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RIOUS In mysterious 10
WRITTEN BY. 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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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호. 금색 라벨아래 날개를 펼친 비둘기문양이 그려진 문. 그리고 복도를 가로질러 그 앞에 선 카이가 문을 연것은, 두 사람이 갑판을 벗어난지 불과 오분도 안되서의 일. '좀 천천히 가-' 제 손목을 잡아끄는 손길에 경수가 인상을 찌푸리며 잡힌 손을 비틀자, 손을 놓는것 대신 걸음을 늦춘 카이가 고개를 돌렸다. 경수를 바라본다. 닫힌 문 너머로 타오와 경호원들의 발소리가 들린다. 경수와 자신이 객실안에 있는동안, 어느 누구던 두 사람을 방해 할 수 없을거라고, 카이가 생각했다. 객실의 한 면을 차지한 넓은 창 너머로, 노을빛을 받아 붉게 타오르는 지평선이 보였고. 오늘의 해는 내일을 위해 수심아래로 가라앉기 시작한다. 그리고 배는 천천히 그 속도를 멈추고 있었다. 이제 곧 있으면 무도회가 시작될 것이다. 경수가 씌워준 가면을 한손으로 벗어내린 카이가 그것을 탁자위에 올려두며 입을 열었다.
"계획을 바꿨어."
"…무슨 계획이 있기는 했어?"
퉁명스런 목소리에 카이가 웃으며 대답했다. '응.' 가면옆, 작은 유리잔위로 그의 손가락이 그것을 가볍게 그러쥐었다. 곧, 천천히 그 안으로 물을 따르며 카이가 뒷말을 이었다.
"…박찬열을 만나서 당신이 말했던 제안을 다시 확인하려 했거든."
"…아."
"정말 신의안과 흑사회에서 날 죽이려드는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
"감히 카이의 부모를 조건으로 내세우는 남자를. 내게 달라고 말할 생각이야."
'뭐…? 너 방금 뭐라고…' 당황한 경수가 뭐라 하기도 전에 다 채워진 물잔을 위태로이 손에 든 카이가 입매를 끌어올렸다. 동시에 경수가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카이가 저런 웃음을 짓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백현이 귀에 닳도록 말하던 '재수없는 웃음'을 목전에 둔 경수가 마른침을 삼킨다. 긴장이 여실히 묻어나는 얼굴위로 카이의 시선이 따라붙는다. 다시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모습에 이번에는 그가 소리내어 웃었다. 메마른 실내공기를 가르는 그 소리가 여느때와는 달랐다. 미묘하게 틀어진 그의 분위기를 경수가 살피는 동안, 카이는 탁자위의 작은 상자를 열어 그 안에서 흰 통을 꺼냈고, 뚜껑을 열어 제 손위로 두 어알정도의 약을 올려둔다. 노란색의 알약. 카이가 고개를 들어 경수를 지긋이 응시한다.
"널 파트너로 데려왔지만. 파트너로 내세우는 일은 없어."
"…왜."
"박찬열이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설마, 내가 두 사람을 순순히 만나게 했을것같아?"
다 안다는 듯 말을 꺼내는 카이를 보며, 경수가 입술을 깨물었다. 알고있을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막상 눈앞에서 당하자니 기분 좋을리가 없었다. 대답대신 인상을 찌푸리는 경수를 향해, 카이가 멀어졌던 거리를 좁혀가기 시작했다. 경수가 뒤로 물렀던 두 발자국을, 그는 한번에 움직였다. 제 머리위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는것을 보며, 경수는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이내 곧, 카이를 마주했다. 제 턱을 잡아당기는 손길때문에.
"리어는 넘겼어도, 널 내손으로 내놓는 일은 없을거야."
"…"
"박찬열에게 경수를 요구하면 녀석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마- 날 죽이려 들지도 모르겠군. 조슈아 성격에 가만있을리가 없으니까."
"…"
"경수야. 그러니까 허튼 짓은 하지마. 두 조직이 해상위에서 전면전을 펼칠수는 없잖아.
한 가지 더 충고하자면… 날 벗어나려는 무모한 용기는 일찌감치 버려."
