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짜 최악이다 "
다들 한번씩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 이다. 난 대체 왜 태어났을까, 엄마아빠는 날 왜 낳으셨을까. 왜 태어나서 나는 이렇게 힘들게 사는 걸까.
듣기만 해도 기운이 빠지고 어깨가 축 내려가는 그런 비내리는 듯한 기분을 나는 지금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아니 꼭 지금이 아니더라도, 난 요즘 나도 내가 왜이러는지 모를정도로 엄청난 우울감에 지배 당하고 있는 중이였다.
겉으로는 세상에서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집에만 돌아오면 그와 반대의 모습으로 뒤바뀌기 일수였다.
좀 처럼 쉽지않은 인간관계, 최근들어 잦아진 부모님과의 다툼, 나을 생각을 하지않는 긴 감기…거기다가
" 000...너 진짜 뭐한거냐 진짜...진짜.. "
결정적으로, 생각보다 잘 보지 못 한 시험의 결과
모든것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쌓여서 벼랑 끝의 나를 만들어 놓았다
정말 넋이 저 멀리 나가버린 사람처럼, 정신없이 걷기만 하다보니 시간은 어느새 저녁 8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원래 이시간이면 학원에서 막 열심히 수업을 받고 있었을텐데, 오늘은 영 집중이 안될것 같아 무작정 학원으로 향하지 않았다
덕분에, 내 휴대폰은 엄마와 학원의 부재중 전화로 다급하게 울리고있지만, 받으면 금방이라도 들킬것만 같아 쉽사리 받지 못했다
집으로 가고싶었지만, 집에 가기 싫은. 어디 하나 쉴 곳 없는 것 같은 그런 느낌. 딱 지금의 날 두고 하는 말 같았다
" 000? "
" ...어? "
" 니가 여기는 무슨일임? "
자꾸만 울려대는 핸드폰에, 아 내가 좀 심했나 집 들어가야 하나 싶어, 집에 갈까 말까 멈춰서 고민하고 있던 찰나
누군가가 왠지 모르게 낯익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부르길래, 고개를 쓰윽 돌려보았더니
목소리보다 더 낯익고 익숙한 얼굴의 최민호가 한손에는 마트 비닐봉지를 들고선, 날 의문에 가득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 뭐야, 장보고 오는 길이야? "
" ㅇㅇ, 엄마 심부름임 "
" 효자네 효자 "
" 그건 그렇고, 너 여기 왜있냐? "
" 어? "
" 너 원래 이시간에 학원 가 있잖아 "
이자식 왜이렇게 잘알아, 장난 스럽게 미간을 좁히며 의심스럽다는 표정으로 최민호를 바라보니
니 스토커는 아니니까 절대 그런 걱정하지말라고 주먹을 보이는 녀석 때문에, 살짝 웃음이 나와버렸다
" 학원 땡땡이냐? "
" 알아서 뭐하게 임마 "
" .... "
" .....왜 "
" ....너 뭔일있지 "
내 정곡을 찌르는 녀석의 물음에, 나는 정말 당황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뭔일이 있는건 맞는데, 티내기는 싫고, 근데 최민호는 이미 눈치 좀 챈것 같고
우물쭈물하며 괜히 시선만 피하고, 물음에 쉽사리 대답하지 않으니 아까보다 살짝 굳어진 표정으로 나의 얼굴을 살피던 최민호가
들고있던 마트 비닐봉지를 뒤지더니, 초코 아이스크림을 내게 건냈다.
" ...뭐냐? "
" 뭐긴 뭐야 아이스크림이지 "
" 이거 니꺼 아님? "
" 하나 더있거든? 아 그냥 먹어, 지금 그게 중요해? "
살짝 언성을 높히며 얘기하는 최민호 때문에 살짝 놀란듯한 표정으로 쳐다보자
자신도 민망한지 헛기침을 하다 미안, 좀 예민함 하고 바로 사과를 해버리는 바람에 또 한번 웃음이 나올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최민호가 시키는 대로, 조용히 초코 아이스크림을 먹고만 있자니
옆에서 같이 아이스크림을 하나 더 꺼내 먹고있던 최민호가 시선 하나 옮기지 않은채 나에게 물어왔다.
" 뭔일이냐 "
" .... "
" ...진짜 말 못해줘? "
" .... "
" 서운해, 어? "
끝까지 대답이없는 내가 영 못마땅 스러웠던건지
장난스럽게 서운하다고 이야기하는 최민호 때문에, 아까 울컥했던 마음이 다시 가슴까지 차오르는 것 같았다.
