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철] 쟤 17살 차이 나는 아저씨랑 결혼했대
w.1억
"뭐냐 너는 맨날 엄마 심부름이냐? 어떻게 자꾸 타이밍이 이렇게 잘 맞아."
"그러게."
"근데 난 오늘 마트 아닌데."
"그럼???"
"도서관 가서 책 읽을라구."
"책??????????"
"뭘 그렇게 놀래?"
"왜....?"
"그냥 요즘 아무 것도 할 일 없는 내가 한심해서. 책이라도 읽을라구.."
"아..."
"잘가라. 난 이쪽."
손을 훠이- 흔들며 발걸음을 옮겼을까.. 이진혁이 갑자기 '나도!'하고 내 옆에 따라 선다.
"너도 간다고..?"
"응."
"너도 책 읽게..?"
"응."
"…그래 뭐."
너도 볼 거면 그래라.. 내 작은 말에 진혁이가 고갤 끄덕인다.
참나.. 얘는 그 때나 지금이나 웃는 건 똑같네. 아, 오늘은 아저씨랑 곱창이나 먹으러 갈까.
아저씨랑 곱창 안 먹은지 꽤 됐단 말이지.
책을 읽는데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
이진혁 머리 위에 붙은 먼지가.
팔꿈치로 툭툭- 이진혁을 치는데 이진혁은 나를 너무 순수하게 바라본다.
머리. 턱짓으로 머리를 가리키자 이진혁은 아직도 바보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있다.
내 손으로 내 머리를 툭툭- 털면 그제서야 이진혁이 지 머리를 툭툭- 털었고, 나는 머리를 보았다.
아직도 안 떨어졌어.. 아오 답답해. 티 안 나게 한숨을 내쉬고선 머리 위에 있는 먼지를 떼어주었다.
"…고마워."
고맙다며 웃는 널 보는데. 내가 뭐라 대답을 하리..
그저 그냥.. 웃어주고선 다시금 책에 시선을 둔다.
무슨 물에 빠진 고양이 살려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쟤 표정이 너무 고마워 보여서...
"떡볶이 먹을래?"
"떡볶이 좋..!..."
"……?"
"아니야.. 그건 좀.."
떡볶이라면 환장한다. 나는 떡 말고 어묵을 좋아하긴 한데..
그래도 뭔가 아저씨한텐 찔려서....
"떡볶이 엄청 맛있던데.. 애들이 줄 서서 먹는 곳이거든."
"…하."
"다음에 내가 사다줄게. 어차피 옆 동이니ㄲ.."
"먹을래."
"어?"
"먹으러 가자."
결국엔 떡볶이에 넘어간다.
같이 분식집에 앉아서 떡볶이를 먹는데 옆 테이블에 앉은 초딩들이 우리를 이상하게 본다.
아니. 우리가 아니라 나구나.. 너무 허겁지겁 먹는 내 모습에 진혁이도 같이 놀란 듯 했다.
"너 집에서 굶어?"
"배가 터질 듯 먹었어도 떡볶이 배는 따로 있는 거야. 더 먹을래?"
"난 배부ㄹ.."
"……."
"더 먹을게.. 여기 1인분 더 주세요."
굳- 짧은 내 말에 진혁이는 웃으며 다 마시고 없는 내 물컵을 가져가 물을 떠온다.
그럼 난 '땡큐'하고 급하게 포크로 어묵을 찌른다.
"천천히 먹어. 안 뺐어먹어."
집 앞에 도착해서 괜히 떡볶이를 전투적으로 먹은 게 쪽팔려서 한참 가만히 있었더니 진혁이가 먼저 말을 건다.
"떡볶이 그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네."
"내가 떡볶이 여신이야."
"여신..?"
"농담이야."
"ㅎㅎ."
"……."
"나중에 말이야."
"어?"
"네 남편분이랑 같이 밥 먹고 싶어. 그럴 일은 없겠지만.. 정말 기회가 온다면."
"……."
"정말 멋진 분일 것 같아. 네가 반해서 결혼 할 정도면.."
"…그래 뭐. 우리 아저씨도 은근 쿨해서 된다고 할 걸?"
"그랬으면 좋겠다."
"암튼 잘가!"
"그래, 너도 조심히 들어가."