턱을 쥔 손이 천천히 입술위로 올라선다. 따라붙는 시선만큼이나 짖굳게 제 입술을 가만두지 못하는 카이에게, 경수는 처음으로 분노를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한다. 브로드웨이 뒷골목에서 네게 겁없이 말을 걸었던 그때로 돌아갈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아 넘기겠어. 머릿속을 할퀴는 원망과 제 아둔함은 점점 모아지고 응집되어 카이를 향한 화로 바뀌었고, 경수의 변하는 심리상태를, 카이는 그저 웃음으로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는 곧 입술을 문지르던 손을 떼어 바지 주머니안에 집어넣었던 알약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미련없이 그것을 제 입안에 털어넣었다.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경수의 눈이 커졌다. 뭐,뭐지 지금?!
그리고 놀란 눈은, 뒤잇는 말에 커질수 없을 만큼 커진다. 어느새 입 밖으로 내쉬는 숨이 닿을만큼 카이의 얼굴이 제 앞에 다가와있었다.
"키스를 할거야."
"뭐,뭐?"
"무드 없기는. 눈 감아."
시선을 피하지 않는 짙은 눈동자. 뒷통수를 감싸는 손. 자신을 담던 동공이, 입술이 닿음과 동시에 천천히 감겨들었다. 입술과 입술이 맞물리자 그제야 사태를 실감한 경수가 팔을 들어 그의 허리를 때렸고 반쯤 열려있던 입술을 다시 꾹- 다물었다. 하지만, '우으읍!!-' 무식하리만큼 힘으로 밀어붙이는 녀석탓에, 어느새 얼얼하니 감각이 죽어가는 제 입이 숨좀 쉬자고 아우성이다. 카이가 고개를 틀어가며 입술을 빨아당겼고, 경수는 굳게 닫힌 입을 아예 꽉- 다물었다. 그러나 곧 카이가 제 허리춤을 세게 꼬집었고 그 탓에 힘없이 열린 입술안으로 뜨거운 혀가 밀려들어온다. 붙잡힌 뒷머리사이로 머리카락이 두서없이 엉켜들었고, 제 입안을 쓸어내리는 혀놀림에 자꾸만 다리가 풀린다. 힘없이 늘어지는 경수를 벽에 기대게 한 카이가 맞닿은 고개를 왼쪽으로 틀었다. 붉게 달아오른 입술위로 누구의 것인지 모를 침이 흘러내렸다.
자꾸만 뒤로 도망치는 혀를 옭아멘 카이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뜨며 경수를 바라봤다. 감으라니까, 뜨고 있었네. 충격인지, 아니면 키스가 황홀하게 좋은건지, 멍하니 뜬 눈꺼풀을 그가 손으로 감아내리자 힘없이 눈이 감긴다. 카이의 혀가 농밀하게 키스를 리드하기 시작했다. 혀끝을 뾰족하게 세워 입천장을 두드리다가, 입술끝을 타고 흐르는 타액을 입맞추듯 훓어 올렸다. 반항에 지쳐 늘어진 팔을 제 목뒤로 감는다. 순순히 따라오는 그 행동에 닿은 입술사이로 카이가 호선을 그렸다. 나는 이제 대담하게도 네 허리위로 내 손가락을 얹는다. 부드럽게 리듬을 타며 허리주위를 배회하는 내 손짓을, 경수너는 모르고 있어.
"하…하아…"
누구것인지 모를 달뜬숨이 두 사람사이를 파고들었다. 끈질기게 제 입안을 헤집는 카이의 혀를 받아들이며, 경수는 제 몸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하으…이거, 좀 놔…' 애원하듯 말을 꺼내는데, 채 끝말도 잊지 못할만큼 몸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다리가 풀리는 것을 마지막으로 경수가 쓰러지듯 고개를 숙였다. 축축한 입술위로 언뜻 약냄새가 나는 것도 같다. 카이가 제 어깨밑으로 손을 넣어 자신을 품안에 가두었고, 마지막으로 입술위로 닿는 짧은 키스에. 그 모든것 뒤에서야 경수는 눈을 감을 수 있었다.
"약이 꽤 효과가 빠르네."
"…"
"이럴줄 알았으면 한 알만 먹이는건데."
