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트/현성] Good Morning |
커튼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햇빛에 성규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젯밤 늦게 들어와 잠자리도 늦게 들었지만 자신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햇살이 싫지는 않다. 성규는 제대로 눈도 못 뜬 채 침대 옆에 놓아둔 핸드폰을 집어 들고 잠금을 풀어 확인을 했다. 아무에게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다. 성규는 안 그래도 작은 눈을 반쯤 뜬 채 문자창을 열어 문자 메시지를 쓰기 시작했다. good morning 이라고. 그렇게 문자를 보내고 성규는 다시 베개에 머리를 파묻고 어젯밤 일을 돌이켰다. - "우현아" 12시가 훨씬 넘은 시각, 가게 안에는 우현과 성규 둘 뿐이었다. 대학 선,후배 사이인 성규와 우현은 과에도 소문이 날 정도로 절친한 사이었다. 어제도 둘이 술이나 마시자며 자주 가던 술집에 간 것이다. 아니, 그렇게 생각한 사람은 우현뿐이었다. 성규에게 어제는 디데이였다. 2년이나 티내지 않으려 애썼던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려 결심한 날. 그래, 어제는 성규가 우현에게 고백한 날이다. 성규는 우현을 신입생 환영회에서 처음 마주쳤을 때부터 마음에 두고 있었다. 신입생들 사이에서 유독 튀던 눈웃음. 남자임에도 웬만한 여자애들보다 작은 얼굴에 적당한 크기의 눈이 자리 잡고 있었고 날카로운 선을 그리는 코도 있었다. 우현에게 관심을 가지고 환영회에서 일부러 우현에게만 말을 걸고 옆에 앉아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배로서 후배를 생각하는 마음을 가장한 채. 그 자리가 둘이 친해지게 된 계기였다. 성규는 그 날 바로 우현의 번호를 받았고 그 뒤로 2년간 사귄다는 소문까지 달고 다니며 둘은 붙어 다녔다. 시험기간일 때면 둘이 머리를 맞대고 도서관에 앉아 밤새도록 공부를 하며 서로 졸음을 깨워줬고 축제기간에는 둘이서 붙어 다녔다. 방학 때면 어김없이 둘이 바다, 산, 들 상관없이 여행을 다녔다. 정말 옆에서 보면 커플처럼, 아니 커플보단 부부에 가까웠다 둘은. 하지만 성규는 알고 있었다. 그렇게 자신과 보낸 2년간 우현에게는 여자 친구가 있을 때도 있었고 실연의 상처에 아파하던 때도 있었다는 것을. 따지고 보면 성규는 우현에게 편하고 좋은 선배로 여겨졌고 우현은 성규에게 미래의 연인이었다. 그렇게 서로 다른 생각을 품은 것을 알면서도 성규는 자신을 좋은 선배로 위장하며 2년간 우현의 마음을 서서히 잠식해갔다. 좋은 일이든 슬픈 일이든 화나는 일이든 무슨 일이 생기면 자신을 먼저 찾도록 우현을 길들였다. 성규는 우현이 자신을 좋아해 줄때까지 언제까지고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기다릴 바에야 우현이 자신에게 빠지게 하는 게 더 빨랐다. 이런 사실을 아는 유일한 사람인 동우는 항상 성규에게 독한 놈이라고, 넌 남우현에게 미쳤다고 했다. 성규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웃어 넘겼다. 남우현에게 첫 눈에 반하고 나서 그에게 미친 것은 사실이니까. "선배, 늦었어요. 일어나요" 우현이 평소보다 촉촉해진 성규의 눈을 보며 말했다. 성규는 자신의 양 어깨를 잡아 일으키려는 우현의 손을 잡아 뺐다. 왜 손을 빼냐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을 뒤로 한 채 성규는 자신의 힘으로 일어나자마자 뒤돌아서 우현을 안았다. 그렇게 우현을 안고 성규는 우현의 가슴팍에 자신의 머리를 기댔다. 우현의 심장이 빠르게 뛰고있다. 아주 빠르게. 우현의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에 기분이 좋아진 성규가 우현 모르게 조그맣게 미소를 지었다. 아마도 우현은 알아챘겠지. 오늘 성규가 다른 날과는 확실히 달랐다는 것을 말이다. 평소라면 생글생글 웃으며 학교에서 있던 일, 동우의 바보스러운 짓들을 늘어놓았을 선배가 어딘가 씁쓸해 보이면서도 색기 가득한 표정으로 술만 마셨으니. 우현은 계속 술만 마시는 성규가 걱정되어 말렸지만 성규는 들을 생각을 하지 않으며 평소 자신의 주량보다 술을 더 마셨다. 