"야 코 앞인데 뭔 조심히 들어가냐?"
"그냥 예의상?"
"ㅋㅋㅋㅋ ㅂㅂ."
남자 문제로 한 번을 뭐라고 한 적 없는 아저씨가 떠올랐다.
아마도 이진혁도 내 친구라며 마냥 좋아할 것 같기도 하단 말이지..
- 오늘은 카페 안 와도 돼요. 나 오늘 쉬는 날이거든.
카톡 보내도 되는 것을 굳이 그에게 문자를 보냈다. 뭔가 카톡은 안 할 것 처럼 생겼단 말이야.
근데 또 웃긴 건.
"분명 어제 핸드폰 줬을 때 아이폰이었단 말이지. 갤럭시 쓰게 생겨서 아이폰을 써..?"
갑자기 그에게서 오는 전화에 나는 화들짝 놀라 핸드폰 화면만 보고있다.
아니 이걸 전화를 빨리 받아, 말아??
원래 나였으면 밀당이라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무조건 안 받는데...
왜 이 사람은 지금 안 받으면 평생 놓칠 것 같고 그렇지...?
"…여보세요?"
- 오늘은 그럼 언제 볼 수 있어요.
"아니.. 왜 또.. 존댓말을 써요.. 진짜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라니까.."
- 싫어요?
"아니 싫은 건 아닌데.."
- 오늘은 못 보나.
"…저녁에요!"
- 저녁?
"저녁에 봐요. 어차피 그쪽도 일 하잖아."
- 저녁 먹죠, 그럼.
"…그래요."
더럽게 할 말이 없다. 서로 아무 말도 않는데.. 그가 정적을 깬다.
- 카톡으로 해요.
"…에?"
- 문자 말고, 카톡으로 하라고.
"…어, 네."
한 번도 이성에게 뻘쭘함을 느낀 적이 없던 나였다.
왜 이렇게 싸가지가 없냐며, 자기 무시 하나며 쌍욕 하던 남자한테도 이렇게 이상했던 적도 없었다.
참 이상하다. 이 사람은.
"오늘 되게 일찍 들어왔네요. 나랑 10분 간격으로 집에 딱 딱 들어왔어."
"요즘 그냥 너랑 같이 있어야 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어서."
"엥 왜?"
"신혼이기도 하고."
"하고?"
"네가 좋아서?"
"엑..!"
"오늘은 뭐했어?"
"오늘 그냥.. 심심해서 도서관 갔다가~ 떡볶이 먹구.."
"혼자?"
"아..음..."
"……."
"네. 혼자."
"혼밥 싫어하는 애가 웬 혼자 떡볶이를.."
"맛있으면 장땡."
"ㅋㅋㅋ으구.. 씻고올게. 밥 차리지 마. 나가서 먹고 오자."
"어어! 내가 그 말 하려고 했는데!!!!"
무슨 아기 강아지 다루듯 내 턱을 우쭈쭈- 해주고선 욕실로 들어간 아저씨를 보며 웃었다.
아저씨가 샤워를 하는 동안에 나는 나갈 준비를 하다가 안방 침대에 그냥 벗어 둔 코트를 옷걸이에 걸어준다.
코트 주머니 안에 묵직한 게 들어있기에 딱 봐도 핸드폰이랑 지갑이겠거니.. 하고선 지갑과 핸드폰을 꺼낸다.
지갑을 펼쳐 보면 주민등록증이 제일 먼저 보이고 그 옆에는 나랑 같이 찍은 스티커 사진이 있다.
이건 내가 찍자고 한 것도 아니었다. 아저씨가 먼.저 찍자고 했었지.
아, 그 때 진짜 웃겼는데.. 자기는 이런 거 꼭 나랑 찍어보겠다며 아주 그냥...ㅋㅋㅋㅋㅋ
"…왜 이렇게 인기가 많으셔. 진동이 멈추질 않네."
침대 위에 올려둔 핸드폰이 아주 그냥 난리를 치며 진동이 울리길래 내심 궁금해서 핸드폰 화면을 보았다.
서로 핸드폰은 절대 터치 안 한다. 이유는 없다. 그냥 우리 서로 쿨해서?
"……."
