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막 물며 우는 네게 입술을 맞춰주었다. 그러자 내 손을 떼어내며 날 밀어내며 거부하는 너. 아직 넌 나를 알기 멀었다. 아직 우린 멀었다. 난 네 신용을 얻기 멀었고 넌 삶을 되찾기 멀었다.
하지만 난 포기하지 않고 틈만 나면 내 손에서 벗어나는 널 잡아서 내 품에 안길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해야할 일이 너무나 많기에, 견뎌야 할 것이 있기에 정확한 이 관계에 확답을 내려주지 못한다. 전쟁이란 장애물을 넘어서 그제야 보일 태양. 바다를 너와 함께 헤엄치고 싶다. 무기력하게 바다를 떠있을 나와 너를 생각하니 살아있는 마음이 시린다.
그 전, 마지막을 맞기 전. 진심을 전해야 되지 않을까. 후회하지 않게. 너는 날 밀어내더니 눈물을 쏟아내는 눈을 비비고 닦아냈다. 하얀 네 피부가 쓸려 눈가가 붉어졌다.
주체없이 흐르는 눈물을 대책없이 부비고 하염없이 우는 너는 결국 어깨를 들썩이면서 소리를 냈다.
난 네 못된 손을 잡았다. 억지로 끌어내렸고 넌 내가 뚫릴 정도로 노려보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니 눈을 감고 눈물만 시커먼 대리석 바닥으로 뚝뚝 흘렸다. 아무리 내 말이 듣기 싫어도 오해는 풀자. 그리고 우리의 얽힌 이 실들을 천천히 풀어서 예쁘게 손에 감아 공처럼 말아보자. 내 말 좀 들어봐. 오해하고 있는 거라고.
네가 듣던 말던 네 의지와 상관없이 네 귀는 내 입술과 성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왜냐면 이미 넌 날 마음에 담아버렸거든.
바다를 탐내는 자들.
Two Hearts.
w. 그루잠.
-8#(2/2) 겹도돌이표를 넘어 연주하다.
잇새로 나오는 내 화가 어려 울음이 나왔다. 어렸을 적 부터 고통과 아픔을 소리 없이 참은 나는 역시나 내가 이 사람 앞에선 무너지고 또 무너진다는 것을 느낀다.
내 얼굴을 잡고 올려 입술을 맞춘 그가 미웠다. 우리 위를 비추는 이 작은 전구들도 미웠다. 옆 방탄유리에 비춰지는 그도 미웠다. 내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아 쉴 새 없이 닦아대자 그것조차 못하게 하는 김태형은 입술을 열었다. 듣기 싫지만 열린 귀에 눈을 감고 집중을 분산시켰다. 나를 애로 보는 그가 싫다. 나를 쉽게 보는 그가 싫다. 감은 눈 새로 흐르는 눈물을 닦는 김태형의 손이 싫었다. 그럼에도 가슴이 뛰어 내가 내 스스로를 미워하게 만든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나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한 적 없어. 박지민이 오늘따라 장난이 심한 것 뿐이야."
변명같이 들리는 말에 뒷걸음을 쳤다. 하지만 멀어지는 만큼 다가와 내 손목을 잡는 그. 누군가 내 손목을 잡으면 한 손에 다 들어가는 내 손목이 민감하고 짜증났으나 김태형이 잡으니 아릿하고 더욱 꽉 잡아줬으면 했다. 내가 정말로 멀어져서 뒤늦게 후회하기 전에. 내 마음을 훤히 내다보는지 힘을 주어 잡아오는 그의 손에 오기가 생겨 꽉 잡은 손을 굳이 떼어내어 더욱 뒤로 물러나 검은 벽에 등을 부딪히자 더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인간의 심리는 참 교묘하고 딱하다. 가까이 온다면 더 멀어지고 싶고 오지 않는다면 섭섭해했다. 조금은 그의 말을 들어도 되지 않을까. 내가 생각했던 김태형은 적어도 나를 위해 방법이 나쁘던 좋던 내가 원하던 도움을 주었었다.
점점 부드럽게 나를 보듬어주는 듯한 그의 손길이 거짓이라곤 믿을 수가 없어서, 그에게 좀 더 날을 세우고 상처줄 수가 없었다. 사격장의 입구에 발을 들어서기 전 혼자 삼킨 울음은 그의 몸에 내가 아픈 만큼 구멍을 내고 싶어했으나 한 때 빗나간 감정. 총을 잡은 것도 그 이유였으나 나쁜 손을 잡은 김태형에 사르륵 무너지곤 말았다.
