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의 그녀
인간과 귀신의 상관관계
죽은 그녀가 내 눈 앞에 나타났다
여주를 내려다보고 있는 석민의 두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여주는 석민의 눈물에 당황한 것인지 눈을 크게 뜨고는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석민은 그것에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여주의 이름을 불렀다. 여주야.... 여주야. 그저 제 앞에 있는 게 여주라는 것만 확인받고 싶었을 뿐이었다. 믿고 싶었다. 네가 내가 아는 김여주라는 걸.
그때 여주가 입고 있는 얇디얇은 하얀색 원피스가 눈에 들어왔다. 하, 실소가 터져 나왔다.
"석민아 나 어때? 예뻐?"
"응. 진짜 예쁘다."
"정말? 그럼 나 이걸로 할까?"
"예쁘긴 예쁜데 너무 얇은 거 아니야? 아직 좀 쌀쌀한데.."
"날 좀 풀리고 입으면 되지. 네가 예쁘다고 했으니까 나 이걸로 할래."
데이트할 때 우연히 발견한 새하얀 원피스. 그때 고른 옷이었다. 분명. 하얀 원피스를 입은 너는, 꼭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았다. 예쁘다는 나의 말에 환하게 웃으며 바로 내 손을 붙잡고 계산대로 달려가 계산을 한 네가 떠올랐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후로는 여주가 환하게 웃던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자동으로 재생되는 기억들에 눈을 질끈 감았다. 생각하고 싶지 않다. 그날의 너와 나는.
"누구세요...?"
한참을 너의 생각에 빠져 계속해서 눈물만 흘리고 있는데 낯익은 음성이 내 귀에 들렸다. 너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내려다보자 경계가 가득 실린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너였다. 하지만 그것보다 충격적인 건 너의 말이었다. '누구세요?' 너의 말은 나를 모른다는 뜻이었다. 경계로 가득 찬 눈빛과 낯설기만 한 존댓말은 분명 연기가 아니었다.
"내가... 보여요?"
게다가 곧바로 들려오는 말을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자기가 보인다니? 그럼 눈앞에 있는 너는 뭘까. 그럴 리가 없는데.. 중얼거리는 너의 말이 들렸다.
"정말 나 보여요? 그럼 다른 것들도 보는 건가.."
"......."
"저기요. 나 귀신이에요. 왜 내 앞에서 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시간이면 귀신 진짜 많이 돌아다니거든요?"
"......."
"나는 괜찮지만 악귀하고 괜히 눈 잘못 마추치면 그쪽만 골치 아파요. 그니까 얼른 집 가요."
귀신이란다, 네가. 그제서야 생각났다. 아, 너는 죽었구나. 너는 귀신인 건가? 참, 귀신이라 그랬지. 혼란스럽다. 내 앞에서 걱정이 섞인 말을 하는 너는 분명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귀신이 되면 살아있을 때의 기억을 다 잃는 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는 너에게 너의 이름 말고 처음으로 다른 말을 건넸다.
울음이 가득 섞여 듣기 싫은 목소리였지만,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며. 그렇게 조심스럽게 말을 뱉었다.
네가 귀신이든 뭐든 무섭지 않았다. 너는, 내가 아는 김여주가 맞을 테니까. 그냥... 그렇게 믿기로 했다.
꿈속의 그녀
"여기가 그쪽 집이에요? 우와, 진짜 깨끗하다. 남자 혼자 사는 집은 엄청 더러울 줄 알았는데."
우리 집 갈래요? 라는 생각보다 뜬금없었던 석민의 말에, 여주는 저가 그런 말을 할지는 꿈에도 몰랐는지, 당황한 눈으로 석민을 쳐다보다 곧바로 표정을 바꾸고는 좋아요! 하며 해맑게 웃으며 일어섰다.
결국 도착한 석민의 집에 뭐가 그리도 신기한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집 내부를 둘러보는 여주였다. 괜히 씁쓸해졌다. 정말... 하나도 기억 안 나는구나.
"이석민. 너 진짜 또!"
"아, 알았어~ 정리할게, 정리하면 되잖아. 화내지 마~"
"네가 자꾸 화나게 만드니까 그렇지! 지금 일어나서 해. 안 해?"
"알겠어! 지금 할게! 때리지 마. 아!"
옛날의 너에게 고마워해야 되는 걸까. 아무것도 모르는 눈을 하고는 집 안을 둘러보며 엄지를 세워 웃는 너를 보니 괜스레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런데... 너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런 너의 앞에서 또 한 번 눈물을 쏟으면 당황할 테니까. 애써 입꼬리를 올렸다.
"춥죠? 보일러 틀었으니까 금방 따뜻해질 거예요."
"난 귀신이라 추위 못 느껴요. 그쪽 많이 춥구나?"
"... 기다려봐요."
보일러를 틀고 말하는 나에게 자신은 추위를 못 느낀다며 어색하게 웃는 너를 보니 가슴 한구석이 저릿했다.
