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괴담 2013
W. The Sun
학교 2013 박흥수 X 학교 2013 고남순
“아, 빌어먹을-!”
가만히 서있기만 해도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그야 말로 엿 같은 날씨에 입에선 각종 험한 욕지거리가 줄줄이 쏟아져 내렸다. 엄청난 인파를 뚫고 매점에서 힘겹게 공수한 얼린 생수를 꽉 끌어안은 채 빌어먹을 놈의 욕 좀 그만하라며 투덜거리는 남순이의 혀여멀건 피부는 이미 빨갛게 익어있었다. 그러니까 체육 나오지 말고 아프다고 째라니까 말은 또 더럽게 안 들어먹어요. 괜히 안쓰러운 마음에 손을 뻗어 팔을 쓰다듬으니 뜨거운 손으로 만진다며 또 지랄. 아, 진짜 이 새끼를 죽여 말어.
“고남순. 너 요새 부쩍 까칠해졌다?”
“…아, 몰라. 더워.”
“너 설마 딴 놈 만나고 다니는 그런… 억!”
“지랄을 해라 지랄을.”
품에 안고 있던 얼린 생수로 내 뒤통수를 소리 나게 가격한 남순이는 별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며 난 너밖에 없다고 간지러운 소리를 잘도 속사포로 내뱉고는 다시 그 생수를 끌어안았다. 나도 너 의심한 적은 없다 새꺄. 그 소리는 속으로 꾹 삼키고는 숨을 길게 뱉어낸 나는 간만에 불어오는 시원한 산들바람에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거지같은 날씨에 전력을 아껴야 한다니 뭐니 해대며 에어컨을 틀어 주지도 않질 않나 틀어도 찬 기운이 다 돌기 전에 꺼버리니. 공부에 열중해야 할 고3 교실은 후덥지근한 바람만 연신 뿜어대는 선풍기에 의존해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가야만 했다. 그나마 교실에 자리 지키고 있는 것들은 이름난 공부쟁이들 뿐이지 나나 남순이 같은 혈기왕성한 학생들은 쉬는시간 마다 저마다의 학교 안에서 제일 시원한 장소로 찾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아… 생수 껴안고 있으니까 그나마 괜찮다.”
“남순아, 나 생수 좀.”
“죽을래 개새끼야?”
나보고 욕하지 말라면서 지가 더 해대네. 날카롭게 날 쏘아보는 눈빛에 쩝- 입맛을 다시며 평상 위에 드러누운 난 햇빛에 뜨겁게 달궈져 있던 등이 그나마 냉기를 조금 머금고 있는 평상과 닿아 식어가자 이제 좀 살겠다는 듯 숨을 크게 내쉬었다. 옥상은 나와 남순이만 올 수 있는 우리 학교에서 제일 시원한 곳이었다. 이미 우리의 자리인 것이 공공연하게 알려져 싸움 꽤나 한다는 놈들도 올라올 생각은 하지도 않았고, 여자애들은 뭐든 걸어 올라가는 건 끔찍하다며 올라올 시도도 안하는 탓이었다. 적당히 생기는 그늘과 사방이 뚫려있어 바람이 불어오기만 해도 자연스레 시원해지는데다 누워서 쉴 수 있는 평상까지. 이렇게 완벽한 쉼터를 우리만 쓸 수 있다는 게 진짜 다행이긴 했다. 뭐… 가끔가다 우리 사이가 의심된다며 몰래 올라와 염탐을 하는 유별난 여자애들 몇이 방해하지만 않으면 더 금상첨화고.
“행정실에서 뭐래냐.”
“어?”
“너 아까 행정실 갔다 왔잖아.”
그것도 회장이라고 등 떠밀려서. 아니, 근데 솔직히 원치 않은 회장을 2년 연속 할 정도면 그냥 회장이 네 운명 아니야? 닫고 있던 하복 셔츠 단추를 다 풀어낸 난 중얼거리며 땀에 젖은 티셔츠를 펄럭이면서 구름 한 점 없어 따가운 햇빛이 직빵으로 내리쬐고 있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몰라. 더워지면 틀어주겠대.”
“그럼 지금 이 개 같은 날씨는 더운게 아니고 뭐냐.”
“나도 몰라.” 하는 한숨 섞인 말과 함께 나를 따라 벌러덩 드러누운 남순이는 자연스레 내 팔에 머리를 기대고는 꾸물꾸물 내 품에 파고들며 얼린 생수를 우리 몸 사이에 끼워 넣었다. 마주 닿아오는 뜨거운 피부가 신경에 거슬리긴 했지만 땀냄새는 커녕 달콤한 비누 냄새만 느껴지는 그 여린 몸뚱아리가 싫지 않아 조금 더 끌어당겨 안은 나는 작게 숨을 뱉으며 말했다.
“남순아.”
“왜.”
“오늘 야자 째고 영화나 보러 갈까?”
“튀다 걸리면 우리 둘 다 죽어.”
재수 없는 소리 한다 또. 미간을 팍 구긴 나는 가볍게 눈을 감고 있는 남순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더위에 지쳐 숨을 몰아쉬느라 조금 벌어져 있는 도톰한 입술에 가볍게 입 맞췄고, 그런 내 행동에 이젠 별로 놀랍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눈을 떠 날 올려다보는 남순이의 볼을 쓰다듬으며 기분 좋게 웃었다.
