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요
W. The Sun
학교 2013 박흥수 X 학교 2013 고남순
화이트 크리스마스 강미르 X 시크릿 가든 한태선
친구 2 최성훈 X 너의 목소리가 들려 박수하
신사의 품격 김동협 X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윤정혁
외
아름다운 그대에게 존김, 뱀파이어 아이돌 까브리,
검사 프린세스 이우현, R2B 지석현
저택 뒷마당에 위치한 수령이 꽤 되어 보이는 거대한 신갈 나무. 한여름에 걸맞게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을 넓게 뻗은 초록빛 등으로 모두 막으며 제 아래에 쉴 곳을 만드는 자애로운 그 나무 밑에 우두커니 앉아 있는 정혁은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넓은 나무 몸통에 기대어 주변을 그득하게 메운 여름의 향기를 만끽하고 있었다. 뜨거운 태양의 향기와 시원한 습기를 머금은 청량한 흙내음. 시원한 산바람에 실려 오는 깨끗한 물냄새까지. 이렇게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그녀를 잊을 수 있는… 이런 좋은 장소가 있는 것을 왜 이렇게 늦게 알게 되었을까. 가볍게 눈을 감은 정혁은 도시의 시끄러운 소음에서 벗어나 멀찍이 떨어진 계곡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물소리와 바람에 흔들리는 풀숲과 나뭇잎 소리, 각기 다른 종류의 산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만이 그득한 그곳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고 있었다. 그런 그의 평안을 깨버린 건 나무 뒤편에서 들려온 전혀 반갑지 않은 목소리였다.
“공돌ㅇ… 아니, 공대 형!”
저 새끼는 왜 보자마자 호칭으로 시비를 터는지…. 저놈 피한다고 태선이나 수하 옆에 붙어 있는다는 걸 깜빡했다. 벌써부터 지끈거려오는 머리를 부여잡은 정혁은 오도도 달려와 보란 듯이 제 옆에 털썩 앉는 동협을 힐끗 쳐다보며 짜증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날 좀 가만히 냅둘 순 없냐?”
“형 놀리는게 제일 재밌어서 어쩔 수 없다니까.”
“하….”
“장난이야 형.”
보기 좋게 컬이 말려있는 동협의 갈색 머리는 동협이 고개를 움직이거나 바람이 불 때마다 계속해서 흩날렸고, 바람에 의해 동협이 입고 있던 푸른색 체크 남방이 펄럭일 때마다 시원한 향수 냄새가 사방에 퍼졌다. 저 잘난 맛에 사는 이기적인 놈. 정혁이 속으로 제 욕을 하는지 마는지 알 리가 없는 동협은 복슬복슬한 대형견 마냥 헤실헤실 웃으며 손에 쥐고 있던 이온 음료를 정혁에게 건넸다. 아직 찬 기운이 가시지 않은 이온 음료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정혁은 그 음료 캔을 다시 동협의 다리 위에 올려놓으며 시선을 앞으로 옮겼다.
“혼자 있고 싶어.”
“뭐야… 왜 이렇게 우울해?”
“신경 끄고 가라니까.”
“아, 형 지금 그 아줌마 생각하고 있었구나?”
동협의 말에 화들짝 놀라며 고개를 든 정혁은 너무 놀라 잔뜩 커진 눈을 동협을 향해 옮겼고, 그런 정혁의 반응에 나지막하게 웃은 동협은 음료 캔을 따서 시원하게 몇 모금 들이키고는 캬- 하는 소리를 내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다 티나. 형은 그 아줌마 생각할 때 마다 까칠해지거든.”
“….”
“이제 잊을 때도 됐잖아.”
“네가 신경 쓸 일 아니야.”
살짝 우울함이 담긴 목소리로 대답한 정혁은 고개를 푹 숙이고는 입고 있던 분홍색 티셔츠 자락을 매만지며 미간을 구겼다. 그렇게 쉽게 잊을 수 있을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힘들진 않았을 것이다. 그 사람 생각에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애써 참아내는 정혁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동협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음료수를 다 마셔버렸고, 그 빈 캔을 손에 쥔 채 또 다른 손으로는 정혁의 얇은 손목을 잡아채며 몸을 일으켰다.
“뭐, 뭐야. 왜 이래?”
“여긴 너무 덥잖아. 시원한데 가자.”
“난 됐으니까 이것 좀 놔…!”
“안 돼. 지금쯤이면 다들 물놀이 하고 있을거란 말이야. 지각하면 안 되잖아.”
끝내 동협의 무지막지한 힘에 억지로 몸을 일으킨 정혁은 질질 끌려가며 온갖 욕지거리를 뱉어냈고, 방금 전 까지 동협과 정혁이 앉아 있던 자리에는 미약한 온기가 남아 있어 그 아래에 있던 차가운 흙을 조금은 노곤하게 녹이고 있었다.