하지만 더 다가와주지 않는 김태형에 심장이 요동쳤다. 어서 그를 잡아. 그렇지 않다면 넌 평생 후회하고 말거야. 라고 외쳤지만 자존심으로 굳은 발걸음은 심장의 뜻 대로 움직여 주지 않고 그를 노려 본다.
"네가 멀어지고 싶으면 멀어져. 문을 박차 나가고 싶으면 나가."
"......."
입을 꾹 다물고 붉은 눈 시야로 보이는 슬퍼보이는 그의 얼굴이 가까이 오지 않음에 나는 슬퍼졌다. 가까이 오면 올 수록 멀어지는 나에 묵묵한 목소리만 전했다.
"내가 그날 밤 일을 꺼내 입에 올리면 네가 부끄러워할까봐 입을 닫았어. 충동적이었으니까. 언젠간 그 일에 대해서 말을 해야 했는데, 덮을 수 없게 저질러서 어디서부터 말해야 될지 말을 정리 중이었어. 그리고 우리가 정상적인 루트로 만나게 된게 아니잖아."
말로 꺼내지 못했던 그의 생각이 나열됨에 나는 감정이 북받쳤다. 그렇지. 우린 남자 대 여자로 만나지 않았지. 거기다 이 곳은 위험한 마피아 본요새. 나는 그 중 일원으로 들어와 그의 소속이 된 것뿐. 다만 특별한 점이 있었다면 그 마피아 패밀리의 보스의 딸. 평소 잔잔하던 그의 삶에 스며들어간건 나잖아. 아, 내 삶은 평범하지 않았다. 여자를 받지 않는 곳에 억지로 들어간 나니까. 여자를 포기할려고 했던 나니까. 하지만 그에게 여자로 봐달라는 억지스러운 생각에 그도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래. 나 혼자서. 나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하는 건데 그를 탓한 내가 바보다. 사랑을 요구하는 내가 바보다. 혼자서 상처받고 무너진 내가 웃겨서 허탈한 웃음이 나왔다. 상반되게 흐르는 내 눈물은 내 피부를 타고 내려가 떨어졌다. 김태형은, 선배는 마르는 입술을 핥고 다시 얘기를 꺼냈다.
"사실 네가 혼란스러울거라고 이제야 생각했어. 패턴과 습관이 하루아침에 바껴버렸잖아. 내가 일부로 흔들어놓은 것도 있지만. 넌 저번에도 차 안에서 그렇다싶이 안된다고 생각하면 벽을 세우더라. 이번에도 똑같다고 생각해. 그와중에 박지민은 불을 붙혔고. 겉잡을 수 없이 불이 번져서 네가 하지 않아도 되는 생각까지 갔다고 봐."
그렇지? 되물어오는 그의 말에 나는 말하지 못했다. 침묵을 물음의 긍정으로 받아들인 그는 내 대신 끄덕이더니 고개를 내려 자신의 화상입은 손을 쥐었다폈다. 아프겠다. 붉게 오른 그 이 손이 아파보였다. 물로 빨리 씻어내려야되는데. 감히 자존심을 넘어설 자신이 없었다. 나를 맞춰 변해주는 그. 어떻게 당신은 자신을 조절할 수 있어? 독기를 삭히고 올려다보는 그의 표정은 씁쓸해보였다. 나를 보는 그의 눈동자는 맑았다. 넌 그때 충분히 예뻤어. 얘기해 주고싶었는데 일부러 널 놀린다고 얘기 못했다. 미안. 실망했다면 미안해.
"마치 신데렐라같아서 하룻밤을 화려하게 지새고나면 돌아가버리곤 바닥으로 가라앉잖아. 항상 예쁜 모습으로 있어주면 안될까?"
