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IOUS In mysterious 09
WRITTEN BY. 키드
*
파티는 지나치게 화려하다. 천장위로 큰 타원을 그린 붉은 천에는 만다린어로 큰 원을 그린 문양이 복잡하게 얽혀있었고, 그것은 샹들리에를 중심으로 빼곡히 천장위를 메꾼 모양새였다. 차이니즈 풍의 인테리어를 곳곳에 매치시킨 유람선안은 지극히 동양적인 매력을 풍긴다. 이곳이 뉴욕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만큼. 금색으로 화려하게 수놓아진 붉은 융단을 밟으며 홀의 복도를 걷노라면 벽에서 바닥까지 이어지는 금빛 문각을 따라 별처럼 불빛이 반짝이고, 그 사이를 유유히 노니는 사람들은 저마다 파티를 즐기느라 바빴다. 모두가 즐거워 보였다. 적어도 경수 눈에는.
'카이가 경수씨를 찾습니다.'
'…이만 돌아가죠.'
커다란 분수대는 홀 가운데에서 그 위용을 드러낸다. 천장위로 닿을듯 솟아치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경수는 저도 모르게 그곳에 잠깐 멈춰섰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아기천사들이 나팔을 불며 중앙의 여신상을 감싸고 있다. 위로 솟구쳤다 힘없이 쏟아지는 물줄기를 보며, 마치 당장이라도 날아갈듯 웃고있는 천사를, 경수는 말없이 바라봤다. 두 사람은 과연 만났을까. 백현은 보스에게 제가 건낸 물건을 전해드렸을까. 두서없이 떨어지는 물방울 사이로 경수가 시선을 돌린것은, 타오가 제 손을 잡아끌었기 때문이다.
"…저기, 타오."
거칠게 쓸리는 손바닥위로 굳은살이 베긴 손이 딱딱하다고, 긴 시간동안 노력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훈장과도 같은 감촉은 고작 몇 년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경수는 잘 알고 있었다. 백현의 손을 잡을때도 꼭 이런 느낌을 받곤 했는데- 백현을 떠밀듯 보낸 복도위에서 제게 손을 내밀던 이 남자는, 자신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사라진 백현을 찾지도, 제게 어딜 갔던거냐고도. 그저 단지 카이에게 돌아가야한다고- 그렇게 말했을 뿐. 나즈막한 경수의 부름에 고개를 돌린 타오가 눈썹을 올렸다. 그가 항상 착용하는 검은 피어싱이 샹들리에 불빛을 받아 반짝인다.
"카이가 과거에 날 만난적이 있었…나요?"
자신이 모르는 과거의 기억을 숙제처럼 제게 떠넘긴 카이. 복잡한 장미정원의 미로를 지나고, 벤치위에서 다정하게 말해오던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경수가 물었다. 사람을 구했다는건 무슨소리고, 7년전은 또 뭘까…복잡하게 얽혀드는 그의 말들을 하나하나 되새기며 경수가 미간을 찌푸렸고, 찌푸린 미간사이로 들어오는 타오의 시선에 곧 고개를 들고서 그를 마주본다. 무뚝뚝한 얼굴위로 묘한 기운이 서린것 같아,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카이에게 직접 물어보는 편이 나을겁니다."
"…아…"
"하지만, 카이가 대답할리는 없으니까- 제가 말씀드릴게요. 두 분. 과거에 만났습니다."
"저,정말? 진짜요? 그럼 그 말이-"
사실이었어. 혹시나 한건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들으니 뭐라- 할 말이 없어 경수가 입을 꾹 다물었다. 대체 카이킴 정체가 뭐지? 도대체 내가 녀석을 언제 만났다는거야. 나는 모르는 과거의 기억을 카이가 어떻게 아는거고. 경수가 곰곰히 생각하는동안, 타오는 경수의 반응을 살피며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카이는 기억하는 과거를, 경수는 기억하지 못한다. 이런, 설마. 한달내내 꽃집을 들락날락 했는데 그 얼굴을 기억못한다? 얼떨떨하니 이해가 되지않아 이번엔 타오가 경수에게 물었다.
"기억…안납니까? 꽤 자주 만났는데…두 사람."