**
온몸이 얼어붙을 듯한 찬 기운을 머금은 맑은 계곡물은 높은 곳에서 떨어져 큰소리를 내며 공기 중에 흩어지는가 하면 저마다 크기와 모양이 다른 거대한 암석들 위와 옆을 빠르게 지나쳐갔고, 그 계곡물이 모여 있는 깊고 낮은 여러 웅덩이들 안에는 조그마한 물고기들이 여유롭게 헤엄치고 있었다. 최대한 자연을 보호하는 선에서 적당히 다듬어진 계곡 주변은 캠핑을 하거나 잠시 쉬어가는 데에 적합해 우현이 챙겨온 텐트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와, 여기 물 겁나 차가워!”
“남순아.”
“어? 오와아아아악!”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계곡 옆에 쪼그려 앉아 물에 한 번 손을 담가본 남순은 호들갑을 떨며 소리쳤고, 따가운 햇살에 열이 올랐는지 갑자기 훅 끼쳐오는 후덥지근함에 입고 있던 검은 티셔츠를 펄럭이던 흥수는 조심스럽게 그 뒤로 다가가 남순의 등을 확 떠다밀어 물에 빠트리고는 저만치 뛰어가 호탕하게 웃었다. 너무나도 통렬한 찬 기운에 잠시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던 남순은 곧 정신을 차리고는 저를 보며 웃는 흥수에게 크게 소리쳤다.
“야, 박흥수!”
“크하하하- 야, 고남순. 진짜 시원하지?”
“그래, 시원해 죽겠다 이 망할 새끼야!”
빠르게 물 밖으로 빠져나온 남순은 흠뻑 젖은 티셔츠를 벗어던지며 멀찍이 떨어진 흥수를 향해 전력질주 했고, 그런 남순을 피해 반대쪽으로 내달리는 흥수의 달리기 속도는 엄청났다. 하지만 금세 다리가 아팠는지 잠시 주춤한 흥수는 계곡 앞에 멈춰서서 욱신거려오는 제 다리를 주물렀다. 아, 이거 또 이러네…. 그런 흥수의 상황을 뒤늦게 캐치한 남순은 제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그대로 쭉 미끄러져 또 다시 계곡에 빠지고 말았고, 이번에는 엄연히 제 실수로 빠진 것이었기 때문에 뭐라 소리칠 수 없어 입을 삐죽 내밀었다.
“멍청이들.”
“나도 형 말에 동감.”
시원한 나무 그늘이 져있는 낮은 높이의 바위 위에 나란히 앉아 사이좋게 발만 담근 채 흥수와 남순을 지켜보고 있던 태선과 수하는 저마다 한 마디씩 하며 고개를 가로저었고, 작게 숨을 내쉬며 조금 흘러내린 선글라스를 검지손가락으로 올린 태선은 피곤한 듯 수하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며 가볍게 눈을 감았다. 사실 태선이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가족은 수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현은 하루 종일 일에 빠져 허덕이고 석현은 군대에 가 있어 마주칠 일이 별로 없고… 그나마 집에 있는 정혁이라곤 얼마 전에 웬 유부녀한테 차이고 와서 우울 모드였던 데다 남순은 머릿속에 든게 라면과 흥수 생각뿐이니…. 정상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건 수하뿐이었으니 당연한 일 일 것이다. 게다가 알아서 자신의 마음을 읽고 직접 말하지 않아도 잘 행동하니 이보다 좋은 말벗이 어디 있겠는가.
“형.”
“왜.”
“방에 들어가서 침대에 눕지마요.”
“왜?”
태선의 물음에 이리저리 시선을 옮기던 수하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제 잘난 몸을 과시하려는 듯 바지만 입은 채 바위 위를 서성이고 있는 미르를 가리키며 작게 속삭였다.
“아까 저 인간이 형 침대 위에 압정 뿌릴 생각 하고 있었어요.”
“빌어먹을 새끼.”
고운 미간을 구기며 낮게 욕지거리를 뱉은 태선은 여름 태양처럼 강렬하게 타오르는 듯한 미르의 붉은 뒷통수를 쏘아보며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살짝 내렸고, 그런 태선의 눈을 바라보던 수하는 태선의 머릿속에 펼쳐지는 갖가지 욕들과 역으로 복수를 다짐하는 무서운 생각들에 살짝 몸을 움츠렸다.
“수하야! 형 좀 도와줘!”
그렇게 한참을 긴장 속에 앉아 있던 수하를 부른 건 우현이었다. 텐트를 설치하는 데에 꽤 애를 먹고 있는 건지 도움을 요청하는 우현의 다급한 목소리에 내심 기뻤지만 겉으로 티내지 않으려 살짝 귀찮아하는 듯한 표정을 지은 수하는 제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있던 태선에게 잠깐 우현이 형 좀 도와주고 오겠다는 말을 하며 몸을 일으켰고, 고개를 끄덕인 태선은 어깨까지 흘러내린 얇은 흰 가디건을 고쳐 입으며 옆에 놓아두었던 노트를 집어 들었다.
