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드럽게 잘생긴 남자들]
w.1억
나는 본래 재수가 없는 사람이다.
여태 돈이 없어서 대학도 못 간 나는 겨우 알바로 돈을 벌고, 스물다섯이 되어서야. 엄마 아빠의 손에 벗어나 대학에 입학하는데 성공한다.
뭐 드라마 속에서나 나오는 완전 불쌍한 여자 주인공보다는 아니지만 나도 꽤나 불쌍하고 재수 없다고 생각을 한다.
한 번도 누군가 내게 손을 뻗어 본 적도 없고,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 본 적도 없으니 뭐.
강의실 앞에 서서 강의실 문에 떡하니 붙여있는 포스터를 보았다. 무슨 자취방 남았다는 홍보를 포스터로 해? 세상 참 신기해졌어.
"한 번 연락해봐. 안 그래도 너 통학하는 거 싫다고 했었잖아."
아, 이 친구는 이나은이라고 고등학생 떄부터 친구인데. 나랑 같이 돈 모아서 대학 입학 한 친구다.
같이 나이 먹어가는데 나와는 다르게 예쁘고, 아담하고, 몸매도 좋다. 그런 네가 참 난 자랑스러웠다.
"고민.. 좀 해볼래."
"그래. 고민 해봐. 통학하는 거면 너 엄청 피곤할 것 같아서 하는 소리야."
"응."
"아 너랑 헤어질 생각하니까 벌써부터 막 외롭다. 아는 애들도 없어서 혼자일 텐데.. 너랑 같은 과 갈 걸 그랬나아.."
"전공까지 나랑 같은 곳 가면 어떡하냐? 정말.."
"…매점 가자!"
내 말에 푸흐흐- 하고 웃는 나은이는 착하다. 내게 팔짱을 끼고 매점으로 향한다. 매점에서 우유를 사갖고 나와서 우유를 한 모금 마셨을까.
누군가 내 어깨를 툭- 하고 치고 가는데 너무 이상한 냄새가 났다. 우유를 바닥에 떨구고 나는 '아' 하고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버린다.
뒤 돌아 그 남자를 보면, 그 남자가 멈춰서서 나를 본다.
"…미안."
뭔가 많이 복잡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표정.
한참을 나를 바라보다 정말 작은 목소리로.. 그것도 반말로 '미안'하고 등을 돌리고 가버린 남자에게서 나는 냄새는 너무 익숙했지만 의아했다. 무슨 냄새였지 저게.
"괜찮아? 쟤는 왜 치고 사과도 안 하고.."
"…사과했어."
"했어..? 안 들렸는데.."
"……."
"왜? 왜 그래..?"
"아, 아니야. 그냥.."
쟤한테 뭔 냄새 나지 않았어? 라고 묻기엔 너무 예민한 것 같고.. 그냥 고개를 저으며 웃어주자 나은이도 같이 웃어준다.
강의실로 가려고 나은이랑 뒤 돌아 한발자국 걸었을까.. 갑자기 뒤에서 들리는 '저기요!' 소리에 나은이랑 같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 '저기요'가 내가 아닐지도 모르는데 그냥 부르니까. 궁금해서.
"지갑을 떨구셔서요."
남자가 내 지갑을 가지고 나은이에게 지갑을 건네주었고, 나은이는 한참 키가 큰 남자를 올려다보다 입을 연다.
"아, 제 거 아니고... 제 친구 거인데."
나은이가 나를 바라보았고, 남자는 '아아..'하고 나를 바라본다. 지갑을 건네주기에 감사합니다- 꾸벅 하고서 지갑을 가져가려고 하자 남자가 지갑을 못 가져가게 힘을 준다.
얼굴에 물음표를 띄우고선 남자를 올려다보자, 남자는 날 웃음기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연다. 뭐요, 뭐.
"사례금 없어요?"
