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해진] 12살 차이 극복기
w.1억
쪽팔린 것도 쪽팔린 거지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서로 마음이 맞으면 만날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아무리 나이 차이가 난다고 해도."
"……."
아무 대답 없이 나를 내려다보는 게, 꼭 나이 차이만은 아닌 걸 알게 되었다.
그냥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거야. 나는 평소처럼 밝게 웃으며 허리를 숙였다.
"네, 잘 알겠어요. 어젠 정말 죄송했구요.. 오늘.. 지금 이 상황도 너무 죄송합니다."
"……."
"그리고 병원은 같이 안 가주셔도 돼요. 별 그렇게 많이 다친 것도 아니구요. 그럼.."
목례를 하고서 그냥 뒤돌아 걸었다. 처음으로 누군갈 좋아하게 되어서 고백하는 것도 처음인데.
할 말은 너무 많고.. 집에 가면 분명 후회하겠지만.. 창피해서 더이상 저 자리에 있을 수가 없었다.
아 차이면 이런 기분이구나. 내가 너무 섣부른 것도 있었지만..
"넌 잠이 오냐."
"어.. 존나 졸려.. 술 마신 다음 날에는 쭉 자야 돼."
"나 오늘 쌤한테 고백했는데."
"뭐!!?!?!??!?!?!?!?!?!?"
뭐!?! 하고 벌떡 상체를 일으켜 나를 보는 시아에 나는 웃으며 말한다.
"차였지 뭐. 내가 너무 어리대. 어떻게 만나냐던데? 현실적이지가 않다고."
"야 너는 이 상황에 웃음이 나오냐?????????????? 차인 사람 얼굴 맞아?"
"내가 싫다는데 어쩌겠어."
"아니 근데 그 분은 뭐가.. 현실적이지않대?? 서로 마음 맞으면 그만이지."
"…글쎄."
쌤도 쌤만의 생각이 있고, 사정이 있겠지. 여기서 찡찡거리면 나만 더 못된 년 아닐까.
서로 안지 겨우 일주일도 안 됐는데 벌써부터 술마시다가 깽판부리고, 고백하는 애가 어디있어.
"그 쌤 얼굴 한 번 보고싶다. 나도 그 학원에 가볼래."
"아 안 돼."
"왜!"
"너 티 엄청 낼 것 같단 말이야."
"티내면 어때. 이미 차인 마당에.. 얼~마나 잘생겼길래 고단한을 이렇게 만든 건지 꼭 봐야겄어."
"그냥 키 크고.. 잘생겼어. 남자답고.. 쌍거풀도 없고."
그나저나 내일 학원 가지 말아야겠다. 옆자리 앉는 언니한테 못 간다고 말해놔야겠네.
"그럼 내 친구 소개 받을래? 걔가 너 계속 소개 시켜달라고 했었어. 키도 크고 좀 느끼하게 잘생김."
"싫어."
"왜!!"
"아아아 싫어. 느끼한 거 싫어!"
"누가 느끼하대? 얼굴이 느끼하다구!"
"그러니까 싫다고오오."
해장국이나 마시러 가자는 시아의 말에 조금은 기분이 좋았다. 안 그래도 배고팠는데 해장국으로 쌤이나 잊어야겠네.
"잊기는 개뿔."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학원 옆자리 언니에게 카톡을 보냈다.
[언니! 저 오늘 속이 좀 안 좋아서 못 갈 것 같아요..! 오늘은 예은 언니랑 같이 앉아요!!!]
"모레도 그냥 가지 말까.. 그럼 끝인데."
아 몰라아- 하고 옆으로 고갤 돌렸을 땐.. 유시아가 입 벌리고 자고 있기에 푸흡- 웃음이 나왔다.
아 덕분에 웃는다 웃어..
"예은언니 같이 앉아요..! 오늘 단한이 못 나온대서 혼자 앉아야 될 것 같아서.."
항상 단한과 같이 앉았던 학생의 얘길 들은 해진은 신경이 쓰이는 듯 했다.
"……."
"속이 안 좋대요. 단한이 맨날 웃고 다녀서 단한이 보면서 스트레스 풀렸는데.. 아쉽다.
단한이 내일이면 학원 안 나오잖아요."
