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트/우현성규] 멀어진다
어, 어, 술마시자고? 알았어. 응 거기에서 봐.
동우의 전화를 끊고, 추워지는 날씨에 패딩을 껴입고,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갖는 술자리여서인지 반갑기도 했고, 적당히 마시자는 생각만 했다. 근처 술집에 들어가 동우가 있는 곳을 찾았다. 동우가 손을 들었고, 나는 동우가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 오랜만이다? 짜식, 잘 지냈냐? ”
“ 그럼. 너는, 너는 잘 지냈냐? ”
“ 나도 마찬가지. 앉아 얼른. ”
동우의 말에 나는 얼른 맞은 편에 앉았고, 안부를 물었다. 처음은 평범하게 요즘 뭐하냐 였다. 동우는 요즘 과제때문에 죽을 것 같다 했다. 나는 요즘 할일이 너무 없어 쉬고만 있다고 했다. 그러다가 자연스레 전 여친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내가 이런 이야기 할려고 오랜만에 술자리에 나온게 아닌데 자꾸만 이야기를 꺼내는 동우가 야속하고, 얄미웠다. 이미 잊은 사람을 꺼내서 뭐하러 하는 건지 모르겠다.
“ 야, 그만해라. 나 다 잊었어. 벌써 3개월이나 더 된 일이다. ”
“ 알지- 잊은 거 다 알아. 근데 나 홍대에서 걔 만났다? 옆에 존나 예쁜 여자 끼고 있더라? ”
“ 장동우, 그만해라? ”
“ 아, 알았어. 알았어- 근데 진짜 괜찮은거 맞지? ”
날 놀리는 건지 위로하는 건지 모를 녀석 때문에 짜증이 났다. 내가 왜 걔 이야기를 너한테 들어야 하는 거야. 그렇게 내가 힘들다고 질질 짜는 모습이 보고 싶었어? 억지로라도 니 말에 울고, 힘들어하고 이래야되? 왜 아직도 내가 힘들어할 거라고 생각해? 니가 걔 좋아했어? 그래서 그래? 걔 만나고 싶어서? 니가 아주 내 머리를 헤집어 놓는 구나.
“ 장동우, 하지마. 나 걔이름도 생각안나. 내가 말했지. 내가 헤어지고 싶어서 걔가 헤어지자고 한거라고 너 머리가 딸려? 이해가 안되? 왜 지난 일을 들먹거려. 오랜만에 만나서 좋게 보낼라 그랬더니 너 지금 염장지르냐? 씨발. 됐다. 내가 말을 말자. 나 간다. ”
“ 어? 어어, 야! 김성규! 내가 미안해! 야, 가지마! ”
내 이름을 부르는 동우의 말을 무시하고 집을 가려 버스에 올라탔다. 개새끼. 나쁜놈. 속으로 욕을 짓거리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때, 핸드폰에 전화가 울렸다. 동운 줄 알고 끊으려 했다가 보이는 어딘가 익숙한 번호에 멈칫했다. 입술을 앙 다물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성규야. ”
“ ……. ”
익숙한 목소리다. 몇개월 전만해도 지겹도록 들었던 목소리다. 지금은 다른 년놈과 시시덕 거리고 있어야 할 목소리다. 그래. 너다. 너 맞다. 내가 예전엔 미치도록 사랑했던 남우현이다. 나는, 어쩌면 아직도 너를 잊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아, 넌 왜 이렇게 날 흔들어 놓는 거니. 이제야 겨우 잊어가고 있었는데, 잊었는데. 잊은 거라 생각했는데.
“ 안녕. 오랜만이다. ”
너의 목소리를 들으니 난 내가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고,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전엔 자연스럽게 불렀던 이름이 기억나지가 않았었다. 너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었다. 너에게서 멀어지고 있었다. 너의 향기가 멀어져 갔고, 너의 모습이 멀어져 갔고, 내가 너에게서 멀어져 갔다. 내가 널 막아섰고, 너에게서 뒤돌았다. 아픈 가슴을 움켜쥐고, 울음을 참는다. 내가 널 잊고 있다는 거다. 그런데, 이렇게 목소리를 들으면 모든 게 선명해지고, 머리속에서 떠오르고, 내가 다시 너에게로 돌아간다. 아직도 내 앞에 있던 니가 선명하다. 잊은 것 같았던 니가, 머릿속에서 지워진 줄만 알았던 니가. 다시 선명해지고 기억난다. 너의 향기, 너의 모습, 너의 행동, 너의 웃음, 너의 목소리. 이 모든게 기억난다. 난 아직도 너를 잊지 못한 것 같다.
남우현, 너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