이런 미친놈이 다 있나. 겨우 매점에 떨궜을 지갑을 가지고 와서는 사례금을 달라는 미친놈이 또 있을까.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나은이와 남자를 번갈아 보았고, 나은이도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팔을 조금씹 잡아 당긴다. 그냥 무시하자는 뜻인 것 같은데..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도둑놈 보듯 남자를 올려다보자 남자는 역시 아무 표정도 없이 나를 보다가 입을 연다.
"저도 그 우유 하나만 사주세요."
내 손에 들린 우유를 보고 사달라는 걸 보니 또 미친놈은 아닌가 싶어서 안심을 한 것 같다.
콜? 하고 눈썹을 씰룩이는 남자에 나는 얼결에 '네'하고 작게 대답을 한다.
남자를 따라 매점에 또 들어서자, 남자는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채로 한참 우유를 본다. 겨우 딸기우유랑, 초코우유 두가지일 뿐인데 저렇게 고민 할 일인가.
고갤 돌려 나은이를 보면, 나은이는 경계하는 눈으로 강준이를 보고있는다.
초코우유를 챙겨 카운터로 향하는 남자에 나는 현금을 꺼내 계산을 해주었고, 남자는 '고마워요'하고 초코우유를 내게 한 번 보여주고서 먼저 매점에서 나가버린다.
이렇게 저 사람과 인연은 끝이 났다. 나은이는 여전히 어이없는 표정으로 저 남자의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고있다.
"세상에 진짜 별 이상한 사람들 많다니까."
"그러게.."
정말 하루 아침부터 너무 이상한 일이 있어서 짜증난다 생각했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나보다.
벌써 강의실 안에 사람들은 무리가 정해져있다. 짝이 정해져있다고.. 겉으론 티 하나도 안 내지만 속으론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울고있다.
턱을 괸 채로 핸드폰만 보며 나은이랑 연락을 하고 있는데.
[난 벌써 친구 사겼어 ㅎㅎ]
나은이는 벌써 친구를 사귀었다. 정작 나는 그 누구와 말도 못 붙였는데 말이다.
한숨을 내쉬고선 주위를 둘러보아도.. 벌써 여자들도 남자들이랑 친해지고 말이 많다. 다 나보다 어린 애들이겠지 싶어서 조금은 그냥 포기했다.
어린 애들은 어린 애들 끼리 노는 법이니까. 별 생각 없이 공부만 하다보면 다 괜찮아질 거야.
"주혁이 형! 여기 앉아요..!"
한 남자의 목소리가 크게 들린다. 뭔 목소리가 저렇게 클까 싶어서 돌아보려다 관심 끌리는 게 싫어서 그냥 핸드폰만 보고 있으면.
갑자기 내 옆자리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내 옆에 누군가 앉는다.
"너 아마도 나랑 동갑일 걸."
"……."
근데? 이 표정으로 남자를 보고 있자, 남자는 여전히 뻔뻔한 얼굴로 해맑게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말도 없이 너를 바라보자, 너도 그래도 눈치라는 게 있는지 으흠.. 하고 음료수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서 내게 말한다.
"우리가 제일 나이 많아서 교수님이 과대, 부과대 시킬 것 같지않아?"
"…글쎄."
"이름이 뭔데?"
난 내 이름도 싫다. 내 이름을 듣고 안 웃는 사람이 없다.
아무 말도 안 하고 너의 눈을 바라보기만 하면, 너는 참 보기 좋게 웃으며 또 입을 연다.
"나 남주혁. 넌!"
"……."
"네임이 무엇인가, 자네!"
"차월순."
내 이름을 들었다. 내 촌스러운 이름을 들은 넌.
"오! 월순이 반갑소."
여태 내 이름을 듣고 웃었던 애들과는 다르게 웃으며 내게 악수를 청한다.
얼결에 그냥 손을 뻗어 내밀면, 너는 내 손을 잡고 마구 흔들었고.. 나는 정신이 없어서 그런 너를 빤히 바라본다.
