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상이몽
w. 옥수수소세지
Q. 아내가 가장 예뻐 보일 때는?
"딱 한 순간을 골라요? 얘 맨날 예쁜데?"
"어우- 진짜 왜 저래애애애애!!!"
(머쓱) "와 ㅎㅎ 겁나 싫어하네."
Q. ㅇㅇ 씨라도 남편이 가장 예뻐 보일 때 골라주세요.
"전 바로 고르죠.
남편은 저런 말 안 하고, 발 닦고 조용히 잘 때가 제일 예뻐요."
"또, 또. 나만 진지했어 또."
"삐쳤슈?! 넝담~ㅎ
우리 지훈쓰는 자기 일할 때가 제일 예쁘지잉!"
EP. 02: 부부의 본업
주지훈. 다들 아시잖아요.
열아홉 살의 어린 나이로 모델계에 성공적인 데뷔 후, 첫 주연작인 <궁>을 시작으로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채우며 세계적 그리고 문화적 신드롬을 일으키던 최정상급 톱배우. 대중문화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을 만큼의 화려하고 치열했던 청춘을 보낸 그는 드라마와 영화, 뮤지컬 공연과 광고 등 다양한 연예 분야에서 흥행이 검증된 독보적인 커리어를 이루었죠.
주지훈 씨는 제가 서른일곱 살이 되던 해에 깜짝 결혼 발표를 했습니다. 온 세계가 들썩이며 놀람도 잠시, 그는 넘쳐흐르는 축복 속 가족과 각별한 지인들 몇만 초대해 소소한 스몰 웨딩을 올렸어요. 사진 작가인 아내가 공개한 결혼 촬영 사진을 마지막으로 주지훈 씨는 잠정 연예계를 떠난 후 그 어떠한 방송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죠. 당분간은 함께 식을 올린 제 아내에게만 집중하고 싶다며 개인 SNS 계정에 간간히 올라온 아내를 향한 다정한 글과 애정 넘치는 피드 외에는 이 프로그램이 첫 복귀작인 셈입니다.
오? 그런데 인터뷰 촬영 못지않게 힘을 준 그가
이런 삐까번쩍한 촬영장에는 무슨 일이죠?
"..."
"어쭈? 주지훈 조금 긴장했는데?!"
"아니요오? 아마추어도 아니고 누가요?! 껌이죠."
"그쵸오? 제가 잘못 봤나 보네요. 그럼 5분 있다 나오세요."
"잠깐만요. 그냥 나가요? 나 조금 떨고 있는 거 같은데?"
"아 오케이- 빠쉐."
역시는 역시인가 봐요.
남편은 분명 입술을 내밀었지만 아내는 아랑곳 않고 주먹을 내미네요. 저희가 봤을 때 저거 백 프로 일부러 저런 거예요. 아내 바보 주지훈 씨는 떨리는 입꼬리를 숨기며 마지못해 주먹을 부딪칩니다. 어라? 조금 힘이 실린 것도 같네요. 뾰로통해진 표정을 보니 제 마음에 안 드는 건 확실해요. 힙하게 고개를 끄덕이던 아내 ㅇㅇㅇ 씨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아주 발랄하게 대기실을 나갑니다.
지훈 씨, 울지 말아요. 아직 카메라 돌거든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저들의 결혼 생활을 공개함과 동시에 높은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매 순간의 시청률 멱살을 잡고 이끌어가시는 이 부부는 남편은 물론 아내까지 화보와 광고, 예능계의 쇄도하는 러브콜을 받는 중이에요. 오늘 이 곳은 자칭타칭, 집안 빨래요정 주지훈 씨의 섬유유연제 광고 포스터 촬영을 담당하게 된 사진작가 ㅇㅇㅇ 씨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세트장입니다.
홀로 토라진 것도 잠시 세트장으로 나온 남편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주변을 탐색하더니 또 금세 설레이는 미소를 그리며 쫄래쫄래 어디론가 걸어가네요. 아내 껌딱지가 가길 어딜 가겠어요. 마지막 촬영 정비를 전검하며 주변 스태프들과 분주하게 움직이는 아내의 허리에 자연스레 제 두 팔을 감아 그 큰 키를 구부정하게 접어 가며 어깨에 볼을 부비적거리기 시작합니다. 샵에서 받은 머리와 화장이 무너진다며 가볍게 남편을 타박하는 아내의 모습, 그런 잔소리 마저도 좋아 죽겠는지 헤벌레 웃는 남편의 모습이 이제는 익숙해지려고 해요.
"작가님 너무 잘 먹었어요."
"진짜 감사해요, 완전 맛있었어요."
"저 요즘 두 분 보는 재미로 동상이몽 봐요,
너무 예쁘게 사시는 거 같아 부러워요!"
"아니이 그냐앙! 우리 남편 잘 봐 달라구요."
"어우, 뭐야! 저 작가님이 이렇게 수줍어 하시는 거 처음 봐요!"
"작가님이 손수 만드신 도시락 조공이라니..
진짜 세상 오래 살고 봐야 돼..."
"우리 작가님이 내조를 할 줄이야, 지훈 선배님은 좋겠어요."
"좋아 죽죠, 아주. 난리나요 진짜."
하늘 끝까지 치솟은 남편의 광대와 어깨 좀 보세요.
어우- 저기로 등산가도 되겠어요.
