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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한국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날 밤. 다른 일정이 남아있는 우리나라 선수들과 저녁식사를하며 짧은 작별인사를 나누고 내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기는 중. 그 와중에도 굉장히 많은 생각이 드는게 지난 4년에 비하면 너무나 짧은 일정이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참 길게도 느껴진다. 특히 심판의 신호에따라 출발대 위로 올라가고, 또 구령에따라 출발자세를 취할때... 그때가 가장 길게느껴지는 시간. 내가 느낀 시간중 3분의 2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는 슝-하고 지나가버리고... 참 신기한일이지. 마지막으로 침대 위에 놓아두었던 두 개의 은메달을 집어들고 가방앞에 섰다. 비록 금메달은 아니여도 내겐 참 값진 메달들. 수영 경기장의 물냄새가 깊게 배어있는 듯 한 그 메달들을 얼굴에 대고 몇번 부벼본다. 차가운 금속의 느낌이 썩 기분 좋게 느껴진다.
"하아..."
나이도 어린데 무슨 한숨만 이렇게 쉬는건지... 피식 헛웃음을 흘리며 치렁치렁 두 손에 달고있던 메달들을 잘 갈무리하여 가방 속으로 집어넣었다. 자, 이젠 짐정리 끝! 이제... 이제 뭐하지?
"진짜 뭐하지, 이제?"
내일은 일찍 일어나야할테니 빨리 자볼까 생각해보았지만 아무래도 그건 좀 아쉽다. 런던에서의 마지막 밤인데 그렇게 간단하게 잠으로서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싶진 않았다. 자, 그럼 내 스스로 나의 비공식 일정을 세워보도록 하자. 일단... 음...
"아."
쑨양. 왜 갑자기 그가 생각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엊그제 만나서 갑작스레 헤어진 쑨양을 생각하자 처음부터 난항에 부딪힌 비공식 일정 세우기 계획에 원활한 길이 트이는 게 보이는 듯 했다.
엊그제... 그가 기어코 건넨 커피를 다 마시고 비어버린 캔을 버리려던 찰나에 코치님의 부름을 받고 막 내게 인사를한 뒤 센터 안으로 향하던 쑨양이 내 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맞춰 고개를 약간 갸웃하며 웃어주자 그는 또 다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돌려버린다. 마지막으로 그의 인상적인 모습을 보고 나 역시도 숙소로 향하려는데 뒤에서 그의 뚜벅거리는 투박한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져오는 것을 느꼈다.
"어?"
[쑨양? 왜 다시...]
[그, 그거...]
새빨개진 얼굴을 한 손으로 애써 감추려고 노력하며 다른 한 손으로는 내 손에 들린 캔을 가리켜보이는 쑨양. 빈 캔을 들어보이며 없다는 뜻으로 살살 흔들어보이자 그는 그 뜻이 아니라는 듯 조금 답답한 표정을 지으며 얼굴을 가리던 손을 마저 내 쪽으로 내밀곤 말한다.
[주세요.]
"엥?"
[뭐, 뭐라구요?]
[그거... 내가 버린다고 했으니까...]
[진심이였어요? 아니, 괜찮은데... 쓰레기는 제가 버려도 되는...]
[쓰레기라뇨!?]
갑작스러운 그의 외침. 막 식어가던 얼굴을 한 층 더 빨갛게 물들이고선 내 쪽으로 성큼 다가와 허공에서 캔을 흔들던 내 손을 잡아채는 그의 큰 손. 정말이지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하여 급히 뒤로 몸을 빼내었지만 빼내어진건 몸 뿐. 미처 빼내지 못 한 그에게 잡힌 내 손은 그의 큰 손에 힘없이 메져있었다. 부릅뜬 눈이 내 눈을 정확히 바라보고있어서 나도모르게 시선을 피하며 물었다.
[뭐, 뭐하는거에요?!]
[으아아... 그러니까... 이건 쓰레기가 아니라...]
[네?]
[아, 아무튼...!]