원래는 쿨해서 안 본다고 생각을 했는데. 그냥 서로 배려를 한 것이었다.
근데. 이젠 결혼 했으니 말이 달라지지?
화면을 보자마자 나는 인상을 쓴 채로 고갤 갸웃 한다.
"전소민이 누구야...?"
- 그 때 완전 즐거웠음 ^^ ㅋ
- [사진]
-[사진]
-이 사진 마음에 들어서 액자에 끼우려고 ㅋ
들어가서 읽을 생각은 없었다. 근데 그냥 내 손가락이 내 허락도 없이 눌러버렸다.
근데 뭘까.
이 기분은 진짜.
아저씨를 믿는데. 믿는데..
"진짜.."
믿는데......
바람 피는 남편과 그 불륜녀의 카톡 대화 내용을 본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사진 두장 다 둘이서 셀칵 찍은 거였다.
적극적으로 아저씨가 나서서 같이 찍은 건 없었지만 그래도 난 기분이 나빴다.
소주잔들과.. 딱봐도 여긴 노래방.
제일 먼저 아저씨가 욕실에서 나오길 기다렸다.
식탁 의자에 앉아서 아저씨를 기다리는데 바지만 입은 아저씨가 수건으로 머릴 탈탈 털으며 나오더니 내게 왜 여기 앉아있냐며 말을 건다.
"로션 발랐어요?"
"아, 맞다."
"로션 좀 바르라구요. 겨울이라 살 다 튼다니까."
"알겠어용."
웃으며 방으로 들어가 로션을 바르는 그를 보다가 다른 곳을 보았다.
옷을 입고, 핸드폰을 손에 쥐고 거실로 나온 그가 머리를 말린다.
머리를 말리고 나서는 자연스럽게 TV를 틀고 리모컨을 손에 쥔 채 TV에 시선을 둔다.
"내가 좋아서 왔다면서요."
"어?"
"나 좋아서 집에 일찍 왔다면서 왜 TV를 봐요."
"아.. 그냥 습관..."
"……."
"왜.. 무슨 일 있어?"
"아저씨는 핸드폰 잠금 왜 안 해놔요?"
"굳이 할 이유가 없으니까. 볼 것도 없고."
"……."
"무슨 일 있는 거 맞지, 너."
"오지 말고 거기서 들어요."
여기로 오려고 하는 그에게 먼저 오지 말라고 했다.
그럼 그는 '왜'하고 자리에 서서 나를 바라본다. 당황한 표정으로.
"그냥요."
그냥은 개뿔. 그냥 무서워서 오지 말라고 했다.
내가 아무 표정도 없이 계속 그를 올려다보니, 그가 고갤 끄덕이며 소파에 앉는다.
말해 보라는 듯 조금은 긴장한 듯, 나른한 표정으로 날 본다.
"뭔데, 왜 그러는데."
"내가 보고싶어서 본 건 아닌데. 전소민이 누구예요?"
"전소민...? 아.."
"……"
"동욱이 아는 동생인데 사업 문제로 얘기 좀 하다가 같이 밥 먹고 술 좀 마셨어."
"그러니까 왜 같이 밥을 먹고 술 좀 마셔요. 그냥 밥만 먹으면 되지. 그리고 사진은 왜 같이 찍어요.
그 사람이 같이 사진 찍은 거 두장이나 보냈던데요."
"신경 안 써도 돼. 걔도 애인 있고..사진은 걔가 워낙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같이 찍어준 거 몇장 있을 뿐이야.
그냥 밥만 먹고 술만 조금 마시고 헤어졌어. 아무 일도 없었어. 심지어 그 때 11시 쯤에 다들 집에 들어 갔었고.."
"결혼한 거 뻔히 알면 카톡이나 하지 말지 왜 했대요. 이 사람이 아저씨 좋아하는 거 아니고?"
"애인 있다니까."
"애인 있는 거 알아도 그냥 떠보는 거일 수도 있잖아요."
"진짜 내가 걔랑 뒤에서 만날 바엔 혀 깨물고 죽는다."
"혀 깨물고 죽어야겠구만."
"…아니이 연아. 진짜 오해라니까.. 나 심지어 걔랑 친하지도 않아. 왜 카톡을 했는지 나도 모르겠다니까."