안될 말이었다. 내가 여자임을 밝힌다면 당연히 바다를 떠나야할거다. 당연하게 너를 떠날거고. 내 꿈은 바다 밑으로 묻어버리고. 고개를 휙휙 저으며 눈을 꾹 감았다 뜨니 희미하게 웃은 그의 미소가 보였다. 괜찮아. 내가 그렇게 만들거야. 너무 애쓰지 말고. 내 앞에서만 예쁜 걸로 하자. 벽에 등을 붙여 조용히 감정을 가라앉힌 나에게 천천히 내딛는 그는 적당한 거릴 유지하곤 더 다가오지 않았다. 무섭기도 했지만 날 버릴 생각이 없어보이는 그가 내게 손을 내밈에 혼란스러웠다. 지민 선배가 거짓말을 한건가. 그렇다면 왜 그런 거짓말을... 손을 내밀지 않는 나에 그가 손을 더 뻗어 내 손을 쥐어왔다. 멍청아. 이 만큼 다가와줬으면 안심해도 되잖아. 손을 잡아 깍지를 끼는 그의 손을 뜨거웠다. 화상때문인지 더욱 열기가 찬 손이 차가운 내 손에 식어감을 느꼈다. 보기만해도 그 손이 아플 것 같아 손을 뺐다. 차라리 그를 안았다. 그의 옆구리에 팔을 끼워 안았다. 그의 가슴팍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다. 쿵쾅쿵쾅 뛰는 심장. 내 짧은 머리칼을 쓰담아주는 그의 손길이 좋았다. 미움은 허상에서 시작했고 사랑은 실제 상대방에게 확인할 수 있었다. 가만히 품을 내주는 김태형은 안어울리게 애같이 왜그러냐며 웃었다. 아프잖아요. 손. 어느샌가 멈춘 눈물이 말라서 얼굴이 따가웠다. 내 짧은 머리칼을 쓰담아주는 손에 마음이 안정된다.
네 모든거 인정하고 받아들일게. 성격이 무뚝뚝하고 애교도 없단거 나는 꽤 괜찮거든. 이제 천천히 갈게. 천천히 손 잡아주고 안아주고 그럴게. 준비됐다는 신호만 보내면 할게. 확 치고 들어가니까 네가 감당을 못하네.
그리고 고백할게. 거치적거리는 모든 일들의 끝자락에서.
내 자체를 받아준다는 그가 나를 자신에게서 떼어내 나와 눈을 맞춰주었다. 환하게 웃는 그와 얇은 흰 머리칼이 예쁘다. 붉은 눈으로 올려다보니 검은 앞머리를 정리해주다 갑자기 내 얼굴을 다시 잡아왔다.
"단, 지금은 제외."
수분없이 거친 내 입술에 부드렇게 닿은 입술은 과연 꿈이 아닐거라 믿어 의심치않는다. 내 처음 만지고 싶었던 남자의 입술. 내 아픈 마음의 굴을 메워주는 듯 부드러움에 눈을 감았다. 아, 선배도 달라졌구나. 마냥 거치지 않게.
그렇게 내 속으로 밀려와 덮친 검은 파도들을 말려버린 김태형은 혀를 섞지 않고 순수하게 입술을 맞췄다.
민탄소. 박지민한테 그렇게 첫만남, 얼굴에 와인과 피로 물드면서 당해놓곤 또 당해서 순진하단 거야.
아직 주위의 말들을 필터링하기 어렵게 사랑에 푹 빠진 넌 어떤 표현이든 어색하다. 점점 변하는 너를 내가 길들일 것이다.
사실 보스의 생각을 읽은 나는 조금 마음이 급해졌다. 하지만 내 마음관 다르게 너는 머뭇거리고 조금 더 시간이 지체된다.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면 네가 없어질 것 같았다.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너를 상상할 수 없다. 어서 전쟁이 지나간다면... 내 옆에 꼭 붙잡아 둘 수 있을 것 같았다.
