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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악!!!!! 진짜 내가 무슨 동네 북이야?! 북이냐고!!!! 틈만나면 매타작질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열뻗치는 찬열이였다. 축구부 내에서 2학년생 두명이 작은 다툼으로 서로 주먹질이 오갔던 모양이다.
막 급식실로 밥을 먹으러가는 찬열을 불러다간 도대체 주장이라는 녀석이 축구부원들 군기가 이게 뭐냐고
면박주는 코치에게 엄청 깨지고 돌아오는 중이였다.
저번주 연습게임이후로 코치의 히스테리가 극에 달해있었다.
그 2학년 새끼들 한번 뺑이치게 만들어줘야겠다 다짐하면서 찬열은 걸을때마다 아파오는 엉덩이덕에 어기적 어기적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 때 찬열의 눈에 백현이 들어왔다.
그때 그 벤치에 멍하니 앉아있는 녀석. 무슨일이라도 있는건지 어깨가 축 쳐저있었다. 작은 어깨가 동그랬다.
"이쁜아, 밥 안 먹냐? 여기서 뭐해?"
찬열이 어정쩡한 걸음으로 백현에게 다가가자 백현은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왜그렇게 걷고있냐는 듯한 표정으로 찬열을 올려다보았다.
백현의 그 반응에 찬열은 괜히 멋쩍었던지 일부러 하하 웃어보였다.
"아 코치한테 좀 깨졌어. 지 팔뚝만한 몽둥이가지고 열대나 때리는거아니냐, 진짜 내가 무슨 샌드백이야 뭐야."
그렇게 말하면서 찬열이 맞은 부위를 손으로 문질렀더니 백현의 시선도 그쪽으로 가 꽂혔다.
찬열은 백현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엄청아프겠다-. 백현은 그렇게 말하고있었다.
"야, 근데 너 밥 안먹어?"
백현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사실 배는 고파왔지만
혼자 급식실에 들어가서 혼자 밥을 먹는건 정말이지 죽어도 하기싫은 백현이였다.
사실 전학 첫 날, 혼자 급식실 앞까지 가본 적은 있었지만 차마 안까지는 들어가지 못하고 다시 되돌아나왔었다.
친구들과 무리를 지어 앉아 시시한 농담따먹기나 하고 있는 학생들 틈에 끼어 당당하게 밥을 먹을 자신같은건 백현에게는 없었다.
전 학교에서는 언제나 경수가 옆에서 함께 해 주었기때문에 괜찮았었는데.
백현의 표정이 시무룩하게 변한 걸 보고 찬열은 백현의 팔목을 잡아 끌어 세웠다.
"난 밥 먹어야 되는데. 나 있다 연습하려면 배고프거든. 나 좀 부축 좀 해 주라"
"..............."
"아 얼른! 넘 아퍼서 못 걷겠어서 그래."
그러면서 찬열은 익살스럽게 아픈 표정을 지어보였고 백현은 그런 찬열을 보자마자 고개를 끄덕였다.
찬열은 부축을 하려 제 허리께에 올려진 백현의 손과 가까이에서 내뱉는 백현의 숨결때문에 호흡이 가빠왔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지만 짐짓 모른척 했다. 급식실로 향하는 그 길이 오늘따라 너무 짧다고 느껴졌다.
급식실로 들어서자마자 맛있는 냄새가 백현의 코를 자극했다.
오늘 아침도 거르고 나온 제 배에서 꼬르륵 하고 소리가 날 것 같아
식판대 근처까지 찬열을 부축해준 백현은 재빨리 찬열에게서 떨어졌다.
그 때 찬열이 백현에게 불쑥 식판을 내밀었다.
"같이 먹자. 너 아직 밥 안먹었지?"
"................."
"나 밥 혼자먹는거 진짜 싫어하거든. 같이 먹어주라"
그렇게 말하고 찬열은 자기 식판도 챙기며 웃었다. 백현은 정말 궁금했다.
찬열이라는 이 아이가 왜 이렇게 자신에게 호의를 보이는 것인지.
어차피 저같은 말도 못하는 애랑 밥을 같이 먹어봤자 혼자 먹는거랑 다를 바 없을텐데
찬열은 굳이 백현을 제 앞에 앉히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야, 넌 안먹어? 뭐야, 혹시 편식하는거야?"
찬열이 그렇게 묻자 백현이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그리고 젓가락을 들어 올렸다.
그 모습을 본 후에야 찬열도 작게 웃고는 다시 밥을 먹기 시작했다.