" 나 말하다가 울지도 몰라 "
" 뭐 너는 울면 안됨? "
" 어? "
" 울것 같으면 울면되잖아 "
나의 마음에 다시한번 파고드는 녀석의 말에 나는 멍 해 질수 밖에 없었다
그냥 머리 한대를 얻어 맞은 느낌? 천천히 고개를 돌려 최민호와 얼떨결에 눈을 마주보고있으니
절대 시선을 먼저 떼지 않고 말을 이어가는 녀석이였다.
" 얘기해봐 기다려줄테니까 "
" .... "
" 야 "
" 응 "
" 나 있잖아, 힘들어 "
" .... "
" 나 정말로, 너무 힘들어 "
" .... "
" 너가 보기에는 내가 겉으로는 막 행복해 보여도 사실 나 여태것 너무 힘들었어, 그냥 뭐든 내가 노력한만큼 나오지 않는 것 같아 "
" ...구체적으로 뭐가 "
" ... "
" 인간관계? "
" 그것도 있고... "
" 또 뭐 "
" ... "
" 공부? "
" ...응 "
" .... "
" 사람 사이라는게, 한 쪽만 유지하는게 아니라 둘이 같이 유지하는 거잖아. 근데 그냥..나만 노력하는 느낌이야. 결국 나만 놓으면 끊길 인연인데 난 왜이렇게 연연하는 걸까 싶기도하고, 공부도 내 뜻대로 잘 안돼..이러다 대학 갈수 있을까? 맨날 이생각이야 열심히 살고는 있는데 항상 뒤쳐지는 기분? "
" ... "
" 그냥, 괴로워..괴롭다 "
가만히 내말을 들어주던 최민호 앞에서 난 결국 참지 못하고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쳐다 볼 만큼 엉엉 크게 울고있는 내가 쪽팔릴 법도 한데
묵묵히 아무 말 없이 내 어깨를 살짝 안아주고는 등을 쓸어주는 최민호의 손길에 나는 녀석에게 미안해져 울음을 그치려 노력했다
" 뭐해, 더 울어 "
" 뭘 더울어...너 쪽팔리게 "
" 뭐가 쪽팔리는데 "
" ...그냥 지나가는 사람들도 막 쳐다보ㄱ "
" 난 그런것 보다 "
" ... "
" 니가 이렇게 힘들어 할 동안, 하나도 몰랐던 내가 더 쪽팔린데 "
또 다시 훅 들어온 최민호의 말에 나는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녀석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런 내 행동에 역시 내 눈을 마주보던 녀석이 입을 열었다
" 난 니가 "
" ... "
" 그런것들로 힘들어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
" .... "
" 이렇게 울지도 않았으면 좋겠고, 기운없어 하지도 않았으면 좋겠어 "
" .... "
"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니가 그러면 "
" ... "
" 뭔가, 더 마음 아파 "
" ..... "
" ...공부든 인간관계든, 너무 연연하려고 하지마 "
" ... "
" 공부는 니가 지금처럼 열심히만 한다면 언제든 오를수 있는 거고 "
" ...응 "
" 인간관계는, 내 진짜 친구가 아니라 판단되면 거리를 적당히 두는게 맞는 것 같아 그러지 않으면 너만손해야, 니가 지금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잘해주고 착하게 대해주다 보면 조금이라도 헛튼 모습이 너에게서 보이면 애들은 그걸 절대 놓지 않는다고 "
" .... "
" 화를 내야 할 상황이면 화도 내고 해야지 "
" ... "
" 그런다고 해서 그누구도 너 다르게 보지 않아 "
" ... "
" 누가 몰라, 너 좋은 사람인거 "
한동안 멍 해진 기분이 들었다. 최민호의 말들 하나하나가 정말로 주옥같아서.
누군가가 나만을 위해 위로를 해준다는 따뜻한 분위기가 어두웠던 나를 포근히 감싸안는 것 같았다
" 그리고 앞으로는 뭔일있으면 나한테 바로바로 말해라 "
" ... "
" 대답이 왜없죠? "
" 아, 알겠어 임마.. "
" 끙끙 앓지말고 "
" ... "
" 쪼그만한게 "
" 집에 잘 들어가고 "
" 내일은 좀 웃어라 "
" 알겠냐? "
아마도 내 학창 시절의 가장 큰 선물의 날이 아니였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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