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열이 보냈다. 둘이 같이 와.
무료하게 출국 심사를 기다리며 밀린 문자들을 확인하던 수정은 속으로 욕을 삼켰다. 매정한 아버지의 성격은 이미 꿰뚫고 있는 터라, 마중까지는 바라지도 않았다. 아니 기사 아저씨만 보내든가, 하다 못해 택시라도 타고 오면 될것을, 가깝게 지내는 것 같아 보여도 찬열과는 영 어색했다. 좀 더 친해지길 바라는 거겠지. 배다르고 성다른 남매에게 바라는 것도 참 많다 싶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근 십년만에 다시 만나는 찬열의 모습이 궁금하기는 했다. 가족이 되기 전까지는 나름대로 친하게 지내곤 했었는데.
혹시라도 알아보지 못할까봐 걱정한것이 무상할 정도로, 찬열은 몰아치는 인파 속에서도 한 눈에 띄었다. 다른 사람보다 한 뼘은 더 커보이는 키 때문인지, 사람들로 꽉 메워져 있는 벽 위로 찬열의 머리가 봉긋 솟아올라 있었다. 찬열도 수정을 단번에 알아보고는 까만 선글라스 너머로 수정을 향해 씩 웃어보였다. 이빨만 봐도 박찬열이다. 수정은 웃으며 찬열에게로 걸어갔다.
"오, 정수정. 오랜만."
"오빠도. 키 많이 컸네."
"넌 어째 그대로다, 작은 것도 여전하네."
"말이 돼? 아, 머리 누르지마."
"까칠한 것도 여전해."
"닥치고 빨리 움직여. 나 피곤하니까."
수정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짓다 이내 머리를 꾹 눌러 내리는 찬열의 손을 탁- 쳐냈다. 차가운 수정의 반응이 민망했는지 찬열을 잠시 머뭇대다 이내 가방을 들어준다며 수정에게 말을 건냈다. 찬열보다 훨씬 앞서 빠르게 출구를 향해 나아가던 수정은 찬열의 말을 듣고 발걸음을 멈칫하더니 이내 그에게 새침하게 가방을 건넸다. 아 진짜, 정수정. 귀엽다니까. 찬열은 다시 한번 수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지 말래도! 수정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찬열은 벌써 수정의 가방을 끌고 저 만치 달려나가고 있었다. 나이는 헛으로 먹었나. 변한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다.
"배는 안 고프지?"
"괜찮아."
"미국 생활은 어땠어?"
"똑같지 뭐."
"친구들은 많이 사귀었고?'
"………………"
수정은 수긍의 표시로 고개를 대충 끄덕이며 눈을 감았다. 사실은 아니지만 뭐, 여부를 판단하려는 의도도 아닐테니까. 다정한 성격의 찬열은 좋다가도 이따금씩 귀찮을 때가 있었다. 수정아.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다시 자신을 부르는 찬열을 쳐다 봤다. 아까의 장난스럽던 표정은 금새 어딜가고 미간을 찌푸린채 운전에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낯설어 보였다.
"왜?"
"……네 이름 말인데."
"…………………………"
"아줌마 돌아가신지도 좀 됐잖아. 사람들 시선도 안 좋고."
"내 이름 정수정이야. 앞으로도 계속."
"네가 굳이 싫다고 하면 강요는 안해. 한번 고민해 보라는 뜻이니까."
그나마도 풀리기 시작하던 분위기가 다시 무겁게 가라 앉았다. 아까는 그렇게 쏟아지던 잠이 싹 달아났다. 서로 아무 말 없이 집에 도착했다. 수정은 씻을 생각도 없이 침대에 몸을 파 묻었다.
나오라는 최진리는 어디가고 차녀리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