*
김석진을 만나자마자 부서진 정신머리. 김태형이 날 찾아와 끌고 가지않았다면 난 그 테라스 뒤로 떨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김석진은 항상 남의 상처를 후벼파는 것을 잘했다. 끝까지 몰아세우는 것까지. 제이홉이 살아있을 땐 이렇게 말했었는데. 우리 지민이 괴롭히지마. 내가 처음 민탄소에게 텃새를 부리는 연기한 것보다 더 심하게 했던 김석진은 그런 제이홉의 말을 잘 들었다. 맨 마지막으로 들어온 나에게 텃세 비스무리하게 히스테릴 부렸던 김석진은 점차 내게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었다. 하지만 지금은 한 사람의 죽음과 믿었던 후배의 커밍아웃에 충격을 받고 돌아선 배신자가 되어 우리에게 총을 들이내민다. 보스에게 환송당한 나는 연회장, 남아있던 나의 보스와 다른 보스들의 옆자리에 앉아 숨을 고르게 쉬었다. 한때 선배였고 선망하는 사람, 민윤기. 보스가 내게 줬던 제이홉의 손수건이 내 바지주머니에 있던 것을 라이언하트의 폭탄으로 인해 잠시 잊고 있었다. 분주한 대화에 끼어들지않고 보스가 내게 했던 말, 더이상 과거를 그리워 하지마란 그 말을 상기시키며 조용히 손수건을 꺼내 내 손에 쥐었다. 그의 체취가 남아있지 않은 손수건은 내 손에서 말하는 듯했다. 지민아, 보스와 모두들을 부탁해. 내 사랑하는 후배야. 제이홉은 내가 전정국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이란 것을 알고 있었다. 김태형에게도 말할 수 없던 비밀을 호석 선배한테 들켰으나 오히려 날 안아주며 토닥였다. 넌 잘못한 거 없어. 평소에 장난을 잘치던 나를 받아주던 사람은 호석 선배와 김태형 두 명이었다. 지금 내게 남은 사람은 민윤기, 김태형, 그리고 새로 합류한 민탄소뿐. 마음을 다시 밑바닥 초석부터 쌓아올리기로 했다. 이렇게 흥청망청 살다간, 나의 남은 힘마저 쓰지 못하고 놈들의 혓바닥 놀림에 농락당하곤 쓰러지고 말거야.
그러니, 나를 다잡아줘. 선배. 손수건을 찢어 내 네번째 손가락에 감았다.
정호석은 그랬다. 자신의 네번째 손가락에 새겨진 이 크림슨하트 문양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우리가 크림슨하트로 들어올 때 칼로 새겼던 그 문양. 자신의 생에 제일 잘한 일이 이 곳으로 오는 것이라고 했다. 바다를 자랑스러워했던 그는 전대 보스를 존경했었다. 그리고 크림슨하트 모든 것을 사랑했다.
그의 반대로 나는 지금 보스를 마음 깊은 곳에서 무서워하지만. 선배를 잡지 않고 보낸 민윤기가 무섭다. 하지만, 내 보스인걸. 현재 제일 큰 고래인 민윤기를 무서워하는 심해공포증을 떨쳐내고 바다에 있었던 공포스런 그 기억들의 잔해를 떨쳐내야 한다. 나의 보스. 선배의 목숨 다 바쳐 올린 보스. 꼭 모든 것을 지켜내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식탁아래 손을 꿈틀거리며 있으니 거의 회담을 끝내가는 보스가 나를 보지 않고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스스로 딛고 일어서야 해."
반밖에 남지 않은 우리 편인 패밀리들. 정말 절박하다. 나마저 정신을 놓은다면 이번 승부는, 이번 전쟁은... 우리의 손에 승기를 쥐어주지 않을 것이다. 밤늦게 일이 끝나고 화려한 연회장을 나와 보스는 먼저 다른 보스들과 함께 이동했다. 아직 일이 끝나지 않은 듯 나 먼저 크림슨하트로 돌아가라 했다. 그래서 혼자 온 길, 다시 차를 타고 바다 쪽으로 난 그 길을 따라 운전을 하는 도중, 바다에 뜬 푸른 보름달에 한눈 팔아버려 길을 잘못 빠졌다. 어느 호텔 근처, 검은 외제차가 보이길래 가까이 몰고 가니 크림슨하트 소속 차였다. 아, 김태형이랑 민탄소가 여기 묵고 가는 구나. 나도 여기서 자고 갈까. 차에서 내린 몸은 뻐근했다. 이 먼 길을 하룻밤 길게 달려 또 헬기를 타고 크림슨하트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은 접었다. 문을 닫고 나와 노란 조명이 켜진 호텔에 들어가 키를 얻어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왠만하면 같이 있고 싶어서 너희가 있는 층수를 눌렀다. 밖에서 봤을 때 켜진 방은 그 곳밖에 없어서 한 방에 알수 있었다. 조금 진정된 마음으로 엘레베이터에서 나와 복도를 걸어 끝쪽으로 가니 어느 방, 문이 열려있었다.