자주가 아니라 틈만나면. 그덕에 제게 없던 꽃알러지가 생겼다는걸, 경수가 알기나 할까. 정말 모르냐는 말투에 경수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하하, 모르겠어요.' 백프로 진심이다. 저 어색한 입꼬리는 정말 나 몰라요- 뉘앙스를 잔뜩 풍기고 있다. 설마가 진짜라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억은 커녕 카이는 생각조차 안난다는 경수의 덧붙임에 타오가 허- 하는 허탈한 한숨을 내쉬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잡았던 손위로 힘주어 그를 당기며 다시금 걸음을 옮겼다. 비록 머릿속은 경수의 대답에 어지러울지라도, 당장은 경수를 카이곁에 데려다놔야 하니까. 경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자 자신을 죽일듯이 노려보던 카이가 떠오른다. 이래서 늦바람이 무섭다는거지. 제 손바닥안에서 꼼지락거리는 손을 꽉 쥔 타오가 걸음을 빨리했다. 어정쩡하니 따라오는 경수를 흘깃- 바라보고서 흘리듯 말을 붙였다.
"조심하세요. 혹시나 위험한 일이 생기면 큰일이니까."
워낙 대단한 인물들이 모인 파티라- 뒷말을 이으며 타오는 경수의 손을 잡아 그를 뱃머리 쪽으로 이끌었다. 아마 그곳에 카이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경수와 타오가 갑판쪽으로 거의 다다랐을때, 해풍에 펄럭이는 검은 수트자켓을 벗어 제 팔에 올려둔 카이가 난간에 기댄채 두 사람을 등진 모습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타오는 말없이 경수의 손을 놓았다. 허전해진 손 위로 시원한 바닷바람이 훓고 지나갔다. 삐걱거리는 갑판위의 발자국 소리에도 그저 묵묵히 바닷구경에 여념없는 카이를, 경수는 그를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벗어버린 가면이 그의 바지뒷춤에 아무렇게나 꽂혀있었고, 카이 곁에 거의 다다른 경수가 그의 가면을 빼어든것은 순전히 충동에 의해서였다.
"잠깐ㅡ 바람쐬러 다녀왔어."
천만에. 검은 깃털장식의 가면이 당장이라도 날아갈듯 제 손안에서 펄럭거린다. 카이는 대답대신 뒤로 돌아 경수를 확인하곤 그의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경수를 좀 더 제 앞으로 끌어당겼다. 무표정한 얼굴위로 웃음기가 서린다. 카이가 입을 열었다.
"근데, 왜 신호가 안잡혔을까. 당신이 너무 걱정되서 GPS를 달았거든."
그게 아니라 도청장치겠지. 어느새 제 허리를 지분거리는 손을 매섭게 쳐낸 경수가 카이를 흘겼다. 가까이 붙어있던 몸을 뒤로 물리고는, 꺼끌거리는 제 뒷통수를 쓸어내리는 듯 하더니, 손을 좀 더 내려 타이뒤에 붙여진 작은 칩을 떼어낸다. 넥타이를 다시 메준다며 카이가 직접 제 타이에 손을 댔는데, 아마 그때 붙인 모양이었다. 그 모습을 따라 느긋한 시선을 옮기던 카이가 제게 건내오는 칩을 발견하곤 어깨를 으쓱인다. 그 뻔뻔한 얼굴에 경수가 되려 열이 바짝올랐다. 햇빛에 반짝이는 칩을 카이의 손바닥위로 올리곤 굳은 얼굴을 하고서 이제 이런거 붙이지마- 라고 말하자, 카이가 느긋한 얼굴을 하고서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요즘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데, 위치라도 추적해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지."
"…그럴일은 없거든."
"아니. 넌 몰라. 몰라야 하겠지만."
"…"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구미를 당기는 사람이란게- 지금 내 앞에 있으니까."
아니. 이번에는 경수가 고개를 저었다. 잠시 침묵하던 카이가 조금 더 경수에게로 가까이 다가오고, 다시 입을 열었다. 청록색의 바닷결위로 수심을 가로지르는 물줄기가…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당신이 무엇을 보고, 뭘 느꼈던지 간에."
"…"
"경수. 네가 날 떠나는 일은 없을거야."
