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살 상사와 연애하기 프로젝트
w.1억
"완전 또라이네. 그냥 너 괴롭히고 싶어서 그런다니까 이대린가 뭔가 하는 그 여자."
오늘도 어김없이 지수는 내 편이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 그냥 실수를 한 내가 재수없어서 9시까지 회사에 남기고 싶었던 걸까.
괜히 더 찍히기도 싫어서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출근을 하기로 했다.
아침엔 왜 이렇게 추운지.. 덜덜 떨면서 회사 앞에 막 도착했는데 누군가 차에서 내리길래 얼굴을 보니..
"……."
어제 저녁에 나한테 퇴근하라고 했던 부장님이었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부장님은 어제 처음 보았다. 뭐 출장 가셔서 없다고 했었는데.
"일단 끊어봐. 회사 왔어."
전화를 끊은 부장님이면 하필이면 눈이 마주쳐서 나도 모르게 흠칫 놀라서는 한참 바라보다가 고개 꾸벅이며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아, 네."
"……."
"……."
근데 또 하필이면 우리 팀 부장님이라서 같은 회사 들어가고, 같은 엘레베이터를 타야 되는 게 문제였다.
먼저 들어간 부장님은 문 잡아주는 센스따위 없었다. 먼저 들어가서는 엘레베이터 버튼을 누르길래 그 옆에 따라 섰다.
나는 부장님을 의식하느라 힐끔 보는데,부장님은 주머니에 손을 꽂고 정면만 보고있다.
부장님은 얼굴도 저렇게 다가가기 어렵게 생겨서.. 직위도 참.. 역시 불공평해. 원래 회사가 이렇지.. 이래야 회사지.
부장님이랑 뭔 사적인 대화를 나누겠어.
엘레베이터에서 내린 나는 사무실로 향하고, 부장님은 다른 길로 가기에 안녕히 가시라고 인사 좀 할랬더니 그냥 휙- 가버린다.
아, 저 매정한 사람아.. 되게 무섭게 분위기 잡네.. 쩝.. 괜히 뻘쭘해서 사무실로 향하는데 내 자리 옆엔 분명히 비어있었는데.. 웬 짐들이 있다.
이게 뭐지 싶어서 한참 그 자리를 보고 있으면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으니.
"옆에 좀 앉을게. 인턴."
ㅇ...ㅓ...네..하고 고개를 끄덕인 나는 자리에 앉으며 힐끗 남자를 보았다.
어제 웹툰 보던분이네.. 옆모습만 봤었는데 정면에서 보니까 잘생겼구나.. 괜히 뻘쭘해서 컴퓨터를 키고 한참 가만히 있으니, 남자가 말한다.
"왜 일찍 왔대. 평소처럼 오지."
"…아, 늦는 것 보단 나아서!"
"아."
"…제가 어떻게 불러야.."
"대리."
"대리...."
"지대리."
"지대리......"
"ㅇㅇ."
너무 띠껍다. 뭐라 해야 되지.. 되게 너무 무심하고 자기 세상밖에 없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고갤 끄덕이며 애꿎은 프로그램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는데 저 멀리서 빛이 난다. 하.....
"어? 인턴 되게 빨리 왔네? 뭐야 우리뿐이야?"
40분 먼저 왔으니 우리겠죠..
"주임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왜 그래, 왜.. 어제 계약서는 어떻게 됐어? 다 붙였어?"
"아, 아니요.. 붙이고 있었는데. 부장님이 들어오셔서 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부장님이?"
"네.."
"직접??.."
"네!!! 자긴 하라고 한 적 없다고.. 퇴근하라고.."
"하라고 한 적이.. 아이고 이대리님이.."
"이대리님이!!!"
"ㅠㅠ힘들었겠다.. 미안해 내가 남아서 도와줬어야 했는데."
"아니에요..주임님... 흡....ㅜㅜㅜ..."
"ㅎㅎ 어? 근데 지대리님은 왜 자리 이쪽으로 옮기셨어요?"
"아, 내 옆자리가 향수를 거의 들이붓고 오더라고. 자꾸 코가 간지럽고 어지러워서 자리 좀 바꾼다고 했어."
"아.. 향수.."
"또 옆에는 너무 시끄러워서 말이지."
"아 ㅎㅎ김대리님.. 왜요? 되게 밝고 좋으신데.."
"시끄러운 거 딱 질색."
사람은 딱 보였다. 시끄러운 거 싫어하고 간섭 받는 거 싫어하는 스타일 같았다.
좋고 싫음은 분명할 것 같고. 뭔가 옆자리 앉는 게 되게 불편해진달까...
