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 혼 배 틀 00
조각으로 나뉘어진 글이며, 전체적인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간다고 보시면 돼요.
짧은 글이니 읽어보시고, 앞으로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댓글달아주세요!
여러분의 댓글을 확인 후 연재향방이 정해질 것 같습니다 :->
" 여주씨, 오늘도 예쁘네요. "
" 늬예늬예 "
" 우리 결혼할래요? "
" 놉. "
" 또 거절당했네. 마음 아프게. "
오늘로 백번 채우겠어요, 석진이 너스레를 떨며 차문을 열고 손을 내밀었다. 여주는 떨름한 표정으로 그 손을 쳐다보다가 손끝을 살짝 잡았다.
그에 빙긋 웃은 석진이 부드럽게 손을 이끌어 에스코트했다. 호화스러운 에스코트를 받으며 차에서 내린 여주의 얼굴이 심드렁했다.
내린 차가 지나치게 삐까뻔쩍했다. 누가 부잣집 아니랄까봐 아버지라는 사람은 이런 비싼 차를 척척 갖다 바쳤다. 참으로 눈물겨운 부성애였다.
여주는 차 문을 닫고 제 앞에 선 석진을 보며 말했다.
" 등교할 땐 굳이 안와도 된다니까요. "
" 혼자 가다가 큰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구요. "
" 학교에서 오피스텔까지 십분거린데요. "
" 그래도 안돼요. 그 예쁜 발 상할라. "
미친. 여주는 욕을 뱉으며 아연실색했다. 마주한 석진의 얼굴은 꽤나 태연했다. 양쪽 입꼬리를 예쁘게 말아올리는게 참 뻔뻔도 했다.
" 소름돋으니까 그런 말은 좀 안하면 안돼요? "
" 왜요, 사실인걸. "
" 하. "
" 오늘은 세시에 끝났죠? 그 때 맞춰서 올게요. "
" 오지 마요. "
" 여주씨 얼굴 보고 싶어서 안돼요. "
매정하게 오지말라는 제 말에, 버터 한 사발은 끼얹은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여주는 진심으로 속이 울렁거렸다.
잔뜩 구겨진 제 표정에도 석진은 신경쓰지도 않는 듯 더 예쁘게 웃어보였다. 그 위로 분분히 벚꽃잎이 휘날렸다.
번쩍번쩍한 비싼 차와, 그 앞에 서있는 정장차림의 잘생긴 남자, 그가 해사한 얼굴로 마주하고 있는 여인. 그 사이를 가르는 벚꽃잎들. 지나가는 이들이 보기에는 정말이지 완벽한 로맨스의 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 장면 속에 담긴 여주인공은 세상 썩은 표정으로 그를 마주하고 있었다. 여주에게 이 순간은 로맨스물이 아닌, 배틀물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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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걔 있잖어, 문숙이네 외동딸. 어어, 째깐한 게 성깔머리 지랄맞은 그 년. 걔가 글쎄 이번에 친아버지네로 간대나, 근데 그 아버지란 사람이 엄청 부자래. 문숙이가 여기 올 때 좀 예뻤어? 처녀 적에 언 놈 하나 제대로 물어버린거지. 그러다 덜컥 임신했는데 그 인간이 돈 쥐어주고 죽은듯이 살랬대나 뭐래나. 근데 이번에 고 집안에 하나 있던 아들이 자살했다는 거야. 지 핏줄이 없으니 이제야 찾은거지. 여주 그걸. 아주 수지 맞은 거지. 앵간한 부자가 아닌가보더라고. 팔자 지대로 폈어. 지 엄마는 개고생하다가 죽었는데 고 년이 문숙이 복을 다 가져간 거 아니겠어. “
“ 아줌마. 저 왔어요. “
[천사슈퍼마켙]. 이제는 색이 바래서 글자조차 흐릿하게 보이는 간판 아래 여주가 펑펑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서 있었다. 손에는 알량한 작별선물. 제 딴에는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저를 챙겼다는 고마움이 담긴. 저를 확인하자마자 후다닥 전화를 끊고 어이구, 여주왔어. 태연하게 구는 아줌마를 보며 여주는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손에 들린 선물이 참 우스웠다.
“ 마지막이라서 인사는 드리고 가야할 것 같아서 들렀어요. “
" 오, 오늘 서울 간댔지? 여서 고생많았어. 앞으로 좋은 일만 있을거야. "
“ 지금까지 감사했습니다. 앞으로 건강히 잘 지내세요. “
여주는 깍듯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곤, 느리게 몸을 세웠다. 아줌마는 저보다 키가 작았기에 내려다보는 형상이었다. 잇새로 비웃음이 샜다.