흰 장갑안에 가려진 카이의 손가락이 경수의 뺨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비린 바닷내가 두 사람사이를 파고들었고, 빠른 속력으로 해수면위를 가르는 선상위로, 두 사람의 시선이 복잡하게 얽혀들었다. 너는 어디까지를 알고있고, 왜 하필이면 나여야 했을까. 나는 네게 어떤 의미일까. 겉으로는 느긋한 얼굴을 하고서 내게 유유히 손을 건네는 너라는 사람은 대체. 뺨을 쓰다듬던 손이 천천히 내려와 입술위를 지긋이 눌렀다. 아- 경수가 저도모르게 입을 살짝 벌렸고, 곧 카이의 엄지손가락이 입안으로 들어왔다. 웃고 있는 얼굴위로 형형하게 빛나는 눈동자를 한 카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경수의 입안을 쓸어내렸다. 벌어진 입술사이로 타액이 새어나왔고, 곧 방금전처럼 입술위를 쓸어내리며 그것을 닦아낸 카이가 손가락을 제 입안에 집어넣었다. 쪽- 외설스럽기 그지없는 그의 행동에 온몸이 빳빳하게 굳어버린 경수가 입을 벙긋거린다. 더,더러워.
"꼭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할 필요는 없잖아."
"…"
"나도 인간이야. 상처받긴 매 한가지라고."
"…"
"더구나- 너라면. 더더욱."
상처받았다는 얼굴 치고는 웃고있어서 도통 믿음이 가지 않았다. 경수는 자꾸만 풀리려는 다리위로 힘을주어 카이를 마주봤다. 지금까지 그가 봐온 사람들중에서 가장 읽기 어려운 얼굴을 한 카이는, 지금 자신을 향해 노골적으로 다정함을 드러내고있었다. 마치 연인을 향해 구애하는 눈빛같다고, 언제고 책에서 읽은 구절을 떠올리며 경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왜 날 그렇게 보는건데- 소리없이 입안에서 멤도는 말을 꺼내보기도전에, 카이가 입을 열었다.
"리어는? 널 경호하라고 붙였는데, 어딜 간거야."
웃고 있던 얼굴을 굳히고 다시 되묻는다. 왜 그녀석이 눈에 안보이는걸까- 주위를 둘러보며 제게 백현을 행방을 묻는 모습에 경수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울렁이는 목 울대를 본 카이가 잠깐 웃었던것도 같았지만, 그는 대답대신 카이의 얼굴위로 가면을 씌웠을뿐이다. 검은 깃털사이로 반짝이는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아는 사람을 만났거든. 잠깐 자리를 비웠어.' 네가 믿던 안믿던 그것은 중요하지 않아. 이미 백현은 보스를 만났을테니까. 가면끝자락에 달린 황금깃털을 매만지는데, 카이가 제 손을 잡는다.
"그럼 이제 널 지킬사람은 나인가?
"…나도 내 한몸은 지킬줄알아."
"안된다니까. 총이 얼마나 위험한데."
제 손을 잡고 선상을 거니는 카이는, 7년전 과거의 누군가. 걷어올린 셔츠아래로 그의 팔뚝에 난 상처를 보며 경수가 천천히 기억을 곱씹는다. 정확히 팔에 상처가 나고, 블랙을 즐기는, 이십대 초반의 남자를 떠올리는 거였지만. 뒤를 돌아본 카이가 그를 향해 미소 짓는다. 그 웃음이 익숙해, 경수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팔의 상처와 블랙의 젊은, 그리고 웃는게…다정한 남자라고.
