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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 The Sun

 

 

김우빈 X 이종석

 

 

 

“뭐하냐?”

“나 칼 들었어. 건드리지 마.”

 

 

 

“야, 나 지금 일어났다. 왜 보자마자 화 내냐….” 조금은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하며 아무렇게나 헝클어진 제 머리를 긁적이던 우빈은 맛있는 냄새가 나는 냄비를 한 번 힐끗 쳐다보고는 능숙한 솜씨로 감자를 써는 종석의 뒤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들키지 않게 조심… 팔 잡을 준비하고… 후… 하나, 둘, 셋…!

 

 

 

“미친놈.”

“헤헤….”

 

 

 

난 배에 식스팩도 있는데 넌 이게 뭐냐? 일자로 쫙 빠져서는…. 여자들이 이런 거에 넘어오겠냐?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종석의 허리를 끌어안은 우빈은 얇은 반팔 티만 입고 있는 종석의 배를 꾹꾹 눌렀고, 그런 우빈의 행동이 이젠 익숙하다는 듯 깊은 한숨을 푹 내쉰 종석은 칼을 도마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는 제 배를 쪼물딱 거리는 우빈의 손을 아프게 내려쳤다.

 

 

 

“아!”

“아침부터 화를 내게 만들잖아 니가.”

“야, 삼일 만에 보는 친구한테 좀 살갑게 해줄 수 없냐?”

 

 

 

입을 비쭉 내민 채 투덜거린 우빈은 붉게 달아오른 제 손등을 부비며 시선을 바닥으로 떨궜고, 풀이 죽은 우빈의 모습에 또다시 깊은 한숨을 내뱉은 종석은 팔팔 끓어오르는 북엇국을 한 번 휘젓고는 가스레인지를 껐다. 하여튼 저건 나랑 전생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날 이렇게 짜증나게 만드는 걸까.

 

 

 

“김우빈.”

“…왜.”

“너 지금 아무 소식도 없이 사라진지 삼일 만에 집에 들어온 거거든? 그것도 술 진탕 마셔서 개가 된 상태로. 너 같으면 화 안 나겠냐?”

“집에 안 들어올 수도 있는 거지 왜 그렇게 화를 내냐….”

“하… 됐다. 말을 말자.”

 

 

 

이젠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 저은 종석은 우빈을 날카롭게 쏘아보고는 다시 몸을 돌려 감자를 채썰기 시작했고, 그런 종석을 바라보던 우빈은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며 팔짱을 꼈다. 그렇게 내가 싫다는 놈이 해장국은 왜 끓이고 있는 건지… 해튼 말이랑 행동이랑 하나도 안 맞는 건 알아줘야 한다니까. 작게 큭큭 웃은 우빈은 잠시 종석이 하는 모양을 유심히 지켜보다 그 조그마한 갈색 뒤통수를 바라보며 아무 말 없이 무릎을 꿇었다.

 

 

 

“알았어, 내가 잘못했어.”

“….”

“아, 나 무릎까지 꿇었다 종석아. 나 무릎 비싼 남자인거 알잖아.”

“….”

“아, 이종석- 내가 미안하다고-”

 

 

 

종석은 예열해둔 프라이팬 위에 독일식 감자전을 하려는 듯 채썬 감자와 햄을 섞은 것을 올려놓고 모양을 내는 데에 정신이 팔려 있는 듯 했다. 나보다 감자전이 좋은가보네. 나쁜 이종석. 니 친구보다 감자전이 더 중요하냐? 나 무릎 막 쑤시기 시작했는데. 막 저리기 시작했는데. 근데도 안 볼 거냐? 와, 진짜 매정하네. 얼음 인간이네 얼음 인간. 그런 종석의 뒷통수에 대고 서운함을 줄줄이 쏟아낸 우빈은 반응이 없자 한층 더 호기로운 말들을 뱉기 시작했다. 그 때,

 

 

 

“아오, 좀 그만해!”

“나 용서해주기 전까지 안 멈출 건데.”

“김우빈!”

“….”

 

 

 

우빈은 종석을 빤히 올려다보며 이제 그만 봐달라는 듯 불쌍한 표정을 지었고, 몸을 돌려 우빈을 쏘아보던 종석은 제 도톰한 아랫입술을 깨물며 끙- 하는 소리를 내다 마침내 깊은 한숨 섞인 말을 뱉으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하… 그래 내가 졌다.”

