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1010
남녀사이간에 연애를 하거나 썸을 탈 때는 여자의 주변 사람들은 항상 여자한테 이런 말을 한다. 무조건 밀당을 해라. 유명 랩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육지담이 비트와 밀당하듯이 줄타기를 하라고한다. 너무 한 번에 잘해주면 남자가 질려하니까. 항상 밀당을 하라고 한다. 그 말들을 들으면서 난 항상 코웃음을 쳤다. 남자와 밀당 같은걸 할 시간에 영어단어 하나라도 더 외워라라는 식이였으니까. 근데 권순영은 도대체 뭐때문에 여자도 아니면서 나한테 밀당을 시전하고 있는가. 분명 자유시간을 주면서 자기생각하라는게 엊그제인데 학교에서 눈도 마주친 적이 없다. 솔직히 그 말이면 나한테 관심이 있다란 얘기가 아닌가? 나 헛다리 짚은거야? 아니, 그 대사라면 어느여자라도 자기한테 관심있다라고 생각하지 않나? 지금 권순영 나한테 밀당스킬을 시전하고 있는거야?
" 꿍꼬또. 지금 무슨 생각함? 고민 있음? 아, 이 오빠가 한 고민상담하는데. "
" 웃기지마 "
" 이걸로도 웃겼음? 와, 이 오빠 유머실력 쩐다. "
밀당시전하는 권순영 덕분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틀동안 이석민이랑 존나게 친해졌다. 이석민의 친화력은 정말 놀라웠다. 이석민이 내 짝을 진심으로 계속 할 생각이였는지 항상 내 옆자리에 앉았는데 항상 혼자서 쉴 새 없이 얘기하고 있었다. 사실, 나한테 얘기하고 있지만 다 씹고 있었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나도 모르게 맞장구를 쳐주고 있었다. 그러다 결국은 말도 트게되고 서로 막말까지 주고 받는 사이가 되어있었다. 하, 아니. 권순영이랑 한마디라도 섞어야 될 판에 이틀동안 이석민이랑 친해지고 있었다니.
" 권순영, 너 왜 여기 앉음? 맨날 맨앞에 앉았잖아. "
" 오늘따라 여기가 끌리네! "
" ... "
" 사실, 선생님들 침튀겨서 못 앉겠음. "
이석민과 시덥지않는 농담을 주고 받는 사이에 권순영이 반에 들어왔던 것인지 갑자기 내 앞자리에 앉았다. 오늘따라 늦게오는 권순영때문에 한참 고민하고 고민해서 권순영은 항상 맨앞자리를 앉던게 기억나 앞자리보다 두 칸 뒤로 떨어진 1분단에 자리를 찾아 앉았는데. 할렐루야. 내 앞자리를 선택하다니. 솔직히 내 앞자리로 올 때 나 때문인가 싶었지만 해명해주시는 권순영씨 덕분에 김칫국 드링킹은 면했다. 뭐, 어찌됐던 중요한건 권순영이 내 앞에 앉았다는거? 열심히 침튀겨주시는 선생님들 감사합니다. 나도 모르게 스멀스멀 입꼬리가 올라갔다. 입꼬리야. 그만 올라가. 앞에 권순영 있잖아.
" 근데 오늘따라 왜이렇게 늦게옴? 너 맨날 일찍오잖아 "
" 궁금해? "
" 별로 "
" ...새끼. "
풉. 귀엽다. 아, 물론 이석민이 아니라 권순영이! 자신과 생각했던 다른 반응을 이석민이 내비추자 권순영은 삐진 듯 힐끔 흘겨보면서 입술을 쭉 내밀었다. 아, 오늘의 덕질은 이게 첫 시작인가.
" 귀엽다.. "
아놔. 미친. 속으로만 생각한다는게 필터링을 거치지 못하고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제발 아무도 듣지 않았길 바랬지만 둘 다 나에게서 매우 가까이 있는 바람에 다 들은 것 같았다. 안그러면 이 둘의 시선이 나에게로 집중되어있지 않을테니까. 민망해져서 이리저리 눈을 돌리다가 권순영과 눈이 마주쳐버렸다.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게 느껴졌다. 아, 더워.
" 지금 누구보고 귀엽다고 한거야? 설마 권순영보고 한거? "
어. 응. 맞아. 맞으니까 조용히 넘어가주렴 석민아. 아무대답도 하지 않고 있으니까 맞다고 생각한건지 이석민은 와하하하 웃으며 헐, 권순영이 귀엽다고? 미친. 대박. 자기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장단에 내 얼굴은 더욱 더 빨개져가고 있었다. 석민아, 제발 조용히 좀. 이와중에 권순영 눈치를 살짝 살피니까 권순영은 뭐가 좋은지 이석민장단에 함께 웃고 있다. 넌 왜 웃는거야. 웃는거마저 씹덕이긴하지만.
" 지난번에 준 자유시간은 잘 먹었나. 잘 먹었으면 고맙겠는데 "
" ... "
" 내 말대로 해줬으면 더 고맙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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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심장저격하신 권순영때문에 이석민의 깨방정을 다 받아주어서그런지 좀 피곤하다. ' 이거이거.. 이 분위기 뭐야? 니네 썸타는거야? ' ' 아, 썸냄새 대박. 내가 제일 싫어하는 냄새가 커플냄새랑 썸냄새인데. ' 이런류의 말을 수업 마칠 때까지 하는 덕분에 피로감이 느껴진다. 그래도 편의점 출석첵크는 맨날 하러 온다. 뭔가, 하루라도 빠지면 저녁에 양치질을 빼먹은 느낌이랄까.