*
백현은 지금 정신이 없었다. 미친 게이싸이코 카이킴에게 경수를 구해야하는건 둘째치고, 보스…저기…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찬열을 부른 백현이 고개를 푹- 숙인다. 지금 그는 제 손을 잡은 찬열의 손이 신경쓰여 어쩔줄 몰랐다. 저, 보스 손- 조심스레 뒤틀며 빼내려할때마다, 거세진 악력에 입을 다물기를 몇 번. 불과 몇 분전, 자신을 으스러질듯 껴안은 보스는 이내 곧, 사람들을 피해 홀을 빠져나왔고 이제는 어디인지도 모를 복도를 걸어가는 중이다. 백현은 제 목에 걸린 유에스비가 제대로 있는지 셔츠위를 더듬으며 찬열을 바라보았다. 황금가면에 가려진 보스의 눈이, 그 어느때보다 무겁게 가라앉았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백현아- 백현아-'
'나는- 혹시나, 백현이 네가…'
숨도 못쉬게 자신을 끌어안던 보스를, 백현은 다시 떠올렸다. 보스가 그토록 제 걱정을 하다니…감동은 물론이오, 눈물나게 감사하다. 백현은 방금과 달리 조심스레 찬열의 손을 맞잡았다. 다시 한 번 느끼는 거지만, 보스는 부하사랑이 절절하다. 이런 보스는 어딜가던 제 앞의 딱 한분뿐이라고, 백현이 옅은 웃음을 지었다.
두 사람의 걸음이 멈춘것은 그들이 한 참을 더 걷고 걸어서 선상의 거의 끄트머리에 다왔다고 생각되는 즈음이었다. 찬열은 복도끝 왼편에 있던 객실문을 몇번 두드리고선, 대답도 듣기전에 문고리를 잡아돌렸고, 남는 팔을 들어 백현의 어깨를 감싸며 그 안으로 몸을 옮겼다. 그리고 그 곳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낯익은 얼굴들이 백현을 기다리고 있는데, 어서와- 낯익은 얼굴만큼이나 익숙한 목소리가 그를 맞았다. 얼떨떨한 표정을 한 백현이 멍하니 제 앞의 사람을 쳐다봤다.
"오랜만이야 리어."
"…오,오비서님."
여전히 애늙은 얼굴을 한 세훈을 보며, 백현이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지…진짠가- 보스만으로도 충분히 감동인데, 비서님까지. 근 한달만에 보는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백현이 이게 꿈인가?! 하는데 곧 옆에서 장난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감동이지?'
"직접 우리가 마중도 오고말야. 그런 의미에서, 고생많았다 똥강아지. 웰컴 투 더 썬포그."
"닥터…준면쌤까지…"
오비서님에 이어서 김쌤까지, 모두 썬포그에 소속된 백현의 가족과도 같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제게 눈물나게 다정한 인사를 건내왔고. 제 어깨위로 올려진 보스의 손이 토닥거리는데, 그게 꼭 이제까지의 설움을 한방에 날려주는거라, 백현이 저도 모르게 시큰거리는 콧등을 문질렀다. 쪽팔리게, 콧물이…- 붉어진 콧잔등을 손으로 가리는 모습에 준면이 그렇게 감동이냐고 장난스레 묻는다. 대답대신 시선을 피하자 웃으며 머리칼을 헝클인다. 그 익숙함을 느끼자니 앞으론 절대 해외임무는 안맡겠다는 생각이 불쑥 든다. 내가 씨발 진짜, 다시한번 뉴욕땅을 밟으면 똥개고 뭐고 개새끼다. 왈왈.
백현의 어깨를 좀 더 제쪽으로 당긴 찬열이, 방금전보다 풀어진 얼굴을 하고서 입을 열었다.
"…몸은 괜찮은거야, 다친데는 없고? 혹시나 해서 준면을 데려왔는데."
카이가 네게 무슨 짓을 했을지 모르니까- 평소의 보스답지않게 뒷말을 흐리는 모습에, 백현이 제가 쓸떼없이 걱정을 드린건가 싶어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보스를 안심시키기 보다는, 정말 자신은 한 군데도 다친곳이 없었다. 흔한 생채기 하나도 없었고, 심지어 뭣같았지만 밥도 삼시세끼 꼬박 받아먹지 않았나. 괜찮다는듯 제게 옅은 미소를 지어보이는 백현을 향해 찬열이 대답대신 준면에게 고갯짓을 했고, 간단한 의료장비를 제 가방에서 꺼낸 준면이 백현의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 손목을 쥐곤 맥박을 재더니, 고개를 끄덕였고 턱을 잡고서 얼굴을 좌우로 돌리며 또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때보다 진지한 눈빛인데, 진찰은 너무 쉬운거 아니냐며 세훈이 내뱉듯 말을 던지자, 고개도 돌리지 않고서 준면이 대답했다.
