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열백현] 비오는 날
비가 온다. 더운 날씨를 그나마 시원하게 해주는 비가 오늘따라 반갑지 않다. 비오기 전엔 비 좀 와라.하고 일상처럼 내뱉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하필이면, 예고도 없이 쏟아지는 비 덕분에 불퉁하게 입을 내밀고 투덜거렸다.
“ 왜 지금 오는 거야. 우산도 없는데. ”
그러다가 쭉 나온 내 입술을 밀어 넣어주는 찬열이다. 언제 내 옆으로 온건지 뒤에서 날 잡아채 입을 꾹꾹 손바닥으로 눌러버린다. 느껴지는 짠 맛에 기겁을 하고 찬열이의 손을 치웠다. 퉤퉤. 더럽게! 이번엔 큰 소리를 내며 찬열이에게 투덜투덜.
“ 넌 왜이렇게 늦게 오냐? 너만 아니었음 비 오기 전에 집에 도착했겠다! ”
시끄러. 꼬맹아. 내 불만에 내 머리를 툭툭 내리치는 찬열에게 있는 짜증을 다 부렸다. 내 짜증에 미안한지 머리를 긁적인 찬열이가 가방을 앞으로 매더니 열어서 뒤적거렸다. 오, 우산이 있는가봉가? 혹시나 하는 기대를 하며 말장난을 했다. 내 물음에 헐. 하는 표정을 지어보인 찬열이를 무시하고 방긋방긋 웃었다. 그리고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찬열이의 가방이 그 속에 잠재워져 있는 우산을 드러냈다. 아자뵤! 역시 우리 찬녀리. 울산을 갖고 다니는 찬열이의 엉덩이를 토닥거렸다. 머리를 쓰다듬고 싶었다만 그러기엔 찬열이의 키는 너무… 컸다.
“ 가자. 변꼬맹. ”
우산을 펼친 찬열이가 내 옆에 서서 내게 우산을 씌워주었다. 가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찬열이의 발에 맞춰 빗 속으로 들어섰다. 자연스럽게 키가 잡은 나는 어깨 쪽에 비가 튀었고, 찬열이는 그걸 알았는지 내 쪽으로 우산을 기울여주었다. 비록 자신의 어깨가 젖고 있어도.
“ 백현아. ”
“ 왜염. ”
“ 죽염. ”
큭크큭. 시덥잖은 말장난에 큭큭거리다 찬열이가 걸음을 멈춰섰다. 갑자기 멈춰버린 찬열이 때문에 조금 앞으로 가게 된 내가 빗방울을 맞고 소스라치게 놀라며 찬열이에게 붙었다.
“ 뭐,뭐야! 왜 멈춰? ”
“ 너 때문에 하려던 말을 못했잖아. ”
“ 야! 장단 맞춘 건 너잖아! ”
“ 아? 그러게. ”
영혼 없이 깨달음을 얻고 대답한 찬열이를 짧게 째려보고는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내 재촉에 걷기 시작한 찬열이가 조금 걷다가 또 나를 불렀다. 오늘 무슨 날이야? 왜 자꾸 불러? 꽤 진지하게 오늘 무슨 날인가를 고민하던 나를 찬열이가 한번 더 불렀다.
“ 백현아. ”
“ 어? 아, 왜-. ”
“ ……좋, 아해. ”
…어? 이번엔 내가 멈췄다. 내 발걸음을 따라 걷던 찬열이도 내가 멈추니 따라 멈췄다. 어벙한 표정을 한 내 얼굴을 제 쪽으로 돌린 찬열이가 멋드러지게 웃어보였다. 내가 평소 좋아하던 그 미소로.
“ 좋아한다구. 변꼬맹. ”
너는 무슨 고백을 비오는 날 축축한 기분으로 하는 거니. 비가와서 감성적으로 변한 건가. 아니, 그게, 음… 달달하긴 한데… 당황스럽구만? 눈을 요리조리 굴리다가 찬열이를 보았다. 나도 널 좋아하긴 해. 널 처음 본 날 반했고, 너의 웃는 모습에 반했고, 너의 다정한 해동에 반했고, 아, 지금 너한테 또 반한 것 같다. 찬열아. 나도 찬열이가 평소 강아지같다며 좋아하는 미소를 지으며 나도. 하고 말했다. 찬열이는 기쁜 듯이 안면을 붕괴시키며 웃었다. 아 쫌. 사마귀 웃음 쫌. 찬열아.
“ 꼬맹아. ”
“ 아, 진짜 그렇게 부르지마-. ”
“ 나 뽀뽀해도 되? ”
내 말과는 상관없이 제 말만 하고 있는 찬열이의 충격발언에 몸이 굳어버렸다. 찬열아. 사귀자마자 뽀뽀니. 응큼한 자식. 아니 게다가 여기 밖인데. 아무리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다지만 이거 참. 대답없이 어떡하지 하고 계속 생각했다.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던 게 분명한 이유일지도. 찬열이는 대답을 기다리다가 못참겠는지 담벼락의 반대방향으로 우산을 기울였다. 그리고…
나의 입술과 너의 입술이 닿았다. 쪽. 민망한 소리가 빗소리에 묻혀서 다행이다. 달짝지근하게 달라붙은 우리 둘은 곧 떨어졌다. 베시시 웃어보인 찬열이에 나도 따라웃었다. 찬열아. 응? 다음부턴 물어보지마. 아…, 응!
이 년동안 좁히지 못했던 거리를. 오늘, 좁혀지다 못해 사라져버렸다. 앞으로는 비 오는 날이 좋을 지도.
*올리고 사라지는 게 제 주특기라죠? 기회되면 장편도 해보고 싶다능...댓글 주시면 감사하겠어요..제사랑 듬뿍 오타 지적 감사하구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