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오혁 - 소녀 (응답하라 1988 OST)
"ㅇㅇ야."
"...네?"
*
"아, 내가 아까 준 옷 주머니에 내 핸드폰 있거든."
"……."
"그 옷 따뜻하고 괜찮더라. 요즘 안 그래도 쌀쌀하니까 야자할 때 입다가 나중에 줘도 되니까 핸드폰만 주면 될 것 같다."
"……."
잠깐 정적.
아, 그럼 그렇지. 그래. 내 주제에 뭘 바라겠어.
터덜터덜 걸어가서 아저씨 옷을 들고 오는데 아깐 그토록 따뜻하게 느껴지던 옷이 이젠 그저 차갑기만 하더라.
소매자락으로 눈가 한 번 쓱 닦고 최대한 덤덤한 척 아저씨한테 옷을 건넸어.
잔뜩 들떴던 기분도, 미약했던 기대도 모두 가라앉히고.
"...울었어?"
기운 빠진 웃음이 하, 하고 나오더라ㅋㅋㅋㅋㅋ
운 것까지 들킨 건가. 진짜 아저씨 앞에서 운 거 들키긴 싫었는데.
"아니에요."
"맞잖아."
"아니라구요..."
"...어디 봐봐."
"아, 진짜 안 울었다니까요!"
처음으로 나도 모르게 아저씨 앞에서 목소리를 높였어. 순식간에 입 밖으로 나가버린 말이라 내가 더 당황했지.
아저씨 얼굴도 눈에 보이게 굳었고.
"……."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기분 많이 안 좋았나 봐, 괜히 혼자 있는데 와서 미안해."
"아저씨..."
"가볼게."
뭐라 더 말할 틈도 없이 문은 닫혔고, 닫힌 문 앞에 나만 덩그라니 서 있고.
진짜 바보다 ㅇㅇㅇ. 괜히 잘못도 없는 아저씨한테 화풀이나 하고 뭐야, 이게.
아저씨가 가고 썰렁해진 기류가 너무 쓸쓸하게 몸을 스치더라...ㅋㅋ 잠깐 왔다 갔다고 허해진 가슴도 제법 쓰렸어.
먼저 아저씨를 좋아하게 된 건 나야. 아저씨는 나 좋아해달라고 말한 적도 없는데 먼저 좋아한 건 나잖아? 나 혼자 사사로운 감정에 사로잡혀서 누군가한테 실망을 느끼고 화내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
가슴은 ㅇㅇㅇ 네가 왜 실망하냐, 아저씨는 잘못도 없는데 왜 네가 화를 내냐 묻는데 이 물음에 쉽게 대답할 수조차 없네.
때마침 침대 위에 놓여 있던 핸드폰에 알림이 울렸어. 답도 없는 난 괜히 또 아저씨는 아닐까, 하고 마음 졸이면서 확인했는데 구준회더라고.
'잘들어갔냐'. 짧은 다섯 글자가 떠 있는 대화방을 괜히 들어가기 싫더라. 지금은 영 구준회를 대하기 껄끄러웠으니까. 역시, 앞으로도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내기는 힘들 것 같았어.
나도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내 마음이 뭔지도 모르겠고,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모르겠고.
예상대로 그 날 밤은 잠이 오지 않았어.
-
"아... 진짜 학교 가기 싫다."
밥통을 열어보니까 밥이 없음.
어젯밤 아저씨한테 괜한 화풀이를 하고 대충 씻는 둥 마는 둥 끝낸 샤워에... 또 다시 엎어져 울면서 뒤척이다 잔 이 정신없는 플랜으로 인해 밥이 없단 생각은 하지도 못 했던 것 같아ㅋㅋㅋㅋㅋ... 절로 긴 한숨이 새어 나왔음
원래 보통 이럴 때면 늘 그랬듯 염치없게 옆집으로 찾아가 벨을 눌렀겠지...만^^......
이제 그럴 수도 없겠지... 내가 아저씨 얼굴을 어떻게 보겠음?
"와... 대박. 진짜 못생겼다. 눈 부은 거 어떡하지."
너네 거울 보고 빵터진 적 있음? 나도 이렇게 내 얼굴이 웃긴 적은 처음임;
세면대 거울 속 내 모습은 어벤져스에 나오는 거 뭐냐; 헐크?
아 물론 변신 전 헐크 말고 변신한 그 초록색 헐크 말하는 거야... 나 정말 진지함......
어제 얼마나 울었는지 기억도 안 날 정도니까 내 눈이 어떻게 됐을지는 대충 상상이 되지...^^?
저게 내 얼굴일 리가 없다고, 오늘 하루 함께 지낼 못난 친구일 뿐이라고 현실 부정을 하면서 교복을 초스피드로 주워 입은 다음 주린 배를 잡고 집을 나왔어...
어쩔 수 없이 아침밥은 대충 삼각김밥 하나로 때워야겠음...
-
"와, 너는 진짜..."
"...닥쳐.."
"사진 찍어도 돼?"
"난 분명히 닥치라고 했어......"
"진짜 좀... 기괴해. 대박."
"아, 나도 안다고!!!"
교실 들어가자마자 애들이 단체로 비웃기에 바쁜 거임ㅡㅡ 난 내 눈의 상태를 잠시 잊고 있었기 때문에 왜 웃나 싶었는데 후...
안 그래도 저기압이어서 왜 웃냐고 투덜댔는데 이수현이 말 없이 내 앞에 거울을 짜잔 하고 보여주더라... 그제서야 난 내 얼굴을 받아들여야 했다고 한다......