창문 옆, 네 기둥에 받춰진 침대위로 조심스레 경수를 뉘인 카이가 아쉽다는듯 입을 다물었다. 곤히 잠든 모습도 좋긴 한데, 방금전의 키스는 너무 짧았다고 생각하며, 그는 쇼파위에 올려뒀던 제 수트재킷을 들었다. 푹신한 침대사이로 파묻힌 인영위로 그는 그 위로 제 재킷을 덮는다. 얼굴만 제외한 상체를 완전히 덮어버린 그 모습에 카이가 소리없이 웃었고, 배게위로 흐트러진 머리칼을 빗어넘겼다. 자는모습은 처음이다. 제 앞에서 온몸의 긴장을 푼채, 완전한 잠에빠져버린 경수는 이때까지 봐왔던 모습과는 색다르다. 끝까지 제게 풀지않던 경계심을 모두 놓아버린 모습에. 카이는 조심스레 이마위로 제 입술을 올렸다. 흰 이마위로, 방금까지 제 입술이 닿았던 곳에 붉은기가 도는것을 보며 그는 기분좋은 웃음을 그렸다. 앞으로도 종종…이렇게 재워볼까. 검은욕망이 삐죽이며 고개를 들기시작한다. 언제고 그것이 고삐풀린 망아지가 되기전에, 단단한 울타리를 지어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무도회가 절대적으로 중요함을, 탁자위에 올려뒀던 가면을 집은 카이가 몸을 틀었다.
죽어버린 태양아래, 어느새 검게 칠해진 해수면위로 엘리스 아일랜드가 멈춰있다.
방금전까지 헐떡이며 제 입술을 받아내던 그는 이미 잠에 무기력한 상태. 완벽한 어둠으로 가득한 객실안으로 조용한 숨소리가 울린다. 카이는 그 소리의 주인을 지긋이 바라본다. 그리고는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홀로 남을 연인을 위해, 그는 이제 외로운 싸움을 하러가야만 하므로.
*
해수면을 가르던 엘리스 아일랜드가 멈춘것은 무도회의 시작을 알리는 때이기도 했다. 백현은 제 귓가에 착용한 인이어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제게 명령을 내리는 세훈이 '내 말 잘들려?' 라고 물어왔고, 백현은 대답대신 홀 정중앙에서 모든 상황을 통솔하는 세훈을 향해 고갯짓을 해보였다. 세훈곁의 준면이 동그란 손모양을 그렸고, 세훈은 방금전의 백현과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때보다 화려한 무도회가 열리는 홀 가운데, 저마다 파트너와 춤을 즐기는 모습을 뒤로하고 백현은 제 곁에 서있는 찬열을 바라봤다. 화려한 금색깃털로 꾸며진 가면안의, 찬열의 눈이 백현을 마주하고 있었다.
"보스. 카이는 언제 오는겁니까?"
"글쎄. 아마, 얼마안가서 올거같은데. 그 인간이 무슨 수로 파티를 지나치겠어."
"…경수는 무도회같은거, 싫어하는데."
'시끄러운건 질색이래요.' 흐리듯 덧붙이며 백현은 경수를 떠올렸다. 언제였더라, 도경수와 내가 처음 만났던 때가. 기억도 안나는 6년전의 시간을 더듬으며, 백현은 제 손을 잡은 찬열의 손위로 시선을 내렸다. 지금의 단단하고 강인한 손이 있기전에, 6년전 제게 흰 손을 잡아 건네던 보스의 손이기도 했다. 백현은 6년전 찬열이 제게 소개시켜준 한 소년을 기억해냈다. 덜덜떨며 어깨를 움츠리던 그떄의 도경수는, 참…이런 말은 미안한데 좀 찌질했단 말이지. 지금은 자리에서 물러난 전 보스이신, 찬열의 할아버지가 직접 조직으로 데려왔다던 경수는 한동안 조직내에서 겉돌기만 할 뿐이었다. 어린나이에 이 세계에 발을 들였다며 몇 간부들이 경수를 측은하게 여기는 건 있었지만, 그렇다해서 대부분의 시선이 고운것만은 아니었다. 경수의 실력을 시기하는 무리도 있었고, 출신을 알수가 없다며 경계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자신은 경수의 유일한 파트너가 되었고. 아니. 엄연히 말하면 제가 자청한거였다. 머리쓰는걸 싫어하는 자신이라, 경수같은 브레인이 꼭- 필요했거든.
'야. 너 내 짝지좀 해야겠다.'
'…무슨 소리야.'
'뭐긴 뭐야. 너랑 나랑 이제부터 붙어먹자고.'
'…'
'내가 너 하나 확실히 책임질테니까. 대신, 나좀 도와주라.'
