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진] 12살 차이 극복기
w.1억
쪽팔려서 못가겠다. 뭔가 그냥 잘 자라는 말만 받았을 뿐인데.. 차인 기분이라서 갈까 말까 고민만 했다.
학원 앞에서 망설이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왜 안 들어가고 그러고 있어요?"
"!??!?!?!?!?!??!"
"어.. 미안해요. 놀랐구나.."
"……."
"…왜요?"
"아니요!"
"…안 들어가요?"
"들어가야죠!"
하하하하.. 웃으며 학원 문을 열고 들어가 엘레베이터 버튼을 누르고서 허공을 보았다.
"오늘 병원 가는 날이네요? 언제갈래요?"
"네??????????????"
"오늘 가는 날 아니에요? 그렇게 기억하는데."
"맞아요. 강의 끝나면 가야죠.."
"음.. 그럼..강의 끝나면 강의실에서 좀 기다려줄래요?"
"…네!"
"빨리 나아야 하는데.."
빨리 나아야 한다는 저 말이 왜 나는 좋지않게 들릴까. 나랑 그만 엮이고 싶다는 얘기로 들려서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같은 엘레베이터에 타면 학생들이 쌤에게 말을 걸고, 나는 또 한 없이 작아진다.
단둘이 있을 때만 아는 척 하기 편한 그런 사람. 나는 딱 그 정도.
강의가 끝나고 쌤은 어디 볼 일이 있는지 강의실에서 나갔고.. 나도 잠깐 아이스티 사먹을 겸 카페에 왔을까.
카페 안에서는 또 쌤 얘기들로 가득하다. 저 사람들도 나와 그냥 같은 사람들이겠지..
사람이 너무 많다보니 주문이 많이 밀려서 뒤 늦게 아이스티가 나왔고.. 나는 혹시라도 쌤이 강의실에서 기다릴까 싶어 강의실에 급히 뛰어왔다.
천천히 뒷문을 열면, 쌤이 아무 자리에 앉아서 엎드려서 자고 있었다.
나는 또 그 모습에 심장이 빠르게 뛰고, 천천히 쌤에게 다가가 확인해본다.
"……."
많이 피곤하셨나보네.. 쌤이 자는 건 또 처음보는지라 너무 설레었다. 매일 이런 순간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 왔어요?"
쌤이 일어나서 비몽사몽한 눈으로 나를 보았고, 나는 바보처럼 행동하고 만다.
"어! 안녕하세요."
"…네??"
"……."
"ㅋㅋㅋ 하루에 두 번 인사하는 사람 처음보는데."
"…죄송해요."
"ㅎㅎ 오늘도 아메리카노?"
"…아니요! 아이스티.."
"아메리카노 마신다고 하지 않았었나?"
"그러긴 했는..데.."
픽-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내 어깨 위로 손을 한 번 올렸다 내리며 말한다.
"가요, 병원."
"어우 이거 더럽게 맵네.. 아니 근데 네가 왜 눈치를 봐? 고백을 했어? 뭘 했어? 그냥 카톡한 것 뿐이고.
답장도 받았고.. 막상 철벽친 건 너지이! 그분이 잘자라고 했는데 네가 답장 안 했잖아."
"그렇게라도 현실부정을 해야겠어."
"뭔 현실부정.. 맞잖어. 잘자요~ 여기에 쌤두요~!~ 이랬다가 씹혔어봐.. 더 승질나지."
유아랑 같이 술집에 와서 술을 마시는데 남자들이 이쪽을 힐끔 거리는 걸 보니..
아마 시아가 너무 예뻐서겠지.. 얼굴도 작고.. 비율도 좋고.. 인형같이 생겼으니..
"뭘봐."
가끔 저렇게 너무 띠꺼워서 문제이긴 하지만..
"내일 학원 안 갈래."
"왜."
"작정하고 술 마실랜다."
"오 그건 나도 찬성!! 술 마시즈아!!!!! 나 그럼 오늘 너네 집에서 자야지 ><"
"너 잠꼬대.."
"뭐."
"아니다..화장실에서 잘 수 있겠어?"
"의리가 없구나 너."
원래 술을 잘 마시는 것도, 못 마시는 것도 아니다. 어중간하게 마시긴 하는데 오늘은 그냥 시아랑 맘 먹고 각 2병씩 마시기로 한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떴을 땐.. 시아가 눈 앞에서 취해서 랄랄라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 저 정도면 아직 덜 취한 건데..
나 말이 잘 안 나오는 거 보니까 많이 취했나보네.. 저 멀리 테이블에 앉아있던 남자분들이 우루루 우리 쪽으로 오는 것 까진 보였다.