"들어올때 멀쩡하게 걸어오겠다. 얼굴에 흠집하나 없겠다.
맥박도 금새 정상으로 뛰는데, 뭘 더 바래. 다됐다. 이정도면 정상입니다 보스."
풀어헤친 셔츠깃사이로 진찰기를 빼낸 준면이 찬열을 향해 안심해도 된다며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걱정가득한 눈빛을 거둔 찬열이 나즈막히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나 했던 걱정에 뜬 눈으로 밤을 새웠다. 백현이 다쳤으면 어떡하나,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리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고서. 안도감에 긴장이 풀려 그제야 숨을 좀 트나 싶은데, 곧 무섭게 몰아치는 백현의 말에 찬열은 눈을 크게 떠야만했다. 보스!!- 어깨 위로 올렸던 제 팔이 어느새 백현의 손에 꽉 잡힌 채 흔들거린다.
"지금 경수가 카이에게 붙잡혔습니다."
"뭐?"
"그 미친놈이 도청장치를 달았어요. 당장 경수를 구해야합니다 보스-"
거기까지 말한 백현이 찬열을 잡아당기며 다시 문쪽을 향해 빠른 걸음을 옮긴다. 내가 미쳤지. 지금 조직원들을 만난 감상에 젖을 때가 아니었다. 경수는 지금 무슨 짓을 겪고있을지 모르는데, 자신은 태평하니 진찰이라니. 거칠게 고개를 저으며 백현이 문고리를 잡아돌리는데, 어느새 제 앞을 가로막은 세훈이 백현의 손을 저지했다. '멈춰.' 라고 냉정하게 말을 꺼내는데, 그 말에 백현의 얼굴이 싸늘하게 굳었다. 찬열을 잡아끈 백현, 백현을 가로막은 세훈. 미묘한 기류가 흐르는 세 사람사이를 중재하고 나선것은 준면이었다. 잠시만 여러분-
"일단, 백현 네 말은 알겠는데. 그건 우리도 알고있는 사실이야."
응. 준면을 거들듯 세훈이 고개를 끄덕이자 백현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풀었다. 안다..지금 그게 무슨- 황당함은 둘째치고, 알고있었다는 말에 백현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진다. 그를 보며 준면이 진정하라는듯 손을 내저었고, 이번엔 세훈이 입을 열었다. 그와 동시에 그때까지도 백현이 잡고있던 찬열의 팔을 조심스레 떼어냈다.
"며칠전, 썬포그에 사람이 찾아왔어. 그가 말하더군, 경수와 네가 있는곳을 안다고 말야."
"…그가 누굽니까."
"나도 몰라. 보스만 알고계셔. 그사람과 보스, 단 둘이서 대화를 진행했거든.
그리고 얼마 안가서 카이에게 잡혔다는 두 사람의 정보를 들을 수 있었고 오늘 약속을 잡았지."
"무슨 약속을-"
"분수대 앞. 그리고 USB."
있지? 얼른 줘봐. 거기까지 말을 마친 세훈이 백현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백현이 움직이기도 전에, 곁에 서있던 찬열이 백현의 타이를 풀었고 꼼꼼히 채워져있던 단추를 하나씩 끌어내렸다. 곧 얼마가지 않아 목에 걸려있던 은색줄을 백현의 머리위로 올려 밖으로 빼내고는 세훈에게 건냈다. 손가락 한마디 남짓 되는 USB를 아래위로 훑은 세훈이 고개를 끄덕였고, 찬열이 물었다. 확실해?
"경수가 말한것과 일치합니다. 겉면의 이니셜도 그대로, 심지어 줄 색깔도 맞습니다."
"그 녀석 말이 맞긴 맞았네."
"경수의 녹음기까지 들고왔으니까요. 게다가, 사기 칠 얼굴은 아니었는데요 뭐."
"일단 그부분은 차차 알아보는걸로 하고, 세훈은 당장 노트북으로 그 안의 자료를 확인해봐.
일단 되는대로 모두 우리 쪽 네트워크에 옮겨둬."
"알겠습니다."