"야 솔직히 너가 김칫국 원샷한 거지. 그 사람이 널 어떻게 여자로 보겠음? 스물 다섯이야 스물 다섯."
"맞는 말. 애초에 성인인데 게임 끝난 거지."
"...너네 내 친구 맞냐..."
그런데 제일 슬픈 건 쟤네가 하는 말 중에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는 거임......
반박할 수 있는 부분이 없다 이거예요;
"아, 그래도 혹시 모르는 거니까 기대를 굽히진 말자."
"야. 그 말이 더 우리 ㅇㅇ한테 상처를 주는 거 아님?"
"에이... 이런 말이라도 해줘야지. 지금 ㅇㅇㅇ 눈물샘 터질 것 같은 거 안 보여?"
"...그럼그럼, 그래도 잘 될 확률 1%라도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맞아. 1%라도 있는 게 어디?"
아. 손가락으로 1% 강조하는 거 존나 얄밉. 쟤넨 위로를 하는 거야 마는 거야.
"...야, ㅇㅇㅇ. 그냥 내가 다른 사람이라도 소개해줄까?"
"이번에 이하이가 물어온 오빠 있는데 만나볼 가치가 있어. 스무 살인데 사진 보면 너 진짜 깜짝 놀랄걸?"
"...됐어, 고3인데 소개까지 받으면서 누구 좋아할 생각은 없어."
"사랑은 사랑으로 잊는다는 말 모르냐? 진짜 멋있으니까 잠깐만 만나보고 그 사람도 잊어버리면 되잖아. 이미 공부도 잘하면서 뭘..."
"……."
"어차피 너도 그 사람 좋아하는 거 힘들다며. 앞으로도 힘들걸? 그냥 잊어버리고 싶지 않아? 이 기회에 뿌리를 뽑아버려. 잠깐만 만나보라니까?"
"……."
이 기회에 뿌리를 뽑아버려.
......설득 당해버렸다.
안 그래도 오늘 구준회한테 난 너랑 사귈 생각이 없다고 말하려 했거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난 구준회랑 사귈 수가 없을 것 같음... 그 몇 년을 완전히 친구로만 보다 갑자기 사귄다고 생각해봐 상상도 안 가잖아...
하루종일 애들이 앞으로도 아저씨가 얼마나 네 마음을 찢어지게 할지 생각해 보라면서 엄청 뭐라고 하더라ㅋㅋㅋㅋㅋㅋ...
그래. 만나보면 아저씨도 점차 잊혀지겠지. 이게 더 나을 거야. 애초에 승산도 없는 게임에 괜히 매달린 거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까 나도 그냥 에라 모르겠다, 하고 홧김에 소개해주겠다던 그 오빠 연락처를 받았어.
-
"...아, 네! 저 낮에 그 하이 친군데 소개 받겠다는... 네. 아, 그렇구나. 토요일이요? 네, 그 때 봬요!"
하 전화 받는데 떨려 죽을 뻔했음ㅠㅠㅠㅠㅠ 전화 울렁증 있어서 아오ㅠㅠㅠㅠㅠㅠㅠㅠ
아까 이하이한테 카톡으로 소개 받을 오빠 사진 받아 봤거든?
가운데 있는 오빤데 잘생겨서 눈은 번쩍 뜨였음...ㅋㅋㅋㅋㅋㅋ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 어쩐지 계속 남아 있는 응어리에 계속 저기압이었어. 이유 모를 답답함에 한숨만 나오더라고.
솔직히 내가 그 오빠를 소개받는다고 아저씨를 바로 잊을 수 있을진 잘 모르겠어. 아직 많이 좋아하니까.
그런데 더이상 어젯밤처럼 나 혼자만의 감정 때문에 아저씨한테 화내기도 싫어...ㅋㅋ
친구들 말대로 더 좋아하면 나만 힘들 거 아니야.
앞으로 계속 좋아한다면 얼마나 속상한 일이 많을까, 이것만 생각하면 이 선택이 맞는 것 같아.준회한테 받은 마음도, 아저씨에 대한 마음도 모두 정리하고 싶더라.
소개받을 오빠랑 이런저런 얘기 나누면서 전화하다 끊고 보니까 벌써 아파트 앞이었어.
아 너무 떨어서 내가 전화하면서 무슨 말 했는지도 기억이 잘 안 나ㅋㅋㅋㅋㅋ...
도어락 비밀번호 풀고 있는데 뒤에서 누가 오는 인기척이 느껴지더라?
인기척에 뒤돌아보니까 아저씨도 하필 귀가 타이밍이었는지 이쪽으로 오고 있는 거야...
아, 제발. 안 그래도 심란해 죽겠는데 하필.
핸드폰 액정만 뚫어져라 보고 있던데 아직 날 발견하진 못한 것 같았어.
아저씨 얼굴을 보니까 또 먹먹해질 것 같은 기분에 빨리 집으로 들어가려 했음.
그런데, 어차피 이제 아저씨도 잊어버리려 노력할 거잖아? 계속 이렇게 어정쩡하고 어색한 분위기로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음.
생각을 해보자 ㅇㅇㅇ.
먼저 미안하다 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인사하는 거야. 알았지?
작게 심호흡하고,
"저... 아저씨."
"……."
...뭐야.
나 지금 무시당한 거 맞지?
***
응팔 너무 재밌지 않나요ㅠㅠ 특히 정환이가 심장을 쥐락펴락 하더라구요.. 후...
오늘 브금도 응팔 ost 했습니다! ^.^ ㅋㅋㅋ 오혁 씨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