쑨양의 이렇게저렇게 얼버무리는 소리와함께 손이 자유롭게 풀린다. 다시 내 몸 쪽으로 끌어당겨진 손 안에 있던 캔은 어느새 쑨양의 손으로 들어가있었다. 왠지모를 허탈함과 함께 돌린 내 눈 앞에 있는 저 기묘한 만족감에 물든 표정은 뭐란말인가. 잠시 뒤에 쭉 밀려오는 의문에 급히 그를 잡고 물어보려고했지만 그는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꾸벅- 거의 직각으로 몸을 숙여 내게 인사를 한 뒤 센터 안으로 다다다 뛰어들어가버렸다. 덕분에 덩그러니 혼자 그곳에 남겨져버린 나는 찝찝함을 해소하지 못한 채로 숙소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그저 시원하게 인사만 하려던게 끝이 이렇게 찝찝하게 남아버릴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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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틀이 지난 지금. 나는 숙소 밖으로 조용히 빠져나와 간단한 먹거리를 사들고 중국팀 숙소로 향하고있다. 조용히 걷다가 각 나라의 선수들이 많이 나와있어 굳이 눈치보지않고 움직여도 될 것 같아 발걸음을 조금 더 과감히 옮겼다. 방의 위치는 일전에 그와 얘기 할 때 서로 주고받은 적이 있어 그럭저럭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그가 말한 숙소위치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도착한 그의 방문앞. 음, 그런데 왜 저 앞에 그 코치님이...
[아, 저...]
[? 오, Park. 무슨 일인가요?]
[쑨양선수를 좀 만나려구요...]
[안에 있을겁니다, 들어가봐요. 그러데 왜...]
[음... 하하 심심해서요.]
그다지 환영할만 한 것은 아닌 코치님의 뜨거운 시선을 받으며 그의 방 안으로 들어가보았다. 불도 켜지 않은 방안에서 룸메이트는 어딜간건지 그는 혼자 방 안에 덩그러니 누워있다. 그것도 바닥에.
"어, 자고있나?"
그의 곁으로 가 살짝 몸을 숙여보았다.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가슴. 아, 자고있다. 게다가...
"으... 술냄새야..."
코를 팍 찌르는 독한 술냄새에 조금 떨어져 손부채질로 코에 남은 알싸한 냄새들을 날려보냈다. 경기 끝났다고 이렇게 폭음을 하실줄이야... 의외로 화끈한 사람이네. 그런데 이렇게 잠까지 주무셔버리면 제가 너무 심심하지 않겠습니까 쑨양. 할 수 없이 자는 사람을 깨울 수는 없겠다싶어 그는 그대로 두고 책상에 봉지를 놓고 방을 나가려던 찰나에 쑨양의 웅얼거리는 목소리가 내 발목을 잡는다.
"...태호...ㅏㄴ..."
지금 내 이름 부른거지? 혹시 깬건가싶어 뒤를 돌아보니 아니다. 이제는 드르렁드르렁 코까지 골며 자고있다. 방금 것은 잠꼬대였나보다. 밀려오는 아쉬운 마음에 표정만 있는대로 찡그리고 있자니 그가 다시 한 번 잠꼬대를 한다.
"...我爱你。"
워... 아이... 뭐? 워낙에 웅얼거리는 소리라 자세히 듣지 못한 나는 다시 슬쩍 다가가 그의 얼굴에 가까이에 귀를 가져다대었다. 몇번 입맛을 다시는 소리만 할 뿐 참 잘도 자던 그는 이내 옆으로 돌아눕는다. 아, 아쉽네. 방금 뭐라고 한거지? 그건 그렇고 나 진짜 심심하긴 한가보다. 사람이 자고있으면 그냥 나가야지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람... 진짜 돌아가야지 하고 일어서려는데 난데없이 단단한 두 팔이 내 허리를 휘감더니 그대로 끌어간다. 덕분에 나는 뒤집힌 거북이마냥 다리를 버둥거리며 쑨양의 위로 쓰러져버렸다.
"무슨...!"
"태환... 태환..."
낮고 쉰 목소리가 어눌한 발음으로 내 이름을 연달아 부른다. 이 남자, 혹시 정말 깨어있는 것은 아닐까 싶어 놓아달라고 급히 그를 불러보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쩝쩝 입맛다시는 소리뿐. 그에게 허리가 잡혀 반쯤 몸을 세운채로 몸부림을 치다보니 뒷 목쪽이 뻐근해져와 그냥 그대로 쭉 누워버렸다. 괜히 왔어...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람... 힐끔 고개를 돌리니 곤히 잠들어있는 얼굴이 보였다. 순하게 생긴 사람이 잘 하는 것은 참 많다.
"..."
그리고 나는 그 사람의 우상이다. 이걸 자랑스러워해야 할까? 잠깐 고민해볼까 하던 나는 또다시 확 풍겨오는 술냄새에 숨을 참고 눈을 감았다. 안되겠다. 그냥 빨리 돌아가자...
