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오랜만이에요. 잘 지냈어요?"
이 주 만이다.
"여기... 왜..."
"당연히 선생님 보러 왔죠."
꿈이 길어지려나 보다.
"저 팔도 다 나았는데, 여기 올 이유가 뭐 있겠어요."
"......"
"선생님 보러 온 거죠. 퇴근하시는 거죠, 지금?"
".... 네."
"갑시다, 나랑."
"어디요?"
"맛있는 거 먹으러요."
"맛있는 걸로 선생님 좀 꼬셔보려고요."
이건 전부 다 저 잘생긴 얼굴 때문이다.
내가 나약해서 넘어간 게 아니라, 저 얼굴이 너무 강력해서 그런 거다.
"갑시다. 얼른 타요."
"제가 운전할 때 좀 잘생기긴 했죠?"
또 멍하니 쳐다봤나 보다.
왜 이러지 나?
"죄송해요. 제가 자꾸 딴생각을 해서."
"저번에도 말했지만, 제 생각 하시는 거면 계속해 주세요. 얼굴도 계속 보시고."
"....."
"선생님이 그렇게 빤히 보니까 좀 설레네요."
"제 퇴근시간은 어떻게 아신 거예요?"
"그냥 기다렸는데요."
"예?"
"오늘은 촬영이 없었거든요."
미쳤나 봐.
"아니 그렇다고 그걸... 그냥 기다려요? 무작정?"
"뭐 방법이 없으니까요. 아직 번호도 모르고, 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오늘 퇴근 못했으면 어쩌려고 그렇게 기다려요?"
"그럼 뭐 그냥 집에 가는 거죠."
이 사람 진짜 미쳤나 보다.
"저번 주에 한번 그냥 기다리다 돌아갔던 적 있는데."
맙소사.
"그래도 오늘 만났잖아요. 그래서 괜찮아요."
도대체 왜.
진심인가? 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주위에 누가 많이 아픈가.
"혹시 주위에 누가 많이 아프세요?"
"네?"
"주위에 가까운 분이 아프세요? 수술 급할 정도로?"
"무슨 말이에요?"
"그래서 저한테 잘해주시는 거 아니에요? 부탁하려고?"
"아니에요. 제 주변 사람들 다 건강해요."
그럼 대체 왜.
맛있다.
진짜 맛있는 밥으로 날 꼬시려는거라면, 좀 성공한 듯.
근데 왜 안먹지. 맛있는데.
"왜 밥 안드세요?"
"대체 그런 생각은 어떻게 하는 거예요?"
".... 뭘요?"
"주위 사람이 아파서 선생님께 부탁하려고 제가 들이댄다는 생각이요."
아까부터 밥도 안 먹고 빤히 쳐다보던 이유가 저거였나.
"그거야 뭐..."
"되게 엉뚱한 상상을 한게 귀엽긴 한데, 좀 속상하기도 해요."
"제가 선생님 좋아한다는 게 그렇게 못 믿음직스러웠나요?"
저런 눈빛으로 말하면 나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아뇨아뇨 그게 아니고..."
"그럼요?"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저는요, 솔직히 하나도 이해가 안 가요."
"뭐가요?"
"다요. 전부 다요."
"......"
"저는 김석진 씨가 저한테 이러시는 것도, 지금 제 앞에 앉아서 같이 밥 먹고 있는 것도 다 이해가 안 가요."
"왜요?"
"왜 저예요?"
"제가 말했잖아요. 느낌이 딱 왔다니까요."
"그 느낌이 대체 뭔데요?"
"....."
"전 정말 모르겠어요."
진짜 모르겠다.
"김석진 씨 좋은 사람이에요. 친절하고, 다정하고, 잘생기셨고 능력도 좋으시잖아요."
"....."
"주위에 예쁘고 능력 있고 좋은 사람들이 많을 테고, 그중에서도 김석진 씨한테 들이대는 사람이 꽤 있을 텐데."
"....."
"왜 굳이 그쪽한테 관심 없는 저한테 시간을 투자하시는 거예요?"
당신의 시간이 아까워서 그래요.
"저는 그냥... 평범한 의사일 뿐이에요."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훨씬 더 괜찮고 좋은 사람 만나면 될 텐데, 왜 저한테 이러시는지 진짜 모르겠어요."
나는 당신의 말과 행동을 단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어요.
"흠....하고 싶은 말 다 했어요?"
속 시원하다. 간만에 필터링 없이 생각나는대로 말했다, 나.
그 와중에 얼굴 열일한다, 진짜.
"제가 너무 가볍게 얘기했나요?"
"네?"
"제가 자꾸 느낌 때문이라고 해서 그러시는 거면,"
"....."
"잊으세요."
"....."
"저는 그냥 선생님이 마음에 들어서, 첫눈에 반해서."
"....."
"좋아해서 들이대는 거예요."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훅 들어오는 건 반칙이라고.
"좋아하는데 이유가 어딨어요?"
레드카드다.
"맞아요. 저 잘생겼고, 돈 잘 벌고, 주위에 예쁜 여자들 많아요."
"......"
"저한테 들이대는 사람도 당연히 있고요."
"......."
"근데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건 선생님인데."
심호흡. 심호흡하자.
"왜 당신을 낮춰요?"
낮추다니.
"선생님 예뻐요. 성격 좋고, 예쁘고, 착하고, 귀엽고, 능력 좋고."
...내가?
"저도 그냥 평범한 배우일 뿐이에요."
"....."
"선생님도 좋고 괜찮은 사람이에요."
"...."
"저한테 선생님이 과분해요. 제가 선생님을 욕심내고 있는 거예요, 지금."
나를?
"능력 있고 예쁘고 성격 좋은 의사면 뭐, 말 다 한 거죠."
"....."
"좋아하는 사람한테 관심 가지고 시간 투자하는 건 당연한 거고, 전 선생님을 좋아하고."
"......"
"그럼 이제 이상할게 없죠? 제가 하는 행동, 말 전부."
.....졌다. 완벽하 패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