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이야기 : 여주 임신사실 알았음. 배켠은 아직 모르는 상태. 둘은 냉전 중. 근데 여주 씨피알 치다가 검진 할 때 들어왔던 간호사가 말림. 괜찮다고 하고 일어서는데 배켠이 나타남. 여주는 자기 임신한 거 알았을까 눈치봄.
내 옆에 쪼그리고 앉은 간호사가 하는 말을 듣고 백현이가 눈치를 챘을까, 나는 백현이의 표정을 살폈어. 백현이의 시선은 내 손에 꽂혀있었고 나는 우리 대화를 듣지 못했을거라 짐작했지. 역시나 백현이는 그대로 주머니에서 밴드 하나를 더 꺼내 내 손바닥에 붙여주었고 그대로 말 없이 뒤돌아 가버렸어. 그 사이 환자는 심박동이 돌아왔는지 응급실로 이송되고 있었어.
"아는 선생님이세요?"
산과 간호사가 내게 물어왔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어. 아주 잘 아는 선생님이지.
"가서 검사라도 받아보고 가세요. 제가 불안해서 그래요, 네?"
"괜찮아요. 아까 한 텀도 안 쳤어요."
"그래도 갑자기 그렇게 힘 쏠리게 하고 그러면 안되는데.."
"조심할게요. 어차피 다음 주에 검사받으러 가니까 그 때 보면 되죠."
안되는데, 안되는데. 하는 간호사에게 억지로 안심을 시키고 따끔거리는 손을 매만지면서 일어났어. 그대로 외과병동으로 가는 계단으로 들어갔고, 나는 첫번째 계단에 발을 올리자마자 방금까지 참고 있었던 눈물을 쏟아냈어. 투둑투둑 쉬지않고 발밑에 떨어지는 눈물이 처량하기 그지없었지.
ㅡ
"웬일이야, 연락을 다 하고."
"너야말로 보미랑 연애한다고 나는 안중에도 없지."
"이 여자가 진짜, 변백현이랑 둘이 먼저 나 왕따시킨 건 그쪽이거든요?"
퇴근 한시간 전에 나는 김종대에게 폭탄처럼 카톡을 보냈고 김종대는 퇴근한지 한시간도 안됐다며 툴툴거리면서도 지금 내 앞에 앉아있었어.
"싸웠구만, 싸웠어."
변백현의 이름에 급격히 안좋아지는 내 표정을 본 김종대가 재밌다는 듯 웃었어. 이 개새끼가..
"우리 변백현이가 이렇게 잡혀 살 줄.."
"..."
"연애할 때 부터 난 알았지."
괜히 만나러 왔나. 나는 급격한 후회가 몰려오기 시작했어.
"짜증 좀 부리고 해도 웬만하면 참아줘라. 쌈닭처럼 싸우지 말고."
"나.."
"요거 요거, 어디가서 다치지 좀 말고. 변백현은 니가 유리구슬인 줄 알잖냐."
김종대가 내 손에 붙은 밴드를 쳐다보며 고개를 내저었어.
"남의 배 북북 찢으면서 사는 애가 아주 지 여자친구 피 한 방울 보면 꿈뻑 넘어가요."
김종대는 변백현이랑 내가 결혼한 게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지 여자친구라는 말을 곧잘 쓰곤 했어.
"너 애라도 낳는 날엔, 변백현 옆에 구급차 대기시켜야된다."
김종대의 말에 나는 저격이라도 당한 듯 고개가 푹 숙여졌어.
"이제 좀 말해봐. 무슨 일인데?"
열심히 입을 털었다는 듯 김종대는 턱을 괴고 물어왔어. 그리고 우리 둘 사이에는 침묵이 이어졌지.
"술이라도 좀 들어가야 하나."
입을 꼬옥 다문 내게 김종대가 애써 웃으며 말했어. 진짜 기분으로는 소주 세병 원샷하고 뻗어버리고 싶은데, 그럴 수 없었으니 나는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지.
"뭐가 이렇게 심각한데."
김종대가 다시 침착하게 물었어.
"그냥 예전처럼 행동해. 변백현 개새끼하고 욕도 하고, 집 안 들어간다고 난리도 좀 치고. 병나발도 불고."
"..."
"와, 이거 조용하니까 내가 다 쫄리네."
사실 나도 어떤 말을 해야겠다, 하고 온 건 아니라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 지 가늠이 되지 않았어. 머리 속으로 정리하고 정리해도 자꾸 생각은 원점으로 돌아왔지.