'반갑소 반갑소 반갑소!'하고 인사를 받아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재끼는 널 위해 나는 겨우 한마디한다.
"그래.."
"월순이!!"
"…그..! 이름 좀 크게..말하지 마."
참 너는 그거같다. 강아지. 푸들.
남주혁 저 친구는 참 최화력이 좋아보였다. 잘생기고 키까지 크니까.. 여자들도, 남자들도 모두 다 남주혁을 좋아한다.
괜히 할 것도 없어서 지갑을 꺼내 정리하는데 카드가 없길래 나는 아침에 상황을 떠올렸다.
분명 카드로 계산을 했고 지갑에 넣었는데.. 없다는 건..
"아, 미친."
내 지갑 주워준 사례금 그 남자가 가져간 거겠지. 나는 한숨을 내쉬고 제일 먼저 카드 분실 신고하고선 좌절하듯 책상에 엎드려 또 한숨을 내쉰다.
점심시간인데.. 나은이한테 아무 연락도 없는 거 보니. 새로 사귄 친구랑 같이 먹는 건가.
원래 이런 애가 아닌데.. 왜 연락도 없지.. 카드도 없어지고.. 난 점심을 어떻게 해야 하나.. 앞머리를 헝클이고선 계속해서 한숨을 내쉬었다.
강의실에 남아있는 두명의 남자 애들을 보며 나를 보는 것 같았다. 너희도 친구 없어서 그러고 있냐.
나은은 점심시간이 되자, 자신의 옆에 앉은 친구들에게 '밥 먹으러 가자.'하고서 웃어보였고..
옆에 앉은 친구가 뒤를 돌아보며 혼자 맨 뒷자리에 앉은 남자를 보며 수줍어 하는 걸 보고 고개를 갸웃한다.
"……."
아침에 봤던 애 같은데.. 아닌가.
"잘생겼다.. 친해지고 싶은데."
"가서 말 걸어봐. 선영이 너는 예뻐서 좋아할 거야."
"야 나은아.. 네가 나한테 예쁘다고 할 게 돼? 네가 제일 에뻐."
맞아맞아.. 그 옆에 친구들까지 해서 세명이서 맞다며 고갤 끄덕였고, 나은은 고갤 저으며 다시 재욱을 본다.
쟤는 왜 사람을 치고 정중하게 사과도 안 하고.. 진짜.
"아 맞다.."
나은은 뭔가 깜빡했다는 듯 급하게 핸드폰을 꺼내 월순이에게 카톡을 보낸다.
'점심시간이야? 같이 밥 먹자. 내 친구들이랑.' 카톡을 보내고서 뿌듯한 듯 웃으며 옆에 앉은 친구들에게 말한다.
"항공과에 내 친구 있거든. 같이 밥 먹어도 돼?"
"당연하지! 나은이 네 친구면 예쁘겠지..?"
"나보다 더 예쁘지. 너희가 보고 놀랠지도 몰라. 정말 예뻐서."
"진짜? 엄청 기대 된다.."
"기대 해도 돼! 진짜 예쁘니까."
나은이랑 나는 같은 층이다. 문이 열리지 않고, 너는 오지 않는다.
기대 하지않고, 나는 1층으로 내려가 대충 매점에서 빵이나 사먹을 생각으로 매점에 들어서려고 했을까.
편의점 앞에 테이블 의자에 앉아서 라면에 물을 붓고 기다리고 있는 아침에 그 우유뜯은 남자가 보여 나는 일단 그 남자에게 천천히 다가간다.
젓가락을 반으로 쪼갠 남자가 나를 올려다보더니 물음표를 띄운 표정으로 나를 본다.
"그 혹시."
"혹시?"
"아까 지갑 주울 때. 제 지갑 열어보셨어요?"
"…아뇨. 왜요?"
"카드가 사라져서요."
"에..히.. 설마 지금 제가 카드 훔쳐갔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
"뭐예요. 그 표정. 진짜?"
"…분명 계산하고 지갑에 넣었는데."
