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종을 누르려던 손이 잠시 멈칫거려졌다. 생각보다 행동이 먼저 나간것이다. 303호.
겨우 두번째 방문하는 집인데 왜이렇게 찝찝하냐…. 별일이야 있겠어 그래봤자 나보다 키 작은 고딩인데.
고개를 세차게 흔들고 다시 초인종을 꾹 눌렀다.
띵동-
“누구세요?”
“안녕하세요. 변백현 고개님. 컴퓨…”
“어? 아저씨다! 잠깐만요!!”
혀가 짧은건지 긴건지 평범하지는 않은 발음으로 내 말이 끝나기도전에 인터폰을 내려놓는다.
저렇게 반갑게 맞을 정도로 우리 사이가 친했던가. 우린 저번에 한번밖에 안본 사이인데….
어차피 오늘지나면 안 볼 사이인데 어색해질 필요있나.
가볍게 생각하며 뒷머리를 긁적이는데 현관문까지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쾅 열린다.
“어이쿠.”
“기다렸어요!”
“아 그러셨어요. 일주일 걸린다고 말씀 드렸었는데.”
“일주일 너무 길어요.”
“…이제 일주일 지났으니까 컴퓨터 많이 하세요.”
“에이 컴퓨터는 아빠 노트북도 있는데 뭘.”
나를 쳐다보며 익살스럽게 웃는 변백현 고객님.에게 어색하게 웃어주고 바닥에 내려놓았던 본체를 번쩍 들었다.
왠만하면 컴퓨터 하나 사지….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이렇게 후진 컴퓨터를 쓰는거야.
꽤나 오래된 기계라 그런지 본체가 무겁다.
“우와! 아저씨 팔에 힘 줄 장난없다.”
“하하…. 이쪽으로 들어가면 되나요?”
“만져봐도 되요?”
“안되요. 여기로 들어가면 되죠?”
내 팔을 진짜 만지려는지 손을 들어올리는 녀석을 무시하고 지나쳐서 신발을 벗고 현관 옆에 바로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저번에 왔을때와 다름없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책상밑에는 학생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문제집이 높게 쌓여있다.
…정말 평범한 남학생들과 다를게 없어 보였는데.
“에이. 되게 비싸게 구시네.”
이 어린 녀석에게, 게다가 어른 무서운 줄 모르고 장난쳐대는 이 녀석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써야하는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지만 손님이 왕인 서비스 직업을 가진 나로썬 어쩔 수가 없다.
얼른 설치해주고 여기를 떠나는 수 밖에.
“본체 여기에 들어갈거 맞죠?”
“네.”
내가 열어도 되는 책상 밑의 본체서랍문을 녀석이 와서 열어준다.
충분히 고마운 행동이지만 별로 달갑게 여겨지지는 않는다.
나는 녀석을 힐끗 한번 쳐다보고는 본체를 내려놓고 나도 바닥에 주저 앉았다.
“박찬열.”
“네?”
“맞죠? 저번에 명함에 그렇게 써있었는데.”
“……”
명함을 준게 잘못이었다. 고객을 한명이라도 더 모집해야하는 나는 어쩔 수 없이 녀석에게 명함을 건냈었다.
내 명함을 받고 입이 찢어져라 웃던 저번주의 녀석이 생각난다.
나는 녀석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본체를 집어 넣기 시작했다.
“아저씨.”
“…예.”
“몇살이에요? 저는 18살이요.”
“…사적인 질문은 받지 않습니다.”
“아저씨가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까봐요. 이십대 후반인거 같은데.”
“너한테 아저씨 소리 들을만한 나이는 아닙니다.”
“그럼 뭐라고 부르죠? 찬열씨? 이건 좀 내가 낯간지러운데. 히히.”
뒤에 놓여있는 침대에 앉아서는 발을 동동 구르며 좋아한다.
본체를 만지느라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지만 정신 못차리고 있는것은 확실하다.
빨리 본체를 연결시키고 프로그램을 깔아줘야하는데 아씨, 자리가 불편해서 그런지 자꾸 선이 어긋난다.
“고객님. 혹시 테이프 있으세요?”
“예? 테이프? 왜요? 나 묶게?”
“……선 좀 정리하게요.”
아~ 변백현은 그렇게 말하더니 책상 서랍을 뒤적거려 테이프를 꺼내서 나에게 건낸다. 가위는 없어요? 네, 없어요.
나는 못마땅한 얼굴로 녀석을 한번 쳐다보고는 테이프를 쭉 돌려서 입으로 끊었다. 어떻게 집에 가위도 없냐.
“우와! 아저씨 완전 박력있네!”
“…….”
별게 다…. 녀석은 다시 침대에 앉으면서 박수를 짝짝 친다.
휴…내가 10살 어린놈한테 이런 소리를 들어야한다니, 그것도 남자애한테.
안그래도 더워 죽겠는데 주저 앉아서 잘 보이지도 않는 본체를 연결하려니까 얼굴에 피가 쏠려서 죽겠다.
이 집은 에어컨도 안키나.
“아 그리고 내 이름 변백현인데. 아까 잘만 부르시던만.”