끼리끼리 만난다는 거 정말 거짓말이 아니에요. 물론 화면상 보여지는 것은 늘 당도 초과인 남편의 주접과 덤덤하다 못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급의 필터링으로 지치지도 않는 애정 폭격에 있어 이미 도가 튼 아내지만 기나긴 관찰 결과 후, ㅇㅇㅇ 씨도 만만치 않은 남편 덕후예요. 그저 사랑 표현에 있어 끝판왕인 지훈 씨에게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것 뿐.
남편 피셜, 아침잠이 이렇게 많은 사람은 처음이라던 아내는 오늘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부엌에서 홀로 뽀시락뽀시락 바삐 움직이며 스태프들에게 돌릴 도시락을 넉넉히 만들었답니다. 손이 큰 게 이럴때는 또 도움이 되네요. 오랜만의 단독 촬영으로 혹여나 남편이 풀이라도 죽을까 긴장을 풀어주려 준비한 소박한 내조였죠. 게다가 예쁘게 차곡차곡 쌓인 도시락 안을 잘 살펴보니 반찬은 하나도 빠짐없이 죄다 남편 취향이던데요. 카메라 끄라고 할까? 덕분에 오늘 아침에는 매우 심각한 19금 레벨의 뽀뽀대란이 일어났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미방용이에요.
좋은 건 저희만 보겠습니다. 죄송해요.
작업 중에는 늘 예민하고 칼같이 차가운 모습만 보이던 ㅇㅇ 씨의 색다른 모습을 본 스태프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하네요. 갓지훈이 사람 하나 구제했다고 감사하다며 절이라도 할 뻔 한 거 간신히 참았대요.
하지만 너의 사랑, 나의 사랑 주지훈 씨가 누굽니까.
매일 제게만 한정적으로 하찮아지는 남편 덕에 아내가 잠시 깜빡 잊은 게 있다면 수십 년간 쌓아 온 톱모델 클래스 어디 가시질 않았다는 거죠. 걱정은 매우 불필요했어요. 카메라 앞에서 아주 날아다니시던데요? 어색하고 뻣뻣한 거 하나 없ㅇ, 아! 다만 좀 아쉬운 점이라 하면...
"여보 손가락 여기 되게 귀엽다아 ㅎㅎ"
손까지 들며 비장하게 잠시만요- 를 외치더니 한다는 말이 셔터 위에 올라간 제 아내의 손가락이 너무 귀엽다며 또다시 한 번 사랑에 빠진 남편으로 인해 NG
"나 어때? 멋있어?"
시종일관 여보와 자기야를 입에 붙힌 채 화장을 수정하면서까지도 지금 저가 잘 하고 있냐며 칭찬을 갈구하던 거대한 댕댕이 한 마리 덕에 또 NG.
"..."
모델이라는 작자가 카메라를 잡아먹지는 못할 망정 티끌 하나 없이 순수한 눈동자는 자꾸 그 너머에 있는 아내만 찾으니 결국 참다못한 ㅇㅇ 씨가 이씨 야- 주지훈. 집중 안 하냐? 라며 폭발한지라 NG.
네. 길어야 세 시간이면 끝났을 촬영은 약 다섯 시간하고도 47분이 지나서야 마칠 수 있었습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도시락을 안 받았을 거라는 스태프들의 원성은 이해합시다. 저세상 텐션의 꽁냥꽁냥질을 실시간으로 마주한 그들을 위한 배려라고나 할까요.
촬영의 끝을 알리는 수고하셨습니다- 로 함께 박수를 주고받다, 뜨거운 조명 아래서 고생했을 남편에게 다가가 손수건을 건네는 아내. 그런 아내를 눈에 담은 남편은 언제 힘들었냐는 듯 또 베시시 함박웃음을 짓네요.
역시 본업할 때 제일 멋진 두 분, 열일하셨습니다!
제 남편의 얼굴인지라 괜히 더욱 세심하고 꼼꼼하게 모니터링을 하던 아내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남편은 한참이 지나고서도 저를 봐주지 않자 찾아온 지루함을 못 이긴 채 아내에게 치대기 시작합니다.
아내의 뒤에 찰싹 붙어 서 머리카락을 괴롭히길 두어 번, 다음은 또 무얼하는 것인지 저 혼자 핸드폰을 보며 꼼지락꼼지락거리던 남편이 이따금 해맑은 미소로 제 아내를 부릅니다.
"여보."
"응?"
"그만하고 나랑 데이트하러 가자. 밖에 비온대."
대체 비랑 데이트가 무슨 상관이죠..?
이 부부 정말 질리네요.
EPILOGUE.
Q. 첫 만남은 들었으니 됐고 프로포즈는 어떻게 하셨나요?
"이분, 저랑 딱 세 번째 만남에 프로포즈한 거 아세요?
아- 이렇게 웃으면 안 되는데."
Q. 정식으로 교제한지 3일만에요?
"아뇨. 저희 처음 본 날, 그리고 술자리 한 번.
그 다음 날 해장할 때. 딱 세 번째 만남에요.
다들 놀라긴 하시더라구요.
아니- 뭐. 얼마나 만난지가 그렇게 중요한가?"
"맞아. 우리가 좋다는데 어쩌겠어요."
그대들...
일단 제가 대가리를 밖고 시작할게요.
알아요. 오늘 좀 재미도 드럽게 없고 많이 짧은 거.
근데 조금만 기다려요.
다음 편 과거 시점이라 배로 길 테니까.
재미는 제가 한 번 부탁해서 걔도 데리고 올게요
그럼 금방 다음 편으로 만나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