"아이, 참.. 제가 그 대단한 카드를 훔쳤으면 지금 초라하게 컵라면이나 먹고 있겠어요? 안 훔쳤어요."
"……."
"에? 안 훔쳤다니까."
"……."
"에에??"
"누가 뭐래요.. 알겠습니다. 죄송해요. 오해해서."
"주머니란 주머니는 다 찾아봐요. 누가 알아? 나올지."
"아까 다 찾아봤어요. 안 나오던데."
이 사람이 보는 앞에서 주머니를 다 뒤지고 잠바 안 주머니를 뒤지는 순간.. 떡하니 나오는 카드에 나는 너무 뻘쭘하고 민망해서 이 남자를 볼 수가 없었다.
남자도 내 손에 있는 카드를 보고선 어이가 없으면서도 웃긴지 픽- 웃으며 내게 말한다.
"사과금 없어요?"
"네?"
"미안하면 그쪽도 밥 사들고 내 앞에서 같이 밥 먹어요. 그쪽 마실 음료수도 사오고."
"……."
"나는 뭐 이거 먹다가 목이 말라서 죽어도 상관없으니까요."
결국엔 나는 매점에서 빵과 음료수 하나를 사들고 저 남자의 앞에 앉는다.
빵은 내가 들고있고, 음료수를 남자의 컵라면 옆으로 탁- 내려놓으니 남자가 스윗하게도 웃으며 내게 말한다.
"저 간접키스 별로 안 좋아하는데."
"에?"
"같이 마시자는 거 아니에요?"
"그쪽 다 마시라고 산 거예요."
변태 보듯이 남자를 바라보면, 남자는 피식- 웃고선 음료수를 벌컥 벌컥 마신다. 뭔 남자가 저렇게 예쁘게 생겼어. 짜증나게.
빵을 우걱우걱 먹고서 밖을 보고 한숨을 내쉬면 남자가 컵라면 한입 먹고선 내게 묻는다.
"몇살이에요?"
"스물다섯이요."
"친구야."
"????"
"왜요. 친구 안 같아? 나 아직 민증검사 하는데."
"예의상 하는 거겠지."
"와 은근슬쩍 말 놓네."
"동갑이라면서."
"그럼 나도 놔야겠다."
"그래라."
"근데 너 왜 혼자 밥 먹냐."
"넌 사람 아니야?"
"어?"
"너랑 같이 먹잖아. 왜 혼자야?"
"아, 맞네맞네. 무슨과?"
"항공과. 넌?"
"경영."
"……."
"왜 그렇게 봐? 안 어울려?"
"어."
"나도 뭐 배우러 간 게 아니라. 그냥 온 거야. 놀러. 졸업장 따러?"
"편하게 사네.."
"이름은?"
"차월순."
"푸흡.."
"……?"
푸하하하 하고 배까지 잡고 웃는 너를 보며 나는 인상을 썼다.
그래 원래 이런 반응이 정상인데. 아까 그 푸들 그 자식이 이상했던 거라니까.
괜히 자신감 얻고 당당히 이름 말한 내 잘못이지. 우걱우걱 빵을 먹으며 한숨을 내쉬자, 너는 이제서야 진정이 됐는지 찔끔 나온 눈물을 닦으며 한숨을 내쉰다.
"그렇게 웃겨? 내 이름이?"
"어. 엄청."
"사람 이름 가지고 그렇게 웃는 것도 참."
"우리 엄마 이름은 덕순인데."
"…아."
"그냥 웃긴 것도 웃긴 건데. 신기해서. '순'자 들어간 이름 보기 힘들잖아. 푸흐..."
"또 웃네."
"얼굴이랑 매칭이 안 돼서 그래...하.."
얼굴까지 가리고 웃는 너를 보며 나도 웃음이 나왔다. 뭐가 그렇게 웃긴데.
진짜 어이가 없어서.