[My Park... 좋아해요...]
"?!"
이 남자야!! 잠꼬대는 좀 정상적으로 해주면 안될까요?! 익숙하지만 그다지 접할 일이 없던 영단어를 듣자마자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게 느껴졌다. 주책이야!! 그냥 잠꼬대인데 왜 내 얼굴이 빨개지는건데? 급히 한 쪽 팔로 내 허리에 감긴 그의 두 팔을 풀어내고 다른 한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몸을 반쯤 일으켰다. 바닥에 떨어져 부딪힌 두 팔이 아팠는지 끙 앓는 소리와함께 짙은 눈썹이 작게 찡그려지는게 보였다. 곧 두 팔을 허공에 휘휘 저으며 뭐라뭐라 중얼거리는데 중국어라 못알아 듣겠다. 다만 너무 애처롭게 공중을 휘젓길래 살짝 손을 잡아서 바닥에 내려놓아 주었다. 손이 생각보다 차가워 그대로 조금 잡고있으려니 내 손에 쥐어진 큰 손이 뒤집히며 내 손을 맞잡아왔다. 그리고 이내 그 움직임은 잠잠해졌다.
"커다란 애라니까..."
한 손을 조심스럽게 빼서 쑨양의 어지럽게 이마 위로 내려온 머리카락들을 조심스레 쓸어올려주고 입가로 흐를듯 말듯 한 침을 닦아주었다.
"잘 있어요, 쑨양."
아쉽다. 어쩌면 못 볼 수도 있는 훌륭한 선수. 그리고 국적은 다르지만 나의 친구... 위로해줘서 고마웠어요 쑨양. 몸을 숙여 그 넓은 이마에 내 이마를 갖다대었다. 창문도 열지 않은 실내라 그의 이마에 맺힌 차가운 땀들이 그대로 느껴졌지만 그냥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고마워요, 고맙습니다 쑨양. 픽 웃으며 있는 힘껏 꾹 이마를 밀어준 뒤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나 방 문을 열고 나왔다. 방 문 앞에선 계속 통화를 하고 계셨던 듯 막 핸드폰을 집어넣으시는 코치님이 보였다. 철컥 문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내쪽으로 정확히 향하는 날카로운 시선에 이젠 이 코치님 앞에선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머쓱한 웃음을 지어보이곤 손에 들려있던 봉지를 코치님께 건네었다. 봉지 안을 들여다보며 이게 뭐냐고 물어오시는 코치님의 질문에 그냥 쑨양에게 전해달라고만 하고는 천천히 그의 숙소를 나섰다. 자, 내 비공식 일정은 여기까지. 이제 충분히 자고... 내 나라로 돌아가자.
"...아씨..."
이거 보통 아쉬운게 아니었나보네... 한 방울 볼을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으로 스윽 훔치고는 경쾌하게 걷는다. 손등에 묻은 미련과 아쉬움의 한 방울을 털어내곤 그렇게 걷는다. 여기저기 밝고 화려한 불빛이 밤 아래를 물들이는, 참으로 아름다운 런던의 밤이다.
그리고 그 다음날. 나는 런던을 떠났다.
밤 하늘에 고요히 떠있는 비행기 안. 태환이 떠난 그 다음다음날에 귀국길에 오른 쑨양은 큰 덩치로 침중한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막 마지막 남은 캔커피를 딸까말까, 다른 손에는 빈 캔을 들고 고민하다가 안되겠다는 듯 머리를 절레절레 젓고는 자신을 부르는 코치님의 소리에 고개를 돌린다. 코치는 느긋하게 가방을 여는가 싶더니 이내 쑨양의 품으로 검은 봉지를 던졌다. 자신의 품에 잘 안착한 봉지를 들어보이며 이게 뭐에요? 라고 물어보는 쑨양에게 코치는 심드렁하게 답했다.
"뭐긴 뭐야. Park이 너한테 주라고하더라."
"네?! 태환이랑 만났었어요?! 언제...?!"
"언제? 태환이 떠나기 전날에 너한테 찾아갔잖아. 그러고보니 왜 너한테 안주고 나한테..."
곧 머릿속이 혼란스럽게 변한 쑨양은 의자에 몸을 기댄채 이마에 손을 올렸다. 태환이 나를 찾아왔었다고? 하필 술마시고 뻗었을 그 밤에....!! 허탈한 듯 바람빠지는 웃음소리를 내며 실실 웃는 쑨양의 상태가 그다지 정상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던 듯 코치는 혀를 끌끌 차곤 화장실에 갔다온다며 그 자리를 벗어났다. 혼자 남은 쑨양은 그런 천금같은 기회를 놓친 자신을 마음껏 힐책해주고는 마음을 추스리며 봉지를 열어보았다.