"변백현이 이번엔 안 져줘?"
응. 내가 고개를 끄덕였어.
"눈 딱 감고, 머리에 리본 묶어서 애교 한 번 부려."
"미쳤냐."
"싫으면 무릎 꿇고 사과하든지."
진짜 무릎이라도 꿇어야하나. 사실 내 머리 속에서는 우선순위가 정해지지 않아 더 복잡해지고 있었어. 백현이 화를 풀어주고 임신소식을 알려야하는지, 그냥 이 상태에서 임신소식을 알려야하는지. 전자를 택하기엔..
"시간이 없어."
"무슨 시간?"
"변백현이 화난 걸 처음봐서.."
그래서 얘가 시간이 얼마나 지나야 다시 예전처럼 돌아올런지 모르겠는데, 그 때까지 비밀로 하기엔 내가 혼자 감당하기 벅찬 일이었어.
"웃기네, 변백현이 화낸 게 처음이냐."
김종대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어.
"걔랑 싸운 거 말고. 다른 일 있지, 너."
김종대는 정곡을 확 찔러왔고 나는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어.
"무슨 일인데?"
"임신했어."
컥, 콜록콜록. 김종대는 쪽쪽 빨아먹던 아이스초코가 목에 걸렸는지 괴로운 기침을 해댔어. 이때까지 시간 끌었던 게 무색할 정도로 난 단번에 입을 떼었고 김종대는 멍하니 나를 쳐다봤어.
"야, 씨. 뭐?"
"변백현 개새끼가, 피임 제대로 안했어."
"뭐? 피..그래. 그럴 수 있지."
김종대는 민망한 듯 테이블에 시선을 쳐박았고 나는 그제야 말문이 트여서 변백현 뒷담화를 시작했어.
"그래, 내가 박서준이랑 술 쳐먹고 뻗어서 집에 들어온 건 백번 잘못했다 이거야. 근데 아무리,"
"박서준? 너 걔랑 술을 먹었어? 뻗어? 이거 정신 나간 거 아냐?"
"입 닫고 들어봐."
"그래, 말이나 해봐라."
"근데 아무리 그래도 일 그만두라고 하는 건, 야..진짜.."
갑자기 욱하고 눈물이 터져나와 나는 말끝을 흐렸어. 내 말에 김종대는 테이블 위에 올려진 손을 말아쥐었어.
"..그리고, 방해된대. 내가 자꾸 신경쓰인대. 일 그만하래."
고자질하듯 털어놓는 나를 앞에 두고 김종대의 표정은 급격하게 굳어갔어.
"...변백현이?"
방금까지 내 기분 맞춰준다고 열심히 떠들던 목소리와는 상반되는 목소리였어. 나는 괜스레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어.
"아니, 근데 내가 원인제공을 했긴 했는데.."
"그래 너도 미친거고,"
"어.."
"변백현은.."
"..."
"..아니다."
나오던 눈물도 쏙 들어가버리고 김종대의 눈치를 살피기 바빴어.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거든. 내가 변백현이랑 싸우고 김종대한테 이르러오면 김종대는 항상 변백현만 감싸고 돌면서 내가 못됐다고 하기 일쑤였는데. 게다가 웬만해선 표정관리 잘 하는 애가 목소리까지 굳었으니.
"뭐 먹을래?"
김종대는 잠시 숙였던 고개를 들고 웃으며 물었어. 내가 눈만 동글동글 굴리고 있자 테이블위에 있던 지갑을 들고 케이크 진열대 앞으로 가더니, 치즈케익에 초코케익에, 휘핑이 잔뜩 올라간 아이스초코까지 새로 시켜 한가득 들고 나타났어.
"나 배부른데.."
"너 항상 디저트 배는 따로 있다며."
다시 평소처럼 돌아온 김종대는 내게 포크를 내밀었고 정말 디저트배가 따로 있는 나는 금세 치즈케이크에 손을 뻗었지.
"축하해. 임신한 거."
"아, 응.."
"아까 화낸 건 미안해. 너한테 화난 건 아니었고.."
"뻥치네."
"어. 잘아네. 어디 결혼까지 한 여자가 남자랑 술을 먹고 뻗어? 내가 변백현이었으면 너 두다리로 못 걸어다녀."
김종대의 잔소리를 들으며 나는 익숙하게 치즈케익을 입에 넣었어. 매일매일 치즈케익만 먹고싶다.
