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델학개론
짐가방을 들고 북적이는 공항을 빠져나온 종현이 선글라스를 살짝 아래로 내리고는 주위를 돌아봤다. 아아, 저깄네. JAY 라고 쓰여진 피켓을 든 검은색의 일색인 남자가 선글라스를 벗고 입꼬리를 올려보인다.
“미국생활은 어떠셨습니까.”
“외로움의 극치였지, 사람은 역시 사랑이 없으면 안되더라고.”
“…한국에서 생활하실 집 정말 필요없으십니까?”
“필요가 있나.”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는 턱을 기대고 창문 밖으로 휘날리는 보이지않는 바람을 느낀다.
“…명령했던 일은?”
“본부대로 계약 했습니다. 바로 현장으로 가셔도 됩니다.”
“됐어 벌써부터 쎄게나가면 재미없잖아.”
“예.”
휴대폰 액정 속 반짝이며 웃는 태민의 사진을 확인하듯 한번 쓱 쳐다본 종현이 이내 미묘하게 얼굴을 굳혔다. 조금 화가나있는 그는 절제하여 억누르고 있었고, 이내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06
종인은 진심으로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아무렇지않게 또 현장에 나타난 태민을 보며, 처음으로 소용없다는 생각이 들어 무섭기까지했다. 그 무서움이 날이 갈수록 넘쳐흐르는 갈증인데 그것에 대한 이유는 뭔지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뭔지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그렇게 생각했다.
경수가 계속해서 미루고 있던 일본활동을 에이젼시 촬영을 기점으로 시작했고, 덕분에 자연스레 연락이 줄어갔다. 끝까지 불안해서 일본에 못 가겠다며, 몇번이고 사랑한다 말해달라 조르던 경수는 짐짓 태민이 온 순간부터 두려워하고있었다. 종인은 변함없다고 믿는데도.
“뮤지컬만 관람하고, 사진 몇번 찍고 오늘은 마무리하자”
옆에서 최대한 내츄럴하게 화장을 해주는 태민이 종인의 머리카락을 차분하게 빗어내렸다. 근처에서 팬들이 없나 있나만 확인하던 민수가 슬쩍 태민과 종인을 쳐다보더니 의미심장하게 웃어보였다.
“뭐야 그 웃음.”
“아니 그냥 둘이 잘 어울려서 임마들아.”
“역겨운소리 집어치워.”
조금 기분 좋은듯 베시시웃는 태민을 보며 종인이 신경질적으로 손바닥을 쳐냈다. 그러고는 몸을 돌려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슬쩍 오르는 입꼬리를 손으로 꾸욱 꾹 내린다.
“먼저 둘이 들어가! 차 대고 들어갈께”
혹시 팬들이 몰릴까봐 뒷문을 통해 나란히 겄던 둘은 조금 어색해진 분위기였다. 그 날 이후라서 그런가. 태민도 스스로 점점 자신이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것을 자각해서인가. 종인이 슬슬 태민을 잊지못했다는 것을 인정해서 인가. 둘의 분위기는 조금은 달라져있었고 좋은 분위기이든 나쁜 분위기이든 그들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었다.
“종인씨 어서오세요!”
“잘지내셨어요?”
“그럭저럭이죠 뭐- 근데 옆에분은 누구…? 죄송해요! 제가 요즘 모델들에 무지해서….”
태민이 저요? 하고 조금 놀란듯 어깨를 으쓱인다.
“쟤 모델아니에요. 제 코디에요.”
“네?! 진짜 이쁘게 잘생기셨는데! 나중에 캐스팅이라도 해야겠어요!”
“…아하하, 감사합니다….”
“저, 그래서 그런데 번호좀….”
그저 묵묵히 지켜만 보고있던 종인이 갑자기 태민의 어깨를 끌어당겨 안아보였다.
“죄송하지만 저희 회사는 사적으로 만남은 금지라. 사내연애만 허용이거든요.”
“아이고 아까워라!”
꽤나 시끄러운 남자였다. 아이돌이었다가 이번에 뮤지컬을 하게됬는데 종인과 아주 조금의 친분을 빌미로 초대했다. 예능이고 뭐고 티비에 꾸준히 나오면서 눈도장을 찍고있는 남자라 그런지 시끄러운것이 사실이었고 종인에게는 그다지 나쁜 인맥은 아니었다. 언제든 종인이 이용만 할 수 있다면. 하지만 종인은 처음으로 기분이 나빠졌다. 시끄러운것은 어느정도 참겠는데 내꺼 건드리는건 안되지. 그렇게 생각하는 자신에게 놀라는 종인이었다.
