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화는 오늘 중으로 나올거예요 ㅎ
+
정신없이 걸었더니 어느 새 집 앞이다. 무슨 정신으로 여기까지 걸어왔는지, 기억이 안난다. 그저 내일 모레 공항에서 과연 내가 쑨양을 만날 수 있을지 걱정이 될 뿐이었다. 원룸 계단에 걸터앉았다. 핸드폰만 만지작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때우고 있는데, 갑자기 진동이 울린다.
기성용한테서 온 전화였다.
" 여보세요? "
- " 너 쑨양 만났지? "
갑자기 뜬금없이 왜이래?
" 어, 왜. "
- " 목소리만 들어도 감이 딱 온다. "
술 마셨나? 왜이래?
" 너 술마셨냐? "
- " 응. 맥주 한 병 정도? "
" 이 이른 시간에 무슨 술이야. 빨리 와. "
- " 니가 내 엄마냐- "
걱정 해줘도 지랄이야, 이 새끼는.
괜히 기분이 상해서 ' 그럼 알아서 해- ' 하고 끊으려는 찰나 녀석이 끊지 말라며 소리친다.
" 아 왜- "
- " 이제 나도 포기할게. "
" ? 뭘 포기해? "
네가 좋은 사람한테 가.
억지로 잡아둬서 미안해. 너 좋아서 그런거야, 나쁜 의도 아니였다. 쑨양 걔 너 엄청 좋아한대, 사랑한대. 내가 너한테 느끼는 감정 그 이상이래.
꼭 잡아, 그 새끼. 배 아프긴 하지만 어떻게 해, 니가 좋다는데. 끊을게.
하고는 뚝 끊어버리는 기성용. 어안이 벙벙하다. 술에 얼마나 취하면 이런 헛소리까지 할까 싶다.
" ..에휴, 그냥 들어가자. "
자리에서 일어났다. 엉덩이를 툭툭 털어 흙먼지를 털어냈다. 계단을 오르고 집에 들어갈때까지 다시 쑨양 생각에 빠졌다.
쑨양과의 그 짧았던 만남이 아직도 머리에 잊혀지지 않는다. 그 짧은 키스의 느낌도 아직까지 입술에 맴돈다. 다시 생각해보니 정신이 아찔하다. 누가 보기라도 했으면 어떻게하지- 하는 걱정도 든다.
" 아, 피곤해. "
집 문을 열고 들어갔다. 쓰러지듯 현관에 앉고 신발을 벗었다. 그대로 뒤로 벌러덩 누웠다. 이대로 잠들 것 같다. 기성용 들어오면서 또 소리 지르겠네, 나 여기 누워있는거 보면. 생각해보니까 웃기다. 누워서 혼자 킥킥대면서 웃다가 또 다시 사색에 잠겼다.
" 내가 진짜 만날 수 있을까. "
차라리 일찍 포기하는게 나을지도 모를텐데. 괜히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이제와 운명이라느니 인연이라느니 그런거 연연하면 안되는데. 이러다 못 만나도 상처받을건 나뿐이잖아.
나만,
또 나만..
-
" 야 박태환! "
누군가 날 깨우는 거 같다. 착각인가?..
" 야! 일어나, 현관에서 왜 쳐 자고있니? "
이윽고 누군가 내 몸을 흔든다.
술냄새가 진동을 한다.. ' 아, 기성용이구나- ' 하는 생각이 순간 머리를 슥 스친다.
순간 잠이 확 깼지만, 왠지 일어나기가 싫었다. 그냥 계속 자는 척을 하고 싶었다.
" 야, 야아-. 박태환 일어나아. "
말꼬리까지 늘여가며 나에게 떼를 쓰듯 일어나라고 징징대는 기성용이 결국 내가 깨지 않을거라는 걸 알았는지 에휴, 한다.
" 옮기는건 내 몫이네. "
거실에 가서 바닥에 이불을 깐다. 그리곤 다시 현관으로 와 나를 번쩍 들어올리더니 이불 위에 휙 던져버린다.
나도 몰래 비명이 나왔다.
" 으악! "
" 어? 뭐야, 깨있었냐? "
너무하네- 하며 왠지 섭섭해한다. 나름 그런게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별로 듣지도 않는 눈치다.
" 근데 지금 몇시야? "
" 아침 8시쯤 됐을걸? "
" 뭐?! "
나 몇시간을 잔거지? 하며 상체를 벌떡 일으키니 녀석이 이마를 꾹 누르며 나를 다시 눕힌다. 뭐하는 짓이냐고 하며 다시 일어나려고 해도 내 머리를 누르고 놓아주지 않는다.
" 아, 왜! "
" 그냥, 자. 오늘 하루종일 자. "
" 아. 그러니까 왜 자꾸 재우려고 하는데? "
" 너 내일 모레. 아니 내일 공항 뛰어 다니려면 체력보충 해야될거 아냐. "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냐고 버럭 소리 지르니까 내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대며 쉿- 한다.
" 사람들 다 잘텐데 소리지르면 안 돼. "
얘가 술 마시더니 쳐 돌았나.. 아니면 술이 아니라 약을 한건가 싶을 정도로 정신이 붕괴된 듯 하다. 그런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 지 내가 조용해졌다며 신나서 옷을 잠옷으로 갈아입는다.
" 아, 태환아. "
옷을 다 갈아 입고 내 옆에 살짝 거리를 두고 눕는 기성용이 나를 부른다.
" 왜. "
" 미안하다. "
" ... 또 뭐가. "
" 미안해, 전부 다. "
" ..니가 미안할게 뭐가 있는데. "
" 니가 나 때문에 너무 많이 운 것 같아. "
' 미안해. ' 를 계속 반복하며 말하는 그. 괜히 그 말이 듣기 싫어서 짜증을 냈다, 왜 자꾸 미안하다고 하냐고. 그는 아무 말 없이 천장만 멀뚱 멀뚱 쳐다보다가 그냥 다 미안하다며 씩 웃는다. 저번엔 그렇게 듣고 싶었던 그 미안하다는 말이 왜 지금은 이렇게 듣기 싫은지 모르겠다. 괜히 화가 나서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누웠다.
" 태환아. "
" ..... "
" 안자는거 다 알아 임마. "
" .... "
" 에휴.. 그래. 그냥 자라. "
그러더니 가방에서 주섬주섬 mp3를 꺼내 귀에 꽂고는 흥얼거린다.
그의 흥얼거림을 뒤로 한 채 난 또 잠이들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