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회 준비기간, 가장 한갓진 기간이었고 가장 풀어지는 날들이었다. 들뜬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은 주체하지 못하고 급식 대신 동아리방에 모여 먹자는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지훈) 와 내일 급식 노맛.
승관) 형도 봤구나!! 배달 각?
급식 먹고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휴대폰으로 또 내일 급식을 보던 지훈이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옆에 앉아있던 승관이 동조하며 배달 각을 외치자 삼삼오오 모여 놀던 아이들이 소파 주위로 모여 앉았다.
석민) 피자?
명호) 피자 말고
석민) 아 왜!
명호) 니는 맨날 피자만 먹어 왜-!!!!
지훈) 비빔밥 어때.
승관) 와!!!! 양푼 비빔밥 그거 진짜 존맛탱!!
정한) 좋은데?
승철) 그러면 14명이니까 7명씩 나누자.
정한) 그럼 일단 데덴찌 하자!
엎어라 뒤집어라 데데엔찌!!!!!!!
점심시간이 끝나갈 때 즈음 아이들이 내일 비빔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하나 둘 동아리 실을 빠져나가고, 5교시가 체육인 3반 지수와 정한만이 동아리 실에 남아있었다. 말없이 서로 휴대폰만 보던 지수와 정한이 열리는 문소리에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민현) ..어 애들 없네?
지수) 다들 올라갔지, 이미.
정한) 왜?
민현) 아니 그냥. 5교시 체육이라 운동장 가기전에 들렀어.
정한) 너네 5교시 체육이야?
민현) 원래 국언데 오늘 바꼈어. 너네도 체육?
정한) 어.
민현이 지수 옆에 앉으며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10분 정도 여유로운 시간대에 몸을 완전히 소파에 기댔다. 흰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던 민현이 눈을 도르륵 굴리다가 테이블에 놓여있는 에이포 용지로 시선을 옮겼고, 곧 몸을 일으켜 적힌 낙서들을 읽었다.
민현) ..이게 뭐야? 웬 사다리에 반찬 이름.
정한) ..아 그거, 우리 내일 비빔밥 해먹기로 했거든.
민현) 점심 안먹고?
정한) 어.
민현) ..나도 껴줘.
지수) 싫어.
정한) 너 요즘 자꾸 우리 동아리인 척 한다?
휴대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민현의 말을 맞받아치는 둘이었고 이에 익숙한 듯 민현은 에이포 용지를 훑으며 입을 열었다.
민현) 안그래도 운동회 끝나면 옮길 셈이야.
정한) 퍽도 옮겨주겠다.
지수) 전교 1등을 사진동아리로?
민현) 학생회장이 그거 하나 못할까.
정한) 넌 내가 받아줄 거라고 생각하냐?
민현) 반찬 뭐 가져올까.
지수) 난 쟤가 왜 학생회장이 됐는지 의문이야.
정한) 동감.
민현) 소고기 가져올까?
정한) 합격.
지수) 왜 됐는지 알겠네, 아주 바람직해.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정한과 지수가 민현을 향해 해사하게 웃어보였고 민현은 익숙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자. 민현의 말에 아이들이 일어섰고 곧 동아리 실 불이 꺼졌다.
민규) 솔직히 말이 안돼.
여주) 굳이 그래야 해?
석민) 어쩔 수 없지 뭐..
지훈) 왜들그래?
비빔밥을 맛있게 먹은 아이들이 남은 시간을 즐기기 위해 삼삼오오 모여앉았다. 저번에 가져다 놓은 민규의 게임기는 어느덧 한 켠에 자리 잡았고, 게임하면 사족을 못쓰는 아이들이 매일 같이 그 게임기를 애용했다. 오늘도 역시 남은 시간동안 게임을 하려던 민규와 석민의 행동을 멈추게 한 건 1학년 5반 단톡방이었다.