" 아, 들어가야되는데. "
맨날 출석첵크하는 나이지만 항상 권순영이 학교에서 심장저격한 날이면 편의점을 잘 못들어가겠다. 왜인지 얼굴보기 민망하다고해야하나. 괜히 부끄러워지고. 역시 오늘도 들어갈까 말까 망설이고 있다. 나도 왜 망설이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들어가게되있는데 말이야. 누가본다면 아이스크림 훔쳐가는 도둑으로 보일 것이다. 지금 발만 동동 구르는 내 모습 씨씨티비에 찍혀있을텐데. 제 발 저린 도둑같이 보일텐데. 뭐하는거야 꿍꼬또.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하고 들어가자. … 어? 잠깐만.
" 안들어오고 뭐해 "
" 어? 아, 그게... "
이제 막 들어가려고 문고리를 잡았는데 권순영이 안쪽에서 확 당기는 바람에 편의점에 강제 입성되었다. 그것도 권순영과의 거리가 30센치미터도 안되는 거리로. 아, 오늘 또 심쿵. 얼떨떨한 상태로 있는데 안들어오고 뭐하냐는 질문에 대답마저도 얼떨떨하게 대답하고 있었다. 권순영은 그런 내 모습이 웃긴지 살짝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바보 같은 건 알지만 그렇게 바로 내 앞에서 웃음을 터뜨리면 정말 고맙다. 가까이서봐도 웃는게 예쁘구나. 난 웃는 거 별로 안예쁜데. 남자인 주제에 나보다 예쁘면 어쩌자라는거지.
" 오늘은 뭐사갈꺼야? 초코에몽? 아니면… "
" ? "
" 자유시간? "
웃으며 나에게 물어오는 권순영이다. 항상 내가 사는 건 초코에몽이라는 보기가 한 개 밖에 없었는데 자유시간이라는 보기가 더 늘었다. 뭔가 기분이 묘했다. 권순영과 내가 조금 더 친해지고 있는 기분이랄까. 와, 꿍꼬또 3개월의 짝사랑이 이렇게 보답이 내려지기 시작하는구나. 혼자서만 뒤에서 열심히 권순영 덕질만 했었는데 이제 서로 연결고리가 생기고 있었다. 묘한 희열감과 뿌듯함이 느껴졌다.
" 뭐 사갈까? "
" 오늘은 돈 쓰지말고 이거 받는게 어때 "
내 손을 자기한테 가져가더니 또 손에 무언갈 쥐어주었다. 그건 초코에몽도 아니었고, 자유시간도 아니었고 그냥 반듯반듯하게 접은 포스트잇이였다. 파란색 포스트잇. 이게 뭐냐는 듯이 쳐다보자 그냥 어깨를 으쓱거리고 마는 권순영이다. 그리고 이내 입을 열더니 너 맨날 돈쓰는 것 같아. 근데 네가 여기 올 이유가 없어져버리니까 뭐라 말도 못하고 있긴한데… . 일단 오늘은 이걸로 대신해. 라고 말하며 내 어깨를 잡더니 몸을 다시 문쪽으로 틀어서 직접 문까지 열어주었다.
" 여름이라서 해는 빨리 안지네. 그래도 조심해서 집 가. 꼭, 포스트잇 보고! "
갑자기 비글스럽게 배웅하는 권순영때문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마음같아서는 더 있고 싶지만 내 돈걱정해주는 권순영에 의해 안떨어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근데 순영아, 솔직히 이런 말하면 재수없겠지만 우리 집 돈 많은데. 엄마가 의사이고 아빠가 기업인인데 맨날 초코에몽 사먹는 거, 그거 오히려 절약하는거다? 한 달 용돈이 얼마인데… . 와, 나 진짜 재수없어보인다. 그냥 이런 생각하면서 포스트잇을 펼쳐보았다.
' 010 - **** - ****
이게 뭔지는 알겠지?ㅋㅋㅋㅋㅋㅋ 이런거 되게 부끄럽다 ㅋㅋㅋㅋㅋ
너랑 나랑 조금 친해진거 같은데. 조금 더 친해지고싶어. '
" 풉 "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졌다. 아, 귀여워. 얘는 포스트잇으로도 날 씹덕사시키는구나. 정말 날 씹덕사시키려고 태어난게 틀림없다. 보자마자 자동 반사되는 광대승천이였다. 와, 근데 나 지금 영광이다. 3개월전까지만해도 권순영이랑 말 한마디 못섞을 줄 알았는데. 아, 지금 8월달이지? 그럼 4개월이네. 나 울어도 되는건가. 내 친화력으로 너랑 내가 이정도 친해진거면 울어도 될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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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서 집으로 도착한지는 꽤 되서 밤이 되어가고 있는데 핸드폰에 권순영 전화번호를 입력해놓고 아직도 저장을 못하고 있다. 이유는 이름때문. 뭘로 저장해야하지? 10시 10분? 내가 좋아하는 애? 아, 왜 이름정하는 거 마저도 이리 힘드냐. 권순영을 떠올리면 뭐가 생각나지?
" 그냥.. 권순영. "
결국은 이름 석 자를 적었다. 권순영을 표현하는 말이 딱 권순영인데 뭐 어떡해. 그냥 권순영이라는 이름 자체만으로도 좋다. 이름만 들어도 설렌다. 적자마자 바로 저장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나서 메세지를 보냈다. 아, 뭐라 보낼까.
' 꿍꼬또. 내 번호야. 저장해. '
이건 많은 고민없이 보냈다. 그냥 너도 나처럼 내 이름만 들어도 좋기를, 설레기를 바라면서.
이건 욕심인가
+ 이제 4편인데 벌써 소재가 딸린...ㅎ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늦게와서 죄송해여♥
아육대 프리뷰 봤어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애들이 곱더군요...♥
암호닉 신청 받아볼께요! (제 주제에!)
움짤 출저 - 텀블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