자다가 내 소리에 깰 까봐 천천히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잡으니 안에서 나는 신음소리. 멈칫, 움직임을 멈췄다. 방 문 새로 보이는 방 안의 일부. 거실 쪽 나무의 질감으로 되어있는 곳의 바닥에 김태형의 정장과 어느 한 드레스가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어느 여자의 붉은 속옷. 거울 앞 화장대에 묻어있는 하얀 액체. 설마, 김태형. 너 이런 상황에 여자데리고 와서 자는건 아니지? 방 안의 더욱 안쪽에서 들리는 말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역시나 내 바람을 벗어나 들리는 김태형과 여자의 신음소리. 하지만 여자의 목소리가 낯설지 않았다. 멈추지 않고 들려오는 소리의 근원지를 곰곰히 생각해보니
민탄소.
민탄소의 목소리다. 것도 엄청 높은 음율. 곧이어 절정을 맞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살이 부딪치는 소리와 김태형이 민탄소를 부르는 소리.
"민탄소, 위로 올라와봐."
"아,너,무 깊은데...흐읏,"
뒤이어 힘으로 밀어붙여서 질척거리고 여자의 가기 직전의 소리가 들린다. 이 괴상망측한 이야기는 내가 전혀 모르던 이야기. 설마. ...민탄소 여자였어? 드레스는 민탄소가 입은 거고? 저 속옷들은 민탄소 것들이고? 머리 안에 폭탄이 뻥 하고 터지는 느낌을 받았다. 너무 놀랜 나머지,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입을 막은 손을 내려 손잡이를 잡은 손에 겹쳐 곱게 문을 닫았다. 문 틈 사이로 보인 열린 테라스 밖 푸른 보름달. 이런 상황에서 본 달은 야했다. 이 정리가 안되는 상황에 말을 잃었다. 내가 이렇게 눈치가 없었나? 아니, 민탄소를 신경쓰지 못할 만큼 내가 많이 흔들렸다. 많이 약해졌다. 이건 아니야. 크림슨하트엔 여자가 들어올 수가 없어. 이미 검사를 다 거친 후 합류시킬텐데... 누가 민탄소를 데리고 온거지?
설마. 보스?
의문점들이 모두 보스를 가리켰다. 최종 프로파일링은 보스에게 들어가고, 민탄소는 보스의 ... 보스의 아들이 아닌 딸? 이런 복잡한 상황은 뭐야? 입술을 매만지며 이 음탕한 호텔을 나왔다. 차의 시동을 켜서 다시 운전을 했다. 내 기분을 생각하지 못하는 검은 바다는 찬란하게 달빛을 받아 빛났다. 상쾌한 바람은 열린 차창을 타고 내 얼굴을 스쳐지나갔다. 날리는 머리카락에 신경질이 났다. 그래, 보스에게 딸이 있다고 들었던 것 같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그저 흘려 들었는데 이렇게 마주하게 되다니. 보스는 딸을 아껴서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고 한다. 아들이 있단 소린 한번도 들은 적이 없다. 그런데, 남장을 시켜서 들어오게해? 도대체 왜? 원인을 알 수 없어 결과를 모르겠다. 김태형, 너는 내게 숨길 게 이런 거였나. 여자 한 명? 내가 네게 내 비밀을 말하지 않아서 너한테 할 말이 없다. 여자를 전쟁에 끌어들인 보스나 김태형. 둘 다 이해할 수가 없다. 핸들을 내리치고 다시 부여잡고 거칠게 운전했다. 김태형와 민탄소는 무슨 관계야?
정말 더럽게도 혼잡하다.
뜬 눈으로 밤을 새 크림슨하트로 돌아오니 새벽이었다. 푸른 달은 저 바다 넘어로 고개를 숙였고 대신 뜨거운 태양이 떠올랐다. 너희 둘, 내가 기다리고 있다. 밤새 생각한 그것들에 나온 결정은 여러갈래에서 하나로 통일됐다.
내 평소 하던 대로 하는데, 민탄소에게 내가 알고 있음을 알리는 거다. 그 전 조금 둘을 갖고 놀다가.