그나저나.. 박주임님은 우리 자리에서 대각선 자리다.. 차라리 박주임님이 내 옆에 오지.. 괜히 풀이 죽어서 한참 가만히 있는데.
주임님이 내게 또 말을 건다.
"모르는 거 있으면 지대리님한테 물어보고 그래. 지대리님이 나보다 아는 거 더 많으니까."
"……."
"뭘봐."
"…아, 죄송합니다."
뭘보냐니. 진짜.
아 제발 자리 좀. 아 퇴사가 먼저인가.
"점심 먹고 시간 좀 남으면 나한테 좀 올래? 팩스 보낼 게 좀 있어서 인턴이 보내줘야 될 것 같아."
"아, 네 알겠습니다.."
"점심 맛있게 먹어~"
아 진짜 싫어. 어제 일에 대해서는 어떤 말도 안 하네. 진짜 마녀같애 마녀 마녀 마녀.
"아, 지대리님 오늘도 김대리님이랑 같이 점심 먹어요. 저는 인턴이랑.."
"내가 싫으면 그냥 싫다고 해.. 일부러 김대리랑 둘이서 밥 먹게 하지 말고. 진짜 안 그래도 시끄러운데 둘이서 밥 먹으니까 더 시끄러워."
저 말에 갑자기 등장한 사람은 김대리라는 사람이었다.
'내가 뭐가 시끄러운데???' 하고 내 앞에 뿅- 하고 나타난 사람은 박주임님이랑 지대리님이랑 꽤 친해보였다.
원래 저렇게 셋이서 밥을 먹나.. 역시 잘생긴 사람들끼리.. 하고 감탄이나 하고 있는데. 갑자기 김대리님이 나를 보더니 말한다.
"인턴 나 싫어요?"
"…아니요!?"
"그치? 안 싫지? 그럼 다같이 먹으면 되겠네. 지대리가 자꾸 저렇게 나오니까 안 되겠어. 자꾸 둘은 싫대."
"…아, 저는 괜ㅊ.."
"아냐, 안 괜찮아. 우리 삼쉴 여자들은 무리 지어서 밥 먹고 다녀서 인턴은 신경도 안 쓸 걸? 우리가 챙겨줄게, 챙겨줄게~"
"…엇."
첫 회사에.. 출근한지 4일만에 남자 셋이서 내 밥친구가 되어줄 줄은 몰랐다.
그것도 잘생긴 사람들끼리 말이다.
"나는 김정현이고 서른 한살. 근데 이 형은 서른넷이다? 딱 봐도 맏형같죠? 이 형이 원래 싹수없어. 그러려니~ 해요. 그치 지대리님?"
"……."
소개를 해주는 김대리님과.. 너는 떠들어라.. 나는 밥을 먹을테니.. 하고 수저를 놓는 지대리님.
"……."
"…하하하."
"원래 이렇게 셋이서 많이 친해서. 서로 장난 많이 쳐. 별 신경 쓰지 마."
"네...."
그리고 저 멀리서 이대리님이 나를 보고 여직원분들과 얘기 하는 걸 보니 숨이 턱 막혀왔다.
나 뭔가 이분들이랑 밥 먹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어제 부장님한텐 안 혼났어? 계약서는 어떻게 됐어?"
"아, 부장님이 하지 말라고.. 퇴근 하라고 해서 퇴근했어요."
"그래? 이거 보고 팩스 보내면 되고..."
"…넵."
"인턴 혼자 밥 먹는다고 해서 지대리랑, 김대리랑, 박주임이 챙겨주는 거야?"
"…네? 아, 네."
"왜 나랑 안 먹구."
"…아."
"근데 회사에선 진짜 남자 문제 조심해야 돼. 사람들이 하도 말이 많아서.. 애인이 있어도 없다고 하는 게 원칙이야~ 괜히 소문만 이상하게 나^^."
"넵.."
"고생해."
"네."
이대리님이 자료들을 주고 가버렸다. 그리고 나는 점심시간에 또 일을 한다.
팩스를 보내려고 사무실에서 나와 팩스를 하나씩 천천히 느긋하게 보내고 있는데 저 멀리서 김부장님이 지나가는 게 보였다.
여기 회사 사람들한테 인기가 꽤 많은지 여자들은 참 말이 많았다.
"김부장님은 애인 없어? 애인은 부럽다."
"그러니까 진짜 배우상이야."
얘기를 들으며 팩스를 보내고 핸드폰을 보면서 방에서 나왔을까.
갑자기 누군가와 부딪히고만다. 두개의 핸드폰이 바닥에 떨어져있었고.. 나는 큰일났음을 느꼈다.
"…어, 죄송..!"