그 이후론 기억이 잘 안 난다.
해진이 집에서 런닝머신을 타고 있었을까. 소파 위에 올려두었던 핸드폰이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이 시간에 누구한테 전화가 오는 거지.. 고개를 갸웃하며 핸드폰을 확인 한 해진은
고단한이에게 오는 전화에 뭔 일인가 싶어 망설임도 없이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 여버세여
"단한씨??"
- 네에........아니이!! 내가 지금 좀 취했는데요.. 친구랑 같이 있는데요!!!!!!!!!!!!!!!!! 근데에ㅔㅇ에ㅔ
모르는 남자들이이이 와서!! 막 같이 놀자고오오오 억지로 잡고 그래서!!!!!!!! 화장실에 숨어써요
"…네?"
- 와주시면 앙대여 쌤??????????????????? 아아아 무섭따!아ㅏ아!! 쌤이 와주면 참! 좋을 텐데에!!
여기가 어디냐면은...
위치를 말하고 딸꾹질을 하고나서 그냥 뚝 하고 끊어버리는 단한에 해진은 멍하니 화면만 보다가 곧 방으로 들어가 겉옷을 챙긴다.
단한이 말한 술집으로 왔을 땐.. 단한이 테이블에 이마를 박은 채 엎드려 있었고
그 테이블에 있는 남자들은 단한이에게 가자며 팔을 잡아 끌려고 했다.
해진이 술집에 들어오자마자 주위를 둘러보다가 단한을 본다.
"……."
해진이 테이블로 향하면 남자들이 누구세요..? 하고 해진을 올려다보았고, 해진이 단한이의 팔을 잡고 일으켜 끌으며 말한다.
"전화 받고 온 거예요. 술 취했다고 해서."
남자들이 뭐야... 하며 나가려는 해진을 보았고, 해진이 잠깐 멈춰서서 생각을 한다.
분명 아까 친구랑 왔다고 했었는데.... 해진이 뒤돌아 남자들에게 묻는다.
"혹시 이 친구 일행은 어디갔나요?"
"몰라요? 아까 막 밖에 강아지 보고 따라가던데요..?"
"아.. 네.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를 한 해진이 단한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
평소엔 그렇게 한 없이 조용하던 사람이 이렇게 취해있으니까 되게 어색하네..
"아아.. 저 남자들이랑 잘해볼 수 있었던 건데에.. 나.. 이래봬도 연애한지 꽤 됐거든여.
저 친구들도 저한테 관심 있던 것 같았는데 그쳐? 그쳐어???????????????"
"일단 가요. 데려다줄게."
"아아 그쳐어어??????????????????"
"……."
"아 쌔애앰 힘 되~~~~~~~게 쎄당. 나 쌤한테 할말 무지무지 많은데!!"
"얼마나 마셨어요?"
"음.. 세병?????????????"
"세병씩이나.."
"저어기 아까 거기에! 노란머리가 저한테 자자고 했다요."
"……"
"근데 웃긴 건 뭔지 아십니까????"
"……."
"솔깃했다는 거어.. 나도 궁금하거든..... 아 그냥 다시 가서 번호라도 달라 하까바. 좋은 놈 같앴는데 푸헥."
"초면에 자자고 하는 사람중에 좋은 놈 없어요. 이 사람 술 마시면 안 되겠네."
"왜요... 저 쌤 때문에 힘들어서 술 마신 건뎅."
조수석 문을 열고선 강제로 앉힌 해진이 운전석에 타서는 단한이의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낸다.
같이 왔다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을까봐서였다. 근데.. 어디서 연락 한 번도 안 왔기에 해진이 한숨을 내쉬었다.
"친구분 어디갔는지 몰라요?"
"아.. 시아???"
"같이 술 마신 친구분."
"아아! 걔는 취하면 집 가요. 갠차나 갠차나..암암..요.. 췌킷.."
"……."
괜찮다며 그냥 눈을 감아버리는 단한에 해진이 조금은 인상을 쓴 채로 보다가도 픽- 웃는다.
주사 되게 특이하네.
집앞으로 오긴 했는데.. 문제가...
"비밀번호 뭐예요?"
"몰라여~~"
"현관 비밀번호 몰라?"
"모~올라여~"
비밀번호를 한참 안 알려주는 것이다. 20분 동안 계속 물어보아도 안 알려주기에 해진이 어찌할 줄 몰라 하고 있었을까..
단한이 갑자기 눈을 번쩍 뜨더니 말한다.