“…….”
“박찬열과 변백현…변과 박…뭔가 잘 어울리지 않아요?”
“…허우, 다 연결했습니다.”
어울리기는 개뿔. 어린놈의 자식이 뒤에서 자꾸 헛소리만 해댄다.
어른 놀리는것도 정도가 있지. 그래도 저번에 왔을때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명함을 건냈을때 전화해도 되요? 라고 말 하기는 했지만 그 말에 별로 신경쓰지 않았었다.
불편한점이나 궁금한점이 있으면 언제나 전화하도록 쓰여있으니까.
근데 회사로 컴퓨터를 가져와서 포맷 시키려고 백업 시키는 도중에 봐서는 안될것을 봐버렸다.
원래 고객의 정보는 절대로 열어봐서는 안되지만 ‘B.L’ 이라고 적나라하게 써있는 폴더는 내 궁금함을 터뜨렸다.
내가 아는 B.L은 Boy Love의 준말인데. 분명 이 컴퓨터를 맡긴것은 남학생이었는데….
이 집에 누나나 여동생이 있는건가. 있다 하더라도 폴더명을 이렇게….
그냥 거기서 멈췄어야했다. 나는 그것을 내 USB파일에 옮겨 담아 주머니에 소중하게 모셔두었다가 집에 와서 열어봤다.
그 폴더에는 몇개의 메모장과 몇십개의 동영상 파일이 있었다.
열어볼까 말까 수십번을 고민하다가 결국에는 한 동영상에 마우스 커서를 대고 더블클릭을 하고 말았다.
동영상 창이 열리자마자 어떠한 예고도 없이 서양 남자 둘이서 열심히…정말 열심히라는 표현밖에 할 말이 없다.
열심히 떡을 치고 있었다. 나는 내 눈앞에서 펼쳐지는 광경과 귀에 들리는 음란한 신음소리에 깜짝 놀라 동영상을 끌 생각도 못했다.
두 눈으로 본 것은 처음이다. 남자끼리는 이렇게 하는구나….
나에게 컴퓨터를 맡긴 앳띤 변백현 고객님의 얼굴이 생각나고나서야 동영상을 끌 수 있었다.
애새끼… 이 쪽 취향이었나.
처음에 만났을때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그 동영상을 보고 나서는 그 어린 녀석이 나에게 했던 행동 하나하나가 생각나며 토할것같았다.
그래서 다시 이 집에 오는게 껄끄러웠지만 그 어린 녀석이 나한테 뭐 별거 한것도 없었는데
괜히 내가 오버하는거 같기도 하고 또 게이도 눈이 있다고 하니까…
애써 아무렇지 않은척 하려고 했는데 이놈의 자식이 자꾸 나를 건든다.
놀리는건지 뭔지.
“프로그램 깔아줘요.”
“예.”
“아저씨.”
“예.”
“봤어요?”
“…….뭘요?”
컴퓨터를 부팅 시키다가 깜짝 놀라 어깨를 들썩였다.
녀석은 내 뒤에 앉아서 나를 쳐다보고 있는듯하다. 뒷통수가 뚫릴것 같거든 지금. 위험하다.
이 작은 녀석이 나한테 뭐라도 할까 싶긴 하지만 그래도 내 시야안에 들어오지 않는건 찝찝하다.
나는 온 몸의 신경을 모두 다 세웠다. 비상시에 조금이라도 더 빨리 민첩하게 움직이기 위해서.
“뭐긴 뭐야. 동영상이요.”
“…안봤…습니다.”
“에이, 본 표정인데?”
“안봤습니다.”
“맞아요. 나 게이에요.”
“……안봤…다니까요.”
“그리고 아저씨 맘에 드는데.”
“…저는 여자친구있습니다.”
“그럼 나는 남자친구로 하면 되지.”
싫어, 새꺄. 옆구리에 오한이 든다.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것 같다.
본색을 들어내는 녀석이 점점 더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내 주위에는 게이가 한명도 없고 친구의 친구라던가도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기 때문에
이럴때는 어떤 반응을 하면 좋은건지 모르겠다.
여학교 앞에 있는 바바리맨이라면 바바리맨의 자존심을 죽이면 된다,
라는 해결 방법이 있는데 이건 익숙하지 않아서 도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
모니터가 켜지도 나는 급하게 본체에 씨디를 집어 넣었다.
“동영상 봤으니까 알겠지만 남남도 위아래가 있어요.”
“…….”
“아저씨 그럼 여자친구랑 할 때 당연히 위죠?”
“…….”
내가 왜 이런 녀석한테 저런 저질스러운 말까지 들어야하는거지.
“아저씨한테 밑에 하라고는 안할테니까.”
“……인터넷하고 또 뭐 깔면 됩니까.”
“나 깔아요.”
“…….”
“밑에 깔리는게 ‘수’ 거든요. 그리고 위에는 공격한다고 ‘공’인데 아저씨가 ‘공’하세요.”
“……남학생이라 포토…샵은 필요…없을것 같은데…”
“아저씨 컴퓨터 수리’공’이잖아요. 그러니까 공해요.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