“그럼 재밌게 관람하세요! 코디분도!”
“네!”
고개만 살짝 끄덕이고 들어가는 종인을 보던 태민이 급하게 뒤를 쫓아갔다. 아쉬움이 가득한 어깨가 너무도 가볍다.
뮤지컬은 재미없었다. 태민이야 그럼에도 박수치고 웃지만서도 종인은 하품을 참기위해 노력하는 것 같았다. 하긴 매일이 스케줄로 가득차서 잠도 제떼 못자는데 이런거 볼 시간이 어디있겠느냐만은. 차라리 잠을 자는것이 나을것같다고 생각한 종인이었다. 그걸 눈치챘는지 민수가 종인의 옆구리를 찔러댔다. 야 임마 정신차려. 여기 저기에 카메라들이 있는데 괜히 찍혔다가 욕먹을라. 종인이 짜증으로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결국은 공연이 후반부가 되자 종인이 대놓고 자기 시작하면서 민수가 그것을 들키지않으려 주위를 살피느라 바빴다.
결국은 커튼콜까지 보지못하고 나와 벤으로 들어갔고, 그러는 와중에도 혹시나 기자들이 볼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었다. 안그래도 예의없다고 이니셜기자가 수차례 났던 터라 민수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운것이 어쩔 수 없었다.
“종인아 바로 집 갈꺼지?”
“어.”
“태민이는 병원?”
“네!”
병원? 막 자려고 기댄 종인이 앞자석 태민을 보며 잔뜩 눈썹을 일그러트렸다.
“아 별거 아니구…그냥 감기기운이 좀 있어서…니가 신경 쓸 정도는 아니야.”
“누가 신경쓴데? 코디라는게 맨날 아프다고 일 대충하니까 하는 소리야.”
“알았어 열심히할께.”
다시 자려는듯 누운 종인이 몇초간 가만히 있더니 이내 한숨을 쉬며 머리를 헝클였다.
“비 맞은거 때문에 그러는거 아니야?”
“그런가봐”
“넌 어떻게된 새끼가 비를 맞고 병원에 갈 생각을 안하냐.”
“스케줄하느라 바빴으니까….”
묵묵히 보고있던 민수가 낄낄거리더니 백미러로 종인을 바라본다. 어휴 귀여운놈.
***
“형?”
병원에 들려서 주사를 맞고 오니 거짓말처럼 종현이 쇼파에 앉아서 티비를 보고있다. 그러고보니 그때 전화에서…. 종현이형이 한국으로 왔다는것은. 특히 예정보다 이렇게나 빨리 왔다는 것은 분명 꿍한일이 생긴것이 분명했기에 슬금 슬금 눈치를 보며, 옆에 앉으니 여전히 무표정으로 티비를 보는 종현이 팔짱을 낀 채 화면을 노려본다.
“어? 이거….”
하필이면 저번에 태민이 방송에 잠깐 달리기로 출연했던 방송이다. 종현이 리모콘을 들더니 되감기를 눌러 태민이 나오는 장면으로 가 정지를 시키고는 굳은 표정으로 내려다본다.
“설명 좀 해봐라.”
“…형, 형…그게…….”
“너 언제부터 저 새끼랑 같이 있었어”
“…나도 몰랐어 정말이야. 종인이 담당일줄은…….”
“아, 그리고 너 민호 찾지도 않았다면서? 너 약 다 떨어졌을텐데 대체 뭘 한거야?”
“…미안해….”
“니가 나한테 왜 미안해? 내가 말했지. 형은 너 아픈게 제일 속상하다고. 아프지마라, 태민아.”
약봉지를 보이지않게 뒤로 숨겼다. 그러자 용케도 발견했는지 종현이 손을 내민다.
“숨기는거 빨리 줘.”
“아…그게….”
“어허.”
조심히 앞으로 내미니 가볍게 채가고는 잔뜩 얼굴이 일그러졌다.
“주사맞았어?”
“응…주사맞아서 이제 괜찮을거래!”
“들어가서 쉬어. 오늘은 일찍 자고.”
“아 그게…의상 점검….”
“너 그 일 그만둘건데 뭣하러 의상점검을 해? 들어가 빨리.”
