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스트에김선호는 반칙이지
조수석 문을 닫자마자 서럽게도 우는 양세종이다. 우는 남자를 본 적이 없을뿐더러 이렇게까지 우는 남자는 더더욱 초면이다. 아직 선호씨 우는 것도 못 봤는데 이 새끼는 왜 내 앞에서 질질 짜는 걸까.
"내가 개새끼일까..?"
이름 양세종. 나이는 나랑 동갑. 얘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사랑꾼이다.
5년 동안 내 친구와 연애하며 단 한 번의 화도, 조금의 짜증도 낸 적 없는 직진 불도저 사랑꾼.
가끔 나한테 와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조언만 구했지 질질 짜는 건 처음이라 나도 당황스럽다.
울다 말고 자신을 욕하는 그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고개를 저으며 어깨를 토닥여주는 것 밖에 없었다.
너가 개새끼면 나는 돼지 새끼야. 밥만 축내고 선호씨를 갖질 못했으니까.
"대체 뭐가 문제일까.. 그냥 내 자체가 문제일까...?"
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슬슬 코끝이 찡해졌다. 추워서 찡한 거야, 추워서. 최면을 걸며 눈물을 참아보는데 너무나도 서럽게 우는 양세종에 나도 목놓아 울어버렸다.
니가 그렇게 울면 나도 운다고.
"너는 왜 울어...?"
"짝사랑 왜 이렇게 어렵냐ㅠㅠㅠㅠㅠ"
"연애도 어려운데 짝사랑 그냥 끝내..."
"이게 저주를 퍼붓나ㅠㅠㅠ 너 그냥 개새끼 해ㅠㅠㅠ"
차 안은 어느새 울음소리로 가득 찼다. 금방 가겠다고 했는데 못 가게 생겨버렸네. 이렇게 가면 너무 추할 거 아니야.
서둘러 선호씨한테 죄송하지만 오늘은 같이 못 가겠다는 톡을 남겼다. 눈물 때문에 흐릿해서 잘 보냈는지도 확신이 안 선다.
"대체 뭐가 문제인지 말을 해줘야 알 거 아니야.."
"대체 내가 술 처먹고 뭐 했는지 말을 해줘야 알 거 아니냐고ㅠㅠㅠㅠ"
우리는 누가 더 크게 우나 대결이라도 하듯 계속 울었다. 하염없이 울다가 곧 차 안은 훌쩍거리는 소리로 변해있었다.
"최근에 언제 만났어 ㅇㅇ이?"
"나 한 달 전..?"
"너 거짓말하면 눈썹 들리는 거 알고 있어?"
"덕분에 새로운 사실 알아간다. 사실 오늘 만났어. 마카롱 배우러 갔거든."
"바쁘다더니 그거 때문이었나 보네. 연락은 언제 마지막으로 했어?"
"야 양심 없냐? 그걸 꼭 솔로한테 물어야 쓰겠냐고."
"아니.. 너가 제일 친하니까."
또 울먹거리는 양세종에 나랑도 요즘 연락 잘 안된다고 랩하듯 빠르게 말해주었다. 하 나 우는 남자한테 약하네..
"그래서 나를 찾아오셨다? 이럴 시간에 나였으면 여친한테 갔겠다."
"혹시 들은 거 없나 해서. 내가 싫어진 거면 내가 정리해야지."
"그럴 일 없어. 그냥 바빠서 그런 거니까 너도 회사 일하면서 살아."
"보고 싶은 걸 어떡해.."
또 목 놓아 우는 양세종에 질린다는 듯이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렇게 계속 울 거면 차라리 친구 앞에 가서 울어라.
♪띠링
"마감했나 보네."
"..양세종이랑 손절할까 그냥.."
"미안하다 내가.."
"미안한 거 알면 돈이나 줘.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니까."
"내려. ㅇㅇ이 만나러 가야 돼."
"..엿 같은 세상아..!"
아 맞다, 급하게 나오느라 짐을 놓고왔네. 카페로 들어가기 몇 걸음 안 남았을 때 깨달았다. 아, 울었지. 재욱이가 보면 백퍼 놀랄 거다. 대충 건물 출입문에 얼굴을 비춰보는데 잘 보이지도 않아서 그냥 카페로 들어가기로 마음 먹었다.
"오셨어요? 형은 아까 갔어요."
"아 그래?"