하지만 우현이 알고 있는 것처럼 성규의 주량은 그렇게 적지 않았다. 과에서도 알아주는 말술이라는 동우도 성규가 취한 모습을 본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성규가 우현에게 보여준 취한 모습은 모두 다 연극이라는 것이다. 모두 연극.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성규는 우현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준비가 되어있었으니까. 그게 자신을 속이는 일이라고해도. "선배?" 한참을 그렇게 우현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으려니 우현이 성규의 등을 토닥이며 이제 가야한다는 듯 재촉을 한다. 성규는 속으로 뭐가 그렇게 급한 거니 우현아. 날 두고 라고 생각하며 슬픈 듯 아련한 표정을 지으며 우현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우현과 성규의 눈이 마주친 순간 성규의 한 쪽 눈에서는 눈물 한 방울이 흘렀다. "우현아..우현아..남우현.." 성규는 그렇게 괴롭고 슬픈 음성으로 하염없이 우현의 이름을 불렀다. 그렇게하면 우현의 재촉하는 목소리가 멈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성규의 눈물을 처음보는 우현은 성규가 갑자기 안겼을 때보다 더 동요하고 있었다. 우현은 성규의 등을 조심스레 토닥여주고 성규 볼에 흐르는 눈물을 엄지손가락으로 닦아줄 뿐 뭐라고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어떡하니..내가..어떡해야하니.." 이제 막바지에 다다랐다고 생각하며 성규는 우현의 허리에 둘러져있던 팔을 풀고 우현의 목에 감아 우현을 자신에게로 끌어당겼다. 우현은 성규의 눈물에, 그리고 그 슬픈 음성에 놀라 성규의 행동에 전혀 제재를 가할 수 없었다. 아니, 가해서는 안 될 분위기였다. 점점 성규와 우현의 얼굴이 가까워지고 불과 서로의 거리가 1cm 도 남지 않았을 때. 성규가 말했다. "내가..널..너무 사랑해.." 오늘이 한계였다. 더 이상 우현을 사랑하는 마음을 숨겼다가는 성규의 심장이 미쳐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언제까지고 우현에게 좋은 선배 노릇을 하기는 싫었다. 아니 2년이면 넘치고도 남는다. 이제 선배, 후배 놀이는 질린다. 성규의 모든 감각이 느꼈다. 우현의 몸이 굳은 것을. - 그렇게 문자를 보낸 성규는 눈을 감은 채 차분히 생각을 정리했다. 둘 다 술을 마신 상태였고 우현은 필름이 잘 끊기는 성격이기에 어제 아무리 임팩트 있게 고백했다하더라도 세세한 부분들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고백 받은 것 자체는 잊지 않겠지만 그 고백을 위한 성규의 연출을 잊어버리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성규는 한쪽 입 꼬리를 올렸다. 가망성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이제 성규와 우현의 사이는 남남 아니면 연인이다. 그리고 성규는 어젯밤 똑똑히 보았다. 자신의 고백에 점점 달아오르는 우현의 귀를. 성규가 고백을 하고나서 몇 초간 멍하니 있던 우현이 성규를 밀쳐내곤 허둥지둥 가게를 빠져나갈 때까지도 우현의 귀는 빨갛다 못해 타오를 정도였다. 그건 결국 너무 좋거나 너무 화나거나 둘 중 하나라는 건데, 지금까지 우현을 본 결과 우현은 다혈질이라 화가 나면 참지 못한다. 고로 우현은 어젯밤 성규의 고백을 받고 미치도록 좋아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성규는 아직 반응이 없는 핸드폰을 보며 중얼거렸다. "너무 늦지는 마. 늦으면 후회할 거야, 남우현." |
치밀하고 계획적인 성규를 써보고 싶었어요.
우현이를 손에 넣기위해 자신을 철저히 위장하는 그런 성규를요ㅎㅎ
잘 표현됐는 지는 모르겠네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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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中편이 올라올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