찬열의 말을 따라 재빨리 노트북을 펼치는 세훈을 보며 백현은 뭐가 뭔지 알 수 없어 미간을 구겼다. 준면이 말한 다 알고있었다는 말도, 세훈과 찬열이 그는 알 수없는 말들을 잔뜩 늘어놓는것도. 노트북위를 날아다니는 세훈의 손가락을 오오- 신기하듯 구경하던 준면이 뒤를 돌아 백현을 바라봤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백현을 제 옆으로 잡아 앉히며, 궁금한게 있으면 물어봐- 시원하게 웃으며 백현의 등을 두드렸다. 백현이 이를 아득- 물며 급하게 입을 열었다.
"경수는요. 도경수 지금 카이한테 잡혔다니까요."
경수가 먼저다. 저 USB보다, 제겐 파트너가 먼저였다. 경수생각에 분한듯 입을 앙다문 백현을 보며 준면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눈물나는 전우애구나.
"경수는 괜찮아. 우리가 장담할게."
"어떻게 장담하는데요 김쌤이. 그 또라이 카이킴을 겪어보지도 않았잖아요."
"경수한테 든든한 아군이 있거든. 그자가 앞으로 돕겠대. 조만간 경수도 우리쪽으로 넘어올거야."
"…"
"너 꼭 그럴때는 오비서랑 똑같은 눈으로 날 쳐다보더라."
"제가 뭘요. 경수 생각에 눈이 따끔거려서 그럽니다."
거짓말. 못믿는다는 눈빛이었어 똥강아지. 아프지않게 제 코를 쥐며 흔드는 준면의 손길에 백현이 아아- 소리를 냈고, 곧 그의 손을 떼어낸다. 그리고 준면이 확신하듯 백현을 향해 입을 열었다. '걱정하지마. 카이는 절대 경수를 건들지 못해.' 이성적으로는 절대 그 말을 백프로 신뢰하는것은 아닌데, 또 묘하게 사람을 설득하는 기운이 있어 백현은 그저 대답대신 시선을 옮겼다. 속이 복잡하다. 당장 경수를 구해야하는데, 보스와 비서님, 그리고 닥터김은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는것 같다. 세훈과 함께 자료를 확인하던 찬열이 백현을 바라봤고, 준면을 향해 눈짓을 해보인다. 준면이 고개를 끄덕인다. 찬열은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백현의 곁에 자리잡고 앉았다. 그리고는 흰 뺨위로 그의 손을 올렸다. 백현이 고개를 돌리고서 찬열을 바라봤다.
"날 믿지 못하겠어?"
대답이 없다. 하지만 답이 없다고해서 이 아이가 나를 믿지않는것은 아니다. 다만, 경수 걱정에 혼란스러워하고있어. 찬열은 이번엔 양 손을 들어 백현의 뺨을 그러쥐었다. 식어버린 그의 손 위로 따스한 온도가 천천히 물들어온다. 백현은 다시 입을 열었다.
"경수를 구할거야. 백현아."
"…"
"널 위해서, 우릴 위해서라도. 난 경수를 포기하지 않아."
"보스…경수, 걔 싸움도 잘 못합니다. 총도 겨우 배운녀석이에요. 제 몸지키는것도 버거워 하는데…"
백현의 중얼거림에 곁에서 듣고 있던 준면은 경수가 들으면 뒤로 넘어갈 소리라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웃었다. 찬열도 그 말에 실풋 웃었지만 곧 다시 얼굴을 원래대로 굳히곤 백현을 향해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 열린 창 안으로 수면을 가르는 엘리스 아일랜드의 물줄기가 튀어 올랐다. 이제 배는 서서히 바다 한 가운데에 멈출 것이다.
"정확히 이 십분뒤에 무도회가 열릴거야."
"무도회요?"
"응. 아마 카이도 그곳에 있겠지. 경수도 있을거야. 백현은 내 파트너로 참석해.
그리고 경수를 몰래 빼와."
뺨 위로 올려뒀던 두 손을 내린 찬열이 백현의 손등위로 제 손을 포갰다. 도드라진 뼈마디를 만지며 그는 백현의 표정을 살폈고, 백현이 대답하기도 전에 조금은 처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경수는 카이곁에 있다고 했지?"
"네."
"객실 1층에 있을리가 없잖아. 경수가."