"사실 나도 기분이 좀 요상하다. 중학교 때부터 끈질기게 같은 학교 다니던 애가,"
진짜 끈질기긴 끈질기네..
"임신을..그것도 변백현미니미.."
"그 날 술만 안 먹었어도."
"술 먹고 애 만들었냐?"
"어. 병원 회식 날. 장롱에 있던 콘돔 다 없애버렸어야 했는데."
띠기럴. 콘돔도 백퍼센트 피임이 되지않는다는 걸 고딩때부터 배워놓고.
"그 새끼가 자꾸 괜찮다고 하잖아."
"..쌍방 과실이지, 뭐."
"하나 더 생겼잖아. 내가 병원 그만 둬야 할 이유."
"야, 뭘 그만 둬. 우리 병원 산부인과 간호사는 애 낳고 입원했더니 옆 침대에 그 전날 자기가 애 받아준 산모가 누워있더란다."
김종대의 말을 들으며 슬핏슬핏 웃긴 했지만 마음 한 구석이 착잡한 건 어쩔 수 없었어. 결국 집에가서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자리에서 일어났고 김종대는 집까지 태워다 준다며 주차장으로 나를 이끌었어.
"와, 김종대 차 오랜만에 타네. 평소에 걸어다니라고 태워주지도 않더니."
"오개월 넘어가면 없어, 이런 거. 초기에 유산기 오지 않게 몸 조심하고. 왈가닥처럼 뛰어다니지 좀 말고."
"안 뛰고 일을 어떻게 하냐, 말이 되는 소릴 해."
"이제 너도 앉아서 신규 부릴 짬 되지 않았어?"
그러고보니, 그렇네. 입사했을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몇년이 흘러서 내 밑에 신규만 몇명이야.
"칠개월 부터는 변백현 뜻대로 휴직 생각해보고."
"복직하는 게 어려우니까 그렇지."
"앞 뒤로 한 두달 정도야 괜찮네요."
"그런가.."
"나는 더 빡세게 벌어야겠다. 니 새끼 까까 사주려면."
김종대의 말에 월급 차곡차곡 쌓아놓으라고 엄포를 던졌어. 그렇게 시덥지 않은 이야기를 하며 집 앞으로 가는 줄 알았는데,
"여긴 왜?"
김종대가 차를 세운 곳은 병원 앞이었어. 그러니까 김종대의 병원이 아닌 우리 병원. 설명하자면 우리 병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김종대가 차를 돌려 다시 돌아온거야.
"변백현한테 사과하고 와."
"어?"
"생각해 봤는데,"
김종대가 병원 정문 앞에 차를 세웠어.
"사과하고 얘기해. 너도 그럴 생각이잖아."
"어, 그렇긴 한데.."
"좋은 소식을 뭐하러 끌어. 얼른 가."
김종대의 등쌀에 밀려 어버버하며 차에서 내렸어. 나 지금 무슨 말 할지 정리 아직 안됐는데? 변백현이 나 보고 모른 척 할 수도 있는데, 오늘 하루 종일 모른 척 하던데..불안함에 자꾸 뒤를 돌아보았지만 김종대는 가라며 손을 휙휙 저어댔어. 무언가에 홀린 것 처럼 나는 로비까지 걸어들어갔고, 신기하게도 나를 기다린 것 마냥 로비 앞에 서있는 변백현이 눈에 들어왔어.
"어, 백현아.."
내가 어색하게 웃으며 백현이를 불렀고 백현이는 자길 부르는 소리에 피곤한 눈을 치켜떴어.
"...너, 퇴근 안 했어?"
변백현은 기다린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듯 정말 당황한 것 같았어.
"아, 김종대.."
그리고 조용히 흘러나오는 김종대의 이름에, 김종대가 백현이를 여기로 불렀구나 하고 추측했어. 아까보다 몇 배는 더 피곤해보이는 모습에 나는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입술만 달싹였어. 예전처럼 나를 보자마자 웃어줬으면 나도 웃음을 흘리며 미안하다고 말 했을 텐데, 백현이의 모습은 차갑기 그지없었거든.
"어, 그러니까.."
괜한 손가락만 만지작거리며 앞에 서있는 내게 백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미안하다고 해야되는데 분위기가 너무 딱딱해서 그런지 입도 떨어지지 않고 울면 더 싫어할테니 눈물도 꾹꾹 눌러참고 있었어.
"들어가. 나 가봐야해."
