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영역에 총구를 겨누다.
-2부-
월계수의 왕관을 쓸 승자.
Two Hearts.
w.그루잠.
-12# 모든 것이 망가질 때.
내 안을 다 헤집어 놓은 전정국이 여러 번째 사정을 끝내고 빼냈다. 김태형이 입혔던 흰 블라우스에 애액을 닦고 차분히 옷을 입는 전정국이 희미한 시야에 아른거렸다. 개새끼. 씨발 새끼.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 안으로 웅얼거리며 욕하고 있는데 무자비했던 전정국이 내게 다가와 내 위로 올라탔다. 체력이 다하여 거의 정신을 잃을 정도로 당했던 나의 두 손을 침대에 묶은 두 개의 수갑을 풀었다. 그리고 와당탕. 손목을 억압하던게 풀리자마자 어디서 힘이 솟구쳤는지 바로 전정국을 밀어내려고 했다. 하지만 일부러 내 발을 묶은 수갑은 제외하고 잠금을 푼 전정국은 내 위에서 빠르게 내려와 자신의 정장 자켓을 들고 창문 가로 한 발 내딛었다. 통쾌하게 웃으며. 침대시트 밑 칼을 꺼내 전정국을 찌르려 했으나 발이 묶은 걸 깜빡하고 침대에서 허공을 찌르곤 떨어졌다. 칼은 제 기능을 잃고 손에서 멀어진지 오래, 살이 없는 팔꿈치에 큰 피멍이 들고 창문에 여유롭게 올라간 전정국을 올려보았다. 전정국의 손가락에 잡혀 흔들리는 키. 아무 것도 못하다 발악하는 내 모습이 웃기다는 듯 호탕하게 웃던 놈이 벌거벗은 몸 앞으로 키를 내던졌다.
찰카락거리며 바닥에 떨어진 키가 바로 내 앞에 보이고 눈을 날카롭게 떠 죽일 듯이 노려 보니 또 네 놈이 뱉는 말. 그 말에 바로 키로 손을 뻗어 잡고 내 발의 수갑을 풀어재꼈다.
"뭐 잡아볼거면 잡아보던가. 아니지, 평생 보게 될 사일텐데 죽여서야 되겠어?"
그 꼴로 말이지. 내가 발을 묶은 수갑을 풀은 후 빠르게 옆에 뉘인 칼을 쥐고 죽일 듯이 창문가로 달려들자 전정국이 창문에서 달빛이 일렁이는 검은 바다로 뛰어내렸다. 풍덩. 엄청나게 높은 높이에서 떨어진 전정국이 잠시 후에 수면 위로 올라와 창문 가에 팔을 짚고 내려다보는 나를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옆 바다 위를 달리는 스쿼터로 축축한 몸을 싣고 시동을 걸었다. 부웅하고 물을 뿜는 스쿼터는 앞으로 점점 속도를 내며 나아갔다. 그리고 허망하고 추악함에 빠져 혼란스러운 나는 저 멀리 전정국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자 스쿼터의 머리를 잠깐 뒤로 돌려 눈길을 마주했다. 씨익 웃으며 내 안에 넣어 적셨다 다시 원 색으로 돌아온 장미를 품에서 꺼내 입에 문 전정국은 처절하게 무너지는 표정을 보곤 등을 돌려 바다의 물살을 가르며 떠났다. 힘이 죽 하고 빠진 난 주저 앉아 창문 가의 벽에 기대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더러워졌다. 추악하다. 방심한 탓에 끝까지 당한 나는 과연 여기, 크림슨하트에 계속 머물러도 될까. 명성에 먹칠을 하고 아버지, 민윤기의 얼굴에 빨간 선을 그은 듯 해. 죄책감에 무릎을 팔로 감싸 더욱 얼굴을 묻었다. 지민 선배... 김태형. 강간을 당하는 도중 김태형의 탓을 한 내가 가소롭게 느껴졌다. 20년동안 배운 살인의 기술과 내공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기분. 김태형의 잘못이 아니다. 결국 내 잘못이지. 처신을 못한 내 잘못. 내가 더러워져서 내일 어떻게 김태형의 얼굴을 마주할 지 두려워졌다. 그 자식이 선배한테 말하면 어떡하지. 그렇게 된다면 김태형은 날 어떻게 생각할까. 분명 더럽다고 생각할거야. 지민 선배도 마찬가지고. 아버지는 날 외면할지도 몰라. 그리고 난 크림슨하트에서 쫓겨나겠지.