“형!”
“태민아 형은 너 저 새끼랑 있는 것 못 봐. 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너 한국으로 보내지도 않았어. 형 정말 너 아픈거 보면서 많이 힘들었어 다시 보기 싫어. 빨리 들어가서 쉬어.”
“…….”
태민은 종현이 얼마나 자신을 생각하고, 자신을 위하는줄 알기에 도저히 반론할수가 없었다. 태민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곁에서 모두 지켜본 종현이었기에 더욱 태민에게 굳은 면이 있었지만 그것은 결국 모두 태민을 위함이었다.
방에 들어간 태민이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켰다. 좋지않은 예감이다.
피곤했던 기운은 어디로가고 집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않아 종인이 박차고 나와 시동을 걸었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결국은 이끌리는곳으로 운전대를 잡았고, 예전에 와본적이 있던 곳이다. 태민의 집. 종인 자신도 여기왔다는것에 복잡했는지 머리를 감싸쥐었다가 선글라스를 쓰고 내려 근처 약국으로 갔다.
어디가 아픈지 정확히 알지를 못하니 제대로 약을 사줄리도 만무했고, 결국 종인이 모든 감기약을 쓸다시피해서 태민의 집으로 가기위해 전화를 하니 연결음이 얼마가지않아 받는다. 굉장히 조그만한 목소리가 떨려온다.
“너네 집 주소대.”
ㅡ종인아 그게…….
“아 빨리 나 지금 피곤해.”
말하지못하고 우물쭈물하는게 거슬렸는지 종인이 아 됐어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민수에게 전화를 걸었고 자고있었는지 졸린 목소리가 들린다.
ㅡ무슨일이냐
“이태민 집 주소.”
ㅡ엥? 그걸 왜 물어?
“아 빨리!”
ㅡ성질 급하긴! 303호 임마!
“아 끊어.”
ㅡ고맙다는 말ㄷ,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은 종인이 약봉지를 다시 잡아보이고는 발걸음을 바삐했다. 가서 잠이라도 잘 심산인듯 얼굴에는 피곤과 졸림이 가득했기에 종인을 알아본 아파트 주민들도 다가갈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종인이 열리는것을 확인하고 들어가는데 왠 남자가 비스듬히 서있다가 종인을 비켜나가려하더니 이내 종인의 손목을 가로챘다.
“아 씨발.”
짜증이 가득 차 있던 터라 자신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고는 인상을 쓴다. 종인을 잡은 남자가 선글라스를 벗더니 종인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허, 하고 실소를 내뱉다가 표정을 차갑게 굳혔다. 그의 어깨와 입이 딱딱하게 굳는다.
“김종인? 오랜만이다?”
“… 누군데 니가…아. 씨발. 너.”
“너 설마 지금 내꺼 보러가냐?”
“내꺼? 너 아직도 이태민이랑 붙어먹냐?”
“그러는 너야말로 무슨 낯짝으로 뻔뻔하게 이태민한테 가냐?”
둘 사이에 금방이라도 주먹이 오갈듯 싸늘한 분위기가 압도했다.
“모델됬다고 얘긴들었는데 설마 너랑 태민이랑 붙어있을줄은 몰랐네”
“태민이 태민이 씨발 누가 니꺼고 누가 니 태민인데.”
“말 못 알아들어? 이태민 내꺼라고”
“…설마 너. 니새끼가 기둥이냐?”
“아직도 태민이 나 그렇게 저장해놓고 있었나 보네. 너 기둥이 무슨 뜻인지는 아냐? 태민이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 넌 뭐냐? 넌 이태민한테 뭐냐 김종인?”
종현이 슬슬 종인의 심기를 건드리고 있었다. 종인은 끝도없는 분노를 느끼며, 버릇처럼 화날때 하던 습관인 입술을 한번 혀로 쓸어보이더니 기운없이 웃어보였다.
“넌 고작 이태민한테 기댈 수 있는 사람이겠지, 근데 나는 이태민이 사랑하는 사람인데 어쩌냐 종현아.”