“앗싸-”

 

 

 

쾌재를 부르며 벌떡 일어난 우빈은 낙담한 표정으로 우두커니 서있던 종석을 빠르게 제 쪽으로 끌어당겨 한가득 품에 안고는 기분 좋게 웃어보였다.

 

 

 

“친구 좋다는게 뭐냐-”

“너 같은 친구 싫어.”

“또 맘에 없는 소리한다. 아, 진짜 다음부턴 절대 안 그럴게.”

 

 

 

뻥치고 있네. 우빈을 밀쳐내며 작게 중얼거린 종석은 잠시 잊고 있던 감자전이 생각났는지 다 탄다고 호들갑을 떨며 프라이팬 앞으로 뛰쳐 갔고, 그런 종석을 바라본 우빈은 씨익 웃으며 개운하게 기지개를 켰다. 맨날 나한테 지면서 화내기는. 넌 나한테 절대 못 이겨 인마.

 

 

 

 

**

 

 

 

 

“야, 나 여자 친구 생겼다?”

“뭐? 전에 사귀던 애는?”

“그냥 뭐… 깨졌지.”

 

 

 

어깨를 으쓱하며 북엇국을 한 숟갈 떠먹은 우빈은 크으- 하는 소리를 내며 제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몇 번 두드리고는 그것을 종석에게 건넸다. 종석이 받아든 핸드폰 액정에는 화면 한가득 어떤 여자의 사진이 자리 잡고 있었다. 딱 전형적인 베이글녀. 이렇게 이쁜 여자를 빠르게 찾아내는 것도 능력이다 능력. 오른손에 든 숟가락을 앞뒤로 흔들며 사진을 유심히 살펴보던 종석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다시 핸드폰을 건넸다.

 

 

 

“대박 이쁘네.”

“그렇지? 내가 또, 완벽하게 찾아냈다 이거지-”

“2주.”

“응?”

“아냐. 아무것도.”

 

 

 

싱긋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은 종석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고, 약간 미심쩍은 표정으로 종석을 바라보던 우빈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며 앞에 놓인 감자전을 집어 먹었다. 이번 여자는 얼마나 가려나… 3년 동안 같이 살면서 대체 몇 명을 본거야? 한 쪽 입꼬리를 씰룩이며 우빈을 힐끗 바라 본 종석은 우빈의 잘난 얼굴을 물끄러미 지켜보다 잠시 멈칫하고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아… 또 이러네…. 종석은 미간을 구기며 조금 몸을 움츠렸다. 한동안 안 그러더니 왜 또 이러는지…. 가볍게 눈을 내리깔고 작게 숨을 내쉬는 종석을 발견한 우빈은 움츠러든 종석의 어깨를 가볍게 붙잡고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래? 어디 아파?”

“그냥 조금….”

“조금 뭐, 병원 갈까? 많이 아파?”

“좀 지나면 괜찮아지니까 호들갑 떨지 마.”

 

 

 

우빈의 손을 가볍게 잡아 내린 종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제 방으로 걸음을 옮겼고, 그런 종석의 뒷모습에 그만 먹는 거냐는 말을 하려던 우빈은 작게 한숨을 쉬며 수저를 내려놓았다. 많이 아픈가… 어디가 아픈지 알아야 약을 사다줄 텐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은 우빈은 조금 식은 북엇국을 시원하게 원샷 하고 밥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방으로 들어간 종석은 제 가슴 쪽의 옷을 세게 잡으며 불안한 숨을 내쉬었다. 욱신거린다. 가슴 속이 너무 욱신거리고 쓰라려서 미치겠다. 사실 심장병이 있나 싶어 일찍이 병원을 찾아갔던 종석이었지만 의사들의 대답은 똑같았다.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럼 이건 대체 왜 이러는 건지…. 침대로 걸어가 그 위에 편하게 앉은 종석은 이불을 끌어올리며 옆으로 누운 채 몸을 웅숭그렸다. 조금만 자고 나면 괜찮아 지겠지. 한숨 섞인 말을 뱉은 종석은 가볍게 눈을 감으며 잠을 청했다.

 

 

 

 

**

 

 

 

 

“으음….”