결국 백현이가 지친 목소리로 먼저 입을 열었고 먼저 등을 돌렸어.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백현이의 모습이 지친 모습이었으니까 이번에도 난 잡지 못하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백현이를 보아야했어. 백현이가 네 걸음 즈음 걸어갔을까,
"야, 변백현."
아까까지 듣고 있었던 익숙한 목소리가 내 귓전을 때렸고, 백현이는 뒤를 돌아봤어. 그리고 내 앞에는 김종대의 뒷모습이 나타났지.
"..급한 일이 이거였어?"
"내가 언제 너네 싸웠다고 마음 쓰여하는 거 봤어? 옆에서 재밌다고 구경을 하면 구경을 했지, 내가 한 번을 끼어든 적이 있었냐고."
김종대는 속이 터지겠다는 듯 변백현에게 속사포처럼 말을 쏘아댔어. 백현이가 두 눈을 질끈 감았고 김종대가 왜 저 난리를 치는지 알고있는 나로서는, 그냥 발을 뒤쪽으로 살짝 옮겼어.
"내가 얘기했잖아."
"..."
"얘가 잘못한 거 아는데, 한 번만 져주라고."
김종대가 또 언제 변백현한테 연락을 한 건지, 나는 불편함에 입술을 물어뜯었어. 그리곤 김종대는 다시 내게 걸어와 손에 들린 가방을 건넸어.
"아무리 급해도 가방을 놓고 내리냐."
억지웃음을 지어보인 김종대는 내 어깨에 가방을 걸어준 뒤 그대로 로비를 빠져나갔어. 나는 멍하니 김종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내 발치로 시선을 옮겼어. 아무래도 아직 백현이를 똑바로 쳐다보기엔 조금 불편했으니까.
백현이도 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지 발끝으로 톡톡 바닥을 치기만 했어. 결국 내가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었는데, 그 때 내 눈에 보인 건 백현이 뒤에 서있는 간호사, 그러니까 오늘 본 산과 간호사였어.
"어..!"
그 간호사는 나를 보자마자 반가운 듯 발걸음이 빨라졌고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손을 내저었지. 지금, 그럴 분위기 아닌데..!
"선생님!!"
하지만 내 빠른 손짓을 보지 못했는지 열정넘치는 그 간호사는 내 앞까지 와버렸고, 백현이의 존재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듯 했어.
"아까 찾아갔다가 퇴근하셨다고 그래서 내일 드리려고 했는데-."
밝게 웃은 간호사는 자기 주머니를 뒤적거렸어.
"여기서 다 만나네요! 아, 어쩐지. 이걸 괜히 주머니에 넣고 싶더라니!"
몇 번의 뒤적임 끝에 간호사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분홍색 수첩, 그러니까..
"아.."
산모수첩이었어. 나는 당황스러움에 두 손으로 수첩을 받아들고 입을 쩍 벌렸고, 슬쩍 백현이를 쳐다보니 백현이도 내 손에 들린 수첩에 시선이 고정되어있었어.
"제가 쌤 담당 간호사에요. 저 처음 맡아봐요! 제 환자!"
"아..처음,처음.."
저도 처음이에요..이런 당혹스러운 상황..
"제가 여기 안에, 담당 간호사란에 글 적어놨어요. 가셔서 혼자 보세요, 그리고 요기 안에 써있긴 한데, 다음 진료 날짜 삼일 뒤니까 꼭 꼭 오셔야해요!"
그 때 안오시면 제 듀티랑 뒤틀릴 수도 있단 말이에요-, 하며 해맑게 말하는 간호사를 보니. 정말 넘치는 열정이 눈에 보이는 듯 했어. 수첩 안에 적어놨다는 글도 수줍다는 듯 헤헤 웃으며 말하는 걸 보니 귀엽기도 하고, 그러니까..이 해맑은 간호사 덕에 지금 모든 사실이 알려졌다 이거지.
"아, 씨피알 같은 거 절대 금물! 한 번만 더 그런 거 하시면 담당의사한테 일러요-, 저 그럼 가볼게요!"
그렇게 내 손을 부여잡고 이것저것 걱정거리를 말하던 간호사는 쌩하니 가버리고 나는 백현이에게 천천히 시선을 옮겼어.
"어, 그러니까.."
백현이는 입을 반쯤 벌리고 멍하니 나를 쳐다보고 있었어.
"삼일 뒤에.. 같이 갈래?"