김부장님이었다. 김부장님이 바닥에 떨어진 본인의 핸드폰과. 내 핸드폰을 들고 내 핸드폰을 내게 건네주며 말한다.
"…안 깨진 것 같던데. 혹시라도 깨졌으면 찾아와요."
"…아뇨! 제가.. 잘못.."
급하게 전화를 받는 부장님의 핸드폰을 슬쩍 보았을 땐.. 화면으로 떨어져서 다 깨진 액정이 보였다.
진짜 큰일났다.
"부장님 핸드폰을...? 완전 박살...?"
"네.. 분명히.. 화면이 막.. 하.. 아이폰이셨는데 분명히........"
너무 놀래서 잠깐 복도에 나와서 커피 한잔씩 하면서 얘기하는데 내 얘기를 듣던 김대리님이 날 보더니 입을 틀어막는 것이다.
"왜..왜요...? 왜요..!?"
"…인턴 이제 큰일났다."
"헐 왜요... 저 이제 짤려요..? 어떡해요... 저 어떡해요."
"…어. 너 진짜 큰일났어. 짤려... 부장님이 얼마나 무서우신 분인데.. 난 죽어서 염라대왕 만날래~ 김부장님 만날래~ 하면 염라대왕 택하겠어."
"…네??????????"
"아니.. 아니야. 뭘 짤려.. 아, 진짜 김대리님도.. 장난이 좀 심하시잖아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럼요? 저 어떡해요ㅜㅜㅜㅜ"
"죄송하다 했어?"
"아뇨ㅜㅜㅜ하려고 했는데 막 전화를 급하게 받으셔서."
"사과드리면 괜찮을 거야. 오히려 제 핸드폰 걱정 해주셨는데."
"그냥 마주치면 죄송하다고만 해도 될 것 같아. 너무 신경 쓰지 마."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큰일났대요~ 짤린대요~ 출근 4일만에~~ 하며 사무실로 들어가는 김대리님에 울상을 지으니 푸하하- 웃는다.
ㅠㅠㅠㅠㅠ나한테 왜 그래요 진짜?
퇴근도 안 하고 남아서 모르는 것들을 포스트잇에 적어서 모니터에 하나씩 붙였다.
그러다보니 벌써 7시가 되었고. 부장님 핸드폰 깨진 게 너무 신경 쓰여서 한숨만 나왔다.
그래 마주치면 죄송하다고 해야지.. 굳이 막 부장님 찾아가서 그럴 필요는..
"흡.."
왜 이렇게 서운한 일 투성이냐고오.. 안 그래도 그 부장님 무서워 죽겠는데.
그래도 뭐.. 아까는 좀 웃어주긴 하셨지. 내 핸드폰 걱정 하면서...
회사에서 나오면서 주차장 쪽을 봤는데 아침에 봤던 차가 있기에 두눈을 깜빡였다. 부장님 차였나..
말 끝나기 무섭게 편의점에 들렀다 나온 부장님이 차에 타기에 나는 급히 우다다 달려가다가 진짜 난 등신일까 싶을 정도로 어이없게 발목을 삐끗해서 넘어진다.
이런 미친 미친 미친. 민망하지만 그래도 일어나서 부장님 차에 다가가 '부장님!'하니 방금 막 차에 탄 부장님이 당황스러운 눈을 하고선 창문을 열어준다.
"저.. 부장님..! 아, 저 그 인턴입니다...."
"……."
"…그 핸드폰이요. 제가 부딪혀서 그렇게 된 건데.. 제가 죄송해요. 액정 깨진 것 같던데.. 제가 물어드릴 수 있으면 물어드릴게요.. 너무 신경이 쓰여서."
"아니에요. 신경 쓰지 마요. 안 그래도 바꾸려고 했어요."
"…새로 나온 거잖아요 그 핸드폰."
"다른색으로 바꾸지 뭐.. 가요, 얼른."
"…네? 아,어..아..하.."
"근데 괜찮아요?"
"네?"
"방금."
방금.. 하며 내 다리를 보는 거 보니.. 넘어진 거 괜찮냐고 묻는 것 같았다. 아 아 아 쪽팔려 쪽팔려.
되게 너무 무심하고 너무 안 웃어서 더 무섭달까.
"집 방향 어디예요."
"우체국 쪽이요..!"
"타요. 나도 그쪽 방향이라."
"…어오 아니에요! 가까워서 그냥 버스 타면.."
"타요."
"…아, 그럼.."
실례.. 하고 뒷좌석 문을 열려고 하면, 부장님이 말한다.
"내가 택시기사예요?"
"네?????"
"앞에 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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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흐흐..
더재미있어질꼬니꽈귀뒈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