몇년간의 수습기간을 거친 백현이 본격적으로 임무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마지막 월말평가를 무조건 패스해야 했는데, 문제는 그 월말평가라는게 무조건 2인 1팀에 구성원은 무조건 '저격수', '해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남들은 발빨리 제 파트너를 구한마당에, 백현이라고 넋놓고 있을수만은 없는일. 이성을 앞지른 행동은 부랴부랴 경수에게 달려가게끔 만들었고, 백현은 협박과 회유를 섞어가며 경수를 설득했다. 꼬박 일주일동안. 마지막 7일째 되는날, 경수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것을 기점으로 백현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월말평가도 무사히 넘어갔고, 정식 조직원이 되었으며, 가끔 부딪히긴하지만 나름 최고의 친구이자 파트너를 옵션으로 얻었으니까. 무엇보다 도경수가 아니었다면 그때 자신은 썬포그에서 쫓겨나 지금쯤 저 어딘가 지방을 전전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대를 이어 조직에 몸바치겠답시고 짐을 싸서 나갈때 백현의 어머니는 밥주걱을 날리며 다시는 집에 들어오지마라는 엄포를 놓았거든.
"너희 두 사람이 함께 일을 해온게…꼬박 6년정도 됐지?"
"네. 이제 몇달뒤면 7년이네요. 징글징글하게."
'푸흐흐-' 찬열이 김빠지는 웃음소리를 내며 못말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장난치지마.' 두 사람의 실없는 말소리에 세훈의 나무라는 목소리가 인이어를 넘어왔다. 백현은 대답대신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세훈의 잔소리는 스킵하고, 옆자락이 갈라진 붉은 치파오의 여인이 백현을 향해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기때문에. 34 24 36 오- 죽이는데. 풍만한 가슴골 사이를 노골적으로 살피며 능글맞은 웃음을 짓자, 제 파트너의 어깨에 고개를 기댄 여인이 간드러진 웃음을 터트렸다. '까르르-' 저 웃는거봐, 자신을 향해 입꼬리를 살살- 올리는 여인을 보며 백현이 저도 모르게 앞으로 한 발 나가려는 찰나.
"…백현아"
'악!!-' 으스러질듯 제 손을 꽉 쥐는 악력에 절로 곡소리가 나온다. '아으으- 아파으-' 붉게 달아오르는 손을 내려다보며 아픔에 인상을 구긴 백현은. 얼마안가 자신을 부르던 목소리를 떠올리곤 금새 고개를 들어야했다. 석고상처럼 뻣뻣이 굳은 보스의 얼굴, 뭐라 설명할 수 없을만큼 온갖 세상근심을 끌어안은 그 얼굴을 마주하자니 절로 죄스러운 기분이 들어 다시 고개를 숙이는데. '고개들어.' 명령조의 목소리에 금새 고개를 든 백현이 조심스레 찬열의 시선을 마주했고 곧 '죄송합니다.' 재빨리 사과를 한다. 나도 미친놈이네 진짜. 이 상황에 여자한테 눈이 돌아가다니. 한국돌아가면 계룡산이나 한라산에서 정신수양이라도 해야… 보스가 골라준 핑크빛 셔츠깃을 메만지며 제 잘못을 탓하는데, 인이어를 타고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첸- 신의안 첸이 도착했어!'
어느때보다 높아진 세훈의 목소리에 백현이 주위를 살피며 찬열의 앞에 선다. 혹시 몰라, 한 팔을 들어 찬열을 경호하는 모션을 취하는데 또 다시 세훈의 목소리가 귓가를 어지럽힌다. '4시방향. 분홍색…정장을 입은 남자.' 분홍이라는 말에 저도 모르게 제 핑크빛 셔츠를 확인한 백현이 재빨리 고개를 들어 4시 방향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뒤로 물러나있던 찬열이 백현의 팔등을 잡아 내렸지만, 곧 다시 자신을 가로막은 모습에 앞으로 걸어가는 것 대신 그를 따라 고개를 돌린다. 노란불빛을 받아 번쩍거리는 대리석위로, 일정한 간격을 좁히며 제 쪽으로 걸어오는 한 사람이 보인다. 찬열은 자신도 모르게 어금니를 으득- 깨물었다. 손을 말아 주먹을 쥔다. 또각- 또각- 계집애도 아니고 구둣굽 소리를 내는 저 발을 으깨버릴까- 순간 생각도 해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 앞에 서서히 걸음을 멈추는 핑크구두를 확인한 찬열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온통 꽃분홍의 남자를 마주했다. 분홍색 셔츠에, 분홍색 구두에, 분홍색 정장에, 분홍색 넥타이… 전생에 분홍이랑 원수를 졌나.