ㅡ
"아, 좀. 배 터지겠다니까."
"아-, 아. 얼른. 아! 아 해!"
"배 터진다고! 너 내가 애 낳기도 전에 배 터져 죽었으면 좋겠어?"
"자기야, 말을 어떻게 그렇게 무섭게 해.."
그러니까 그거 내려놔, 내 단호한 말에 백현이는 수저를 내려놓았어. 아까 로비에서의 중대발표 직후, 백현이는 그대로 휴대폰을 꺼내더니 종인이에게 전화를 걸었고 곧 종인이가 차키를 가지고 내려오자 자기 가운을 벗어 넘겨버렸어. 그리곤 바로 차를 타고 온 한정식 집에서 자기는 한 술도 뜨지 않고 내 입에 밥과 반찬을 우겨넣기 바빴지.
"배 많이 불러?"
"응, 나 이제 힘들어."
"힘들어? 그럼 안되지, 그만 먹자."
"그래..좀 그만 먹자."
"또 먹고 싶은 거 있어?"
"없어, 너 안 들어가도 돼?"
"아이스크림? 아, 너무 차가운 건 안되나? 그럼 케이크? 아, 단 거 많이 먹으면 임신당뇨와, 안돼. 그럼 따뜻한 초코먹으러 갈까?"
배 터지겠다고. 다시 팔불출로 돌아온 변백현은 예전처럼 내가 무슨 유리조각이라도 되는 것 마냥 행동했어. 평소에도 이 난리를 쳤는데, 애까지 가졌으니 어련하겠어.
"그냥 집 갈래, 너도 얼른 병원 들어가."
아무래도 난 백현이가 아까 그냥 병원을 뛰쳐나온 게 맘에 걸려서 계속 불편했거든.
"내가 다 손 쓰고 나왔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집으로 갈까?"
결국 나는 집으로 이끌려가 강제로 침대에 눕혀졌어. 자기 씻고 나올 때까지 손끝하나 움직이지 말라는 백현이 말에 정말 꿈쩍도 않고 누워있다가 시원한 물 한잔 들이키고 싶다는 생각에 주방으로 가 냉장고 문을 열었어.
"참나.."
냉장고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건 각종 숙취해소 음료에, 숙취해소에 좋다는 우유에 토마토에..웬 냄비가 들어있어 열어봤더니 빨갛게 끓여놓은 김치국이 들어있었어. 하나하나 구경하면서 열어보고 있는데, 백현이가 다 씻었는지 화장실에서 나왔어.
"이제야 열어보는거야?"
수건으로 머리를 툭툭 털면서 냉장고로 다가온 백현이가 뒤쪽에서 내 어깨에 턱을 올렸어. 귓가에 간지럽게 닿는 목소리에 결국 웃고 말았지.
"나는 매일 열어봤는데. 자기가 이거 먹었나, 안 먹었나."
"말을 하지.."
"열 때마다 그대로 있어서 내가 얼마나 애태웠는지 모르지."
처음으로 화가 난 백현이를 보았는데, 그 백현이 조차도 이렇게 냉장고를 그득그득 채우고 있었을 걸 생각하니 마음 한 쪽이 아릿해지는 느낌이었어.
ㅡ
여러븐..진정 진정..여기 욕 가능이었으면 변백현 개새끼가 아니라 여주개새끼가 나왔을듯..!
여주가 물론 뭔가 무지하게 나빠 보이긴 하지만 그리고..뭐..나쁜 거 맞는 것 같기도 하고..글킨 하지만..그냥 전형적인 사랑받고 싶어하는 여인네가 아닐까..합니다..
그..뭐..배켠이 잘 하긴 하지만..확인받고 싶어하는 게..보통 여자의 맘..아니겠읍니까..
제 친구는 회사원이랑 만나면서도..점심시간에 연락 안 했다고 생난리를 치던데..여주 정도면..뭐..보살..아니겠읍니까..
물론 뭐.. 여주 짜증이 날로날로 치솟아 이제 병원을 폭파시킬 정도가 되어버렸지만..
아니 그리고ㅋㅋㅋㅋㅋㅋㅋㅋ무슨ㅋㅋㅋㅋㅋㅋㅋㅋㅋ바로 71화까지만 해도 여주 싸잡아 죽일 것 같던 분들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배켠이 몇마디 했다고 바로 여주맘 돼서 우리 여주 부둥부둥 하고 있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주 귀엽네요 ㅎㅎ 뿌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