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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을 벌컥 열었더니 눈 앞에 박찬열이 씨익 하고 웃으며 서 있었다.
아까는 이불 속에 들어앉아 있어서 몰랐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녀석의 다리의 상처가 생각보다 심각해 보였다.
"옷 입고나오지. 바보야. 엄청 추운데."
"…다리는 왜 그래."
"아까 너 그렇게 나가버리는데, 맘 같아선 단숨에 잡아서 안으려고 했는데…."
찬열이 커다랗게 팔을 벌려 나를 강하게 안아왔다.
얼마나 오랫동안 밖에 이러고 서 있었는지 꽁꽁 언 녀석의 몸이 서늘해서 울컥 눈물이 났다.
"보다시피 다리가 이 모양이라, 여기까지 걸어오는데 두시간도 넘게 걸렸어."
"그럼 아까부터 이러고 온거야?"
"그럼 어떡해. 니가 나랑 끝내겠다는데, 안된다고 말 해 줘야지."
"…택시타고 오면 되지.바보."
"백현아.우리 헤어지지 말자. 내가 너 얼마나 좋아하는데."
"…거짓말."
거짓말 아니야. 내가 다리 왜 다쳤게? 이게 다 우리 커플핸드폰때문에 그런거 아냐.
내가 요 한달간 니가 갖고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그 스마트폰 사주려고 막노동판에서 일하다가 삐끗해서 다친거라구.
오늘 너 데리러 가기전에 핸드폰 사서 포장까지 딱 해가지고 가려고 했는데
하필 오늘 다리가 이렇게 되는 바람에 병원에서 치료받느라 못갔어.
너 집에 불러서 핸드폰 주려고 했는데 오자마자 그렇게 성질내고 나가버리는게 어딨냐?
내가 상자열어보라고 그렇게 말했건만 싹 다 무시하고. 하여간 변백현 이거 여우라니까.
뭐? 고삼때? 그게 그렇게 섭섭했어? 와. 진짜 꽁하다, 너. 그걸 여태 기억하고 있었냐?
…내가 너한테 말은 안해서 그렇지, 사실 나 그때도 알바했었다구. 자전거 사려고.
맨날 야자끝나고 집까지 걸어가는데 니 안색이 말이 아닌거야. 너 왜 한번 크게 쓰러진 적 있었잖아.
과로랑 입시 스트레스로. 내가 너가 걱정되서 자전거 하나 장만하려고 그랬지.
맘같아서야 맨날 업어 데려다 주고 싶지만 솔직히 학교에서 니네집까지 사십분이 넘게 걸리는데 그건 좀 무리잖어.
그래서 알바뛰고 있었어, 너 몰래. 너 기억안나? 언젠가 내가 한번 자전거 들고 집까지 데려다 준다고 타라고 했었잖아.
내가 그 날을 위해서 야간알바 뛰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넌 모르지? 진짜 힘들었다구 그 때.
영화관? 야. 말도 마. 솔직히 나 영화관은 진짜로 너랑 못 가겠어.
사실 영화관이 싫다기 보다…어쩌냐. 어두컴컴하니 분위기 딱 좋고 아무도 쳐다보는 사람도 없고
너는 내 옆에 딱 달라붙어 앉아있고. 이렇게 좋은 기회도 기회가 없다 싶지.
영화에 집중을 못하겠다니까. 너한테 키스하고 싶고 만지고 싶고 그러는데 어떡하냐.
근데 넌 내가 그러면 또 기겁을 하면서 도망갈거잖아. 그런데 나보고만 그걸 참으라고?
그럴바엔 아에 안가는게 상책이지. 눈 오는것도 마찬가지야.
몸도 약해서 맨날 감기 달고사는 주제에, 너 눈만 맞으면 독감에 대번에 걸려버리잖아.
너 맨날 골골거리는거 보는내가 힘들다니까. 그러니까 실내에서 보자고.
내가 괜찮은 전망가진 카페하나 알아뒀으니까. 다음에 눈 오면 거기가서 보자. 그러면 됬지?
그리고 뭐, 누가 너한테 관심이 없어? 내가 널 훨씬 더 좋아할걸.
너 기억나? 전에 너한테 집적댄다고 했던 그 선배. 요즘 너 안따라다니지
그게 다 내가 가서 뭐라고 한 탓이라구. 뭐라고 했냐고? 한 방 먹여주면서 이렇게 말했지.
변백현 내 애인이니까 건들면 죽여버린다고. 그랬더니 빌빌기면서 가더라고.
내가 너한테 말은 안해서 그렇지 다 니 뒷처리 하고 다니느라 힘들다고.
사실말이지, 너랑 같은 대학 오고싶어서 내가 고삼때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했는 줄 아냐?
내 고등학교 인생을 통 털어서 그렇게 눈에 불을 켜고 열심히 했던적은 진짜 없었을거다.
맨날 코피터지고 난리도 아니였는데 뭐. 덕분에 이렇게 너랑 같은학교 들어오긴 했지만.
그러니까 백현아. 다신 헤어지자는 소리 하지마.
다음부터 그러면 진짜 혼나. 알았지? 나 너밖에 없어 진짜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