나은은 연락이 없는 월순에 월순이의 강의실에 들러 월순을 찾았고.. 월순이 없자 애들과 함께 1층으로 향한다.
1층으로 내려와 월순이에게 다시 카톡을 보내려고 한 나은은 고갤 들자마자 표정이 굳는다.
저 멀리 매점 앞에서 아침에 마주쳤던 남자와 밥을 먹고 있는 월순에 나은은 곧 월순이에게 카톡을 보낸다.
[오늘 같이 못 먹겠다.. 미안 ㅜㅜ]
학교가 끝나고도 나은이에게서 연락이 없었다. 바쁜가.. 그냥 혼자 중얼거리고서 나는 문 앞에 붙여진 포스트에 쓰여진 번호로 문자를 보낸다.
[혹시 방 아직 들어갈 수 있나요?]
바로 '네'하고 답장이 오기에 나는 빛보다 빠른 답장에 감탄하며 다시금 문자를 보낸다.
[한달에 얼마인가요?]
- 5만원이요.
50만원 아니고 5만원이요? 이렇게 보내려다가 나는 다시 문자를 확인한다. 무슨 자취장이 한달에 5만원이야.. 진짜 미친 거 아니야?
[보증금은요?]
- 없어요.
보증금도 없댄다. 지금 이거 꿈이야? 눈을 비비고 봐도 너무 멀쩡한 글자에 나는 다시 답장을 보낸다.
[가서 확인 해봐도 되나요?]
- 네.
별 일이다. 보증금도 없고, 한달에 5만원.. 설마 화장실 한칸 되는 크기 집 아니야? 아니면 설마 이거 인신매매 그런 건가.
궁금한 게 한두가지가 아니었지만, 직접적으로 물을 수는 없었다. 그냥 슬쩍 보고만 오자.. 궁금은 하니까.
자취방이라고 해서 분명 학교랑 가까울 줄 알았는데. 옆동네였다. 그리고.. 집은.
그냥 일반 주택인데 2층 집이었다. 그것도 엄청 비싸보이는 집. 그래.. 자취방일 수 있지. 2층 집 자취방 꽤 있으니까.
고갤 마구 끄덕이고선 제일 먼저 나은이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문 앞에 붙여진 포스터 자취방. 문자 해봤어. 한 번 보기만 하려고 오긴 했는데 좀 느낌이 쎄하네]
문자를 보내고서 깊은 숨을 들이 마시고선 띵동- 벨을 누른다. 초인종 벨 소리에 덜컥- 소리가 들리기에...
"아, 저 방 보러ㅇ..."
내 말은 들을 가치도 없다는 건지..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서, 지잉- 무서운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적당한 크기의 마당을 지나쳐 현관문 초인종 벨을 누르니 이번에도 그냥 문이 열린다.
그냥 이렇게 들어가도 되는 건가.. 혼잣말을 하며 문을 열고 들어섰을까. 신발장에는 다 남자 신발들 뿐이었다. 솔직히 도망칠까 생각을 많이 했다.
이미 나는 문을 열었고, 한발자국 들어섰다. 긴장한 나머지 딸꾹질이 나와서 입을 틀어막자.. 어느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구시죠?"
"…아, 저는."
소개를 하려고 하는데. 내 말을 끊는 건 또 있었다.
저 끝자락 문이 열리고.. 그 문 사이론 익숙한 사람이 나온다. 그리고 그 사람은 나를 보고 놀란 듯 눈이 커졌다가도 진정하고 내게 말한다.
"…엥 뭐야. 왜 네가 여기있어?"
"어? 그..."
또 내 말을 끊는자가 있으니.
화장실 문이 열리고.
"……."
또 2층에서 내려오는 누군가 있다.
"……."
"아.. 전.. 자취방..보러 왔는데요. 아까 문자 보냈는데."
내 말에 내 앞에 서서 나를 내려다보는 무섭게 생긴 남자가 아아- 하고 한참 허공을 보더니 내게 말한다.