남들한텐 별 거 아닐지 모르는데.
이 소소한 싸움들은 모든 커플들이, 모든 부부들이 싸우는 이유다.
아저씨랑 찐하게 싸운 적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약하게 싸운 적도 없다.
항상 중간이었지. 우리 특이한 성격 때문일까.
"저녁 안 먹을래요. 기분이 안 좋아서 먹기 싫어요."
방으로 쏙- 하고 들어가는 나를 보고 한숨을 작게 쉬는 아저씨 때문에 더 짜증났다.
와서 바로 달래줘야지. 아저씨는 이런 걸 참 못한다.
"뭐예요, 뒤에 캐리어는?"
"왔어?"
"네."
내 말에 대답도 안 한 그가 나를 보고 작게 웃는다.
표정 없이 가만히 있으면 무서운데 웃으면 사람 참 좋게 생겼단 말이지.
"먹고 싶은 거 있나."
"한식 뺴고 다 괜찮아요."
"인스턴트 좋아해?"
"그게 제일 좋긴 하죠."
"피자 먹을까."
"그래도 되구요."
나도 묻고 싶었다. 그쪽은 뭐 좋아해요? 라고. 근데 못하겠다. 말을 못 걸겠어.
키스 하고 나니까 더 어려워졌달까.
"무슨 일 하세요?"
"그냥 회사 다녀요."
"회사? 어떤 회사?"
"건축."
"오오.. 그냥 직원??"
"대표."
"……."
입을 벌린 채 가만히 있는 내 모습을 본 그가 나를 보고 또 픽- 웃는다.
대표라는 사람을... 잘생긴 이 사람을.. 두고 왜 바람을 핀 거야 그 여자는 진짜.
감히 내가 이런 사람이랑 만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너무 잘생겼는데.
갑자기 차를 세우는 그에 나는 그를 힐끔 보았고, 그가 나를 보고 말한다.
"오늘 이혼 했어요, 나."
"정말요..?"
"정말이지."
"그러니까."
"……"
"잠깐만 기다려."
기다리라며 차에서 내려 뒷좌석에 있는 캐리어를 가지고 웬 술집으로 들어가는 그를 보며 뭔가 의심스러웠다.
이혼했다는 말을 하고 저 캐리어를 가지고 가..?
내 직감은 틀린 적이 없다. 나는 거침없이 차에서 내려 술집 문을 열고 들어선다.
역시나.
"……."
캐리어를 받은 여자는 그의 와이프.. 아니지.. 전 부인이었다.
다리 꼬고, 가슴골 다 보이는 옷을 입고서 그를 올려다보는 게 참 꼴보기 싫었다.
"이 여자가 뭐가 예쁘다고 짐을 가져다줘요? 사진보다 더 못생겼네."
"뭐야, 이 여잔."
"……"
그 여자와 바람이 난 남자 같았다. 그 남자가 여자에게 다가온다.
술집 사장이 그 여자의 남자인 게 분명했다. '자기 무슨 일이야.' 그 말에 여자가 나를 째려보며 말한다.
"뭐냐고 얘는. 뭔데 처음 보는데 욕질이야?"
"제가 욕했어요? 사진보다 실물이 더 못생겼다고 했지."
"그게 욕이지. 너 술마셨니?"
그가 내 손목을 잡았다. 하지 말라는 듯 나를 바라보았지만, 나는 그치지 않고 그에게 팔짱을 끼고선 말한다.
"오늘 이혼 했다면서요? 제가 한달 전부터 오빠한테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그랬는데. 한달을 따라 다녀도 안 받아주는 거 있지."
"……?"
"이제서야 날 받아주더라고. 합법적으로 완전하게 헤어져서 날 받아줬다구."
"…잠깐 너 몇살인데 반말이니?"
"스물다섯살."
"……."
내 나이를 듣고 놀란 것 같았다.
13살이나 어린 애가 자신의 전남편을 한달 동안 따라다녔다는 소릴 들은 여자의 표정은 참 볼만했다.
감히 이 남자 가슴에 못을 박아? 뭐 이혼해줘서 고맙긴 한데. 그래도.
"앞으로 가져갈 물건 있으면 직접 가져가세요. 손이 없나, 발이 없나. 가자 오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