점심시간 사이에 운동회 단체복이 정해진 건지 단톡방엔 한장의 사진과 가져와야 할 금액이 적혀있었고, 사진을 본 석민과 민규는 소파에 앉아있는 여주 옆에 앉으며 여주에게 폰을 내밀어보였다.
셋이 나란히 소파에 앉아 이해가 안된다며 공허한 표정을 한 채 중얼거리자 맞은편에 앉아 원우의 닌텐도를 빌려 게임하던 지훈이 게임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물었다. 그러자 민규가 지훈에게 휴대폰 화면을 들이밀었다.
민규) 봐. 우리반 반티.
지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야 야 야 권순영!!! 이리와봐 이거 개웃곀ㅋㅋㅋ
순영) ..ㅋㅋㅋㅋㅋㅋㅋ 뭐야 이거? 김민규네 반티야?
지훈이 순영을 불러 민규의 휴대폰으로 턱짓하자 순영이 부루마블 주사위를 손에 쥔 채 휴대폰을 들여다보더니 실컷 비웃었다. 안그래도 사나운 눈을 한 민규가 지훈과 순영을 한 껏 째려보더니 휴대폰을 소파에 휙 던지고 고개를 젖혔다. 아- 진짜,
민규) 우리나이에 동물잠옷이 뭐야 진짜아..
순영) 왜 귀엽고 좋구만.
지훈) 남자애들은 강아지에 여자애들은 토낔ㅋㅋㅋㅋㅋ 진짜 니네 계주 개웃기겠다.
민규) 미쳤어? 계주는 벗고 뛰어야지. 불편해서 어떻게 입고 뛰어!
지훈) 너 계주야?
민규) ........
순영) 너 계주구낰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민규) 수행평가 빠르게 나온게 왜 계주여야 하냐고! 하고싶은 남자애들 많더만!
지훈) 그러니까 적당히 뛰었어야지, 나처럼.
순영) 얘도 진짜 무서운게 딱 A 컷 초를 세서 달렸잖아. 무서운놈.
순영의 말에 지훈이 어깨를 으쓱 거리곤 다시금 닌텐도로 시선을 돌렸다. 순영은 다시금 부루마블을 하러 자리로 돌아가고 여주네 반 반티 소식을 들은 정한이 이번엔 주사위를 손 위에서 흔들더니 여주를 향해 물었다.
정한) 여주야 그럼 너 토끼 동물잠옷 입는거야?!
여주) ..아마 그렇게되겠지.....
정한) 아싸!! 귀엽겠다! 렌즈 열심히 닦아놔야지~
여주)...(찌릿)
정한) ^^
여주의 날카로운 시선을 받은 정한이 해맑게 웃어보이곤 주사위를 던졌다.
순영) 야 우유 좀.
원우) ........
이 찬) 아, 잠 좀 깬다.
교복을 입는 걸 싫어하는 아이들은 아침 시간 마저 동아리 실을 찾았다. 새벽 등교를 하는 셋 덕에 어느덧 동아리실 책장에 시리얼이 책 마냥 꽂혀져 있었고 서로의 종이컵이 깨끗하게 비워졌을 때 즈음 학생들의 등교에 밖이 소란스러워졌다.
원우) 근데 시리얼 다 떨어지지 않았었어?
순영) 너가 사온 거 아냐?
원우) 나 사온 적 없는데.
순영) ..몰라. 아 근데 솔직히 체육복도 등교 가능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원우) 인정하는 바.
이 찬) 교복 너무 불편해, 진짜로.
순영) 우리 1교시 뭐냐
원우) 영언가.. 몰라.
순영) 하.
우유 팩과 종이컵을 정리한 아이들이 은은하게 들어오는 햇빛과 포만감에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떴다를 반복했다. 이에 못이기는 듯 찬이는 제일 멀쩡하게 휴대폰을 두들기는 원우를 향해 말했다.
찬) 형 올라갈 때 좀 깨워줘.