“ 근데 아줌마. “
" 응? "
" 뭔가 착각하고 계신게 있는 것 같아서. "
" ... "
“ 울 엄마 이름 문숙이 아니고 문정이. 사주팔자가 하도 개같아서 바꾼 이름이거든요, 나이 사십 다 되서. 그리구 울 엄마가 처녀 적에 언 놈을 문 게 아니고, 언 놈이 울 엄마를 문 거에요. 그 언 놈은 금수보다 못한 씹새끼고. “
과격한 언행에 아줌마의 얼굴이 굳어갔다. 건드려도 잘못건드렸다는 얼굴이었다.
" 그 새끼한테 간다고 내 인생이 펴요? 아줌마. 그거 알아요? 그 새끼가 나한테 연락한 순간부터 내 인생은 꼬인 거였어. "
" ... "
" 난요. 울 엄마 그 따위로 방치한 그 새끼 지옥으로 보내는 거, 그거 하나보고 서울 가는거에요. "
여주는 손에 들린 선물을 아줌마의 품에 안겼다. 얼떨결에 선물을 받아든 아줌마의 표정이 선득했다.
" 그러니까 개같은 소문 퍼뜨리지 말고요. 그거 하나만 전해요. 김여주가 지 애비 죽이러 간다고. "
여주는 들개처럼 섬뜩하게 웃곤, 뒤돌아 슈퍼를 빠져나왔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눈이 빌어먹게도 예뻤다.
여주는 높은 언덕배기에 위치한 옥탑방에 올라, 한 눈에 들어오는 제 고향을 돌아보며 굳게 먹은 결심을 입 밖으로 뱉어냈다.
김동수 죽이고 지옥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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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저씨. 나 왜 좋아해요. "
" 음. "
석진은 턱을 괸 채 잠시 고민에 빠진 듯 하더니 상큼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 돈이 많으니까? "
" ...존나 솔직하시네요. 빡치게. "
여주는 사정없이 얼굴을 구기며 커피를 들이켰다. 샷 세개가 들어간 아메리카노가 몹시 썼다. 그 맛에 먹긴 했지만, 오늘따라 더 쓴 것 같았다.
그게 내 돈인가, 혼잣말을 짓이기는 여주를 물끄러미 보던 석진이 말했다.
" 곧 될 거잖아요. "
" 그걸 어떻게 알아요. 결혼하면 준다는데. "
" 나랑 결혼해요, 그럼. "
" 아니. "
여주는 커피잔을 거칠게 내려놨다. 사람이 투명하다해도 이렇게 다 드러내도 되나. 김동수가 제게 결혼하면 그 때 재산을 분배해준다는 이야기가 퍼지고 나서 은근하게 유혹해오는 인간들은 많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드러내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석진은 여전히 말간 얼굴로 이어질 제 말을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여주는 이를 잘근 씹으며 말했다.
" 아저씨, 내가 지난번에도 말했잖아요. 난 그 돈 가질 생각 아니라니까요. "
" 알아요. 김동수 회장 끌어내리는 거. 근데 그러려면 그 돈을 빼앗는 게 먼저일텐데요. "
석진이 딸기스무디를 쪽 들이키며 고개를 기울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이가 들어 노쇠한 김동수가 이끌어가는 한동그룹은 나날이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고, 주주총회에서는 해임안이 수십번 오르내리길 반복했다. 김동수는 그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제 아이를 내세웠으나, 안타깝게도 그는 자살을 했고 그 뒤를 이을 사람이 없는 상태였다. 김동수가 저를 서울로 불러들이며 내건 조건이 육개월 안으로 결혼인 것은 바로 거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하지만 여주는 영 께름칙했다. 아무리 복수를 위해 서울에 올라왔다곤 해도, 결혼상대를 이용해먹는 건 용납할 수가 없었으니까.
물론 석진은 그걸 다 알고 있고, 그에도 동의해줄 사람이었지만 어쩐지 능구렁이같은 석진과 결혼하는 건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여주는 논리적으로 합당한 이유를 찾다가 그냥 되는대로 말을 뱉었다.
" 그래도 아저씨 인생에 단 한 번뿐인 결혼인데 적어도 사랑하는 사람이랑은 해야죠. "
" 맞아요. "
" 네? "
" 사랑해요, 여주씨. "
여주는 석진의 뻔뻔한 사랑고백에 말문이 막혔다. 아. 강적이어도 너무 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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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뽀 플러팅&직진&계략남 김석진이 보고싶어서 쓴 글입니다ㅋㅋㅋㅋㅋㅋ
아마 연재확정이 된다면 중간중간 살이 붙어서 정식적으로 1화가 나갈 것 같아요.
연재를 원하신다면 댓글로 푸처핸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