계속 머리에선 악순환의 상황이 펼쳐지고 끊임없이 맴도는 비극의 결말에 밤새도록 목 매이여 울었다. 내 편 모두를 믿지 못하는 내가 너무 불쌍하고 초라해서 앉아서 울다 잠든 게 그게 끝이다. 새벽 달 빛이 창문 안으로 들어와 개 판이 된 방 안 침대를 비췄다. 나뒹구는 김태형이 입혀준 흰 블라우스와 더럽게 애액으로 묻어서 엉망진창이 된 하얀 이불. 그것들도 엉망이었고 내 머릿 속이나 배 안이나 다 엉망이었다.
*
놈의 도발과 어제의 과한 관계 때문에 제정신도 아니었을 뿐더러 무자비로 당한 몸도 한 번 건들면 부서질 듯이 아팠다. 하지만 오늘부터 훈련을 나가야 했고 지민 선배나 태형 선배, 보스와 함께 작전을 짜야했다. 아침에 바닥을 기어 굳은 몸을 풀려고 하자 몇 번 털썩거리며 주저 앉았다. 제기랄. 꾸역꾸역 일어나 붕대로 몸을 다시 둘렀다. 옷장에서 검은 정장 바지와 흰 와이셔츠만 꺼내 입기로 했다. 몸 위로 뭔갈 더 얹으면 정말 무게를 못 이기고 쓰러질 것 같았으니까. 와이셔츠의 단추를 모두 잠가서 검정 넥타이를 힘없이 둘러 맸다. 끊어질 듯한 허리에 인상을 썼지만 누군가 내 방으로 들어온다면 그건 최악이니까 침대 시트를 전용 요원을 부르지 않고 욕조에 쳐박아 물을 틀어 적셨다. 머리가 아파. 속도 만신창이야. 허한 공복을 달래며 찬 물로 세수를 했다. 도대체야 죄책감을 견딜 수가 없어 세수를 하다 벅차올라 또 울었다. 물을 끄고 마주 본 거울엔 창백해 보이는 한 남자의 눈이 빨갰다. 숫이 많이 없는 앞 머리가 물에 젖어 뚝뚝 물방울을 흘렸고 짧았던 머리카락이 귀를 조금 덮었다. ...머리카락 잘라야겠네. 면도칼로 머리카락을 칼같이 잘라냈다. 바닥에 떨어지는 짧은 머리카락에 슬퍼졌다. 단정하게 잘 잘려진 머릴 확인하고 아픈 허리를 굽혀 더러운 바닥을 호스로 다 씻어내렸다. 그리고 등을 돌려 본 시계는 7시를 조금 넘긴 시각을 보여준다. 선배들과 얼굴을 마주해야 될 시간. 어쩌자고 내가 그 새끼를 살려서 보냈을까. 나도 내가 이해가 안 되는데 그 사람들은 오죽하겠나. 마주하고 대화해야 하는 내가 더러워서, 김태형에게 미안해서 아마 그의 눈도 제대로 쳐다보질 못할 거다. 침착하게 눈에 맺힌 눈물을 닦고 건조한 채로 방을 나가 문을 닫고 복도로 눈을 돌리니 김태형이 서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을 찰랑거리며 날 돌아본 선배에 바로 눈을 깔았다. 역시나. 해맑게 미소 짓는 선배가 내 앞으로 빠르게 걸어와 내 얼굴을 들어올렸다. 어디 아픈데 있어? 아님 부끄러워서 그래? 피했던 눈을 잠시 맞추고 다시 내리깐다. 김태형, 선배 상태가 더 안 좋아 보였다. 당신의 속을 썩게 해서 미안하다. 분위기가 안 좋음을 느꼈는지 입꼬릴 내리고 내 얼굴에서 손을 뗀 김태형은 열리는 엘레베이터에 탔고 나도 그를 따랐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저 넘길 수 있는 문제였는데...
구내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도중 구역질이 나왔다. 입술을 깨물던 김태형이 보다 못해 밥을 꾸역꾸역 먹던 내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 자리에서 먹던 지민 선배도 먹던 스푼을 내려 놓고 우릴 올려다 봤다.
