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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
명.
"짐은 너를 안다."
황상 폐위.
"아주 오래 전부터, 또한 이생을 넘어서까지 함께할 것이다."
今日(금일).
"은애하는 나의 경수."
殺(살)하라.
처음 보는 세상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남자. 가장 더럽고 낮은 곳에서 태어나 탄생부터 버림으로 시작된 삶과는 영원히 맞닿을 수 없는 사람이라 여겼다. 상상조차 못하던 인물과 마주하기 전까지.
가장 은밀하고 추악한 그곳에서.
'네가 이 기방에서 사내들을 받는다지.'
'예.'
'명이다.'
'어인 명이십니까. 높은 분께서.'
'궁으로 들라.'
'천것이 몸을 뉘일 곳이 아닙니다.'
'궁으로 들어 황제를 뫼셔라.'
'.....'
'그리고나서.'
'.....'
'그를 죽이라.'
'허면 말입니다.'
'.....'
'제가 그리한다면.'
'......'
'명을 받들어 모반에 가담한다면 제게 돌아오는 것은 무엇입니까.'
'..뭐라.'
'명을 받들지 않겠다 하여 공께서 금시 저의 목을 저 보검으로 베어가신다 하시어도 이년은 이생에 한치의 미련도 없습니다.'
'...나와 흥정을 하자는 것이냐. 네깟것이.'
'정치의 야망을 그리 가득 품은 분께서 잃을 것이 없는 자를 꾀어내려 하십니까.'
"맹랑하구나. 해서, 네가 바라는 것이 있느냐."
'제가 바라는 것은.'
그날의 나의 답.
마주한 순간부터 내게 세상을 안긴 황제. 내가 당신에게 안길 영원한 안식이 내 손안에 있는데.
"허면 소인이 감히 폐하의 목숨을 원한다면."
"...."
"폐하께선 제게 내어주실 수 있으십니까."
"..아니."
"......"
"그럴 수 없다."
"헌데, 제게 어찌,"
"이미."
"......"
"네것이 아니냐."
거칠 것이 없는 삶이었다. 사내의 몸으로 태어나 사내를 홀리고 몸을 팔아 연명하는 삶에 미련이 있을 턱이 없었다. 그저 끊을 길이 없어 잇고 있던 숨. 어째서 당신은 그런 연을 내게 품은건지 감히 물을 수도 없었다.
이나라 황제의 목숨이 내것이라.
아.
이 얼마나 황홀한 일인가.
"소인을 어찌 이리 대하시는 것이옵니까."
"무어가 말이냐."
"소인은 천한 기방 뒤주에서 근본도 모르게 태어나 버려져, 이날까지 이어온 목숨입니다. 하늘의 천자께서 마주하지도 말아야 할 그런 미물만도 못한 삶이옵니다."
"계속 해보거라."
"배운 것도 없이 그저 타고난 몸뚱이 하나로 이사내 저사내를 묘령으로 홀려 살아온 더러운 몸이옵니다."
"해서."
"....."
"어찌 해주랴."
"....."
"그동안 널 안았던 사내들을 모두 색벌해 능지처참에 처할까."
"폐하."
"그것도 아니면 널 넣아 버린 네 어미를 찾아 부관참시에 처할까."
"....."
"네가 그리 생각지 않을 수만 있다면 못할 것도 없지."
"....."
"네가 살아온 기방으로 도읍을 옮길까. 해서 네가 다신 그곳이 천하다 생각지 못하게 그리 해줄까."
아니.
나를 믿지마세요.
그것이 내가 당신께 바라는 것입니다.
애정의 무게가 더해질수록 더해지는 이 뜻모를 마음이 도저히 가벼이 떠날 생각을 않으니..제발.
짙은 어둠이 가득 내려앉은 편전.
존재한 하나의 그림자.
숨어들어온 또 하나의 그림자.
"대군께서 이리 야심한 시각에 대전엔 어인 행차십니까."
"...송구하옵니다 폐하. 소신, 미쳐 간수하지 못한 것이 떠올라 이리 결례를 무릅쓰고..."
"대군."
"...예, 폐하."
"아무리 총비에게 눈이 먼 황제라고는 하나 내 그걸 믿을까."