"…다 알고 계신겁니까…"
"널 보내기위해서, 내가 그렇게 하라고 지시했거든. 백현은 절대 경수너를 혼자 두지 않을테니까-
어떤 말을 해서라도 널 안심시키라고."
"보스…"
"그리고 넌 나한테 돌아왔어. 경수가 널 보냈기 때문에."
경수가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널 내게 보낸데에는 다 이유가 있어 백현아. 포갠 손을 아래로 내려 찬열이 백현의 손을 잡는다. 여전히 네 손은 총과, 칼과, 기나긴 싸움에 거칠고 투박하지만 또 부드럽다. 너만이 가질 수 있는 이 감촉을, 나는 평생 다시 느낄 수 없을까봐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네가 알기는 할까. 아직도 나는 그 영안실에서 널 닮은 시신을 꿈에서 맞딱뜨릴때마다 온몸이 무너지는것만 같아. 잡은 손 위로 찬열의 입김이 닿았다. 백현은 저도 모르게 손을 빼내려 제 손목을 비틀었지만 찬열은 다시 힘주어 백현의 손을 당겼다.그 와중에 자판을 두드리던 세훈의 움직임이 서서히 멎어갔고, 곁에서 자료를 확인하던 준면이 찬열을 불렀다.
"보스 잠시 이것 좀 확인하셔야 겠는데요."
"거기서 말해. 다 들리니까."
짐짓 담담한 목소리로 준면에게 답한 찬열이 다시 고개를 돌려 백현을 바라본다. 정확히는 백현 미간의 상처를. 찬열의 얼굴이 무섭게 굳었다. 평생 지워지지 않는 그 상처는, 과거 찬열을 구하기 위해 백현이 찬열 대신 나이프에 미간을 스쳤기 때문에 생긴 상흔이었고. 찬열은 지금처럼, 종종 백현의 미간위로 제 엄지를 올려 문질렀다. 얼른 지워져라-. 이마위로 뭉근하니 닿는 온기에 백현이 옅은 웃음을 머금었다. 찬열은 백현을 마주보며 따라 웃었다. 그 사이를 가른것은 준면의 목소리였다.
"오늘 파티에 신의안도 초대하신겁니까?"
"미쳤어? 내가 그인간을 왜."
"초대장이 보내졌답니다. 여기, 로렌스맨하탄 장부외에 다른 파일이 있어서 확인해봤는데-
오늘 파티 초대명단입니다. 우리쪽 파일을 빼돌린 카이렌에서 초대명단에 임의로 제 세력들을 추가했어요."
"뭐?!! 미친, 그게 말이돼?!"
말이 되는데요. 거들듯 옆에서 입을 연 세훈이 노트북을 찬열쪽으로 돌렸다. 화면위로 썬포그에서 직접 고른 초대명단이 일렬로 서있는데, 그 마지막에 붉은 글씨로 서른 남짓 되는 사람들이 덧붙여져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유유히 '첸'이라고 적힌 명부를 따라 손가락을 움직이던 찬열이 곧 이름을 확인하곤 거칠게 노트북을 닫아버린다. '이, 미친- 아오, 카이킴!!!' 열이올라 두서없이 뱉어내는 욕설은 모두 카이를 향한 찬열의 저주였고, 세훈은 근처에 노닐던 쿠션이 창밖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카이렌에서 순순히 파티에 참석할거라고는 생각도 안했지만, 이런 식으로 세 조직을 모두 끌어들일거라고는 짐작도 못했다. 썬포그, 카이렌, 신의안이라. 각각 한국, 미국, 중국에서 확고한 세력을 형성한 세 조직의 대표들이 이곳에 모인다. 아니, 이곳에 모였다. '나는 뭐, 하려고만 하면!! 다 이모양이냐?!' 다시 켠 노트북의 빨간 램프가 깜빡이는것을 확인한 세훈이 화난 찬열을 향해 입을 열었다.
"이왕 이렇게 된거, 만나는 수 밖에요."
"내가 그 인간을 왜?!"
"첸은 분명 썬포그에서 초대장을 보낸걸로 알겁니다. 보스가 불편해할 이유는 없습니다.
우리 목표는 카이였고, 지금은 경수를 무사히 구해내는게 아닙니까."