"치료 받아."
"...안 됩니다."
"치료 받으라고!!"
"못 합니다."
"도대체 너 왜 이러는 건데?!"
"......"
화가 날 법한 태형 선배. 좀 전부터 걱정이란 걱정은 다 해줬지만 반사적으로 공이 날라오면 배트로 깡 하고 치듯 다 거부했다. 어제 허리는 괜찮냐 물어보면 새벽 그 씨발 새끼가 생각나 입을 닫았고 장난스레 내 셔츠를 들추려고 하면 김태형을 세게 밀었다. 그리고 파이널로 김태형이 내 생각이 나 하나 가져왔다며 내게 건낸 빠알갛고 싱싱한 장미 한 송이를 주자 전정국때문에 화가 치밀어 손에 힘이 들어가 의도치않게 머리를 따버렸다. 툭. 장미가 떨어지자 김태형의 표정이 티나게 굳어졌고 나도 수습하는 방법을 알 길이 없어 아... 죄송합니다라는 같잖은 사과밖에 못했다. 그러자 김태형은 허리를 굽혀 장미를 주웠고 내게 등을 돌려 쓰레기통으로 장미를 던졌다. 분위기를 풀려고 애써 노력하던 선배는 밥을 먹으면서 헛구역질을 하는 나로 인해 폭발했다. 의료 요원한테 치료 받아. 아니요, 그렇겐 못합니다. 밥을 먹다 말고 실랑이를 벌이는 우리에 지민 선배가 식탁을 쾅 하고 내리쳤다. 사랑 싸움은 전쟁이 끝난 뒤에나 해.
결국 고집에 진 태형 선배가 내 손목을 놓고 나즈막하게 말하고 식당을 나가며 문을 쾅 닫았다.
"그거 알아? 네 손목 너무 야위었어. 그걸 보는 내 입장도 생각해줬음, 좋겠는데."
지민 선배는 저번 일 같다고 생각하고 아무렇지 않게 다시 밥을 먹었다. 나도 더이상 밥 먹는 건 무리라 생각하여 짧게 물만 마시고 식사를 끝냈다. 더 먹지. 차분하게 권하는 지민 선배에게 희미하게 미소를 보여주고 힘들게 걸어나왔다. 문제는 나에게. 당신은 여전히. 고쳐야 하는 내가 바라는 당신의 반응이 뭔지 모르겠지만 아니야 이건. 날 방치라도 해줘. 아님 더 갈등이 생긴다면 내가 견디질 못할 것 같아.
자그마치 전쟁 전 남은 일주일 중 4일 동안 태형 선배와 눈을 마주치지 않고 훈련에 빠짐없이 나갔다. 남은 시간은 고작 하루. 그리고 날 하염없이 바라보는 태형 선배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내가 바라던 방치는 이게 맞는가? 여전히 의미모를 아픔은 사그라지지 않았고 나는 계속 해서 목표물을 향해 총을 쏘다 팔에 든 멍이 깊어졌는지 아파 와 움찔 했다. 다시 울컥, 올라오는 토같은 느낌에 밖으로 뛰쳐나갔다. 갑갑하게 숨을 조여온 회색 방에서 나와 복도 끝 난간에 매달려 구역질을 했다. 얼마 먹지도 못한 음식물을 뱉어내고, 또 뱉어냈다. 총은 처량하게 내 옆에서 바닥으로 떨구어졌고 뒤이어 내 뒤로 가까이 걸어오는 태형 선배에 난간에 몸을 뉘였다. 헉헉 거리며 숨을 거칠게 내 쉬다 몸을 웅크리고 김태형에게서 눈을 돌렸다. 나에겐 미안한 감정뿐이야. 당신을 미워하는 게 아니고. 김태형. 너도 알잖아. 당신은 잘못한 게 없다는 걸. 종내에 날 안아줄 사람이라서 울컥했다. 내게 가까이 앉아 내 등을 쓸어주는 손길에 붉은 눈으로 김태형을 올려다 봤다. 검은 머리, 피곤해보이는 눈 밑. 힘들었겠지. 아니, 힘들었지. 정말 미안해... 이런 나라서. 그의 품으로 돌아가 안겨서 펑펑 울었다. 미안해. 너무 미안해서 어떻게 표현 할 수가 없었어. 입 밖으로 말할 수 없는 사정에 힘들게 만들어서 미안해.