"……"
"아 해피바이러스 고단한이 아푸다닝."
속상하다며 단한이의 얘기를 계속 하는 둘을 보며 해진은 생각했다.
며칠동안 조금 가까워졌지만.. 항상 단한이는 웃고있었다. 낯을 가리는지, 수줍어서 그런지 주눅이 들어있어도 항상 웃는다.
해피 바이러스.. 저 말이 되게 잘 어울리네. 말을 더듬는 순간에도 웃고있었으니까.
그리고 어제 나에게 죄송하다 했을 때도 웃고 있었는데. 고백하는 순간에.. 그 순간 만큼은 웃지 않았어.
매일 강의를 들으면서 턱을 괸 채 웃고 있는 모습밖에 못 봤었는데.
오늘 하루종일 핸드폰만 붙잡고있었다. 혹시라도 왜 안 왔냐고 카톡이 올까봐.
올리가 없잖아. 사적인 대화 나눌 사이도 아니고.. 카톡 할 사이는 더더욱 아닌 걸.
그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가지 말까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이제 진짜 쌤을 보는 것도 지막이라는 생각에 일어나서 갈 준비를 한다.
차였고, 이제 가망이 없는 것도 아는데.. 나는 쌤이 뭐라고 오늘 향수 뭐 뿌릴지 고민만 몇십 번을 한 것 같다.
학원에 도착해 엘레베이터를 탔다. 마침 내 옆자리에 앉는 언니가 따라 타기에 인사를 하면, 언니가 말한다.
"아픈 건?"
"괜찮아요. 어제 해장 좀 하느라고 못 나왔던 거예요."
"그래?? 안색이 안 좋다?"
"기분 탓일 걸요~?"
"아닌데~"
언니랑 밝게 웃고 떠들며 강의실 안으로 들어섰다. 역시 쌤은 먼저 강의 시작 전에 도착해계셨고 여자들이 모두 쌤을 바라보고 있다.
쌤과 눈이 마주치면 너무 민망하지만 최대한 밝게 웃으며 허리 숙여 인사를 했다.
"…네."
평소엔 내가 인사하면 웃어주더니 싫은 사람이라고 정색하긴..
얄밉지만, 그래도 나라도.. 싫은 사람이 인사하면 저럴 수 있다는 생각에 진정했다.
"야 근데 단한아 너 소개 안 받을래??"
"소개요?"
"그 얼마 전에.. 내 친구가 학원 앞에 왔다가 너 우연히 봤는데 너무 예쁘다고 소개 시켜달래."
"네에...??? 언니 친구라면.."
"응. 나랑 동갑이야.. 스물아홉!"
"아아... 아니에요!"
"왜애?? 걔 완전 잘생겼는데."
"…괜찮아요!"
"아아.. 왜애.. 치.. 그럼 너 내일부터 학원 안 나오니까.. 오늘 나랑 밥 같이 먹자! 점심 안 먹고 왔지?"
"먹고 왔는데.."
먹고오기는 개뿔.. 입맛 없어서 먹지도 않았다.
딱 봐도 그 친구분이랑 같이 엮으려는 것 같아서 거짓말을 하긴 했는데...
"그래? 그럼.. 내가 연락할게! 언니가 밥 쏨!"
"더치페이!!"
"ㅋㅋㅋㅋ됐어 언니가 사."
"아니요! 더치페이이!"
"ㅋㅋㅋ으이구 진짴ㅋ 알겠어! 오늘 마지막 수업이니까.. 빡공!"
"빡공!"
쌤이 강의를 해주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집중이 안 됐다. 눈 안 마주치려고 계속 노력하느라 강의 내용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으니까.
강의가 끝나자마자 강의실에서 나가는 쌤을 본 나는 쌤에게 할 말은 해야겠단 생각에 쌤에게 다가갔다.
"쌤."
"……."
"여태 좋은 강의 들려줘서 감사했습니다. 저 진짜 바보라서 이해하는데 한~참 걸리거든요.
근데.. 쌤 강의는 한 번 듣고 이해가 쏙쏙 됐다니깐요!"
허리숙여 감사하다 하자, 쌤이 나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또 저렇게 나를 본다.
당황한 표정.