사실은.
"폐하, 하오면 소신은 그만 처소로 물러가겠나이다."
형님을 한때나마 따르고 싶었던 적이 있었노라 말할까 싶었지만.
"..종인아."
황위에 오르고 나서 처음으로 불러보는 아우의 아명. 대군, 아니 종인은 예를 잊고 물러나던 발걸음을 멈춰 황제의 얼굴을 마주했다. 종인. 어미가 그리 죽고 누구에게도 불린 적이 없던 이름. 종인.
"내일, 네가 병사들을 이끈다면 필시 넌 후에 반역자로 몰릴 것이다. 예판을 믿지 말거라."
당신은
"병판을 앞세워라. 아둔하고 군림하기를 즐기는 이다, 필시 네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다."
알고 계셨습니까.
"때를 기다리거라. 내가 죽고나면 제1의 계승자는 어차피 네가 아니더냐."
나의, 형님.
"빠르고 좁은 사냥은 숨긴 발톱에 달린것. 명심하거라. 내목을 치는 것이 너여선 안돼."
내일의 모반을.
"그러니 병판을 앞세우거라. 그는 계륵같은 존재이니 내일을 끝으로 이 조정에서 쓸모를 잃을 것이다."
"알고..계셨습니까."
"소학을 떼고부터 군자학을 함께 배우지 않았느냐. 곧잘 했어."
"헌데..헌데 어찌..."
"헌데 어찌 알음하지 않았는지를 묻는 것이냐."
당신의 눈과 귀를 막아 당신이 가장 높게 존재하는 세상에서 당신을 몰아내려 반역을 꾸미는 아우와 가식을 가득 두른 신료들을 눈감은 연유가 무엇입니까.
그리 묻고 싶었다.
"알았다면, 해서 내 너와 그들을 처단하려 움직였다면."
흥락에 취해 정사에 관심이 없는 황제로.
"내게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은채 끝났겠지."
예인에 마음을 뺏겨 민심을 돌보지 못한 황제로.
"...경수를."
그리 남을 것인데.
역사 속에 당신이.
"...안전하게."
나만이 당신의 진심과 마음을 이곳에서 듣습니다.
"지켜낼 시간이."
당신이 누구보다도 총명하고 사려깊은 왕의 재목인지 가장 어릴 적부터 지켜봐왔다. 그런 당신의 타락마저. 그저 눈을 잠시 가리기 위해 들인 당신의 가인은 어떤 의미인가.
"내 너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을 것이다. 허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다."
적자인 당신에게 늘 가려져 살아온 어린 날.
"네가 태어나고 다섯해 되던 날, 천자문을 다 외우지 못하고 내 행운각에서 벌을 받고 있을때. 비가 많이 오지 않았더냐."
천둥이 몰아치고 번개가 내려 어린 마음에 하나밖에 없던 피붙이인 당신에게 달려갔다.
"그때, 끝까지 네게 문을 열지 않았던 것이 스무해가 지난 지금까지 마음에서 떠나질 않는구나."
"지금, 제게 동정을 구걸하시는 것입니까."
"맞다."
"....."
"내 무릎이라도 꿇고 네게 구걸하마. 그러니..."
"....."
"모반이 일 때, 경수를 가장 안전한 곳으로 이끌어다오."
"....."
"내 마지막을 경수가 보지 못하도록."
"대체, 그이가...대관절 천한 그 예인이 무엇이간데 형님께선,"
"네가 그리 해준다 약조만 해준다면 내 미련없이 목숨을 내놓고 황위를 넘기마."
"천자의 목숨이..아깝지도 않으십니까. 하늘이 내리신 목숨입니다."
지금쯤 그에게 갔을 서신 한장.
"단지 내가 애석한건 말이다."
명.
"내목숨은 이미 경수의 것인데."
황상 폐위.
"내 마음대로 이리 내놓은 것이 경수에게 미안할 뿐이다."
今日(금일).
"네말대로 하늘이 내리신 목숨이라면 두어개 정도는 더 얹어받을걸 그랬다."
殺(살)하라.
"경수에게 줄 수 있는 세상도 목숨도 하나뿐이니."
당신의 세상에 당신의 목숨이.
"이 어찌 애석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