"…좆 같은 패션하고는…"
"보,보스-"
"설마. 나한테 하는 소린가?"
입매를 일그러뜨리며 비꼬는 찬열과, 그런 제 보스가 당황스러운 백현이, 마지막으로 보자마자 그런 소리냐며 능청을 떠는 첸까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을 멀찌감치 바라보며 세훈이 골치야- 하며 제 미간을 짚는다. 곁에 서있던 준면이 저 두사람 결국 만났네- 하며 너스레를 떨었고, 첸의 뒷편으로 수십명의 가드가 홀 사이사이를 파고드는 것을 지켜본다. 홀 사이를 파고들었던 가드들이 점점 첸을 중심으로 그 간격을 좁혀들자, 세훈이 인상을 구기곤 다시 인이어를 들어 백현에게 명령을 내린다. '백현-'
'지금 신의안 가드들이 그쪽으로 모이고있어.'
대답대신 백현이 세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제 앞의 첸을 주시한다.
'첸이 미치지않고서야 보스를 위협할 일은 없을테니까. 넌 그냥 꼼짝말고 보스옆에 붙어있어.'
"…"
'두 사람 싸울것 같으면 무조건 나한테 말하고. 누가 먼저 시비를 걸었던 보스부터 말려.'
"…"
애들도 아니고 저 두사람은 만나기만 하면 꼭 저렇게 못잡아 먹어서 난리지. 첸을 죽일듯 노려보는 찬열을 향해 한숨을 내쉰 세훈이 말을 마치자, 옆에서 거들듯 준면이 입을 열었다. '아직도 보스는 그때 일을 못 잊은거야?' 잔뜩 비꼰 웃음을 입가에 띄운채 첸에게 말을 건내는 보스를 주시하며 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하게 잘 들리지는 않지만 대충 약쟁이니, 사기꾼이니하는 내용으로 봐선 분명 그때일을 얘기하는 듯 싶었다. 두 사람 사이를 번갈아보며 당황한 기색의 백현이 보스를 말리는듯 손을 내저었고, 첸은 뭐가 좋은지 껄껄거리며 배를 잡고 웃기 시작한다. 저 인간은 뭐가 좋아서 웃는거야. 찬열만큼은 아니어도, 첸을 싫어하는 마음은 같은 세훈의 미간이 구겨졌다. 그때도 꼭 저렇게 웃으면서 썬포그에 뒤집어 씌웠지. 저 구렁이같은 작자를 이곳에서 다시 마주할 줄이야. 어지러이 돌아가며 스텝을 밟는 여인들 사이로 첸과 찬열의 얼굴이 얽혀들었다. 신의안과 썬포그의 두 젊은 수장이 팽팽한 긴장감을 풀지 않은채, 서로를 주시한다.
그리고. 뭐라 입을 열려던 준면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든것은 순간이었다. '야…야 오비서…'
"저기 저사람…혹시…"
"뭐야, 왜그래."
당황한 준면의 얼굴을 힐끗- 바라본 세훈이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몸을 돌렸다. 고개를 돌린 시선아래, 검은 가면의 한 사내가 눈에 들어온다. 자켓은 어디두고 흰 셔츠를 손목까지 걷어올린, 칠흙같은 머리칼을 가진 남자가, 보스와 첸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누구지? 점점 보스곁으로 다가가는 그 사내를 날카로운 눈으로 쫓던 세훈이 검은 가면아래 그의 얼굴을 살피다, 곧 천천히 시선을 내린다. 180조금 넘어보이는 키에, 한눈에 봐도 꽤 다부진 몸을 한 남자. 그리고 좀 더 시선을 내리면… 흰 셔츠깃을 걷어올린 손목위로 복잡한 문신이 그려져 있는데… 마치 그게 꼭…
"…설…마."
검은용이 여의주를 물었다는 그의 문신. 카이렌의 카이만이 가질 수 있다는 그 문양에, 손목전체를 덮은 그의 검은 문신이. 세훈과 준면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
"우리 세사람 이렇게 모이는거 얼마만인지- 세월 참빨라. 그렇지?"