"아...!"
몇개의 캔커피와 그 사이에 콕 껴있는 작은 종이. 방금 전 자신의 고민을 날려줄 많은 캔커피들을 제치곤 호기심을 자극하던 직사각형으로 반듯이 접힌 그 종이를 먼저 꺼내든 쑨양은 볼을 한껏 부풀려 크게 심호흡흘 한 번 하고는 단숨에 종이를 펼쳤다. 그리고 곧 그의 눈 안에 들어오는 작고 반듯반듯한 글씨들.
-My Sun. take care of yourself~!! 잘(Jal) 지(Ji) 내(Nae) 세(Se) 요(YO) ^^!!
'마이... 마이 쑨...'
물 묻은 손을 옷에 대충 닦으며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 코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부들부들 떨고있는 쑨양을 보자마자 급히 달려가 이리저리 그의 모습을 살폈다. 이 녀석이 어디가 아픈건가 싶어 급히 숙인 몸을 일으켜주곤 이상하게 새빨게진 그 얼굴을 본 순간 코치는 허 하는 의미모를 한숨을 내쉴 수 밖에 없었다. 얼굴도 부족하여 귀는 물론이고 목까지 새빨갛게 물들인채 한 팔로 눈가를 가리며 어깨를 들썩이고 있는 쑨양의 모습은 지금 그가 울고있음을 충분히 짐작케 해주었다. 그래도 영문을 모른채 눈을 가늘게 뜨며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던 코치는 곧 쑨양의 다른 한 손에 들린 종이를 볼 수 있었다. 반듯하게 접혀 그 큰 손안에서 삐죽 튀어나와있는 작은 종이. 쑨양은 그것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으윽..."
악 문 입술사이로 억눌렸던 울음이 터지고 꽉 감긴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나와 그의 팔을 흠뻑 적신다.
"자...ㄹ... 잘 지내세요... 태환... 잘 지내세요..."
캔커피와 더불어 오늘 그에겐 소중한 물건이 하나 더 생겼다. 그의 두 손을 가득 차지한 작은 물건들은 이제 그의 방 어딘가에 놓여지겠지. 그것도 그의 눈에 최대한 잘 띄는 곳에. 그리고 그것들을 보며 언제나 안타까워 끙끙 속앓이를 하리라. 쉴새없이 방망이질 치는 마음을 달래랴, 종이가 떨어지지 않게 손에 힘을 꽉 쥐고있으랴, 캔이 떨어지지 않도록 다리 사이에 고정시키랴... 쑨양이 나름대로 바쁜 시간을 보내고있는 그 순간에도 그를 태운 비행기는 짙은 밤하늘을 부드럽게 흘러간다.
안녕, 런던...이다.
우와 다썼다 ㅠㅠㅠㅠ 드디어 태환의 길고 길었던 번외편이 끝났습니다~~ 글 쓰는데 왜 이렇게 어지럽죠?? 흑흑 ㅠㅠㅠ 진짜 다썼다 우와 ㅠㅠㅠ 그런데 간접키스 만으로는 좀 부족하다 느끼셨던 분들의 기대는... 충종되지 않았...겠죠...??? 죄송합니다 ㅠㅠㅠ 그래도 좀 봐주셔요 헤헿..♡
텍파 나눔도 할게요~~ㅎㅎ 번외편은 上,下 묶어서 보내드리고 본편도 하나 더 하면 두편... 메모장 용량으로는 각각 번외편만 27kb넼ㅋㅋㅋ 으앜ㅋㅋㅋ 본편은 13kb입니다 총 40kb?!엉?!!!ㅋㅋㅋㅋ;;;;;; 아, 아니 내가 잘못본 것 같은데.... 근데 조회수는 많은데 어째 댓글이 별로 없더라구욤... 흠... 좀 고민했어요 ㅋㅋㅋ 올릴까 말까 ㅋㅋㅋ 결국 제가 더 급했기에 올렸습니다 ㅎㅎㅎㅎ 이것도 재밌게 봐주시구요 ~~^^ 저는 나중에 진짜 나중에 다시 올게요 ㅎㅎ 떡밥 줏으러 다녀야죠 헿...ㅁ7ㅁ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