"오늘까지예요?"
"네. 이제 학교 다녀야죠! 알바도 하고.. 바쁠 것 같기도 해서.. 학원 연장은 더 못 할 것 같아요! 아 그리고!"
"……."
"저 어깨는 정말 괜찮으니까,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정말."
"……."
"그럼 가보겠습니다."
정말로 끝이다. 정말로 이제 쌤을 볼 일도 없구나..
사실 어깨 일로 더 볼 수 있는 건데. 자존심도 너무 상하고.. 다시 볼 자신이 없어서 먼저 선을 그었다.
단한이의 가방에 달린 작은 인형을 본 해진은 다른 쌤이 말을 걸자 고갤 돌려본다.
얘기를 다 마친 해진이 다시 앞을 보았을 땐.. 단한이는 이미 가고 없었고.
문 앞에는 단한이의 가방에 달려있었던 인형이 떨어져있다. 터벅터벅 걸어가 인형을 손에 쥔 해진이 문을 열고 나가서는
저 멀리 사라지려고 하는 단한을 보고 뛰어간다.
단한과 가까워졌을까.. 붙잡고 줘도 되는 거였고, 불러서 멈춰 세울 수도 있던 거였는데.. 해진은 그러지 않았다.
"……."
그저 단한이 가는대로 따라가던 해진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
걸음은 어찌나 빠른지 큰 키는 아닌 녀석이 나보다 걸음이 더 빠르다.
"……."
한참을 걷다가 멈춰서는 단한이의 시선은 한 곳으로 향해있다.
어디를 보나 싶어서 같이 시선을 향하면.. 순대국밥집 간판을 보다가 웃으며 그 안으로 들어간다.
해진은 여전히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가게로 들어가는 단한을 본다.
가게로 가까이 다가가 가게 안을 본 해진은 쓸쓸히 자리에 앉아서 국밥 하나 시키는 단한을 보며 망설이다 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문 열리는 소리에 고갤 든 단한이는 생각도 못 한 얼굴에 벙찐 표정을 짓는다.
해진이 단한이의 앞자리에 앉아서는 인형을 건네주며 직원에게 말한다.
"하나 더 주세요. 그리고.. 계산은 이 카드로 해주세요."
해진이 카드를 건네주자, 직원이 단한이에게 받은 카드를 단한이에게 돌려주고선 해인의 카드로 계산을 한다.
"…쌤이 왜.."
"어디가서 국밥 혼자 먹고 그러지 마."
"……."
"되게 쓸쓸해 보여."
"어.. 지금 말 놓으신.."
"그리고."
"……."
"어깨는 내가 신경이 쓰여서 그러니까. 병원은 같이 가."
"……."
한참을 바보처럼 가만히 있던 단한이 해진을 바라보았고.. 해진 역시 단한을 바라본다.
"아니요."
"……."
"정말 괜찮아요. 안 그러셔도.."
"아니, 내가 안 괜찮아."
"제가!"
"……."
"제가 껄끄러워서 그래요."
분명 화가 났다. 속상하고 화가나서 짜증을 내는 것 같은데.
웃는 상이라서 그런지 전혀 무섭지가 않고, 귀엽단 생각이 든 해진은 오히려 뻔뻔하게 대답을 한다.
"왜."
"왜라뇨.. 당연히 저는 쌤한테 차였으니까.. 아니.. 한 번도 안 차여보셨어요? "
"……."
"차인 사람이랑 같이 한 공간에 있는 것도 숨막히는데.. 전 지금 이 상황도.."
"……."
말을 끝까지 하지 않은 단한이 '죄송해요..'하고 고개를 숙인다.
뭐가 죄송하다는 건진 모르겠지만.. 해인은 말 없이 숟가락과 젓가락을 앞에 놓아준다.
그렇게 둘은 말도 없이.. 한참을 있는다. 마치 싸운 연인들 처럼.
"……."
해진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겉옷을 벗어 침대 위로 던져두고선 셔츠 단추를 하나씩 푼다.
옷을 갈아입은 해진이 소파에 앉아서는 무언가 생각하듯 허공을 바라보다, 힘 없이 등을 기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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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던 고백하면 신경 많이 쓰이지~~^^ 그럼그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