“아이고… 깼냐? 미안.”

 

 

 

제 이마에 닿는 손길에 천천히 눈을 뜬 종석은 침대에 걸터앉아 저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는 우빈과 눈을 마주쳤다. 얜 왜 남의 방에 들어오고 난리야. 잠시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다 끙- 하며 몸을 일으킨 종석은 옆으로 누워 잔 탓에 뻐근한 어깨를 툭툭 토닥였다.

 

 

 

“좀 괜찮아 졌어?”

“어.”

 

 

 

제 눈을 부비며 아직 잠이 덜 깨 어눌한 발음으로 늘어지게 말하는 종석을 바라보던 우빈은 푸스스 웃으며 종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잠잘 때랑 막 깼을 때는 진짜 귀엽단 말이지.

 

 

 

“야, 너는 이런 모습 보여줄 여자 친구 언제 만들 거냐? 이거 한 방이면 여자가 홀랑 넘어오겠다.”

“귀찮아. 혼자 지내는 것도 좋은데 뭘 만드냐.”

“깨진지 한 달 넘었잖아. 야, 그 정도면 또 다른 운명의 상대를 만날 때 아니냐?”

“격주에 한 번 꼴로 운명이 찾아오는 너한테 들을 소리는 아닌 거 같은데.”

“어허, 이 사람이.”

 

 

 

짐짓 화가 난 표정으로 종석에게 헤드락을 건 우빈은 자신의 팔 안에 들어와 있는 종석의 머리를 아무렇게나 헤집으며 장난스럽게 웃었고, 정신이 없어 허우적거리던 종석은 우빈의 팔을 다급하게 두드리며 그만하라 소리쳤다.

 

 

 

 

**

 

 

 

 

「 종석아, 나 오늘 우리 집에 여자 친구 데리고 갈 건데 괜찮아? - 김우빈 」

 

 

 

이건 뭐 대놓고 오늘 저녁엔 딴 곳에 가있으라는 소리네. 문자를 보며 한숨을 푹 내쉰 종석은 무거운 전공 책을 고쳐들며 문자를 보냈다.

 

 

 

「 새벽 2시안에 끝내라. 」

 

 

 

문자를 보낸 뒤 핸드폰을 바지 뒷주머니에 집어넣은 종석은 잠시 가있을 곳을 생각하다가 후- 하고 숨을 뱉었다. 오늘은 진짜 갈 곳이 없다. 왜 하필이면 오늘 같은 날에…. 종석은 가볍게 눈을 감으며 한숨을 푹 내쉬고는 천천히 눈을 뜨며 푸르른 하늘을 올려다봤다. 가을이 오기를 기다리는 여름의 끝자락. 무더위가 가시고 이젠 꽤 선선한 바람이 부는 그 묘한 경계를 좋아했던 종석은 학교 캠퍼스 가장자리에 있는 경치 좋은 언덕에 가서 쉴 생각을 하며 조금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 곳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곳에 도착한 종석의 눈에 들어온 건 큰 고목 아래 벤치에 앉아 애정행각을 나누고 있는 우빈과 그의 새 여자 친구의 모습이었다. 저 자식 지금 신고하면 풍기문란죄로 끌려갈 텐데. 확 신고해버릴까. 살짝 미간을 구긴 종석은 아주 신이 난 두 사람을 보며 고개를 가로젓고는 발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나중에 남들 다 보는 곳에선 그러지 말라고 말해줘야 하나…. 주머니에 손을 꽂고 천천히 언덕을 내려가며 이것저것 생각하던 그 때, 또다시 욱신거리기 시작한 가슴을 느낀 종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제 가슴을 부여잡다가 무언가를 알아채고 말았다. 가슴의 욱신거림이 왜 생기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아픈 건지.

 

 

 

 

**

 

 

 

 

집에 도착한 종석은 현관문을 닫자마자 조금은 충격이 담긴 표정으로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설마… 설마 내가 그럴 리가 없잖아…. 불안한 시선을 이리저리 돌리던 종석은 넋이 빠진 표정으로 제 방으로 터덜터덜 걸어간 뒤 침대 위에 제 가방을 내려놓으며 털썩 걸터앉았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건 절대 할 수 없는 생각이었다. 그냥… 그냥 친한 친구라 조금 예민한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랬는데….