근데 왜 이렇게 멀리 있는 걸까. 작게 한숨을 내쉰 수하는 경사진 비탈을 조심스럽게 걸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고, 아무렇게나 놓인 큰 바위들을 두어 개쯤 넘었을 때 자신과 우현 사이의 거리 중간쯤에서 서로 미친 듯이 물을 뿌려대고 있는 흥수와 남순을 지켜보고 있는 성훈을 발견했다. 저와 비슷한 차분한 머리를 하고 있었지만 자기가 알고 있던 흥수네 집안의 최고 몸짱인 미르보다 한층 더 남자다운 몸매를 가진데다 사람 자체에서 풍겨져 나오는 분위기가 차갑게 가라앉아 있어 수하에게는 성훈이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방금 전 읽은 그 생각까지. 대체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일까. 잠시 제자리에 멈춘 수하는 팔을 걷은 흰 와이셔츠 사이로 보이는 탄탄한 몸매에 몸을 움츠리며 일부러 성훈과 최대한 거리를 두고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성훈의 앞을 지나칠 즈음엔 바위 끝을 아슬아슬하게 걷게 되었는데, 그런 수하의 모습을 발견한 성훈은 수하 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어, 잠깐.”
“ㅇ… 예?”
“거기 위험…!”
찰나의 순간이었다. 갑자기 저에게 말을 걸어오는 성훈의 행동에 당황한 수하가 잠시 제자리에 멈춰 선다는 것이 실수로 허공에 발을 헛디딘 것이었고, 그나마 몸을 지탱하고 있던 발마저 우둑- 하는 소리를 내며 꺾여 순식간에 수하의 몸이 뒤로 기울고 말았다. 수하는 아차, 싶었지만 이미 자신이 손쓸 수 없는 상태인 것을 깨닫고 눈을 꽉 감아버렸다. 제발 많이 아프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머리 깨질까? 아니면 다리? 아… 놀러온 첫 날에 이게 무슨 불행일까. 하며 곧 느껴질 고통을 준비하는 순간,
“억!”
“잡았다.”
수하를 향해 빠르게 달려온 성훈이 바위 뒤로 떨어지려는 수하의 허리를 간발의 차이로 붙잡아 제 쪽으로 강하게 잡아당겼고, 너무 세게 잡아당긴 탓인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성훈의 품에 안전하게 안긴 수하는 아픈 제 가슴을 부여잡을 생각도 못하고 너무 당황해 멍해진 표정으로 성훈을 올려다봤다.
“큰일 날 뻔했네.”
“아… 가, 감사합니다!”
잠깐 마주친 눈 속에서 다행스러움을 읽어낸 수하는 어정쩡한 자세로 성훈에게 안겨 있다가 화들짝 놀라며 그 품에서 빠져나와 성훈에게 냅다 90도 인사를 했고, 어떻게든 그 뻘쭘함을 해소하려 걸음을 옮기는 순간 윽-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주저앉고 말았다. 수하의 꺾인 발목은 빨갛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아까 잘못 삐끗했나봐 이거…. 이를 악문 채 고통에 작게 신음을 뱉어낸 수하는 어떻게든 발목을 꾹꾹 주무르며 자리에서 일어나보려 용을 썼지만 야속한 발목은 수하의 마음처럼 쉽게 괜찮아지질 않았고, 그런 수하를 내려다보던 성훈은 주저앉은 수하의 앞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 부어오르는 발목을 가볍게 잡았다.
“아, 저 괜찮은…데… 윽-!”
“이거 제대로 삐었네. 어때, 이래도 아프냐?”
“예…? 아, 으윽-! 잠깐만요…!”
“간단하게 응급처치하면 괜찮아질 것 같은데…”
수하의 발목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으며 잠시 생각에 빠졌던 성훈은 무언가가 떠오른 듯 고개를 살짝 들고는 조금은 확신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집 안에 구급약 있으니까 그걸로 대충 해결 봐야겠다.”
다시 시선을 내려 살짝 난처한 표정으로 수하의 발목을 살피던 성훈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 하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수하를 안아 올렸고, 갑자기 몸이 붕 뜨자 당황한 수하는 엉겁결에 성훈의 목 뒤로 팔을 감으며 성훈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수하의 멘탈이 산산조각 나고 있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집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한 성훈의 표정은 무덤덤했고, 그런 성훈의 품에 안긴 수하는 이 타이밍에 성훈의 생각을 읽으면 더 쪽팔릴 것 같아 그냥 눈을 꽉 감아버렸다.
***
저도 성훈이한테 안기고 싶습니다.
...
...
...
자, 잘못했습니다. 다신 안 그럴게요 ㅠㅠㅠㅠㅠㅠ
여하튼.. 이제 점점 커플들에게 불이 붙고 있죠.
다음 화는... 불마크 될지도 모릅니다. 넵.
아, 물론 집 안에서는 안 합(?)니다. 적어도 다음 화에서는요.
만약 불마크가 된다면... 계곡에서 일이 터질 수도....
빨강빨강한... 아이들이...
ㅎㅎㅎ.... 스포는 그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