"아 비번 알아여. 8132... 집 비번은 0553.. 오케이!?"
"……."
"어.. 근데 쌤.. 왜 여기 있어여?"
"춥겠다. 얼른 들어가요."
얼른 들어가자며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려고 하자, 단한이 해진의 손목을 잡았다.
해진이 궁금한 표정으로 단한을 내려다보면, 단한이 말한다.
"쌤."
"……."
"쌔앰."
"네."
"쌤 여자친구 있으세여???"
"……."
"네??????????????? 네?????????????"
"없어요."
"아! 다행이네에!"
"왜 다행이에요?"
"좋아하니까여."
"……."
"모든 사람들이.. 다 쌤 좋아하잖아. 그럼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 거 아니야."
단한이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말하자 해진이 한참 단한을 내려다보다가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단한이의 손목을 잡는다.
"술 너무 마시지 마요. 오늘 큰일날 뻔 했잖아."
"쌤 말 놓아주세여."
"싫은데요?"
"악."
"ㅋㅋㅋ 102호?"
"넹."
"0553이라고 했죠"
"넹."
비밀번호를 눌러 문을 열자 단한이 쿨하게 집으로 들어가버렸고, 해진은 인사할 틈도 없이 그냥 들어가버린 단한에
또 픽- 웃으며 문을 닫고서 뒤를 돌았을까.. 갑자기 문이 열리고 단한이 맨발로 뛰쳐나와 해진을 뒤에서 끌어안는다.
"좋아해요."
"……."
"진짜 너무 좋아해요. 다른사람이 쌤 좋아하는 것도 싫고.. 나만 계속 좋아하다가 만나고싶어요. 쌤.. 마음은 어때요?"
"…술 많이 취한 것 같은데."
그 이후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단한이 해진을 놓아주었고.. 해진은 뒤돌아 단한을 보았다.
단한이 아직 헤롱한 눈을 하고 있었지만..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무표정인 해진을 보니 무서운지 바로 뒤돌아 그냥 집으로 들어가버리는 단한에 해진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빌라에서 나온다.
"시바."
원래 욕 잘 안 하는데. 오늘은 욕이 바로 나왔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속이 울렁거리고.. 어제 밤 일이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시아는 아직도 자는지 연락도 안 받고.. 일단..
"학원 가지 말까."
학원에 가지 말아야 하나.. 진지하게 생각중이다.
결국 어찌저찌 학원에 오게 되었다. 엘레베이터를 타려고 기다리다가.. 문이 열려서 타려 했을까.
"……."
그 안엔 쌤이 있었고.. 역시 여자들에게 둘러쌓여있다. 그리고 난.. 이제는 쌤과 아는 척 할 수 없는 사이가 된 것만 같았다.
타지 않고 그대로 뒤 돌아 학원에서 뛰쳐나와버렸다.
그냥 뻔뻔하게 얼굴을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못 하겠다. 이거.
뛰쳐나와놓고 또 괜히 뭔가 화가 났다. 쌤한테 화가 난 게 아니라.. 내 자신에게 화가 났다.
차마 강의는 못 듣겠고.. 학원 앞에 쭈그리고 앉아서 쌤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2시간이 지나서야 쌤이 나왔고..
나는 쌤의 손목을 잡았다.
"……"
"……."
"어제는 죄송했어요. 제가 너무 민폐를 끼쳤죠."
"……."
"어제 취해서 술김에 말한 거 아니에요."
어차피 이틀만 더 나가면 학원에 안 나와도 되니까. 이제 볼 일도 없을 테니까.
왜 쌤이 내 말에 대답도 안 해준 건지, 이건 알아야겠어.
"진심이었고.. 솔직히 대답을 바라고 말한 거 아니었지만, 제 고백이 대답해줄 가치도 없는 건가 싶어서 조금은 속상해서요."
"……."
"저 괜찮으니까. 그냥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제가 좋지 않아서 그런 대답을 하신 거죠?"
"…네."
너무 솔직하게 대답을 하는 쌤이 미웠다. 하지만 속이 후련했다. 근데.. 난 찌질이마냥 이유가 궁금해졌다.
쓸데없이 당당해지는 이 순간이 너무 쪽팔렸다.
"왜 싫어요?"
"……"
"제가 너무 못생겨서요?"
"아뇨."
"……."
"어려서요."
"……."
"어떻게 만나요. 우리가. 현실적이지 않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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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연중을 할랬는데!...
제가 해진님을 많이 좋아해서..자기만족으로 조금 더 쓸까 생각중이랍니다 헤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