 

 

 

“내가… 내가… 김우빈을 좋아한다고?”

 

 

 

헛웃음을 지으며 제 이마를 짚은 종석은 눈을 꽉 감고 이를 바드득 갈다가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하, 내가 시험보고 나서 너무 예민해져서 별 거지같은 생각을 다 하나보다. 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남자를 좋아한다고? 그것도 친구를? 정신 차려라 이종석. 너 지금 제대로 맛이 갔어. 제 뺨을 짝짝 내려치던 종석은 깊게 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냥 이건 배가 아파서 그런 거다. 완벽한 여자들만 만나는 김우빈이 부러워서 이러는 거다. 애써 스스로를 달랜 종석은 집을 청소하자는 생각만 하며 다시 방을 나갔다.

 

 

 

 

**

 

 

 

 

“누구세요-”

 

 

 

그렇게 두 시간쯤 흐르자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초인종 소리가 울리자 허둥지둥 대던 종석은 손에 쥐고 있던 걸레를 대충 발코니 한구석에 던져 넣고는 머리칼을 정돈하며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문 앞에는 우빈과 그 여자 친구가 서있었다. 집 안에 있는 종석을 보고는 조금 놀란 표정을 지어보인 우빈은 어색하게 웃으며 종석에게 말을 건넸다.

 

 

 

“하하, 아직 안 갔네? 제사 있다며.”

“어? 아… 그… 짐. 짐 싸는데 좀 늦어져서.”

“그래? 뭐, 쨌든. 인사해, 여긴 내 여자 친구.”

“안녕하세요. 이수이입니다.”

“아… 예, 안녕하세요. 이종석입니다. 들어오세요.”

 

 

 

밝게 웃은 종석은 문 앞에서 조금 비켜서며 고개를 조금 숙였고, 살짝 고개 인사를 한 우빈의 여자 친구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거실로 들어섰다.

 

 

 

“야, 언제 나갈 거냐?”

“금방 나갈게. 걱정 하지 마.”

 

 

 

여자 친구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종석에게 말한 우빈은 종석의 대답이 떨어지자 흡족한 표정으로 거실로 걸음을 옮겼다. 그런 우빈의 뒷통수를 힐끗 쳐다본 종석은 또다시 욱신거리기 시작한 가슴 때문에 쓸데없이 심호흡을 하며 제 방으로 들어갔다. 아… 이거 도저히 못 버티겠어…. 방문을 닫자마자 제자리에 주저앉아 바닥을 짚은 채 숨을 몰아쉬던 종석은 벌써부터 웃음소리가 가득하게 울리는 거실소리를 들으며 잠시 이를 바드득 갈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안 되겠다. 당분간… 떠나 있으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편이 더 낫겠다. 이렇게 살다간 제 명에 못 살지도 몰라.

 

 

 

 

**

 

 

 

 

꽤 큰 캐리어에 제 옷가지를 다 밀어 넣은 종석은 마지막으로 핸드폰을 챙겨들고 방을 나섰다. 방을 나서자마자 거실에 있던 우빈과 그의 여자 친구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종석에게로 꽂혔고, 우빈은 그런 종석이 끌고 가고 있는 큰 캐리어에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 손을 흔들어 보였다.

 

 

 

“잘 다녀와라. 무슨 일 있으면 전화 하고.”

“…알았어. 수이씨, 재미있게 놀다 가세요.”

“아, 네. 안녕히 가세요.”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넨 종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을 빠져나왔다. 아무도 없는 복도 내에 드르륵 거리는 캐리어 소리가 꽤 시끄럽게 울렸지만 이미 종석의 머릿속은 텅 빈지 오래라 그것을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집 근처 버스 정류장에 다다른 종석은 캐리어를 세워 놓고 그 위에 앉아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우빈에게 온 문자 한 통이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며 엄지손가락으로 핸드폰 가장자리를 툭툭 두드리던 종석은 메시지 함을 꾹 눌렀다.