당신의 말에 너무 벅차서 눈물을 쏟으며 날 놓지 못하게 품을 파고 들었다. 날 놓지 말아주세요. 다 알게 되어도 놓지마. 부탁이야. 내 등을 안아주며 머리를 만져주는 김태형이 비실거리며 웃었다. 힘없이 들리는 숨소리에 울음소리를 억누르며 흰 셔츠만 적셨다. 우리 머리 위로, 번개 소리가 들리더니 물방울이 하나 하나... 떨어진다.
선배, 오늘 뿐이야. 우리가 정상적으로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이.
**
김태형의 손을 잡고 올라간 보스의 방이 있는 층에서 엘레베이터가 멈췄다. 열리는 엘레베이터 문. 잡은 손을 놓고 보스의 방 앞으로 걸어가 노크를 하고 들어오란 소리가 들리자 문을 열었다. 안에 커다란 테이블이 중앙에 배치되어있었고 12시 방향으로 앉은 보스가 남은 두 자리로 눈짓했다. 조심히 앉아 앞에 앉은 지민 선배가 비장한 표정으로 앉아 깍지 낀 두 손을 테이블 위로 올리고 있었다. 나란히 앉자 보스가 이번 전쟁에 대한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정신 똑바로 차려. 얼마 남았다고 멍때리는 거야. 너네 정신이 있는거야, 없는거야?"
다 제대로 안 되면 모든게 끝장이야. 그딴 정신머리론 괴물한테 쳐잡아먹혀서 소화되던지 저 새끼들 손에 죽던지, 둘 중에 하나가 되겠지. 잘 들어. 두 번 말 안 해.
지민 선배와 나, 김태형은 큰 지도 위로 움직이는 보스의 검지,중지를 따라 눈을 빠르게 움직이며 귀를 세웠다.
지도에 그려진 삼각지대, 버뮤다. 저 안 원 모양으로 위치한 섬 6개. 우리가 들어가야 할 곳은 오른 편 3개의 섬과 라이언하트의 기지. 저번에도 지민이가 전해줬다 시피 되새김질 하는 내용이다. 버뮤다 삼각지대는 모든 국가의 금지 구역. 내가 알지 못했던 마피아들의 주요 일들. 그 중 최고의 크림슨하트나 라이언하트는 그런 세계의 위험구역을 한다. 바다의 왕과 육지의 왕. 고래는 바다를, 사자는 육지를. 전쟁의 지역을 고르던 중 모든 보스들은 그들의 소유지인 곳들 중 하나를 지목했다. 버뮤다 삼각지대. 대지에 있을 적 티비에서 보던 미스테리한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던 그 곳이다. 대서양쪽에 위치한 버뮤다 삼각지대는 세계인의 출입금지구역이다. 돌풍이 자주 일어나고 실종이 밥먹듯이 일어나는 금지구역. 그 구역 안 6개의 거대하게 넓은 섬. 그리고 그 안 괴수들. 변질된 고래와 사자. 그것들을 수호신이라고 부른다. 그들을 관리하려면 직접적으로 할 수 없었다. 그저 그들의 자취를 쫓아 존재만 확인할 뿐. 전쟁이 시작된 순간 우리를 암묵적으로 지키던 수호신들도, 적들을 지키던 수호신들도 무사하지 못해 서로를 깎는 전쟁이 될 것이다. 이제 전쟁이 시작됨에 두 심장을 고요히 지키던 그들이 눈을 떴다. 우린 버뮤다 삼각지대 안, 라이언하트의 공격을 피해 총 6개의 신성한 섬을 돌아야 해.
보스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바다의 왕은 바다와 육지가 정해줄 것이라고. 살아남기다. 위협적인 요소들을 피해 최종목표인 괴수들을 죽이는 것. 각자의 수호신을 죽이는 것. 그렇게 된다면 마피아로어들이 결과에 따라 패배자를 데리고 갈 거다. 바다 한 가운데 뜰 스크린은 전기를 응축해서 생중계를 하니 참고하도록. 이번엔 마피아의 요원들이 직접적으로 전쟁에 참여 할 수 없다. 어짜피 그들이 개입한대도 모두 섬 곳곳에 있는 괴수들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먹이가 될테니.