고개를 푹 숙이고 카운터로 가서 가방을 잡았는데 재욱이도 내 가방을 잡는 거다. 순간 팽팽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너 나 할 것 없이 우린 서로 힘을 주었고 결국 내가 고개를 들어서야 재욱이는 가방을 놓을 수 있었다.
"설마 울었어?"
"왜 갑자기 반말이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지금."
"하품해서 그래.."
"설마 그 형 헤어졌대요?"
응? 이게 아닌데. 내 걱정과는 달리 아무렇지않게 말하는 재욱이에 사고회로가 정지됐다.
"너가 걔를 알아?? 어떻게 알아?"
"비밀인데요?"
"쟤구나? 쟤가 다 불은 거였어."
"저 형도 호프집 자주 왔잖아요. 길 가다 우연히 만났어요."
"그래서 쟤가 술술 불었어?"
"정말 자세히도 알려주던데요? 사장님이 원래는 베이커리 카페 하려고 했는데 손재주가 없어서 그냥 카페 차린 거라고."
"인성 진짜.."
"근데 둘사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충분히 오해할만 하던데."
"헐 맞다. 재욱아 나 먼저 가볼게. 마감 잘 하고!"
와 씨 생각해 보니까 그렇네. 어떤 여자가 눈물 그렁그렁하게 달고 와서 선호씨한테 얘기 좀 하자고 하면 난 그 날로 짝사랑 접었을 거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 선호씨에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근데 이게 미치겠는 거다. 이렇게 오해로 남으면 영영 멀어질 것 같아서 해명이라도 해야겠다. 그래서 무작정 선호씨 집 앞으로 찾아갔다.
집 앞까지 찾아가는 거 민폐긴 한데 어쩔 수 없잖아..
[선호씨 지금 잠깐 시간 가능해요? 저 지금 선호씨 집 앞이에요]
톡을 보내고 답이 오기만을 기다리는데 답은커녕 쓸데없는 알림만 요란하게 오는 거다.
오늘은 일찍 자나..? 포기하고 집에 가려는데 오피스텔 옆 작은 틈에서 튀어나온 선호씨와 마주했다.
"..아"
"하..."
사람 미치게 만드는 눈빛을 정의하면 김선호 눈빛이다. 논문을 써도 막힘없이 술술 써 내려갈 정도로 저 눈빛은 많은 감정을 담고 있었다.
그의 한숨에 옅게 담배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물론 남이 폈던 향이 남아있을 수 있다. 근데 왜 담배 피우는 선호씨 상상하니까 섹시하지? 미쳤다 진짜.
이 와중에 걱정되게 귀와 손이 너무나도 빨갛다. 밖에서 얼마나 있던 거야..
천천히 다가가 주머니에 넣어 따듯해진 손으로 선호씨의 손을 잡아주었다. 근데 비참하게도 손을 빼버리는 거다.
"아, 그게 아니라.."
"..그래요. 제가 너무 오바했어요. 괜히 집 앞까지 찾아왔나 봐요."
"아니 이게.. 여주씨 손에 냄새 밸까 봐."
진짜로 선호씨의 담배 향이었나 보다. 원래 담배 피는 사람 싫어하는데 선호씨 한정으로 다 좋아졌나 봐.
담배 냄새가 나면 곁눈질을 하며 자리부터 뜨고 봤는데 오늘따라 계속 곁에 머물고 싶을 정도로 좋다.
"추운데 옷은 또 왜 이렇게 얇게 입고 왔어요?"
"급하게 나오느라.."
"여러모로 사람 오해하게 하네요 여주씨는. 야속하게."
말은 그렇게 하지만 행동은 달랐다.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입혀준 그는 내가 거부할 거란 것을 알고 있던 건지 자크까지 채워주려고 했다.
근데 그게 될 수가 있나. 손이 얼어 벌벌 떨면서.
"지금 선호씨가 더 춥잖아요."
외투를 벗어 선호씨를 입혀주고 자크까지 채워 올리며 시선을 위로 향하다 눈이 마주쳐버렸다. 눈이 마주치자 괜히 옷에 있는 양털을 만지는 그의 행동에 웃음이 나왔다.
오늘따라 왜 이렇게 강아지 같은 거야.. 미쳐버려 진짜.
"아까 걔는 제 친구의 남자친구예요. 둘 다 친해서 무슨 일 있으면 저부터 찾아오거든요."