"포스터 보고 연락 준 것 같은데. 포스터 제대로 안 봤나보다."
"…네?"
"남자들만 가능하다고 써놨는데."
"분명 문자로는 오라고.."
"문자로 남자인지, 여자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
사실 여기 살고싶어서 더 말을 이은 건 아니다.
나도 남자끼리 사는 곳에 껴서 살고싶지는 않다. 불편하고, 좀 이상하잖아.
아.. 네.. 하고 고갤 꾸벅이고선 다시 빠꾸해 문을 닫았다. 근데 뭐야.. 남주혁에 서강준에.. 그리고..
"아침에 그 이상한 냄새 나던 애도 있네.."
초면에 반말 까버리는 집주인같은 사람도 마음에 안 들고.
집에와서 너무 어이가 없어서 나은이한테 전화를 걸어도 답이 없었다.
결국 한시간이 지난 뒤에야 나은이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온다.
"응, 나은아. 바빴어?"
- 응. 애들이랑 같이 저녁 먹고 집에 막 들어왔거든.
"애들이랑 엄청 친해졌나보네."
- 너는? 친구 사겼어?
"아니.. 나 왕따야."
- 아, 진짜...? 아! 거기 갔다왔다면서..! 어떻게 됐어?
"그냥.. 안 된다고 하길래 나왔어. 남자들만 받는다는 거 있지.. 참나.. 포스터에 분명 글씨를 못 봤는데 난.."
- 남자들만 받는대? 나도 못 봤는데..
"헐.."
"참나 이걸 글씨라고.."
나은이랑 나는 문에 붙여진 포스터를 보고 현타가 와서 멍을 때린다.
엄청 조그만 글씨로 '남자만'이라고 써놓으면 누가 알아보냐구..
갑자기 야아! 하고 누군가 나에게 어깨동무를 하길래 놀래서 어깨동무를 한 사람을 보면..
"어제 뭐야? 너 와서 엄청 놀랬잖아."
"남자만이면.. 글씨 좀 크게 쓰지. 왜 이렇게 작게 써놨어? 난 또 여자도 되는 줄 알고."
"아, 이거? 공간이 안 남길래 작게 썼는데. 너무 작나? 다시 붙여야 되나."
"…그래. 다시 만들어서 붙여. 너무 작아."
"그래야겠다. 형한테 다시 만들라고 해야겠네~"
내 옆에 있는 나은이를 본 주혁이가 '어?..'하고 나은이를 보았고.. 나은이는 곧 어색하게 웃으며 말한다.
"나 갈게. 월순아."
"아, 응. 좀이따 봐."
내 말에 손을 흔들며 사라진 나은이에 주혁이는 멀어져가는 나은이를 보다가 곧 다시금 나를 본다.
나는 내 어깨 위로 올려진 주혁이의 손을 치우고선 입을 연다.
"근데 왜 이렇게 싸게 받아? 보증금 필요 없고.. 돈은 한달에 5만원이면.. 진짜 말도 안 되는데."
"그런 게 있어. 남자만 다섯명인데다가.. 꼭 남자가 필요해. 꼭."
"…한명이 더 있어?"
"응. 어제 마트 가느라 그 형은 못 봤을 걸? 아무트은.. 아쉽다. 네가 남자였다면 같이 사는 건데. 아 맞다 맞다!!
너 어제 강준이랑 같이 밥 먹었다며? 왜 말 안 했어! 왜 나랑은 안 먹어? 강준이 걔 완전 노잼이라 나랑 먹으면 제일 재밌을 텐데!"
"…친구야 걔랑?"
"응. 거기 사는 사람들 다같이 친구야. 다. 다 생긴 건 그래도 엄청 착해."
"아.."
"가자!"
주혁이랑 같이 강의실에 들어서면, 주혁이는 인기가 많아 모두에게 인사를 받는다.
나랑 알지도 못하는 남자 애들도 나를 향해 인사를 건넨다. '누나 안녕하세요' 그럼 난 따라 웃어준다.