처음 내가 민탄소가 들어왔을 때 이틀 늦게 왔다고 총을 빼앗아 코에 밀대를 던지곤 얼굴에 와인을 튀겼었다. 연기가 너무 완벽해서 너는 깜빡 속아넘어갔지. 이번엔 내가 아는 사실을 근거로 모른 척하고 너네 둘 사이를 지켜볼 것이다. 거기다 그럴듯한 거짓을 첨가해서. 하긴 태형이가 여자들한테 인기가 많지. 또라이지만 잘생기고 크림슨하트 보스 유망주니까. 이대로라면 김태형은 보스가 될 수 있다. 큰 일만 안친다면. 크림슨하트 간판 위에 서서 너희 둘을 기다리고 있자 시간을 훌쩍 지났다. 오전과 오후의 경계선인 점심시간. 저 멀리서 헬기를 타고 내려오는 두 인영이 보여서 달려갔다. 반갑기도 했으나 뭔가 찝찝한 민탄소의 손을 잡았다. 너희 밤새도록 서롤 만졌겠지. 왠지 소름이 돋았다.
김태형은 천천히 뒤를 따라오며 거리를 두는게 보였다. 아, 너네 사이 서먹서먹한거야? 민탄소가 떡밥을 물기 좋은 때다.
밥을 먹는 도중 김태형과 민탄소에게 은근슬쩍 어제 일화를 꺼내자 민탄소가 먹다가 목에 걸렸는지 콜록댔다. 김태형은 평소에 안하던 짓을 하기도 하네. 자신의 물컵을 민탄소한테 건내는데 어색함이 맴돌았다. 김태형이 먼저 자리를 뜨자 라스트 팡을 날린다. 민탄소, 김태형 여자들이랑 많이 잤었다고.
아예 대놓고 근거없는 말에 꼬리를 문 민탄소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갔다.
역시나 너네 뭐 있구나? 나 없을 때 뭐가 많았겠네. 속으로 빵터지는 웃음을 참아서 꼴깍 넘겼다. 조금은 씁쓸한건 비밀. 내 손가락에 감긴 찢어진 손수건을 캐치하지 못한 김태형의 관심사는 민탄소. 아차, 시계를 보니 보스를 만나러가야하는 시각이다. 심해공포증 치료란 면목으로 먼저 자리를 뜨고 크림슨하트 기지의 맨 위 보스의 방에게 가니 보스는 의자에 앉아 어떤 파일을 들고 있었다. 심해공포증의 치료 한 일부, 보스 무서워하지 않기.
"내가 들어올 때 노크하랬지. 왜 항상 노크를 안하는 걸까?"
"아... 죄송합니다."
뒤로 걸음을 쳐 문을 닫고 똑똑 두드리고 다시 들어가니 보스가 시원하게 입동굴을 보이며 웃었다. 오랜만에 귀여운 짓하네 박지민. 눈을 접으며 웃는 보스는 제이홉이 있을 때 보여주던 깨끗한 웃음을 보여줬다. 그 후에 앉아 보스와 어제 있었던 연회장 안의 상황, 곧이어 덮칠 전쟁의 룰을 도란도란 이야기 하였다. 민탄소에 대한 이야기는 제외하고.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 보스라서 물어봤자 좋은 득이 있을 지는 모험을 하는 거라 아직 확신이 안들어서 그 부분은 입을 닫았다.
제일 중요한 정보는 전정국이 라이언하트 보스가 되었다고. 전정국... 내 무릎 위 얹은 손에 땀이 났다. 왜 좋아하는 지 모르겠으나 분명한건 부성애 비슷한 거라 생각한다.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한 전정국은 주로 패밀리 안 일원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거의 모든 것을 잘하는 전정국이 불쌍하게 느껴진걸까 아님 보호해주고 싶었던걸까. 좋아한다는 정도로 끝날 문제였으면 전쟁이후 그를 잊는게 최선이었다. 허나 그가 남긴 잔향이 너무나 강했다. 아비에게 버림받고 눈에 띄게 총명받는 민윤기가 보스직으로 올라가니 내가 본 전정국은 그 왕의 자릴 소유하고 싶어했다. 자존심상하고 혈연을 무시한 전 보스에 분함이 일어났을 거다. 나와 가깝게 지냈던 정국은 내게 칼을 내밀었고 나는 기회가 왔음에도 그의 목을 치지 못했다. 그로 전정국은 사자로 성장해 내가 넘을 수 없는 선을 보여줬고.