"...아 어쩐지!"
금방이라도 울 것 같던 표정이 이제야 활기를 되찾았다. 평소 텐션으로 돌아온 선호씨는 금방 나오겠다며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아니 왜 다시 나오지? 저 가야 돼요!!
한 2분쯤 지났을까 뛰어나오는 선호씨는 아까와는 다르게 옷이 바뀌어있었다. 옷 갈아입혀주는 기계라도 있는 건가? 왜 이렇게 빠르지?
"혹시라도 냄새 싫어할까 봐."
"좋은데. 그냥 다 좋아요!"
"뭐가 그렇게 좋은데요?"
"선호씨라면 그냥 다 좋아요."
내 말에 헛기침을 하던 그는 고개를 숙여 나에게 정수리만 보여줬다. 어쩜 정수리까지 잘생겼지? 신은 참 불공평해..
정수리만 보여주던 그는 고개를 번쩍 들어 억울하다는 듯이 하소연을 하는 거다.
"아니 근데 그 친구는 왜 그랬대? 왜 여주씨 앞에서 울어요?"
"그러고 보니 왜 그랬지? 정확히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네요. 그냥 친구가 연락 늦게 해서 그런 건가?"
"아 그렇구나."
"오해 했나봐요ㅋㅋㅋㅋ"
"오해 안 하게 생겼어요? 그렇게 슬픈 눈을 하고 보는데."
"왜요? 전남친이라도 될까 봐요?"
"그 정도 눈빛이면 현남친이라고 봐도 무방하던데?"
"아 안되겠네. 선호씨 오해하게 하다니 제가 내일 걔한테 가서 앞으로 다시는 저 찾아오지 말라고 할게요. 선호씨가 원한다면 손절도 할 수 있어요."
"왜? 왜 제가 원하면 다 해줄까?"
"..네? 왜냐고 할 줄은 상상도 못했네. 그거 진짜 어려운데요?"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막 떠들었다. 근데 진짜 왜냐고 물으면 뭐라고 해야 돼? 좋아서요하며 고백을 해야 돼? 아니면 원래 손절할 계획을 체계적으로 짜놨다고 해야 돼?
음.. 의미 없는 감탄사만 읊조리다 선호씨 얼굴을 보는데 또 나왔다. 저 눈빛. 유죄라고 진짜.
"진짜 길티.."
"감방 간다고요?"
"..오? 이거 유행인가요? 선호씨도 이런 말 아시는구나."
"모를 수가 없죠. 오늘은 저 눈 안 부셔요?"
"...!?"
"놀라기는. 가요 집에 데려다줄게요."
"헐 아니에요!! 제가 여기까지 무턱대고 찾아왔는데 혼자 가야죠! 선호씨 얼른 들어가서 몸 좀 녹여요."
"데려다주려고 옷 갈아입고 왔는데? 손도 닦았어요."
내 눈앞에 손을 흔들어 보였다. 하.. 진짜 선호씨.. 손잡아 달라는 소리인가? 오늘도 나왔다 김칫국 장인.
분명 아침에 했던 다짐으로는 손을 덥석 잡아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차라리 물구나무 서서 집까지 걸어가는 게 더 쉽겠다.
"비누 향이 좋네요..!"
흔들 때 옅게 맡은 비누 향을 칭찬하며 또 헛소리만 할 뿐이다.
"이 비누가 러쉬비누인데 향이 진짜 강하긴 하더라고요."
역시 의미 없는 내 말도 허투루 듣지 않는 선호씨는 성심성의껏 답변해 준다.
지식인도 이 정도는 아니라고.
늦은 밤 찾아온 것도 모자라 집까지 데려다주게 한다고? 김여주 정신 차려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데려다주는 거 좋아. 좋은데 옷에 왜 주머니가 없대? 이 추위에? 손잡아 주기도 뭐 하잖아.
"선호씨 제 주머니 빌려줄까요?"
"주머니요? 여주씨는요?"
"저는 손이 뜨겁다 못해 용암이에요. 만지면 데일걸요?"
"진짜?"
내 손을 살짝 잡은 선호씨는 진짜 따듯하네 하며 손을 놓았다. 아 이건 반칙이지. 아 마스크 써서 다행이다. 아니었으면 내 광대 터지는 거 실시간으로 목격했을 거야.
