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세준]조각조각
벛꽃나무 아래, 세훈이 서있다. 나무에 등을 기댄 세훈이 가만히 팔짱을 낀다. 누굴 기다리는지 얼굴이 잔뜩 설렘과 짜증으로 부풀어올랐다. 세훈이 떨어지는 벛꽃을 잡아냈다.
쓸데없이 벛꽃 진짜 예쁘네.
세훈이 손에 있는 벛꽃을 털고,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머리에 있는 벛꽃을 털어내고, 앞을 보았다. 그 앞에 보이는 건 다름아닌 저와 같은 반인 준면이었다. 준면은 터벅터벅 걸어서 세훈의 앞에 섰다. 세훈보다 한참은 작은 키를 가진 준면이 세훈을 뚫어져라 올려다보았다. 진득하고 동글한 눈빛을 계속 받은 세훈이 뻘쭘한지 눈썹을 찡그린다.
“ 할말 있어? ”
“ …응. ”
뭔데? 세훈이 작은 쪽지에 둥그런 글씨체를 생각해내며 물었다. 준면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 좋아해. ”
“ 미친. ”
반사적으로 나온 미친.이라는 단어에 준면이 또한번 미소를 지어보인다.
“ 내가 예상한 말들 중 하나였어. ”
“ ……. ”
“ 내가 혐오스럽지? 그렇겠지…. ”
준면이 고개를 뚝 떨구며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어딘지 모르게 구슬펐다.
“ 있잖아. 내가 이런말을 해서 너에게 어떤식으로든 기억을 남기고 싶었어. 그게 혐오든. 뭐든. ”
준면이 웃는 얼굴을 지우고서 세훈을 한번 쳐다보고 눈물을 뚝. 떨궜다. 세훈은 입술을 꾹 다물고만 있었다. 준면이 몸을 돌려 왔을때처럼 터벅터벅 그러나 조금은 무거운 걸음으로 학교로 돌아갔다. 세훈은 그자리에 멀뚱히 서 있을 뿐이었다.
세훈과 준면이 이야기를 나눈 그 다음날. 준면의 자리엔 준면의 피부처럼 하얀 국화꽃이 놓여있었다. 세훈이 아이들이 다 간 교실에 홀로 남아 준면의 자리에 살포시 앉아보았다. 준면의 마지막 말과 함께 그의 마지막 모습, 표정들이 스쳐지나갔다. 모든 슬픔을 끌어안은 듯한 그 표정에 자신이 더 가슴 아팠었다. 좋아해라는 단 한마디가 지극히도 혐오스러웠음에도 동정이었던지 그런 느낌이 들었었다. 준면의 책상을 한번 보고, 책상 속에 손을 넣었다. 책상 속엔 매끈한 공책이 만져졌다. 세훈이 스윽 그 공책을 꺼냈다. 깔끔한 공책을 멍하게 보던 세훈이 고심끝에 첫 장을 펼쳤다. 그 쪽지에 적혀진 글씨체와 똑같은 둥그런 글씨체가 눈에 들어왔다. 한장한장 넘겨본 세훈의 얼굴이 슬픔에 물들어갔다. 자신을 이렇게나 좋아했던 준면이 조금은 불쌍하기도 했다. 마지막 장. …세훈은 끝끝내 눈을 감아버렸다.
오늘은 세훈이가 기분이 좋아보였다. 무슨일이 있었던 건지 계속 웃음을 달고 다녔다.
세훈이의 기분이 좋은데 나는 오늘 고백을 하고 싶었다. 아마 세훈이는 내 고백을 듣고 기분이 나빠지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미안하다. 내가 세훈이의 기분을 망치는 건 아닐까? 두렵다.
무슨말을 들을지 예상이 된다. 그래서 더 슬프다. 세훈이 얼굴을 보면 뭐라고 얘기해야 할까.
오랫동안 숨겨왔던 마음을 꺼내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오늘은 용기내고 싶다. 마지막이니까.
‘ 세훈아. 기분 좋은 날 화나게 해서 미안. ’
밖에서 내리는 비 속에서 준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아진짜 새벽에 쓸데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