순영) ..야, 나도.
원우) 그래.
소파 맞은편에 앉은 찬이 두다리 뻗으며 누웠고, 원우 옆에 앉은 순영은 다리를 조금 굽혀 새우모양으로 몸을 둥글게 말아 누웠다.
민규) 괜찮겠어?
여주) 알아서 조절해서 뛰래.
석민) 그게 말이야 방구야. 그냥 빼줘야하는 거 아냐?
여주) 어쩔 수 없지 뭐..
정한) 뭔얘기해?
급식을 먹은 뒤 피크닉을 마시며 동아리 방 소파에 앉아 시시콜콜 이야기를 나누던 셋이었고, 정한과 지수가 들어와 소파에 앉으며 셋에게 물었다.
민규) 이번 체육대회에 전교생 오십미터 달리기 하는 거 있잖아.
정한)응
민규) 여주가 천식이라서 말했더니 그냥 알아서 조절하면서 뛰래잖아.
지수) 뭔소리야? 그게 조절이 돼?
석민) 그니까! 그게 말이냐 방구냐!
여주) 됐어. 그냥 대충 뛰어야지 뭐..
석민) 거기에다 반장이 꼭 한 명 당 한 종목은 해야된다그래서 복불복 레이스도 참가하잖아.
정한) 여주 복불복 레이스도 해?
여주) 그게 그나마 뛰는게 덜하대서.
아무것도 안하면서 피해주는 것 보다 시키는 거 노력하는 게 마음 편해.
본인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제일 태평한 여주였다. 원래 여주 성격은 그랬다. 어쩔 수 없지, 뭐. 라는 마인드가 탑재된 인간. 뭐든지 반박하고 보는 민규의 성격과는 조금은 달랐고, 소심해하면서 할 말은 해내는 석민과도 조금 달랐다.
이야기를 듣는 정한의 성격과는 완전히 정반대였다. 정한은 봉기를 일으킬 정도로 할 말은 전부 하는 성격이었으니. 그럼에도 여주에게 별 말하지 않은 건, 여주를 존중한다는 의미였다. 아무것도 안하면서 피해주는게 싫다는 여주의 말을.
정한) 여주 결승점에 들어오면 우리가 환호해줄게!
여주) 됐어 뭔 환호얔ㅋ
지수) 그래, 우리가 환호해줄게. 대충 뛰고 엄청난 환호 받으면 재밌겠다.
여주) 됐고, 지훈오빠는?
지수) 권순영이랑 축구. 왜?
여주) 그냥. 오늘 뭔가 자러 올 것 같았는데, 빗맞았네.
정한) 걔 목, 금은 꼭 잔다.
석민) 진짜? 생각보다 규칙적이네.
정한) 지훈이가 버틸 수 있는 요일은 월 화 수, 3일이야. 목요일부터 엄청 졸려하고 지쳐.
여주) 웃기다 뭔가. 지치는 것도 규칙적이라닠ㅋㅋㅋㅋ
적당한 담소를 나누던 도중 여주가 식곤증에 밀려 고개를 팍 뒤로 젖히며 잠에 들었고, 이어서 떠들던 중 지수가 조용히 눈짓했다. 그러자 정한이 소파에 걸려있던 담요를 여주 옆에 있는 민규에게 건넸고, 민규는 조심히 담요를 덮어주었다.
이야기에 흐름이 끊김과 동시에 각자 휴대폰을 꺼내들었고, 아침과는 사뭇 다른 차분함과 고요함이 동아리 실을 감쌌다. 따듯한 오후 햇살이 동아리 실을 비추고 여주 옆에 있던 민규도 잠에 빠졌다. 한참 휴대폰을 만지던 정한은 머리를 맞댄 채 잠든 민규와 여주를 발견하곤 살풋 웃으며 카메라 초점을 맞췄다.
쟤네 좀 봐.
...귀엽다.