 

 

 

「 야, 그냥 시늉만 해주면 되는 건데 뭘 그렇게 큰 걸 들고 나가? 하여튼, 새벽 2시는 좀 너무했고. 12시 안에는 끝낼 테니까 알아서 타이밍 맞춰서 들어와. 아, 청소하느라 고생했다! 역시 이종석! - 김우빈 」

 

 

 

메시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종석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우빈의 문자를 전부 삭제해버렸다. 어차피 내가 갑자기 사라진다고 찾을 놈도 아니고 오히려 당분간은 혼자라고 좋아할 놈이니까…. 연락 같은 건 안 해도 되겠지. 당분간 머물 곳을 찾으려 전화번호부를 이리저리 뒤지던 종석은 ‘어머니’ 라는 단어를 보고 잠시 멈칫하고는 망설임 없이 그것을 눌렀다. 신호음은 몇 번 울리지 않았다. 내 전화를 기다리셨던 걸까. 밤 10시가 조금 넘은 이 시간에 갑자기 아들한테서 전화가 왔으니 놀라셨겠지. 전화의 신호음이 끝나자마자 들려오는 “종석이니?” 라는 그리웠던 어머니의 목소리에 옅게 미소 진 종석은 맑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네. 너무 오랜만에 전화 드려서 죄송해요.”

- 죄송하기는…. 근데, 목소리가 왜 그래. 무슨 고민 있니?

“아뇨 그냥…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요.”

- 그래?

“음… 어머니.”

- 그래, 말하렴.

“저 당분간 어머니 집에서 지내도 돼요?”

- 응?

“안 돼요?”

- 아니, 그건 아닌데…. 우빈이랑 무슨 일 있니? 왜 그 멀쩡한 집 두고 여기 와서….

“그냥… 어머니 보고 싶어서 그렇죠 뭐.”

 

 

 

전화기 너머 종석의 어머니는 잠시 아무 말도 없다가 전에 종석이 지내던 방을 정리해 놓겠다고 말하셨고, 종석은 작게 웃으며 금방 가겠다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은 뒤 핸드폰 전원을 아예 꺼버렸다. 버스 노선으로도 그렇고 지하철 노선으로도 정반대 쪽에 있는 꽤 먼 거리지만 가면서 복잡한 마음을 안정시키기엔 딱 일 것이다. 허공을 멍하니 응시하던 종석은 너무 빨리 도착하면 어머니가 무슨 일이 있다고 의심할지 모르니 조금만 더 시간을 때우다 가려고 캐리어를 끌고 무작정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오빠.”

“응?”

“나 핸드폰 충전하고 싶은데….”

“아, 잠깐만. 충전기에 꽂고 올게.”

 

 

 

여자 친구의 핸드폰을 손에 쥔 우빈은 씨익 웃으며 몸을 일으키고는 잠시 곰곰이 생각을 했다. 충전기가 어딨더라… 저번에 내가 종석이 한테 빌려줬었는데… 아, 그럼 방에 있겠네. 가벼운 발걸음으로 종석의 방문을 연 우빈은 서랍 위에 놓인 충전기에 핸드폰을 꽂고는 방을 한 번 슥 둘러봤다. 하여튼, 깔끔하게 하고 사는 건 알아줘야해.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곳저곳 둘러보던 우빈은 며칠 전에 종석이 새로 산 티셔츠가 맘에 들었던 것이 떠올라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종석의 옷장을 활짝 열었다.

 

 

 

“어?”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종석의 옷장 안엔 아무것도 없었다. 원래 그렇게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텅 빈 옷장 안을 바라보던 우빈은 잠시 미간을 구기며 서랍 안을 열어봤지만 그 안도 텅텅 비어 있었다. 뭐야… 그럼 아까 그거… 진짜 짐 싸서 나갔던 거였어? 잠시 놀란 표정으로 옷장 안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우빈은 제 핸드폰을 꺼내 종석에게 전화를 걸었다.

 

 

 

- 고객의 전원이 꺼져 있습니다. 음성사서함으로 연결시 통화료가….

 

 

 

핸드폰도 꺼져있다. 갑자기 집을 나갈 만한 일이라도 있나? 혹시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나 한참을 생각해 봐도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던 우빈은 그래도 어딜가던 안전하게 있을 놈이니 괜찮을 거라며 스스로를 달래면서 걸음을 옮겼다. 이런 일이 한두 번 있던 것도 아니고… 그래, 이번에도 금방 들어오겠지. 전화기까지 꺼둔 건 당황스럽지만… 괜찮을 거야. 암, 그렇고말고. 여자 친구를 걱정시키지 않으려 밝은 표정을 지으며 문고리를 붙잡은 우빈은 잠시 그렇게 멈춰 있다가 오늘 봤던 종석의 표정을 떠올렸다. 애써 미소 짓고 있지만 눈 속에 담겨져 있던 불안함과 두려움을 일찍이 읽어냈던 우빈은 자신과 여자 친구를 바라보던 의미를 파악하기 힘들었던 또 다른 눈길을 생각하며 굳은 표정으로 문을 열었다.

