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남자 작업실에 제대로 된 홍일점 너봉.txt 05
(부제 : 세븐틴 비상사태)
REC. take 6 세븐틴 민규
Q. 민규군 이번에 새로 오신 피디님과 동갑이라면서요.
A. 네. 실은 제 외모가 좀 성숙해서 그런지 처음에 칠봉이가 저보고 존댓말을 쓰더라구요. 엄청 웃겼는데.
Q. 피디님이 되게 귀여우신가 봐요. 들어보니 키도 작고 어려보이신다던데
A. 맞아요. 첫인상은 그냥 한 열일곱살 정도로 보였던거 같아요. 빠른 년생이라 하마터면 제가 동생이 될 뻔 했는데 으으 끔찍해요.
Q. 혹시 이 자리를 빌어 피디님께 하고픈 말 있나요?
A. 글쎄요.. 뭐가 있을까.. 아! 전화 좀 잘 받으라고 말하고 싶어요. 애가 한번 연락이 안되면 계속 안되더라구요.
01-1
"형, 지훈이형."
"어? 왜?"
"형 오늘 작업실 언제 가요?"
"오늘? 아.. 오늘은 그냥 천천히 가려고."
"웬열. 이지훈이 작업실 출근시간을 미뤄?"
"아니 어제 녹화도 너무 늦게 끝났잖아. 피,피곤하니까 그래서 그런거지 뭐.."
"순영이형 또 까먹었죠? 칠봉누나 오늘 출근 늦게 하잖아요. 지훈이형 지금 가봤자 어차피 피디님도 없으니까 그래서 늦게 가는거 아니에요?"
"헐 웬열? 김칠봉 아파?"
"아프기는. 하여튼 권순영 멍청아."
"뭐? 멍청이?"
"아아 시끄럽고 웬열 소리 좀 그만해라. 드라마가 아주 사람을 망쳐놨네."
늦은 새벽까지 예능 스케줄을 소화하고 난 후에도 늦은 아침 세븐틴 숙소는 여전히 떠들썩했다. 하긴 열세남자가 두마디씩만 해도 무려 스물여섯마디니 잘 때를 제외하곤 시끄러울 수 밖에. 암튼 소파에 앉아 아침감성 충만한 가사를 끄적이던 한솔이 머리를 감고 나온 지훈에게 말을 걸었다. 작업실 안가냐고. 지금 시간 오전 10시, 평소 같았으면 이미 샤워를 다 마치고 옷도 다 갈아입고 작업실에 갈 준비를 하는 세븐틴의 자타공인 워커홀릭 지훈인데 웬일로 늦잠까지 잔 지훈의 모습에 한솔은 속으로 내심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그렇다고 저 형이 지금 아파보이진 않는데.
형 작업실 언제 가요, 라는 그저 순수한 호기심에 물어본 한솔의 무심한 질문에 금방 씻고 나와 우유빛 피부의 지훈의 얼굴이 금세 붉어지기 시작했다. 당황한 듯 말끝을 흐리는 지훈의 옆에서 안나오는 치약을 짜던 순영이 이 둘의 대화에 끼어들며 본격 96동갑내기 배틀이 시작되었다. 가족들이랑 카톡으로 대화를 하는데 뭐 말이 안통해서 답답하다나, 암튼 그걸 핑계로 며칠 전부터 응답하라1988 재방송을 틈틈히 보더니 '웬열'이라는 단어가 입에 딱 붙은 순영의 말투는 아침부터 지훈의 심기를 건들이기 시작했다. 안그래도 칠봉이 없는 작업실은 충분히 지훈의 심기를 예민하게 만들었고 순영의 시비가 결국 도화선이 되어 짜증이 터지고 말았다.
"이지훈 자기소개 하지마라."
"어디서 개가 짖나, 와이리 시끄럽노."
"사,사투리 쓰면 뭐 내가 무서워할거 같냐? 어?"
"니 들으라고 한 거 아니니까 이제 좀 조용히 해라."
"아아- 형들! 그만하세요. 저 가사쓰고 있단 말이에요."
"하여튼 이지훈 성질머리하고는. 근데 칠봉이 왜 늦는 거야?"
"우리 편곡 도와주시러 다른 피디분께서 한 분 더 오실건데 그 분이랑 같이 출근한단다. 어제 뭘 들은거야?"
"오~ 이지훈 소심해도 세심한 남자~"
"그럼 지훈이형 피디님 안 계시니까 오늘 늦게 출근하는 걸로?"
"어? 뭐.. 몰라."
"잠시만. 이지훈"
"어."
"방금 니가 한 분 더 오신다고 했잖아."
"어."
"그분이 설마 남자는 아니겠지?"