보스는 두 번째 연회에서 룰이 쓰여진 동봉된 문서를 지도 위로 펼쳐 읽었다. 갈색 상어의 피로 적힌 문서의 내용에 살짝 토기가 올라왔다.
"너희 세 명에게 주어질 것은 얼마 없어. 무기야 무한 제공이겠지만 그것도 한계지. 섬 안에서 도와줄 건 켜졌다 꺼졌다 하는 무전기로 도움을 줄 뿐이야. 여기서 기억해야 될건
첫 번째. 화상으로 연결이 되는 무전기와 전자 시계. 꼭 자주 보도록 해. 이어폰은 항상 끼고 있고. 환경이 환경인지라 잘 끊긴다. 무전기를 볼 수 없는 상황엔 이어폰으로 들으면 되니까 들을 땐 이어폰에 있는 작은 버튼을 누르면 돼. 괴물을 죽일 땐 꼭 무전기의 빨간 버튼을 눌러 인공위성으로 신호를 보내길 바라. 그렇지 않다면 너네가 괴물을 죽였는지 괴물한테 먹혔는지 알 수가 없어. 두 번째. 허기를 달랠 수 있는 약물과 소량의 물. 말 안 해도 알아서 건강 챙기도록 해. 해변으로 나왔을 땐 요원들 보내서 치료 가능하긴 하지만 과연 라이언하트 요원들이 가만히 두고 보고 있을까. 그러니 알아서 챙겨. 세 번째, 섬을 이동할 땐 요트 사용 못 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 그래서 간단히 스쿼터를 타고 다니도록. 기름은 100% 채워져있으니 모자랄 일은 없어. 잃어버리면 헤엄쳐서 이동하던지. 근데, 바다에 뭐가 사는 지 몰라. 잡아 끌어내릴지도 모르니 스쿼터 잃어버리지 않게 관리 해.
"팀을 나누지. 박지민은 솔로로 활동해. 김태형과 민탄소, 너네 둘은 파트너로 첫 번째 섬, '델타' 에 들어가. 빠른 시간 내로 괴물을 잡아서 처리해. 박지민은 무전기 켜질 때마다 내게 보고해. 화상은 기본으로. 박지민은 두 번째 섬, '엡실론'. 두 섬 모두 처리하면 그 후에 내가 무전기로 명령할 거니까 대기해. 합류 결정은 그 후 문제야."
김태형, 박지민는 지금 바로 8층 의료실 가서 진료받는다. 민탄소는 박지민이 말한 거 들었으니까 옆 방에서 요원한테 치료받아. 그럼 둘은 8층으로 가서 대기 하고 있어.
보스의 말을 듣고 일어선 두 남자는 의자를 제자리로 넣고 방을 나갔다. 아버지와 나 밖에 남지 않은 이 방. 문이 닫히자 마자 보스는 요원에게 연락했다. 내가 말했던 여자인 의사 대기하고 있지? 네 지금 바로 8층으로 내려오시면 될 겁니다. 다행이라는 한숨을 쉬고 보스는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떳떳하지 못한 나는 내가 아픈 원인이 설마 성에 관련인지 덜컥 겁이 나 테이블 아래로 주먹을 쥐었다. 일부러 치료 안 받는단 것도 크림슨하트 안 누군가 내 비밀을 알고 발설할까봐였는데 결국 이렇게 도장을 찍게 되었다. 전쟁이 바로 코 앞이라 그런지 김태형처럼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 보스는 눈은 느리게 깜빡이다 입을 돌처럼 닫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딸아, 난 네가 전쟁에서 손 떼면 좋겠다."
"..."
"어릴 때 부터 쇠고집이더니 마지막까지 우리 딸은... 끝까지 하고 싶은 걸 이뤄내. 좋아. 좋은데, 마지막으로 아빠가 부탁할게. 부탁하는 거 꼭 들어줘."
죽지마. 대답없이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난 죽지 말라고 부탁하는 아버지의 말에 아이러니하게도 김태형이 생각났다. 정말 아이러니하게. 이만 간다며 방 문을 여는 보스의 뒤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라붙은 입을 떼어 말했다. 내가 한 말에 굳은 표정으로 돌아본 아버지와 눈을 제대로 마주한 나는 아버지의 기대를 져버리고 끝내 하고 싶은 말을 했다.