"과거드립칠거면 꺼져. 네 얼굴 불편하니까."
"왜이래. 내가 뭘 잘못했다고. 벌써 잊었어? 네 취임식날 내가 직접 찾아간거."
"미친놈. 그래서 마약거래를 뒤집어씌웠냐. 아직도 검찰에서 나만보면 이를갈아."
찬열은 어금니를 으득 물었다. 겉으론 태연히 쥐고있는 물잔위로 힘줄이선 그의 손등이 미약하게 떨렸고 첸은 그걸보고서 입매를 끌어올렸다. 아직도 그때일을 못잊었는지 얘기하는 내내 저 얼굴이다. 당장이라도 자신을 쏴 갈길것만같은 표정. 우연인지, 필연인지 찬열 주위로 모인 자신과 카이를, 찬열은 '씨발놈들…' 이라 불렀고 얼마 안가 찬열의 비서가 세 사람을 밖으로 이끌었다. 울창한 파라솔아래, 다 큰 세 남자가 이야기꽃을 피운것은 그때부터였다. 물론- 보는 시선에 따라 살얼음판과도 같은 냉전상태라 볼 수 있지만. 그리고 남은 한 사람. 두 사람의 신경전을 유유히 관망하던 카이가 입을 연것은 서로의 가드가 저마다 품안의 총을 꺼내려했기 때문이다.
"일단 쓸모없는 눈싸움은 접어두지. 양쪽 가드들이 당장이라도 이 선상을 벌집으로 만들겠어."
카이는 여유롭게 웃으며 제 몫의 와인을 한입에 삼켰다. 굳이 입안에서 몇번 굴리기도 전에 술술 넘어가는 식감에 카이가 입술을 끌어올렸다. 삼각 트라이앵글 사이에서 우위를 정할사람은 단 하나. 오로지 자신이었다. 첸은 능구렁이 같은 속을 가졌고, 조슈아는 혈기만 넘치는 애송이에 불과하다. 그에 비하면 자신은 꽤나 인간적이며 냉철하지 않나. 붉은 와인잔을 내려놓은 카이가 첸과 찬열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까. 조슈아. 왜 우리를 네 파티에 부른거지?"
비워진 와인잔을 채우는 손길을 제지한 카이가 뒷말을 이었다.
"아 정정할게. 첸은 심심할까봐 내가 불렀고, 나는 네가 부른게 맞아."
"…심심해서 저걸 불렀다?"
"명색이 신의안의 첸인데. 혼자서 빠지면 섭섭하잖아. 안그래 첸?"
"그럼. 나 엄청 심심해."
'덤으로 조슈아 얼굴도 볼겸-사겸사.' 되먹지도 않은 대답에 찬열이 입새를 일그러뜨리며 욕을 내뱉었고 첸은 아랑곳않고서 접시위의 카나페를 깨물었다. 우물거리며 입을 놀리는 그 모습이, 찬열에게 좋게 보일리가 없었다. '너 먹으라고 24시간 주방장 닦달한거 아닌데.' 제 대답을 귓등으로 흘리며 녀석은 포도알을 하나 집어든다. 입안으로 들어가는 알맹이를 보자니 기분이 극으로 치닫는다. 정작 문제의 당사자는 한쪽 입꼬리를 올려 느긋한 미소를 지었다. '음식 괜찮네-' 대답대신 찬열의 주먹이 움찔거린다. 두 사람을 바라보던 카이가 소리없이 웃는다.
"대답해 조슈아. 이렇게까지 해서 날 끌어들인 네 응큼한 속내가 뭐야 대체."
"…말하면 어떡할건데."
"그전에 내가 맞춰볼까? 어때, 괜찮겠어?"
"나한테 수쓰지마. 입 다물어 카이."
그렇게 말하며 찬열은 입술을 깨물면서 제 관자놀이를 꾸욱- 눌렀다. 저 주둥이에 몇번을 넘어갔는데 내가. 오늘같은 중요한 때에 저 말빨에 넘어가서는 안되는 일이다. 대답대신 어깨를 으쓱이는 카이를 향해, 이번엔 찬열대신 첸이 입을 열었다.
"나야 오늘같은 즐거운 파티를 즐기러 왔지만. 너희 두 사람은 그게 아닌걸로 아는데."
"…흐음."
"이번에 썬포그에서 뉴욕으로 조직원을 보냈다지? 그것도 꽤 상급의."