 

 

 

“아, 오빠. 왜 이렇게 늦어-”

“…수이야.”

“응?”

“그만 집에 가라.”

 

 

 

 

**

 

 

 

 

제 핸드폰을 손에 꽉 쥔 채 내달리고 있는 우빈의 이마에는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대체 어디있는거야…! 나간 지 아직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은 것을 감안해 종석이 있을 만한 곳은 다 뒤져봤지만 종석의 모습은 아무데도 없었다. 종석이 말없이 사라졌던 건 여러 번 있었다. 이틀 만에 집에 들어와 투덜거리는 것을 달래준 적도 여러 번 이었고, 나가겠다는 종석을 붙잡고 잘못했다며 사과했던 것도 여러 번 이었다. 하지만, 오늘처럼 종석이 떠난 것이 불안했던 적은 처음이었다. 작정하고 나간 듯 텅 빈 옷장을 직접 봐서 그런지, 아니면 종석의 묘한 눈빛에 담긴 뜻을 조금은 알 것 같아서 그런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오늘은 무조건 이종석을 찾아내야 한다. 찾아내서 잡아야한다.

 

 

 

“잡히기만 해봐, 죽었어.”

 

 

 

이를 바드득 간 우빈은 코너를 돌다 잠시 미끄러져 제자리에 멈췄다가 금세 몸을 일으켜 달리기 시작했다.

 

 

 

 

**

 

 

 

 

사람 몇 없는 한적한 공원에 도착한 종석은 앉을 곳을 찾아 이리저리 시선을 돌리며 걷다가 캐리어가 어딘가에 걸리는 바람에 제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 이거 왜 이래? 당황한 표정으로 캐리어를 내려다보다 그 앞에 쪼그려 앉은 종석은 캐리어의 한 쪽 바퀴가 보도블록 사이에 제대로 끼어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리 붙잡고 끌어내도 움직일 생각을 안 하니… 이걸 어쩌냐…. 끝내 캐리어를 꺼내는 것을 포기한 종석은 캐리어에 머리를 기대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주 가지가지 한다… 가지가지 해.”

 

 

 

그렇게 한참을 캐리어에 기대 제 신세를 한탄하고 있던 종석의 귀에 누군가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조깅하는 사람인가…. 고개를 들 생각도 안 하고 그저 캐리어 바퀴만 툭툭차던 종석은 그 소리가 자신 쪽으로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느끼고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김우빈?”

 

 

 

당황하며 몸을 일으킨 종석은 놀란 표정으로 우빈을 바라봤고, 땀에 젖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던 우빈은 멍하니 서있는 종석에게 달려가 종석을 꽉 끌어안았다. 뭐야, 갑자기 왜 이래?! 당황한 종석은 우빈을 밀어내려 팔을 들었지만 곧이어 들려오는 우빈의 목소리에 자연스럽게 팔을 떨궜다.

 

 

 

“가만히, 가만히 있어.”

“…?”

“잠깐만 이러고 있자. 응?”

 

 

 

뭐라 대꾸를 하려던 종석은 우빈의 말에 가볍게 눈을 내리깔며 입을 다물었고, 그런 종석의 몸을 더 꽉 끌어안은 우빈은 종석에게서 풍기는 달콤한 향기를 느끼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그렇게 한참을 끌어안고 있어 서로의 체온이 점점 비슷해지고 있을 때쯤 제 품안에서 종석을 꺼낸 우빈은 아무 말 없이 눈을 내리깔고 있는 종석의 양쪽 어깨를 가볍게 그러쥐며 말했다.

 

 

 

“너 솔직히 말해.”

“….”

“왜 도망치려고 했는지.”

“지금 누가 도망을 치려고 했다는….”

“거짓말 하지 마.”