타이밍에 맞춰져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는 알림음이 울렸고 문이 열리자 태민이 잔뜩 헝클어진채 서서 둘을 나란히 바라본다. 아……. 종현이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태민에게로 가 이마를 짚더니 걱정을 늘어놓는다. 너 누가 나오래. 종인은 그 장면을 보면서 열이 올랐는지 약이 가득 들은 비닐봉지를 태민에게 던지고는 닫힘버튼을 연속으로 눌러댔다. 허탈한 표정을 짓는 태민을 본 종현이 짐짓 살벌한 표정을 짓고는 계단으로 뛰어갔고, 종인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릴쯤에는 잔뜩 독이오른듯 살기를 띈 종현이 서 있었다. 그리고는 바로 종인에게 주먹을 날렸고 간신히 피한 종인이 욕을 내뱉으며 맞주먹을 내던졌다.
“그냥 이태민한테 죽으라고 소리를 치지 그래 이 개새끼야!”
종인이 동작을 멈추고는 이해가 가지않는듯 종현을 바라보았고, 종현은 종인의 뺨을 강하게 때렸다.
“니 새끼는 이태민을 한번이라도 이해해보려고 한 적은 있냐?! 진짜 버린게 누군데 씹새끼야!”
“씨발 알아듣게 말을 해!”
“알아듣게 말을 해도 니 새끼가 알아들을 새끼야?! 너 도망가고 이태민이 어떻게 살았는지는 아냐?”
흥분을 참으려는듯 가쁘게 숨을 몰아쉬면서 눈을 지그시 감더니 종현이 휴대폰을 꺼내 몇번 만지작거리더니 종인에게 건넸다. 순간 벙쪄있는 종인이 의심없이 받아들였고, 액정가득 보이는 것들에 숨조차 쉬지않고 목석처럼 굳어버렸다.
“너 당장 이태민 짤라.”
“……언제부터야….”
“언제부터? 니새끼랑 헤어지고부터.”
“… ….”
“이거 하나 똑바로 알아둬, 그 모든것들 다 니가 만든 결과물이고. 태민이가 죽기전까지 허덕이는 모습. 울면서 죽으려는것들 다 내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고 옆에 있었던건 니가 아니라 나야. 아무것도 모르고 오로지 자기 아픔만 생각하고 이기적으로 도망친건 너고. 잘 생각해봐 이태민이 누구랑 있을때 행복할지.”
“… ….”
“니가 이태민한테 떳떳할수있는지. 누가 가장 아팠을지 잘 생각해보라고 씨발새끼야.”
[우울경향이 강하여, 환각 환청을 듣고 수도없는 자살시도로 인하여 독방에 가둬놓기로 결정. 사람과의 만남을 꺼려하고, 자괴감이 강함. 불안감에 잠을 못 이룸으로써 수면제 투여 결정.]
종인의 손이 덜덜 떨리더니, 이내 머리가 아픈듯 이마를 짚는다.
“…무슨일. 무슨 일이 있었던건데….”
“그런걸 말해줘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겠는데?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냐.”
“씨발, 알아야 내가!”
“됐으니까 그냥 이태민한테서 꺼지라고. 너 없어도 내가 있고, 충분히 행복한 애니까. 이제야 사람처럼 사는애 건드려서 병 나게 하지말고 개새끼야.”
멍하니 있던 종인이 종현에게 휴대폰을 던지듯 건네고 차로 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종현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멍청한새끼는 이래서 좋다니까 하라는 대로 다 하잖아. 차에 오른 종인이 멍한 눈초리로 시동을 건다 싶더니 이내 신경질적으로 차키를 빼고는 그대로 핸들에 얼굴을 받았다. 우으. 자신을 바라보던 태민의 표정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이태민을 떠나야한다? 이태민은 떠난다? 종인은 답답한지 단추를 두여개 풀어내렸다. 이태민이 나를 떠나버린다. 그때처럼. 하지만 사실은 내가 이태민을 떠나보내는 과정을 밟고있었다. 이태민이 또 다시 내곁에서 사라진다. 이태민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나는 이태민을 떠난다? 이태민을 떠나 도경수와 산다? 하지만 그때에도 이태민을 향한 그리움은 변치않는다.
“아, 씨발!”
핸들을 주먹으로 내리친 종인인 진정하지못하고 더욱 흥분을 하며 얼굴을 붉혔다.
이태민을 떠난다. 이태민이 떠난다. 그럼 난 어디서 이태민을 찾아야하지?
도경수가 이태민의 역할을 대신 해준다. 하지만 도경수는 이태민이 아니다. 이태민은 세상에 하나뿐이다. 그런 이태민이 내 곁을 떠난다면 난.
