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내 남자친구가 누구야? w.HARU_
09. 순영이랑 여주랑 이런 일도 있었다며?
2월인데도 꽤 추운 날씨였다. 어찌 보면 당연한 걸까. 조금 늦은 시간에 도착한 학교에선 저마다 다른 반응들을 보이고 있었다.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는 사람과 마지막을 아쉬워하는 사람. 다시 한번 이런 생활을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에 허탈한 사람까지. 따지고 보면 나는 아쉬워하는 쪽이려나. 너와 함께 했던 학교생활이 끝이 났으니까. 너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불어오는 찬 바람에 코트 자락을 여몄다. 역시, 아직 시리다.
여주를 좋아한다고 자각을 하고 나서부터 많은 변화가 있었다. 물론 나에게만. 마주 보는 게 버거워짐은 당연했고 자꾸만 달아오르는 얼굴이 누가 봐도 널 좋아한다고 소문내는 아이 같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좋아하는 마음보다 이 관계를 유지하려는 마음이 더 컸기에 함부로 내 감정을 표현할 수는 없었다. '가장 친한 친구' 라는 수식어에 만족하기로 마음을 다잡자 그래도 조금은 편해지더라. 시간이 약이라는 게 헛된 소리는 아니었는지 밤마다 속앓이 하는 시절은 이제 지나갔다. 그렇지만 오늘처럼 너라는 바람이 부는 날은 어쩔 수가 없더라. 마지막인데도 어쩜 이리 예쁜지. 문득, 역시 재수를 해서라도 같은 학교에 갔어야 했나 후회가 된다. 물론 그러겠다 하면 네가 죽어라 말렸겠지만. 너 말이라면 들어야지 내가. 뭐 어쩌겠어. 뚫어져라 보는 내 시선을 느낀 것인지 눈이 마주쳐 버렸다. 너무 쳐다봤나. 눈이 휘어져라 웃는 여주의 모습에 오히려 내가 더 당황해버렸다. 오늘 기분 좋은가.
'뭘 봐.'
…그럼 그렇지. 웃은 낯에 침 못 뱉는단 말은 쟤를 두고 만든 말임이 분명했다. 해사하게 웃으면서 나오는 말이 저렇게 재수가 없다니. 고개를 저으며 가운뎃손가락 하나를 올려주고 무릎 위에 올려진 졸업앨범으로 시선을 옮겼다. 저런 게 뭐가 좋다고 진짜. 그러면서도 당연스럽게 우리 반이 아닌 여주의 반 페이지가 펼쳐져 있는 모습에 머리를 짚었다. 이 정도면 병이다, 권순영 병신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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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에 모여 교장의 잔소리를 듣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몸을 더 가만히 둘 수가 없다. 어쩜 오늘 같은 날까지도 저렇게 말이 많은지. 졸업은 우리가 하는데 왜 본인이 울먹이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아무도 관심 없는 그 목소리 속에서 우리끼리 사진을 찍어대기 바빴다. 이것도 마지막 교복인데 남겨두는 것도 나쁘지 않지. 한창 사진에 빠져있을 때 주머니 속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여주였다.
'아'
'왜 나만 다른반이야ㅠㅠ'
'이따 나랑도 사진 찍어.'
'또 도망가지 말고!'
고3때 하필 여주만 우리 무리랑 다른반이 된 탓에 많이 서운해하더니 마지막까지 난리다. 우리끼리 사진 찍는 게 부러웠는지 도망가지 말고 있으라기에 알겠다고 대충 답장을 보내고 다시 졸업앨범을 뒤적거렸다. 야야, 김여주 이거 개웃기게 나오지 않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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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도 눈물이 터져버렸다. 그뿐이면 다행이지. 반 전체가 눈물바다가 되어버렸다. 난 안 울었다. …살짝 글썽이긴 했는데 흐르진 않았다. 울고 있는 애들을 신 나게 놀려주고 반 단체사진 한번 찍고 여주네 반으로 향했다. 얘 백 퍼 울겠지. 존나 놀려야겠다. 생각하고 뒷문 쪽에 서성거렸다. 얘네도 마지막까지 늦게 끝나네. 매번 여주네 종례가 늦게 끝나는 탓에 이 자리는 거의 내 전용 자리가 되어버렸다. 졸업식인데 빨리 좀 끝내주지 배고픈데. 감사합니다- 라는 우렁찬 목소리가 들리고 교실이 곧 소란스러워졌다. 끝났다.
"안 우냐? 눈 팅팅 부어있을 줄 알고 놀리러 왔는데."
"뭐래, 우리 사진 찍자 빨리!"