"김태형, 안에 핵 제거해주세요."
"......"
"전쟁에도 못 쓰게 됐는데 필요없잖습니까."
나와 오래 눈을 마주치던 보스는 아무 말 없이 눈을 피하고 방을 나가며 문을 닫았다. 그대로 나는 힘이 풀려 의자에 털썩 앉았다. 조용한 보스의 방, 나홀로 남아 고급진 붉은 벽지가 발린 벽에 걸린 정호석이라는 사람의 사진을 뚫어져라 봤다.
어느 건물에 기대어 풍선껌을 부는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내 쪽으로 시선을 두고 있는 사진. 언젠가 봤었던 얼굴인데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릴 적 크림슨하트 기지에 아버지를 따라 온 것은 생각이 나는데 아마 그 때 이 사람을 봤었던가. 김태형과 같은 핵을 가지고 크림슨을 위해 폭발을 자처했던 이 남자를 보니 눈물이 흘러 스윽 손등으로 닦았다. 내가 이 사람이 구해낸 크림슨하트를 망가뜨리는 것 같아 미안하고 서러웠다. 내가 하는 것에 따라 내 이미지가 결정된다. 장애물이 될 것이냐 아니면 자랑스러운 크림슨하트 일원이 될 것인가. 묵묵히 사진만 바라보다 알 수 없는 감정만 담고 일어서서 방문을 나가 8층으로 내려갔다.
흰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인상 좋아보이는 갈색 단발의 여자가 흰 가운을 입고 날 기다리고 있었다. 흰 침대에 누우란 여자의 말에 따라 구두를 벗고 올라가 누웠다. 갑자기 아려오는 배에 시트의 꽉 쥐었고 여자는 놀라 내 손을 잡아왔다. 어디가 아프셔요? 속,속이 안 좋... 인상을 지으며 구역질을 하니 속이 여러가지 이유로 아플 수 있어 종합정밀검사를 해보겠다며 일어서는 여자의 손목을 가까스레 잡았다. 걱정스럽게 보는 여자에게 고통을 참으며 물었다.
"대지,에서 오셨습니까?"
"네. 미국에서 연락받고 올라왔습니다. 크림슨하트 요원은 아니고 비밀리로 가끔씩 연락받고 오는 출장 정도라고 보시면 될 양 싶네요."
"... 이번 검사 결과가 나오면 식중독이라고 둘러대고 따로 결과는 저에게 비밀로 알려주십시오."
"당연히 환자님 뜻대로 하겠습니다. 걱정마시고 편히 누워주세요. 마치면 깨워드릴게요."
그제서야 마음을 놓고 누운 나는 눈을 감고 잠에 들어갔다. 이딴 치료로 모든 걸 잃고 싶지 않았다. 속은 아직도 아팠지만 조마조마했던 내 마음이 한결 나아져 오랜만에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방 문에 하얀 커튼을 치고 여러가지 검사 기계를 꺼내는 여자의 가운에 김아연이라는 이름표가 달려있었다. 저 옆방이 요란스럽다. 옆 방에선 김태형과 지민 선배는 뭘 하고 있을까. 쓸데 없는 생각이 들면서 가슴 위로 닿는 차가운 청진기 느낌을 마지막으로 잠으로 들어갔다.
"민탄소 옆방에 내려왔답니까?"
"그런가 보네."
부시시한 박지민은 눈 아래에 다크써클이 심해 링겔 한 대면 충분하다며 꽂고 옆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저 새끼 신발도 안 벗고 저리 올라가서 자네. 진료실 수술대에 올라가 정장 자켓과 흰 셔츠를 벗고 누워 왼 팔을 내미니 흰 수술장갑을 낀 보스가 집게로 흰 솜을 알코올을 묻혀 내 살 위로 비볐다. 그러다 살 안쪽 울퉁불퉁한 부분을 찾아 얇은 주사를 놓았다. 옆 방에 들리는 문소리에 괜히 안심이 된다. 창문 밖, 번개가 사그라 들었는지 조금씩 안개가 갠다. 내일 날씨는 아주 맑음. 죽기 좋은 날씨구나. 속으로 생각할 쯤 얇은 칼로 직사각형 칼집을 내어 살을 드러내는 느낌에 왼 팔로 내려다보니 네모난 칩이 보였다. 심장까지 연결된 칩에 달린 파란색, 빨간색 피복선이 상온에 드러난다. 그 것들이 칩을 꺼내면서 딸려 나왔다. 칩을 집게로 집은 보스는 부식된 부분을 다른 것으로 대체시키며 난데 없이 민탄소 이야기를 꺼냈다. 너 민탄소 여자 인거 알고 있지? 어디까지 나갔냐?
