남자친구는 딱 3번 사귀어봤다. 물론 철 없는 10대 때 멋 모르고 나 좋다는 남자애를 거절하지 못하고 억지로 사귄거지만. 그래서 김종인과의 연애는 더 특별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진심으로 좋아했었거든.
그렇게 좋아했었는데, 결국 우리 둘은 꿈을 위해서 서로를 포기해야 했었다. 걔는 sm에 붙었고, 운 좋게 데뷔팀에 합류하면서 본격적으로 팀의 틀이 잡힘과 동시에 학교도 점점 못나오게 되었고, 나는 유학준비를 하느라 정신없이 바빴었다.
마침내, 눈이 펑펑 내리던 겨울날,
집 앞에서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이별을 고했고, 헤어졌다.
그게 끝이였다. 우리 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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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마무리지어야 할 줄 몰라서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렸네요. 다들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암호닉♥ (만약 완결이 된다면, 암호닉 분들께만 텍파를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찡찡, 유레베 , 여름
*암호닉은 항상 가장 최신화에 신청해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