욕실에 가서 드라이기와 수건 두 개를 꺼낸 다음, 방으로 가 서랍을 열고 옛날에 네가 입으려고 갖다 놓은 옷들 중 편해 보이는 반팔 티와 반바지를 꺼내고 속옷을 꺼냈다. 네가 죽은 지 2년이 다 되어 가지만 나는 이 옷을 버릴 수 없었다. 이 옷을 버리면 정말 네가 죽은 걸 인정하는 거 같아서. 그 기분이 싫었다. 그런데... 이렇게 쓰이네. 쓴웃음이 지어졌다. 수건 하나로 대충 젖은 내 머리를 털며 소파에 앉아 가만히 나를 기다리는 너에게 다가갔다.
"춥진 않더라도 갈아입고 나와요."
옷과 속옷을 건네주며 턱으로 방을 가리키자 의아한 듯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옷을 내려다보더니 몸을 일으키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안 돼서 어색한 듯 웃으며 머리를 긁적이며 나오는 너다.
"저 죽고 나서 옷 처음 갈아입어요. 완전 어색하다."
"......."
"어때요, 예뻐요?"
기분이 이상했다. 분명 너 옷을 네가 입은 거뿐인데. 아무 말 없이 쳐다보는 내가 이상한지 왜 그래요? 라며 내 얼굴 앞으로 손을 휘젓는 행동에 정신을 차렸다.
"여기 앉아봐요."
소파에 앉은 내가 바닥을 가리키며 말하자 바로 내 앞에 앉은 네가 왜요? 라며 물었다. 웃음이 났다. 보통은 묻고 앉지 않나. 너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아까 네가 옷을 갈아입을 때 꽂아놨던 드라이기를 켰다. 위이잉, 드라이기 소리가 들리자 움찔하는 너의 모습에 살풋 미소를 짓고 조심스럽게 너의 젖은 머리에 손을 올렸다.
"와... 나 누가 머리 말려주는 거 처음이에요. 기분 되게 좋다, 이거."
"... 그래요? 앞으로 자주 말려 줄게요."
"석민아! 나 머리 말려줘."
"또? 이제는 네가 좀 말려라."
"아, 얼른. 네가 머리 말려주면 기분 좋단 말이야. 빨리!"
너는 처음이었지만 나는 처음이 아니었다. 머리를 감은 후 젖은 머리로 드라이기와 수건을 내 앞에 내밀며 말하는 너를 보고 귀찮다는 듯 말했지만 그럴 때마다 내 팔을 잡고 이리저리 흔드는 너의 모습에 나는 결국 매번 웃음을 짓고 말았다.
"근데 여자 옷이랑 여자 속옷은 왜 있는 거예요?"
멈칫, 너의 물음에 손이 잠시 멈췄다가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 여자친구 거예요."
"여자친구 있었어요? 하긴, 그 얼굴에 없으면 좀 이상하긴 하겠다. 근데, 정말 신기한 게 여자친구분이랑 저랑 체구가 비슷한가 봐요. 완전 내 옷처럼 딱 맞아요!"
너의 말에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저 너의 머리만 말려주었다. 대답을 안 하는데도 너는 쉬지 않고 말했다. 이 집은 소파가 푹신해서 좋은 것 같다, 벽지 무늬가 이쁘다는 등의 별 의미 없는 말뿐이었지만.
"그럼 여자친구랑은 얼마나 됐어요?"
다시 너의 입에서 언급된 너의 얘기에 나는 다시 손을 멈칫하다 곧바로 아무렇지 않게 손을 움직였다.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글쎄, 너랑 나는 얼마나 됐을까. 너랑 사귄 날부터 지금까지를 세야 하는 걸까, 아니면.... 네가 죽기 전,까지 세야 하는 걸까. 사실 난 아직 잘 모르겠다. 아니, 사실 이젠 너랑 만나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르겠다. 우린 이미 헤어진 게 아닐까.
"뭐예요. 여자친구 있다면서 얼마나 됐는지도 몰라요? 여자친구 섭섭하겠다."
"......."
"여자친구랑 싸웠어요? 그래서 그래요?"
"......."
"알겠어요... 이제 여자친구 말 안 꺼낼ㄱ..."
".. 안 만난 지 좀 됐어요. 아니, 못 만난 지."
내 말에 얼굴에 물음표를 달고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자연스럽게 머리를 만져 다시 앞을 보게 한 후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사정이 좀 있어서... 사실 아직 사귀는 게 맞는 건지도 잘 모르겠어요."
"... 아, 미안해요. 괜한 거 물어서..."
".. 근데, 만난 것 같아요. 여자친구."
"석민아 나 어때? 예뻐?"
"어때요, 예뻐요?"
"아, 얼른. 네가 머리 말려주면 기분 좋단 말이야. 빨리!"
"와... 나 누가 머리 말려주는 거 처음이에요. 기분 되게 좋다, 이거."
네가 나를 기억하지 못해도 좋다. 변함없이 너는 내 여자친구고 너는 김여주니까. 나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
***
2편!! 저는 좀 마음에 들게 적혀졌는데 독자님들도 그렇게 느끼실지가 걱정이네요ㅠㅠ 부디 마음에 드셨으면...!
울 도겸이.... 항상 예쁜 웃음만 가득해서 웃지 않는 움짤 찾기가 하늘에 별 따기로구나...........
아 그리고 아까 실수로 완성전 글 올라갔었는데 보신 분 없으시겠죠....? 식겁해서 바로 삭제하긴 했는데..... 안 계시죠....? 제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