내가 이렇게 웃고 있을 때가 아니다. 살짝 잡았었던 손이 너무 차가워서 덥석 다시 손을 잡아버렸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잡은 손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걷고 있는데 허리를 숙여 내 얼굴을 보는 선호씨다.
"집까지 찾아와놓고 왜 손만 봐요?"
마음을 다잡고 선호씨의 얼굴을 보려고 고개를 들었는데 도저히 안되겠다. 손을 잡고 있어서 그런지 이것만으로도 심장이 벅찬데 얼굴까지 보는 건 절대 무리다.
때마침 집에 도착해 집을 가리키며 오바를 해버렸다.
"다 왔다..! 오늘따라 되게 가깝다 그렇죠!?"
"그러게요. 얼른 들어가요 춥다."
"..네.."
아쉽다. 가면서 계속 뒤돌고 또 돌고 마치 팽이처럼 계속 돌고 도는데 선호씨는 그 자리에 서서 손을 흔들어주거나 잘자요라며 계속 받아주는 거다.
"진짜 내일 봬요."
"이러다 밤 새겠는데?"
"ㅋㅋㅋㅋㅋㅋㅋ그럴까요..?"
"다시 와요 그럼."
홀린 듯이 다시 가려다가 정신 차리고 진짜 찐 최종 마지막으로 작별 인사를 했다.
어차피 출근하면 또 볼 텐데 뭐. 아쉬워하지 말자.
**
출근길에 꽃집 들리는 게 하루 루틴이 됐다. 이제 카페 문 여는 것보다 더 일상같아졌다.
"몇 시간 만에 보네요 우리."
"그러게요. 어제 괜히 선호씨 붙잡고 안 들어갔네."
"언제든 붙잡혀 줄 수 있어요. 말만 해요"
"와 진짜요..? 일단 알았어요.."
"일단?"
"선호씨 제 카페는 무슨 색이 어울릴까요?"
저번에 내 수작이 들킨 후로 꽃을 안 샀는데 이제 살 때가 된 것 같다. 민망함에 말도 돌릴 겸 내 카페에 대해 묻기로 마음먹었다. 무슨 색이 나올까?
"노란색?"
"오..?"
"별로인가 보네. 그럼 하늘색?"
"역시 그렇죠!?"
"답은 정해져 있었나 봐요? 그냥 물어본 거죠?"
"네! 사실 하늘색 나오길 기다렸어요ㅎㅎ 저 오늘은 꽃 사려고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 왜 이렇게 귀엽지?"
"...네?"
"아니.. 자꾸 막 그러니까.. 나도 모르게 말이 나오는 걸 어떡해."
"제가 뭘 어쨌을까요..?"
오늘 여러 번 놀랐다. 아침에 선호씨 미모에 놀라고, 선호씨 다정함에 놀라고, 그냥 선호씨가 놀랍다.
내 말에 괜히 하늘색 꽃만 수집하는 선호씨다. 대답해 줘요. 내가 뭘 어쨌는데요.
"그거 알아요? 저희 꼭 한 명씩 번갈아가면서 침묵하는 거?"
"그거 여주씨도 느꼈어요?"
"네.. 나만 느낀 게 아니었구나.."
"제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저 원래 표현 진짜 못하거든요."
"아 그래서 표현을 해볼 사람은 있었다?"
"이 나이 먹고 없으면 그것도 좀 이상하잖아요."
"그건 그렇네요.. 저도 진짜 표현 못 하는데 선호씨는 좋아해서 그런지 막 나오더라고요."
"저를 좋아한다고요?"
망했다. 인생 조졌다 진짜. 이렇게 들켜버리다니.
저 또 왔어요 칭찬해주세요 댓글로 기다렸다고 하니까 기계처럼 글이 써지더라고여ㅠㅠㅠ 하여튼 간에 다들 왜 이렇게 귀엽구난리에요♥ 난 이제 인간키보드에여ㅠㅠㅠㅠ
세종쓰는 남사친이었습니다 댓글로 맞추신 독자륌 저 소름 돋았잖아요..
맞다 저 세종쓰로도 글 썼는데 봐주실 독자님 계실까요? 내용은 세종쓰와 5년 연애하면서 권태기가 온 내용이랍니다!!! 말도 안되죠? 그치만 글이니까 가능합니다.
허러러럴ㄹ 여주가 짝사랑을 들켜버렸지 뭐에요.. 과연 어떻게될지.. coming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