"…빌어먹을."
틀린 구석 하나없는 세훈의 말을 곱씹으며 찬열이 어금니를 으득- 깨물었다. 오늘은 무슨 마가 낀 날인가. 그가 싫어하는 두 인간중, 하나가 알아서 기어오다니. 허옇게 질린 주먹을 말아쥐며 찬열이 '당장 무도회 준비해둬.'라고 말했고, 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준면이 세훈을 따라 움직이는동안, 찬열은 달아오른 숨을 고르고서 백현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긴장한 얼굴의 백현이 찬열을 향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괜찮으십니까 보스?"
"아니. 안괜찮아 백현아. 망할 첸이 내 앞에 나타날줄은 상상도 못했거든."
"제가…뭘 도와드릴까요. 보스 말대로 파트너, 그것만 하면 되는 겁니까?"
"파트너겸 애인은 어때."
"…"
"장난이야. 파트너면 충분해. 인이어로 세훈이 모든 지시를 내릴테니까, 백현은 세훈의 명령대로 움직이기만 하면될거야."
애인은 어떠냐는 제 물음에 사색이된 백현이라, 아마 이건 꽤 오래갈것 같은데. 분명 일주일치 상처라며 찬열이 그 혼자 속으로 생각하는동안, 백현은 찬열이 당부한 내용을 되새기며 고개를 그덕였다. 배 위에서의 싸움은 오랜만이다. 아니, 싸움은 오바인가. 어쨌든 도경수를 구하는데 있어서 어느정도의 리스크는 예상했으니까 싸움이던 뭐던, 닥치는 대로 맞딱뜨릴 자신은 있다. 경수를 지키라며 카이가 건냈던 품안의 리볼버를 확인한 백현이 찬열을 향해 걱정하지 말라는 웃음을 지었다. 그 자신있는 웃음에 찬열이 대답대신 백현을 일으켜 세웠고, 그를 드레스룸으로 이끌었다. '네게 어울리는 턱시도를 골라줄게.' 이젠 네 미적감각을 다 외우다시피 했으니까. 세훈에게 들었던 백현의 취향을 머릿속으로 빠르게 넘기며 찬열이 문고리를 돌린다. 어쨌건 파티는 파티였고, 오늘은 널 되찾은 기념으로 성대하게 치뤄야겠어. 화려하게 걸린 옷들을 손등으로 훑으며 찬열이 웃었다. 백현이 제 옆에 있다는것 만으로도, 충분히 기분좋은 모양이었다.
이번에도 큐인미가 초록글이 된것은 | ||
그대들 덕분입니다..ㅜㅜㅜ 이번엔 캡처했어요...세상에 이런날도 오다니..
다음화 스포.
1. 드디어 첸이ㅜㅜㅜ 내사랑 첸이 옵니다ㅜㅜ
2. 변백현의 반항.
3.키스. KISS KISS.
오늘은 새벽을 넘기지 않았어요^^ 이렇게 뿌듯할수가!! 모두 시험은 잘 치루고 있나요? 대부분 이번주 초에 끝나는것 같던데.. 끝까지 화이팅입니다!! 고생한것만큼, 열심히 했으니까 모두 좋은 결과 있을거에요^^.
그리고 매번 댓글 달아주는...고마운 독자님들께 다시한번 고맙다고..전합니다... 시험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시간내서 댓글...ㅜㅜ 고마워요 진짜. 글 안풀릴때마다 댓글 정주행하면서 다시 글쓸힘을 얻습니다^^... 여러분덕에 큐인미가 9화까지 올 수 있었어요!!! 여러분 짱입니다!!♥♥♥♥♥♥ 시험 대박나요!!!
요새 글이 한주에 한편...뜸했죠??ㅜㅜㅜ미안해요... 이제 어느정도 바쁜것도 다 지나갔습니다^^ 그런의미에서 큐인미 10화는 7/5일 올라옵니다!!!이번주 목요일!!(드디어 10화에요ㅜㅜㅜ) 그럼 그때뵈요^^.
(PS. 이번 브금은...나도 잘 모르겠습니다...여러분이 계신곳은 스페인덕후 키드의 공간입니다ㅜㅜ하지만 스페인노래인가? 하는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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