조용히 소근거리며 말하는 정한에 지수가 입가에 호선을 그렸다.
내가 넣을 쑤 이썼자놔아-!!!
거의 내 골 이었잖으아!!!!!
정한)........
지수)........
이미 끝났어. 그 선배 원래 지랄맞잖아.
내 골을 왜 인셉 해가는데에!!!!!!!!!
정한) 야 잠,
지수) .....야,
철컥-,
순영) 아 진짜 그 새끼 개싫다고!!!!!!!!!!!!!!!!
민규)........
여주)...음,
정한) 아 애들 잔다고 권순영
지수) 기차 화통을 삶아먹었나, 진짜.
순영)....헙
지훈) 쯧.
복도에서부터 크게 소리치며 동아리 실로 다가오던 순영의 목소리를 들은 정한과 지수가 여주와 민규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난 순간 순영이 먼저 문을 열고 소리쳤다. 그러자 정한과 지수가 따가운 눈초리와 나지막한 목소리로 순영에게 말했고, 제 입을 손으로 막은 순영이 ‘미안’ 하고 작게 속삭이며 정한 옆에 자리했다. 지수 옆에 앉은 지훈은 고개를 기울이고 민규와 여주를 바라봤다.
지훈)....잘 잔다.
지수) 응. 너같아.
지훈) 내가 저렇게 자?
지수) 너 민규처럼 자. 죽은듯이.
지훈) 몰랐네.
이후로 싸우면서 들어오는 명호와 승관 덕에 ‘취침 중’ 이라는 팻말이 만들어 졌다는 소문이..
epilogue
여주야 얼른 나와~
“어 잠깐만!”
..........
학교가 끝난 뒤, 여주가 잠시 동아리 실 좀 들렀다 가자는 말에 셋은 동아리 실로 향했고, 밖에서 기다리던 석민의 목소리가 여주를 향했다. 여주는 가방에서 시리얼 상자를 꺼냈고, 곧 거의 빈 시리얼 상자를 책장에서 빼내고 자신이 가져온 새 시리얼 상자를 꽂았다. 빈 상자를 제 가방에 넣은 여주가 가방을 바르게 메고 동아리 방을 빠져나갔다.
석민) 뭐했어?
여주) 아, 아까 뭐 떨어뜨린 것 같아서. 우리 가다가 와플 먹을래?
민규) 오 와플 맛있겠다. 카페 들러서 먹고 가자.
석민) 그래 좋아. 근데 김민규 너 계주 연습 안해도 돼?
민규) 하기싫은 사람 억지로 이름 넣었으면 이정도 감수는 해야지.
그리고 뭘 그런걸 연습하냐. 걍 뛰는거지.
석민) 그래 뭐 너 알아서 해. 아, 반티만 아니면 괜찮은데.
여주) 동감. 옆반은 환자복이래. 실화?
민규) 부승관 네는 새마을이래ㅋㅋㅋㅋ
여주) 그것도 웃기넼ㅋㅋㅋㅋ
석민) 승철이 형 네는?
여주) 도복이래. 태권도복.
민규) 와 부럽다. 정한이 형 네는 안맞췄대. 걍 체육복 입는다더라. 그게 제일 부러움.
여주) 순영오빠네도 나쁘지 않던데.
석민) 맞아, 드래곤볼! 손오공 복장. 우리가 제일 구려!!!
**
저 친구들이 운동회 시작하면 분량이 많아질 것 같아영.. 오늘 분량 조금 적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주세여 헿
제가 글 읽는데에 도움을 드리고자 하찮은 실력으로 제가 생각한 동아리 방을 그려봤는데 혹시 궁금하신 분은 댓글로 달아주시면 답글로 사진 올렸다가 후딱 삭제할게요! 올려놓기엔 너무 하찮아서ㅎㅎ 오늘 하루도 잘 보내셨죠? 푹 쉬어요! 벌써 내일이 금요일이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