 

 

 

우빈의 단호한 목소리에 제 아랫입술을 깨문 종석은 시선을 옆으로 돌리며 제 옷자락을 꽉 쥐었고, 그런 종석을 내려다보던 우빈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너 설마 나 좋아하냐?”

“…!”

 

 

 

그 말에 소스라치게 놀란 종석은 고개를 들어 우빈을 바라봤고, 그런 우빈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있었다. 어떻게… 어떻게 안 거지…? 너무 놀라 입을 떠듬거리기만 하는 종석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우빈은 종석의 어깨를 붙잡고 있던 제 손을 내리며 차갑게 말했다.

 

 

 

“실망이다. 이종석.”

 

 

 

그렇게 말하고는 뒤돌아버린 우빈의 모습에 제 심장이 쿵- 하고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느낀 종석의 눈에선 어느 새 눈물이 하나 둘씩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이런 소리를 들을 까봐 피했던 거다. 이런 대답이 나올 줄 뻔히 알아서, 그래서 피했던 거다. 나한테 차갑게 변해버리는 그 태도를 보기 싫어서 피했던 거다. 근데 그렇게 피하려고 했던 날 다짜고짜 찾아와서는 저러면… 대체 어쩌자는 거야…? 억울함이 몰려와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던 종석은 제 옷자락을 더 세게 쥐며 뒤돌아선 채 점점 멀어지고 있는 우빈에게 말했다.

 

 

 

“그래… 나 도망치려고 했어. 너 좋아하는 것도 사실이고. 근데 이건 너무하지 않냐? 나도 오늘 알았어. 내가 이딴 마음을 너한테 품고 있다는 거. 그래서 도망치려고 했는데 다짜고짜 찾아와서 그렇게 말하면 어쩌자는 건데? 내가 혼자서 다 정리하려고 했는데… 왜 찾아와서 나한테 그러는 건데!”

 

 

 

끝내 크게 울음을 터트린 종석은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흐르는 눈물을 아무렇게나 닦아내기 시작했고, 제자리에 멈춰선 우빈은 아무 말 없이 그렇게 계속 서 있다가 빠르게 몸을 돌려 종석에게 다가가 눈물에 젖어있는 종석의 입술을 집어삼켰다. 부드럽게 제 입술을 머금는 우빈의 행동에 당황한 종석은 제 목을 감싸고 있는 우빈의 손목을 다급하게 잡았고, 고개를 살짝 꺾고 눈물에 젖어 조금은 짠 맛이 나긴 하지만 더 부드러워진 종석의 입술을 탐하던 우빈은 얼마 지나지 않아 천천히 입술을 떼고는 작게 말했다.

 

 

 

“봐, 솔직해지니까 좋잖아.”

 

 

 

그렇게 말한 우빈은 다시 한 번 종석의 입술을 부드럽게 머금으며 종석의 허리를 단단하게 끌어안았고, 눈을 뜬 채 제 얼굴과 마주 닿아있는 우빈의 얼굴을 바라보던 종석은 천천히 눈을 감으며 우빈의 목 뒤로 팔을 감았다. 그렇게 한참 마주하고 있던 두 입술은 여운을 남기며 천천히 떨어졌고, 입술을 떼며 천천히 눈을 뜬 우빈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는 종석의 눈가와 볼을 자상하게 닦아주며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앗싸. 이종석 울리기 성공. 내가 예전부터 말했지? 너 언젠가 내가 꼭 울려본다고.”

“…개새끼.”

“그렇게 슬펐냐? 아주 펑펑 울었네.”

“한 마디만 더 해봐. 차 쌩쌩 달리는 도로 위로 떠다 밀어 버릴테니까.”

“어이구, 무서워라.”

 

 

 

그렇게 말하며 제 아랫입술을 매만지던 우빈은 고개를 숙여 종석의 목에 짧게 입 맞추며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그렇게 잘 생겼냐? 도도함이라면 세계 최고인 이종석을 꼬시다니. 아, 나도 좀 대단한 듯.”

“아… 내가 왜 너 같은 놈을 좋아하게 됐는지 나도 모르겠다. 진지함이라곤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나에 비해 정신연령 한참 모자란 놈한테.”