".....아, 씨"
01-2
한편 같은 시각, 김칠봉이는 개운한 맘으로 일찍 일어나 어젯밤 미리 골라둔 옷을 재빠르게 입고 콧노래까지 흥얼 거리며 과일향의 향수도 칙칙 뿌렸다. 평소 귀찮아 거의 생략하고 다니던 화장도 좀 더 신경쓰고 저번 주 새로 산 립스틱도 꺼내 발랐다. 음파음파- 신난다~ 달빛천사 사건 이후 일방적으로 지훈과 급격히 어색해진 칠봉이었기에 오늘 하루지만 뉴페이스와 함께 하는 출근은 신나고 새로운 일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2주 전 연말이 다가오면서 대형신인답게 세븐틴은 특별 무대를 준비해야 하는 일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덕분에 칠봉이의 부담감과 다크서클도 급격하게 증가했고. 뭔 놈의 특별무대는 각자 다 다른 걸 원하는지.. 하나만 만들어 놓고 재탕, 돌려막기를 하려고 했던 김피디의 소망관 달리 밤샘 작업을 불사하며 한 곡을 겨우 끝내고 돌아온 피드백은
"어, 좋은데? 김피디 고생했어."
"감사합니다."
"그럼 이번에는 이걸로 결정하자."
"...이번에는..요?"
"응. 다다음주 가요대전에선 좀 더 남성적인 사운드로 편곡 부탁해. 그리고 12월 마지막 날에 있는 가요대축제에선 아무래도 신나는 축제! 그래 페스티발 버전으로 해줘 또.."
"아.. 네.. 네.. 하하"
그렇게 편곡의 노예가 되어 약 10일을 보내고 나니 이건 뭐 좀비도 아니고 아무리 밥을 먹어도 배가 고프고 열걸음도 채 못걸어 넘어지고 작업실의 불이 3초라도 꺼지는 즉시 바로 잠을 처자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무래도 이렇게 살다간 머지않아 유언을 쓰게 될 지경에 이를 것 같아 결국 칠봉이는 지인찬스를 쓰기로 결심했다. 그래도 작곡을 배운답시고 근 3년간 학원을 다닌 경력이 있지 않은기. 고등학생 시절, 예나 지금이나 낯가림이 심한 칠봉이에게 먼저 다가와 유독 따뜻하게 칠봉을 도와주고 감싸주던 학원 선배가 하나 있었다. 엄마랑 싸워 밥을 굶고 학원에 와 엎드려 있을 땐 그걸 어찌할고 김밥과 우유를 사다주고 슬럼프가 와 학원 뒷문에 기대 울고 있으면 등을 토닥여주던 선배였다. 특유의 다정함으로 인기도 많던 선배였는데 지금와 생각해보면 항상 칠봉이의 곁에 있어주던 사람이었다.
그 당시 낭랑 18세 김칠봉, 10대 소녀의 호르몬이 이런 선배를 보고 가만히 지나치겠는가. 낯가림이 없어지면 지금의 세븐틴 잡듯이 파워당당+쿨내진동 하는 칠봉이지만 좋아하는 사람 앞에선 그저 수줍은 여인이였다. 꾸미는 것에 관심이라곤 1도 없던 칠봉이 처음으로 엄마몰래 화장도 해보고 교복 치마도 조금씩 줄여보고 다이어트도 시작했었다. 선배와 점점 가까워지는 상상 속에 허우적대며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첫사랑은 이뤄지지 않는다는 만고불변의 진리 앞에선 칠봉도 어쩔 수 없었다. 워낙 다재다능했던 선배였기에 학원에서 주최한 오디션을 통해 우연히 기획사에 픽업되어 연습생이 된 선배는 제대로 된 인사도 못 나눈채 서울로 훌쩍 떠나버렸다. 선배에게 예뻐보이려 몇달을 고생하며 다이어트 할 땐 빠지지도 않던 살이 5kg이 넘게 빠지고 눈물은 마를 새 없이 칠봉이의 얼굴을 적셨다. 결국 참다못한 행동대장 김칠봉, 선배를 따라 연예계로 발돋움하겠다며 수능이 끝나기 무섭게 무작정 서울로 올라갔다. 그러다 운좋게 보낸 곡이 플레디스 눈에 띄어 지금의 플레디스 비밀병기 세븐틴 담당 피디가 되었고.
그렇게 칠봉이는 정작 자신이 서울에 올라온 이유와는 무관하게 피디일이 바빠 점점 선배와 멀어졌고 어느 날 우연히 연습생을 그만두고 보컬트레이너겸 편곡을 도와주고 있다는 선배의 소식에 기다렸다는 듯 얼른 연락을 취했더라지. 10대 시절의 열렬한 애정은 퇴색된지 오래지만 그래도 그냥 예뻐보이고 싶은 맘은 뭘까. 과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무심한건 절대 아닐정도로 적당히 꾸민 칠봉이는 택시에 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칠봉이 없는 작업실 소식에 멘붕 온 멤버들은 아주 잊어버린채로. 만세르만세르만세예~
01-3
"지훈아 칠봉이한테 전화해봐."