"…"
'이 바닥엔 비밀이 없다니까.' 느긋하니 몸을 뒤로젓힌 첸이 카이와 찬열을 번갈아보며 뒷말을 이었다. 찬열이 쥔 와인잔위로 그의 손등이 붉게 달아올랐다. 저 능글맞은 얼굴위로 뿌릴수만있다면 몇번이고 잔을 집어들었겠지만, 찬열은 행동대신 숨을 고르며 열을 삭힌다. 저 인간이 어떻게 그 사실을 아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오늘의 타겟은 첸이 아니라 카이다. 카이와, 카이가 숨긴 경수. 경수없이 홀로 유유히 앉아있는 카이를 바라보며 찬열은 입술위로 잔을 갖다댄다. 목 너머로 흘러드는 와인을 감흥없이 삼키며, 찬열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카이 네가 바라는 대로 되는일은 절대 없을거라고.
"무슨 일이길래 박찬열 네가 이리도 긴장을 할까."
"긴장은 무슨."
"잔 깨지겠어. 힘 좀 풀어."
덜덜- 떨리는 잔을 친히 손에서 떼어내는 첸의 손길에 카이가 거들듯 '깨진거 아냐?' 라며 덧붙였고, '에이- 그정도는 아냐.' 유유히 받아치는 목소리가 찬열의 속을 헤집는다. 이 새끼들이 지금… 텅 빈 손을 말아쥔 찬열이 입을 아득- 물었다. 첸이 그런 찬열을 재밌는 눈으로 바라보는 동안, 카이는 고개를 틀어 바다위로 시선을 옮겼다. 어둠에 가려진 눈동자 위로, 그 특유의 나긋함과 안도감이 내려앉는다.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두 녀석이 알아서 싸워주는 통에 그리 걱정할 일은 나타나지 않을것 같았으므로. 무엇보다 박찬열이 제게서 경수를 데려갈 일은 없을것이다. 지금쯤 객실안에서 곤히 잠들었을 경수를 떠올린 카이가 의자뒤로 허리를 눕히며 다리를 꼬았고, 그 거만함에 찬열이 '얼씨구- ' 신랄하니 비꼬았다.
첸. 카이. 찬열. 저마다 한 가닥한다는, 아니 역사와 전통이있는 조직의 대표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일은 이때까지 거의 없었다. 평화라는 그럴싸한 명목아래 이제까지 지켜왔던 균형이 오늘을 기점으로 산산히 깨질지도 모르겠다고, 찬열은 생각했다. 둥근 탁자위로 삼각구도를 이룬 세 사람이 서로를 바라본다. 그리고 직감한다. 아마, 오늘이. 그 균형이 깨지는 대단한 날이 될거라고. 칠흙같은 어둠아래 화려한 불빛으로 가득찬 엘리스 아일랜드는 이미 항해를 멈춘지 오래. 배가 다시 항해를 시작하기까지, 이제 고작 10분. 손목위의 시계를 확인한 찬열이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한 곳을 향해 멈춘다. 불어오는 해풍이, 오늘따라 더 거센것 같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SIDE STORY | ||
아하하;;;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런 사이드 스토리는 아니에요;; 그리고 그 전에, 제가 사과를 드려야 할 것같아요.(__) 오늘 넣기로한 변백현의 반항은, 제가 과감히 잘라버렸습니다. 이유는...다음화에 넣어야 더 맛깔나거든요^^ㅎㅎ 게다가 여러분의 호기심을 증폭시켰던 키스또한...카이의 일방적인 입술박치기임을...부정하지 않겠습니다... (__)
그럼 다음화는 어떻게 되냐면-
1. 살떨리는 추격전 2. 찬열신 멘붕. 3.날고뛰는 종대.
이렇게 됩니다^^....너무..기대는...하지마요..여러분ㅜㅜ 지금 추격씬 다시 고쳐야되나 고민중이에요ㅜㅜ 힝.. 아무쪼록 이렇게 11화는 구성이 됩니다. 다음화는 스압유...스크롤이 꽤 길것같아요^^... 하지만 그 뒤로 언제올지 모른다는 함정...ㅋ
이번주는 10화로 큐인미 마무리짓습니다^^...다음주 월요일 돌아올게요.. 항상 성실연재를 꿈꾸는ㅜㅜㅜ 키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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