“그럼 나 혼자 튈게.”
“의리 없는 새끼.”
“그럼 같이 가던가 새꺄.”
끙- 하는 소리를 내며 입을 앙 다물고는 한참을 고민하던 남순이는 우리 사이에 끼워져 있던 얼린 생수의 얼음이 녹아가며 쩍- 갈라지는 소리를 내자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가자.”
“오케이. 그럴 줄 알고 이미 예약해뒀어.”
“돈이 남아 도네 아주.”
“팝콘은 니가 사라.”
“쪼잔한 새끼.”
몸을 일으키며 헝클어진 제 머리를 정리하던 남순이는 뭔가 불안하긴 한 듯 발을 동동 구르다 작게 중얼거렸다.
“아… 오늘 야자 감독 강세찬이랬는데….”
**
아… 왜 이렇게 춥지…. 몸을 움찔거리다 천천히 눈을 뜬 나는 엎드린 자세로 잠이 들어서 그런지 심각하게 저려오는 팔을 이리저리 주무르며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반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불까지 다 꺼져 있음에 어이가 없어 허- 하고 헛웃음 지은 나는 뻐근한 목을 이리저리 움직이다 이전 상황을 되새겨 봤다. 뭐… 야자 째려다가 학교 담벼락에서 재수 없게 강세찬한테 걸렸고, 덕분에 강제로 야자 남았던 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머리를 벅벅 긁다 핸드폰을 들어 화면을 확인해보니 오후 12시 20분이라는 시간과 5퍼센트 밖에 안 남은 배터리가 눈에 들어왔다. 아… 그래. 이제 이해간다.
“아, 강세찬 저 이ㅆ…!”
날 엿 먹이려고 잠든 사이에 그냥 놓고 갔구만. 옆에서 같이 야자 하던 고남순도. 뭐? 의리 없는 놈이라고? 지가 더 없네 나쁜 새끼. 어차피 내일 쉬니까 지금 집에 쳐들어가서 확 해버릴까. 아오, 일부러 여름이라 힘들까봐 봐주려고 했더니 진짜 안 되겠네. 욕지거리를 뱉으며 문 열어주기 귀찮다며 남순이가 건네준 집 열쇠를 앞주머니에서 찾아 꺼낸 나는 그것을 교복바지 주머니에 깊숙히 넣고는 가방을 한 쪽 어깨에 메고 교실을 나섰다.
“아… 왜 이렇게 춥냐….”
늦은 밤이라 그런가. 기분 나쁜 한기에 오소소 소름이 돋은 팔을 쓸어내리던 나는 복도로 나서자마자 교실 문을 닫으며 주변을 둘러봤다. 학교의 불은 모두 꺼져 있었다. 그나마 간만에 저녁 하늘이 맑아 모습을 드러낸 달이 뿜어내는 푸르스름한 달빛이 이곳저곳을 비춰주고 있었고, 밖엔 바람도 부는지 웅-웅- 하는 바람 소리가 아무도 없는 복도에 끊임없이 울리고 있었다. 그런데… 기분이 좀 이상했다. 아까부터 온몸을 휘감는 한기도 한기지만… 어디선가 느껴지는 스산함이 꽤 기분 나빴다. 하도 학교 괴담이니 뭐니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가… 꼭 뭐라도 튀어나올 것 같다.
“의외로 기분 나쁘네… 낮이고 밤이고 별로 다를 것 없을 거라고 생각 했었는데.”
작게 투덜거리며 현관 쪽으로 걸음을 옮기던 나는 딱히 할 일도 없어 남순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은 길게 이어졌다. 일정한 박자의 신호음에 맞춰 끝없이 이어진 어둠을 바라보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던 나는 복도의 끝. 붉은 빛이 옅게 깔려 있는 그곳에 얼핏 보이는 인영에 걸음을 멈추고 눈을 가늘게 떴다.
- 고객이 전화를 받지 않아 삐- 소리 이후….
이 늦은 시간에 학교에 사람이 있다고? 나 같이 선생한테 엿 먹은 또 다른 학생인가? 아니면 수위 아저씨?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안내 멘트를 들으며 눈을 가늘게 뜬 채 어렴풋이 일렁이는 듯한 그 인영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전화를 끊고 깜빡거리기 시작한 핸드폰 배터리를 힐끗 쳐다보다 왜 학교에 버리고 갔냐는 투덜거림이 섞인 문자를 남순이에게 빠르게 보낸 뒤 그 인영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어이, 거기.”
대답은 없었다. 그저 그 자리에 멀뚱히 서있을 뿐. 점점 거리가 가까워 질 수록 확실하게 드러나는 인영에 헛것은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자 난 점점 걸음 속도를 올렸고, 그렇게 미동도 없는 그 인영에 가까워지자… 난…
“뭐…야.”
자리에 멈춰선 채 더 말을 잇지 못했다.
***
확실하게 너목 끝나니까 기가 빠지고 몸이 축 늘어져요...
덥기도 엄청 덥고.. 크흡...
학교 괴담 2013은 단편 입니다! 아주 짧아요! ㅎㅎㅎㅎ 귀신은... 몇 나오지도 않을 것 같... 긴 하네요 ㅎㅎㅎㅎ
과연 흥수가 본 건 누구였을까요?!!! 귀신?!!! 사람?!!!
두구둥-
커밍 쑤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