씁쓸한 이야기가 끝났다. 전쟁은 아마도 크림슨하트의 연회가 끝난 후 1주일. 그러니까 2주일 남았다고한다. 지금 긴장감을 느끼고 사격장에 가 감을 살리고 있을 김태형을 찾아가기로 했다. 보스에게 인사를 하고 엘레베이터를 탔다. 너희 둘은 무얼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무슨 사이인지 궁금했다. 하룻밤으로 끝낼 사이라면 나는 가차없이 민탄소를 바다에서 쫓아낼 생각이었다. 보스나 김태형도 꺾을 수 없을 거다. 바다의 넘버 원 크림슨하트의 룰이니까. 복도를 걸어 사격장의 문을 약간 열자 보이는 김태형과 민탄소.
어두움 위로 푸른 불빛을 띈 전구들 아래 붉게 오른 손으로 민탄소의 얼굴을 잡고 기나긴 입맞춤을 하고 있는 김태형. 바닥에는 장총이 나뒹굴었고 민탄소는 마음고생 좀 했는지 눈이 부어있었다.
깊구나. 깊어서 가볍게 넘길 섹스가 아니였구나. 짧은 시간사이 둘은 서로에게 빠졌구나.
이미 상황 파악이 끝난 나는 그들 사이를 깨고 들어가지 않았다. 조용히 문을 닫고 복도의 끝 난간에 섰다.
전쟁이 시작됐는데 분명 누군가는 상처를 받을 것이다. 여유가 없는 이 곳에서 거대한 우릴 잡아먹을 라이언하트의 괴물이 사는 섬들로 발을 내딛어야하는데, 어떻게 견뎌낼려고 그러는 걸까. 이번 끔찍한 전쟁의 새로운 룰을 듣고 온 나라서 둘을 보자 더 자괴감이 들었다. 해피엔딩으로 끝나기엔 갈 길이 너무 멀다. 전쟁 전 상황을 보니 막상막하인 이 분위기에 짐은 그들에게 주지 않고 내가 들고 있다.
벌써 서쪽으로 살짝 치우친 해와 하늘은 노랗게 물들고 있었다. 그의 마지막에도 노을이 졌었다. 바다 위로 떴던 노란 연기와 섬이 통째로 없어져 블랙홀처럼 바닷물이 회오리쳐 그 곳을 매웠었다. 시체는 찾을 수도 없이 자연 속으로 흩어졌었고 김석진은 오열했었다. 마지막 정호석의 미소가 바다 위 스크린으로 뜨고 뒤이어 거대 사자의 피가 얼굴에 통째로 묻은 김태형의 표정이 떴었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던 그는 폭발음을 듣고 몇초 후 고갤 숙였다. 김태형 손엔 부러진 칼이 들려있었다. 내 앞엔 김남준과 전정국이 허망하게 하늘을 올려다봤지. 과연 우리의 곁에서 정호석이 떠나서 허망한 것일까 너희가 진 것 때문에 허망했던 것일까. 사람간에 정을 높게 쌓지 않던 김남준도 정호석을 호감있어했는데. 향수같은 그 기억에 나는 벗어날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여전히 크림슨하트 기지를 맴도는 갈매기들은 해가 지고 바닷물결이 세짐에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구름의 속도가 빨라지고 태양을 가림빈도가 늘어나 분홍끼도는 구름들이 옹기종기 모여 장관을 만들어냈다. 세게 부는 바람이 내 얼굴을 부딪혔다. 이렇게 의미없이 보내는 하루에 눈을 감고 바다를 느낀다.
슬슬 제이홉의 기일이 다가오고 있다. 그의 기일에 전쟁의 발단시작이다. 그가 맺었던 전쟁이 다시 시작이 된다.
가-나-가-나-다-라-다-라 형식은 끝이 났고 이제 곧 주제로 연주를 이어간다.
-8(2/2)# 겹도돌이표를 넘어 연주하다.(완료)
예정된 시각보다 늦게 와서 죄송합니다... 과외가 이틀 연속으로 날짜가 잡혀서 시간이 없었네요 ㅠㅠㅠㅠㅠㅠ
슬슬 전쟁이 현실감들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라이언하트가 이제 출현할 때가 ...!! 지겹게 출현할 때가!!!!
그리고 분량 조절 실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분량조절고자본능이 여기서 나오네요 깔깔
불마크를 기대하시는 분이 계신데 언제 불마크를 올린다면 그 편은 조금 더.러.울 수도 있어요^^ 마음 붙잡고 계셔야 될듯해요
졸려서 이만 잡담을 끝내겠습니다. zz
이상 그루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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