백현이 밥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었다. 맛있었다. 전학 온 후 처음으로 누군가와 같이 먹는 점심이였다.
백현이 잊고 살았던 아주 사소한 일들이 찬열에 의해 다시 되살아나고 있었다.
"너 젓가락질 진짜 못한다."
찬열의 그 말에 백현은 젓가락을 쥐고 있는 자신의 손을 한번 쳐다보다 찬열의 손으로 시선을 옮겼다.
생긴것과는 조금 다르게 젓가락은 단정하게 쥐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어렸을때 할아버지께 젓가락질 그렇게 하는거 아니라고 밥 먹을때마다 혼났던 적이 있었다.
백현은 찬열의 젓가락 잡은 모습을 보고 저도 그렇게 잡아 반찬을 집어보려 했지만 생각보다 잘 되지 않음에 울상을 지었다.
찬열은 제 앞에서 젓가락들고 고군분투하는 백현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하던데로 먹어, 십구년을 그렇게 살았는데 그게 어디 쉽게 고쳐지겠냐"
그렇게 말하고 찬열이 크게 웃었다. 찬열의 그 웃음에 기분이 좋아진 백현도 따라 웃었다.
찬열이는 사람을 참 편안하게 해 주는 구석이 있었다.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백현의 맑은 웃음을 보자 찬열은 또 숨이 멎는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평소 잘 웃지도 않는 백현이지만 한번씩 저렇게 환하게 웃으면
제 속 어딘가가 쎄~한게 찬열은 자꾸만 그런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같이 밥을 다 먹고 난 후 둘은 나란히 급식실에서 나오며 찬열이 제 부른 배를 만지며 말했다.
"아 진짜 배부르다. 넌 근데 그렇게 조금 먹어서 어떻게 견디냐."
반 이나 남은 백현의 급식판이 문득 떠오른 찬열이 그렇게 백현에게 핀잔을 주었다.
백현은 그저 묵묵히 땅만보고 걸을 뿐이였다.
매일 저렇게 걷다가 어느날 백현의 가느다란 목이 뚜욱 하고 부러진대도 이상할 건 없다고 생각됐다.
"그니까 그렇게 작지. 너 어렸을때부터 우유 편식했지? 콩나물도 안먹었지?"
찬열의 그런 놀림에 약간 약이 올랐는지 백현이 찬열을 올려다 쏘아보았다.
조금 삐쭉 나온것 같은 입술이 귀여웠다. 찬열은 큭큭 웃으며 그런 백현을 어딘가로 잡아끌었다.
"디저트.디저트 먹자."
찬열은 참 잘도 먹었다. 아까 밥 한그릇을 싹싹 다 비워놓고도 디저트까지 찾다니.
백현은 경악을 금치 못한 채 찬열의 손에 이끌려 매점으로 딸려갔다.
전학온지 한달이 넘었으나 매점역시 처음인 백현이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을때
언제 사 온 건지 찬열은 아이스크림 하나를 백현에게 건넸다.
이미 찬열의 아이스크림은 껍질까지 까진 채 그에게 한 입 베어물린 채 였다.
"키 크라고 우유아이스크림사왔어."
백현은 제 손에 들린 아이스크림을 내려다 보았다. 새하얀 우유아이스크림바였다.
키크라고 우유아이스크림을 사오다니 백현은 그런 찬열이 조금 귀엽다고 생각했다.
키는 멀대같이 커선 매 끼니때마다 이렇게 디저트를 찾는건지 자꾸만 보여지는 찬열의 의외의 모습에 백현은 슬몃 웃음이 났다.
아이스크림도 몇달 만에 처음 먹어보는 건 지 모르겠다.
백현은 야무지게 껍질을 벗기고는 저도 한 입 베어물었다.
"난 키 이정도면 충분하니까 커피아이스크림이지.넌 아직 어려서 안되고."
"........"
"근데 나 좀 괜찮지 않냐? 응? 니가 생각하기에도 나 좀 멋있지? 난리나지?"
그렇게 물으며 백현에게 얼굴을 들이대는 찬열을 보니 백현은 그만 웃음이 터져나왔다.
찬열이와 함께 있으면 자기 자신이 말을 못한다는 것 조차 까맣게 잊어버리는것만 같았다.
분명 저는 대답한번 한 적 없는데 박찬열은 혼자서 물어보고 혼자서 대답하고 혼자서 장난도 치고 잘 놀았다.
마치 둘이 함께 대화를 나누는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