역시나 보스는 알고 있었다. 내가 처음부터 민탄소가 여자인 걸 눈치챌거라고 짐작한 분이니까 내게 민탄소를 맡겼겠지. 처음 민탄소를 본 순간, 보스가 무슨 생각인지 몰랐으나 그 정도는 알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민탄소를 보자마자 웃었고 보스가 재밌는 분이라 생각들었다.
무슨 꿍꿍이십니까?
무슨 꿍꿍이라니. 그냥, 궁금해서. 둘이 몰래 밑으로 손잡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았지? 뭐, 몰랐다치고 민탄소 어떻게 구워삶았냐? 너도 참 대단하다. 아버지인 나도 못꺾는 앤데.
피식 웃으니 어쭈 웃어? 라면서 피가 묻은 칩을 소독제로 닦은 보스는 코드네임을 연결할 수 있는 얇고 칩보다 조금 큰 장치를 들고 와 칩을 힘껏 박아 넣었다. 팔에 본격적으로 기계를 설치할 것인 모양. 하기야 칩이 계속 안에서 부패되는 것보단 나았다. 예전처럼 똑같이 불편한 감은 없을거야라며 체외로 나온 선들을 살 안으로 집어넣었다. 깔끔히 정리되고 피를 닦아낸 후 투명한 액체가 담긴 링거의 뾰족한 바늘을 반대쪽 오른 팔의 튀어나온 핏줄에 꽂으며 보스가 말했다.
"민탄소가 네 안에 있는 핵 제거해달라고 하더라."
...민탄소가? 안 될 줄 알면서 무모한 말은 한 민탄소를 생각하니 그저 웃음이 나왔다. 은근 귀여운 구석이 있다니까. 내 생각도 해줄 줄 알고. 그래도 내가 말했 듯이 그런 일 없게 우리가 잘 하면 돼. 피복선과 칩이 연결한 부분을 제외하고 살을 집은 보스는 수술대 위로 조명을 더욱 밝혀왔다. 우리 딸이 부탁하는 건 생애 처음 듣는데 말야.
점점 쏟아지는 잠에 눈을 깜빡거리면서 실없이 농담을 했다. 그래서 제거해주실 겁니까? 그에 와하하하고 웃는 보스는 뒤로 '제거'에 대한 아무 말을 하지 않으셨다. 나도 별로 기대는 없었어. 그저 딸바보이신 민윤기. 보스가 어떤 반응을 할 지가 궁금했을 뿐. 요 몇일간 나에게서 진짜 멀어질 것 같이 굴던 민탄소가 그저 다시 손에 잡혀주는 느낌에 웃었다.
보스가 보낸 신호에 들어온 의료 요원들이 수술 채비하고 들어왔다. 보스가 지시하는 말이 멍해져서 제대로 들리지 않고 수술 장비를 드는 요원들. 그 들 옆에선 기술자들이 장치에 무언가 입력 중이었다. 내가 저 위로 code name V를 입력하게 된다면 난 폭발하겠지. 위로 강한 빛을 뿜는 기계에 눈이 부셔 감았다떴다. 멀어져가는 보스의 목소리. 그리고 문이 닫혔다.
핵이 제대로 작동하는 지 검사할거야. 전쟁만 생각해. 내가 약속한 거 잊지 않았지? 보물을 주겠다고. 전쟁만 끝나면, 해피엔딩이야.
보스, 그렇습니다. 그러나 해피엔딩 전에 해프닝이 있어서 견디기 힘들 뿐입니다. 견뎌내야 얻을 수 있는게 행복인데 말이죠. 그러나 지금은 조금 지칩니다. 견딜 만한 정도지만요. 견딜만 합니다. 견딜만 해서 행복합니다. 아직 끝을 보지 않아서 말입니다.