 

 

 

고개를 저으며 우빈의 품에서 벗어난 종석은 캐리어를 잡으려고 손을 뻗었고, 종석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우빈은 뒤에서 종석을 강하게 끌어안으며 종석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밤엔 안 그래. 특히 무언가에 집중하면.”

 

 

 

종석은 몸을 움츠리며 침을 꼴깍 삼켰고, 그런 종석의 모습에 크게 웃음을 터트린 우빈은 뭐 그런 반응을 보이냐며 이제 집에 돌아가자고 하면서 종석의 어깨를 툭- 밀치고는 캐리어를 가볍게 집어 들고 끌었다. 어, 뭐야. 저거 아까는 분명 어떻게 해도 안 움직였는데…? 아무렇지 않게 캐리어를 끄는 우빈의 모습에 당황한 종석은 우빈을 올려다보며 말을 더듬었고, 그런 종석을 바라 본 우빈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뭐야, 왜?”

“그거 아까는 분명 안 움직였는데… 블록에 꽉 끼어서.”

“응? 그럼 너 이것 때문에 여기 있었던 거야?”

“어….”

 

 

 

거 참 이상하네. 고개를 갸웃거린 우빈은 캐리어를 몇 번 더 끌어보다 어깨를 으쓱하며 상관없다는 듯 종석의 어깨를 끌어안았고, 뚱한 표정으로 캐리어를 내려다보던 종석은 한숨을 푹 내쉬며 우빈에게 이끌려 걸음을 옮겼다.

 

 

 

 

 

***

 

 

 

 

「 Bonus. 집에 가서? 」

 

 

 

“종석아. 우리 집에 가서 뭐해?”

“시간 늦었잖아. 자야지.”

“아- 맞다 참.”

“왜 그렇게 당연한 이야기를 물어봐?”

“아냐, 아무것도.”

“….”

“종석아.”

“또 왜.”

“집에 들어가자마자 씻을 거야?”

“그건 또 왜 물어봐?”

“그냥.”

“뭐… 씻고 자야지. 너 때문에 몸에서 땀 냄새 나거든.”

“음….”

“근데 너 왜 이렇게 이상한 걸 물어 보냐? 뭔 속셈이야?”

“속셈이라니. 난 그냥 궁금해서 물어봤을 뿐.”

“….”

“종석아.”

“너 한 번만 더 질문하면 입 꼬매 버린다.”

“와, 겁나 무섭네.”

“….”

“….”

“….”

“니 방이 나을까 내 방이 나을까?”

“응?”

“내 방 침대는 산지 얼마 안 돼서 매트리스가 좀 딱딱하긴 한데 소리는 안 나고, 니 방 침대는 푹신하긴 한데 좀 삐걱거리잖아.”

“야… 그걸 대체 왜 물어보는 건데?”

“알면서.”

“야, 야, 너… 허, 허튼 짓 하기만 해봐…! 내가 너 반 죽여 놓을 거야…!”

“한 번 해봐. 내 힘 이기면 그만 둘게.”

“짐승 새끼….”

“타이밍 진짜 좋다. 나 안 그래도 방에 그거 많이 사뒀… 야, 어디가?”

“먼저 들어가서 방문 잠글 거야! 오지 마 변태 새끼야!”

“나 문 부술 줄도 아는데. 어차피 지도 좋은 건데 왜 이러나 몰라.”

 

 

 

 

***

 

 

그 날 밤에 과연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ㅎㅎㅎㅎㅎ...

그건... 제 머릿속에서만... 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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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좋아요좋앟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11년 전
독자2
제머릿속에서도..ㅎㅎㅎㅎㅎㅎ
11년 전
독자3
헐ㅠㅠㅠㅠㅠ진짜좋아요ㅠㅠㅠㅠ
11년 전
독자4
ㅎㅎㅎㄹㅎㅎㅎ대박ㅎㅎㅎㅎㅎ
11년 전
독자5
핳ㅎㅎㅎㅎㅎ(의심미) 자 다음편을 어서 제게 주세요!!!!!
11년 전
독자6
제 머릿속에도 제발...ㅋㅋㅋㅋㅋ
11년 전
독자7
좋네요..ㅠㅠㅠ 다음편보러갑니다ㅠㅠ
11년 전
독자8
ㅠㅠㅠ
10년 전
독자9
우빈종석 뒤늦게 파고있어요 님덕에 훈훈해지네여 굳굳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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