얜 전생에 카메라 한 번도 못 만져보고 죽은 게 한이 된 게 분명하다. 그놈의 사진사진… 거짓말 안 하고 진짜 그 자리에서 30장은 넘게 찍은 것 같다. 그래도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이렇게 가까이 붙어 있겠나 싶어 기분은 좋더라. 자세가 계속 똑같다며 욕 엄청나게 먹긴 했지만. 얼마나 오래 있었던 건지 사람이 다 빠져나간 복도는 금세 조용해졌다. 우리가 하도 안 내려와 찾으러 오신 것인지 부모님께서 찾아 올라오셨고, 여주네 부모님께서 졸업 축하한다며 꽃다발을 안겨주셨다. 아, 맞다 꽃다발. 까먹을 뻔했다.
"야, 나 잠깐. 10분만 여기서 기다려."
어디 가느냐고 불러대는 여주를 가볍게 무시하고 교실 쪽으로 달려갔다. 아니 왜 우리 반은 위층이야. 마지막까지 맘에 안 드네. [권순영] 이름표가 붙어있는 사물함을 열어 재끼니 하얀 꽃다발 하나가 예쁘게 놓여있다. 안 흐트러졌네 다행이다. 꽃다발을 대충 정리하고 다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아씨, 얘 어차피 이 꽃 뭔지 모르겠지. 뭐라고 둘러대야 하나. 숨을 고르며 도착한 곳엔 여주를 제외하곤 아무도 없었다. 엄마 어디 갔어?
"먼저 내려가 계신대. 넌 뭐하느라."
"졸업 축하해."
대뜸 얼굴 앞으로 꽃다발을 내밀었다. 아, 이거 은근 쪽팔리네. 괜히 고백하는 것 같고. 내가 이런 걸 준비할 거라 생각도 못 했던 건지 자기는 아무것도 준비 안 해서 어찌하느냐며 발을 동동 구른다. 나한텐 지금 같이 있는 것도, 이따 같이 밥 먹는 것도. 모든 게 다 선물인데. 괜히 달아오르는 기분에 품에 대충 꽃다발을 안겨주고 빨리 내려가자며 뒤를 돌았다. 바로 내 팔을 잡아 돌려버리는 여주 탓에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지만.
“진짜 고마워 순영아.”
"그런데 이 꽃 이름 뭐야. 되게 예쁘다."
"…나도 몰라, 그냥 예뻐서 달라 했어."
알면 안 되지. 너 찾아볼 거잖아.
"야, 꽃 선물하는데 이름도 모르면 어떡해. 원래 꽃,"
"꽃말은 들어왔어. 변치 않는 우정이래."
말을 끊어버리고 선수를 쳤다. 이렇게 말해놓으면 되겠지. 알아줬으면 좋겠으면서도 알게 되면 독이 될까 이런 식으로 밖에 티를 못 내는 게 속상하지만 어쩔 수 없다. 오늘은 이걸로 만족해야지. 순간 여주 눈에서 눈물이 또로록 떨어지더라. 미친, 이건 예상 밖이었다.
"ㅇ,야. 너 왜 울어 갑자기."
"나 오늘 종일 잘 참았는데 너 때문에 망했잖아!"
"미치겠네, 그게 왜 내 탓이냐?"
"네가 갑자기 감동받게 했잖아!"
울면 울고 화낼 거면 화만 내던가. 엉엉 울면서도 소리를 질러대는데 당황스러우면서도 웃기고 귀엽고. 대충 눈물 닦아주고 마주친 얼굴이 참 예쁘더라. 그래서 그냥 안아버렸다.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우리 평생 친구 하자."
내가 내뱉은 그 말이 여전히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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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링- 종소리와 함께 들어간 작은 꽃집엔 졸업식 시즌이란 걸 알리듯이 여러 가지 꽃다발들이 예쁘게 줄 서 있었다. 장미같이 흔한 건 싫은데 뭘 사줘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갖은 꽃다발 밑에 적힌 글씨들이 눈에 들어왔다. 꽃말인 듯 보였다. 김여주 이런 숨은 의미 따지는 거 엄청 좋아할 텐데 좋은 거 없나 돌아보던 도중 눈에 띈 문구 하나. 홀린 듯이 바로 결제해 버렸다. 예쁘네, 좋아했으면 좋겠다.
[아네모네 -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더라도, 난 당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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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익)(한달만) (숨기)(도망)
애들 시점으로 썰만 풀다보니까 설렘이 조금 안 느껴지는 것 같아서 준비해 봤습니다
수녕이 남친후보 탈락 아님니다..!
뭔가 찌통이 되어버렸지만 권순영 호랑해ㅠㅠㅠㅠㅠㅠ
♥ 암 호 닉 ♥
[방울이]
[보우보]
암호닉은 언제나 가장 최근 글에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