위잉거리며 돌아가는 기계음과 핵이 부착된 심장 위 가슴 살에 차가운 칼의 끝이 닿고, 내 의식도 슬픔에서 인위적으로 끊겼다. 눈이 저절로 감기자 마지막으로 민탄소가 생각났다.
괜찮으려나.
내일부터 전쟁은 시작된다.
-12(1/2)# 모든것이 망가질 때.(완료)
-텍스트로 표현하는 괴물의 위치.
현재 4:4
α [알파 island] (고래)-라이언하트 δ [델타 island] (사자)-크림슨하트
[스크린]
β [베타 island] (고래)-라이언하트 ε [엡실론 island] (사자)-크림슨하트
γ [감마 island] (고래)-라이언하트 ζ [제타 island] (사자)-크림슨하트
[크림슨하트 기지] (마지막 고래) [라이언하트 기지] (마지막 사자)
위의 텍스트로 표현한 위치에 인물의 이동과 괴수가 처리될 때 마다 편의로 체크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파악된 섬의 형태도 간략하게 메모할 것입니다!
안녕하세요. 그루잠입니다.
정말 오랜만입니다. 쓰다가 울뻔 했네요. 너무 감격. 이렇게 슬럼프를 넘기고 또 하나 글을 썼다는 거에 굉장히 감겨규ㅠㅠㅠ감격스럽습니다.
시험기간동안 그렇게 오고 싶어서 참느라 힘들었는데 이렇게 정식으로 한 편을 올리며 독자님들을 만난다니 심장이 벌렁벌렁 #ㅅ#
좋습니다 ㅠㅠㅠㅠㅠ
이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조금 무서울 거라 했던 제 멘션이 생각나십니까... 어느 정도냐면 '괴물'정도...?
근데 제 편엔 괴물이 도대체 몇마맄ㅋㅋㅋㅋ가 나오는지... 핵심 괴물만 해도 8마리 군요. 기지 밑에도 합쳐서.
암호닉 신청이 엄청 쏟아지더군요.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이 늘어나서 기쁘기도 합니다. 그래도 그 잠수 전 암호닉 분들이 더욱 기억에 남아요. 너무 설레고 그랬었네요. 어쩔 수 없는게 ㅠㅠㅠㅠㅠ 그렇더라구요. 오래 될 수록 정 쌓여서 보기만 해도 즐겁다는거.
주말 작가가 돌아왔쯥니다. 사실 금요일에 시험마치고 땡하면 올려고 했는데 하 너무 Cinnage 놀고 와서 기 빨리고 새벽에 시작했는데 영 감이 안 잡히더ㅠㅠㅠ라구요.
어찌어찌해서 예전에 짰던 시나리오 대로 12의 반을 완성시켰네요. 라이언하트 편이겠죠 아마. 할렐루야. 오 맙소사. 진짜 전쟁에 들어가는 듯한 마음이라서 지금 진정이 필요해요. 후하 오늘 새벽에 돌아올 것 같습니다!
저번 공지에 말했던 후기작과 또한 몇 분뒤에 올릴 투하츠 공지. 후기작이 언제 올 진 모르겠으나 아마 투하츠 끝날 쯤에 나오지 않을까 싶슴다. (긁적)
지금 너무 흥분해서 ㅋㅋㅋㅋㅋ 횡설수설하는데 일단 감정 추스리고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글이 제일 썼던 것 중에서 마음에 안 드는 군여... 너무 오랜만 ㅠㅠㅠㅠㅠㅠ분량도 개똥만 해ㅠㅠㅠㅠㅠㅠㅠㅠ
절 기다려주신 분들 대단히 감사합니다...(울컥)
비회원님들 보고 싶어요./..
틀린 표현은 둥글게 둥글게 말씀해주세요 ^*^
암호닉은 현재 최신 글에서 받고 있습니다.
[암호닉]
망붕/너를 위해/오하요곰방와/탄소1/마틸다/보솜이/윤기모찌/부랑이/레모나/태태뿡뿡/태쁘/윤기융털/곰탱♥/목단/잼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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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구주님/김까닭/1600/침침쿠마/달콤한 방탄♥/흥탄소년단♥/숲/라이언킹/종구부인/영덕대게/꿀윤기/곱창/도로시/흑슙흑슙/뷔몽사몽/아방빠/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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