어디에서 내가 사랑하는 이태민을 찾아야 하는 걸까.
소름이 끼쳤다. 눈가가 순식간에 붉어지면서 눈물이 차오를정도로 몸이 떨릴 정도로 무서웠다. 이태민을 찾지못하게 된다면 그땐 어떻게 되는거지? 종인은 이제서야 느꼈다. 이태민에게 집착하는 자신을.
그리고 온 몸으로 온 정신으로 거부하기 시작했다. 아니야 그럴리 없어. 내가 이태민을? 왜? 하지만 종인 스스로는 소름끼치도록 두려움과 스산함을 느꼈다.
만약 이태민이 내 곁을 떠난 걸로도 모잘라서 다른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고한다면? 그게 김종현이라면?
종인은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결국은 이거였다. 종인은 태민을 버릴수 없다. 떠날 수 없다. 사실 종인은 누구보다 태민을 붙잡고있는 족쇄였다.
이태민을 포기 할 수 없다. 이태민을 보낼수도 없어. 이태민을 떠날수도 없어. 그럼 마지막 남는 한가지의 돌파구는 무엇?
이태민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면 된다.
사실은 처음부터 알고있었으면서 이제서야 해답을 찾은 종인의 머릿속에는 지난날들의 기억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거지? 종인은 두번째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는 비참한 기분을 느꼈다.
처음 죽고싶다는 기분을 느끼고, 자살이란것을 선택했을 당시에 태민을 만났던 자신이 떠올랐다. 사람은 죽음에 가까워진 순간에 누구보다 깨끗하고, 누구보다 깊다. 그 순간에 마주쳤던 태민의 순수한 얼굴과 밝은 미소를 잊지못한다.
가장 애처롭고 가장 비겁하고 가장 누군가가 필요로할때 만난 태민은 며칠 지나지않아 종인 자신조차 놀랄정도로 큰 일부가 되어버렸다. 무서웠다. 사실은.
똑같은 교복 엇비슷한 머리. 그 중에서도 태민은 눈에띄었다. 그 날이후로 그것은 더 해갔고, 어느새 태민을 위해 학교에 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종인, 자신과 너무도 닮았으나 틀린 태민. 뒤에서는 종인이 태민을 보면서 하나라고 여기며, 가슴을 조렸다.
태민에게 고백을 하고, 애인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하고는 너무 행복해서 미칠 것 같은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그만큼 불안해서 죽을 것 같았다. 미래가 무서웠다. 이태민이 나를 떠났을것만 같은 미래가 너무도 무서워서 의심과 집착이 강해졌으나 티를 내지않았다. 낼 수 없었다. 혹시나 자신의 사랑이 태민에게 독이된다면 그것만큼 슬픈 것을 없을 것이다.
매일 태민과 잠드는것이 숨막히게도 좋았다. 잠든 태민을 눈에 담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밤을 새는 날이 많았지만 종인에게는 그것마저도 행복했다.
「왜 안자?」
「이쁜이가 옆에서 자는데 내가 지켜줘야지.」
「아니야! 이번에는 니가 자. 내가 너 옆에서 지켜줄께.」
「그건 안되, 이태민 피곤해서 학교에서 졸다가 맞으면 속상하다.」
「그럼 우리… 자지 말자 둘다. 같이 맞자 그럼! 그건 안아플것같아…….」
어린 종인의 모든것에는 태민이라는 이유가 존재했고, 그것이 유일한 진실이자 행복이었다.
「종인아 우리 헤어지자.」
「싫어.」
「…제발 헤어지자 종인아…너 나랑 헤어져야되…….」
「싫다고.」
「난 너랑 헤어진걸로 알꺼야…고마웠어. 나 갈께.」
이유가 사라졌다. 미래를 잃은 기분 현재를 잃은 기분. 말로 설명할수없는 너란 존재는 한순간의 사라졌다.
「이태민 김종현선배랑 사귄다는 소문있더라? 씨발 더러워서 학교를 다니겠나.」
「……야, 니 다시말해봐 뭐라고?」
「이태민 김종현선배랑 사귄다는 소무, 왜이래!」
「어떤 새끼가 그래? 어떤 새끼가 그러냐고 씹새끼야!!」
「씨발, 왜 니가 흥분하고 그래!? 너 그러고보니까 요즘에 이태민이랑 자주 붙어있던데 너 설마 니가 이태민이랑 사귀냐?!」
「…그래, 사귄다 이 씨발년아.」
종인은 입술을 깨물고 울음을 삼켜냈다.