점심시간이 되자마자 주혁이가 내게 손을 흔들며 밥을 먹으러 가자 했고, 나는 고갤 저었다.
같이 먹을 친구가 있어서.. 내 말에 주혁이는 알겠다며 울상을 짓고 나가버리는데. 어쩜 저렇게 큰 애가 귀엽기까지하냐..
픽- 웃으며 나은이에게 전화를 걸었을까.. 나은이가 내 전화를 끊는다.
뭐지.. 나은이에게 카톡을 하려고 하면, 나은이에게 먼저 카톡이 온다.
[나 오늘 좀 늦게 끝나서 친구들이랑 먹을게 ㅜㅡㅜ]
그럼 난 너에게 알겠다고 답장을 보낸다. 뭐 오늘은 굶지 뭐...
아무 생각 없이 가만히 앉아서 핸드폰만 보고 있는데 어제 나와 부딪힌.. 그리고 그 2층 집에서 마주친 남자를 떠올린다.
'…미안.'
'…….'
이상하게 뭔가 신경이 쓰인단 말이지..
멍하니 어제 일만 떠올리고 있었을까. 물이라도 마셔야겠다 싶어서 강의실에 나온다.
윗층으로 올라가니 정수기가 있었고.. 공사중이라 열려있지 않은 남자 화장실이 있었다.
물을 마시며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데.. 공사중인 화장실 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싸우는 소리.. 이 층엔 나밖에 없는지 너무 고요해서 소리가 잘 들렸다.
물을 마시다 말고 가만히 멈춰 서서 화장실 안에 소리를 듣고 있는지 너무 격하게 싸우는 것 같아서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한다.
연구실 가서 교수님을 모셔와? 한참 고민을 하고 있는데.. 반쯤 투명한 문에 남자가 부딪히고 '윽' 소리가 들려온다.
마시던 물을 버리고 화장실 문을 조심스레 열어보니.. 익숙한 남자 두명이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야 일어나."
이 사람의 손엔 커터칼이 쥐어져 있었고...
"……."
너는 화나있었다. 찔러도 상관 없다는 듯 당당하게 남자에게 다가오는 서강준에 나는 당장 남자의 손목을 잡았다.
그냥 사람 살려야겠단 생각에 한 충동이었다. 남자의 손목을 잡아 커터칼을 뺐으려고 했고, 손등이 너무 아팠다.
손등에서 후두둑- 하고 떨어지는 많은 피에 나는 인상을 쓴 채로 찢어진 손등을 보다가도.. 바닥에 떨어진 커터칼에 안심을 하며 커터칼을 주우려고 했을까..
"잠깐, 잠깐만!!..."
남자가 서강준의 멱살을 잡아 눕히고서 서강준의 목을 있는 힘껏 조르기에 나는 남자의 옷깃을 잡고 당겼다.
제발 그만하라며 소리를 질렀다. 서강준의 얼굴은 숨을 못 쉬어 터질 듯이 빨개졌고, 나는 남자의 허리춤을 끌어안았다.
"제발 그만 해!.."
"……"
'이재욱, 서강준!' 주혁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장실 문이 벌컥 열리고..
"……."
그리고 오늘 깨달았다. 내가 왜 이걸 이제서야 알았을까.
이 익숙한 냄새는..
코를 찌르고 정신 없게 만드는 이 냄새는.
"……!!"
본드 냄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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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타싸에서 오신 분들은 아실 테죠 후후...
그냥 배우들로 쓰고싶단 생각은 계속 했지만 기회가 이렇게 와서.. 헤헤...
걱정 마요 ! 이 새작을 내도! 공지철씨는 연중 안 할 거니까요 !.. 후후.. 제가 너무 아끼는 작품이었는데.
이렇게 내게 되니 너무 좋차나효 후후.. 후....
본드남(본래 드럽게 잘생긴 남자들)
기대 많이 해주십시오 ~_~ !! 맨 ~~ 응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