「너 누구랑 싸웠어?! 왜이렇게 됬는데!」
「…헤어지자면서.」
「친구로써 묻는거야! 너 누구랑 싸운거야 대체!」
「……태민아.」
「……말하지마…….」
「우리 도망갈까….」
재산을 위해서라면 형제도 핏줄도 무엇도 없이 다투는 지긋 지긋한 집안과 수준떨어진 애들이 가득한 학교. 그 속에 유일한 기쁨, 이태민.
「……헤어졌잖아 우리.」
어린 태민이 음악실을 나가버리고, 어린 종인이 남았다. 띵.띵. 조율조차 제대로 되지않은 낡은 피아놀의 선율이 딱딱하다. 종인은 태민이 나가면서 열린 앞 문을 바라보았다.
「… ….」
잠시 무언가 생각하는가 싶더니 급하게 태민을 쫓아 뛰어나간 종인이 이리 저리 뛰어다녔고, 태민의 흔적을 밟았다. 행복하다. 태민의 흔적이란것은. 그리고, 그 끝에 서 있는 오열하듯이 입을 막고 혼자 엉엉 우는 태민을 보며 종인은 어렸을때 어머니와 본가에서 쫒겨난 이후로 처음으로 울어봤다.
우리 사랑하면 안되나.
종인이 더 슬펐던것은 일방적으로 이별통보를 받고 남겨진 자신보다 떠나가버린 태민이 더 슬프게 울고있었다는 것이었다.
*
“형, 이게 무슨 짓이야.”
“빨리 짐이나 챙겨, 저새끼 없는 곳으로 가자. 별장으로.”
“이게 무슨 짓이냐구!”
그새 집안이 엉망이되고 물건들이 부숴져있다. 손바닥에 가득히 생체기가 난 태민이 머리를 쥐어뜯는다.
“김종인때문에 우는거면 형 진짜 화낼꺼야.”
“종인이한테 무슨 짓 했어?! 형 말한거 아니지…? 아니지 형?…제발.”
“그 새끼한테 다 말했어”
“… …설마 때리거나 하진 않았지?”
“때렸어.”
“형!!”
악을 지르며 소리를 치는 태민이 엉엉 울면서 주저앉았다.
“형 진짜 왜그래, 왜그러냐구!! 종인이 왜 때리는데!!”
“나 지금 슬슬 화나려고 하니까 가만히 있어 태민아.”
“왜 내가 바라지도 않은 짓을 해!!”
“이태민!”
쾅! 하는 소리와함께 내려앉은 짐가방이 그새 가득찼다.
“형 더이상 힘들게 하지마.”
태민이 쪼그리고 앉아 고개를 얼굴에 묻고 엉엉 울었다. 그걸 바라보는 종현이 가슴 아픈지 짐가방을 내려놓고 태민을 끌어안았으나 태민의 울음소리는 더욱 커져갔다.
“그 새끼 잊어, 그게 너한테는 최선이야.”
태민을 절레 절레 고개짓을 흔들었다. 못잊어. 내가 어떻게 종인이를 잊어. 이제야 만났는데 왜 나한테 잊으라고 그래. 형은 나 도와줘야 하잖아. 내가 종인이 사랑하는거 도와줘야 하는 거잖아. 왜 형은 내가 행복하지 않은 것에 대해 행복이라는 단어를 부여해. 나는 종인이 없으면 안되. 형. 형. 나는 종인이를 사랑해. 형이 아니라 김종인을 사랑한다고.
쉴새없이 열리는 태민의 입술을 종인이 키스로 막아버렸다. 짧은 입맞춤이었으나 평생 종현은 형 이상으로 생각해본적없는 태민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내가 김종인대신 너 사랑하면 되잖아.”
태민은 고개를 떨어트리고는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김종인이 좋아…….”
하와 |
오메!! 급전개?! 사실 종현이는 종인이와 무슨 관계입니다! 맞추는 분께 제 사랑을.... 이번화에서 어필이 안된것같은데 종현이의 등장은 단순한 서브남주의 등장이아니라 종인이 자신을 깨우는 등장이 됩니다. 그동안 어렴풋이 짐작만 하고있던것들이 종현때문에 다 밝혀지면서 종인이 스스로 깨닳아버리는 성장통같은 역....종횬긔! 화이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