"형이 해보면 되잖아요."
"많이 바쁜지 내 전화 안 받는다고.."
"형 제가 해볼게요. 근데 왜들 그렇게 심각해요? 그냥 좀 늦는 거 가지고."
"바람났어."
"뭐?"
"김칠봉 우리 놔두고 바람났다고."
"그냥 다른 피디님이랑 같이 온다고 늦는 거라며."
"근데 그 분이 남자일지도 몰라."
"..다들 전화기 꺼내. 빨리! 내 전화 안 받으면 찬이가 해보고 찬이도 안 받으면 정한이 형이 해봐요!"
"원우형 그냥 제가 먼저 전화할게요!"
"부석순은 안돼. 너네 전화는 평소에도 안받잖아."
"오~ 지훈이형 소심해도 세심한걸~"
결국 모두의 의견을 받아들여 다같이 짜장면을 먹고 1시에 출근하기로 한 세븐틴이 짜장면을 눈 앞에 두고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싸우는 건 아니다만 어째 다들 표정들이 매우 심각하다. 평소 시덥지 않은 농담으로 멤버들의 점심을 불편하게 하며 실실 웃던 원우의 표정도 그 어떤 때보다 진지하다. 다들 짜장면 색깔같은 어두침침한 얼굴로 각자의 근심을 표현하고 있었다. 지훈은 애꿎은 손톱만 만지작 거리고 준휘는 그 큰 눈으로 다른 멤버들의 눈치를 보고 있고 승철은 거실 한복판에 벌러덩 누워 팔을 이마에 올리곤 눈을 감고 있었다. 순영도 삐져 팔짱을 끼고 한숨만 푹푹 쉬는 탓에 부석이 화음까지 넣어가며 지훈을 놀렸지만 지훈은 그저 피식 웃곤 다시 무서운 표정으로 짜장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지훈아 그거 칠봉이 아닌데.
"그럼 제가 지금 전화해볼까요?"
"그래 그냥 원우 너 말고 찬이 니가 해봐."
"형들 지금 전화합니다!"
"이찬 애들 들을 수 있게 스피커 폰으로 돌려!"
"김칠봉 전화 받겠지?"
"모르겠어. 방금 내 전화는 안 받던데."
"정한이 형 전화도 안받던데 이석민 니 전화를 받겠냐?"
"다들 쉿! 찬이 전화하잖아."
뚜르르르- 뚜르르르-
"누나.. 전화 좀 받아요.."
"김칠봉 진짜.."
"안되겠다. 그 피디님 이름하고 기타 등등 좀 알아와야겠어."
"그래. 순영아 지수랑 같이 갔다와."
"아 김칠봉 어디간거야."
오전 11시 10분 이지훈 1통, 오전 11시 45분 이석민 1통, 오후 12시 1분 윤정한 1통 등등 거의 다섯통에 달하는 전화를 한시간 남짓 받지 않는 칠봉 때문에 세븐틴은 걱정에 가득차기 시작했다. 그래, 마지막이야 라는 마음으로 칠봉이 가장 아끼는 찬이에게 통화를 맡겼지만 언제나 들어도 지루하고 인간미없는 신호음만이 세븐틴 숙소에 울려펴졌다. 참으로 공허하고 걱정되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거실 한 중앙에 놓은 찬이의 휴대폰은 신호음만 뱉어냈고 애가 타는 맘에 순영과 지수가 벌떡 일어나 회사로 향하려던 그 순간
-....여보세요?
"김칠봉!"
"누나!! 어디에요?"
"김피디 전화를 왜 안 받아."
-아 깜짝이야! 다들 한마디씩만 해! 두마디 하지마. 시끄러워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뭐하는 거야."
-나 지금 바빠. 그리고 방금 깜빡 잠들었어. 미안
"누나 어디에요?"
-나 지금 택시.
"택시는 왜?"
-어제 말했잖아. 피디님이랑 같이 온다고. 아 참 나 지금 통화하는 거 누가 누군지 모르니까 반말해도 양해 부탁바람.
"아, 그랬구나. 다행이다."
-응? 무슨 소리야?
"걱정했잖아. 전화도 계속 안 받고."
-웬일이야. 걱정을 다하고.
전화를 받고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틱틱대는 칠봉이의 모습에 세븐틴이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 때 칠봉이 전화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까부터 진지한 표정의 지훈, 순영, 승철은 애꿎은 손톱만 뜯고 있었다. 그 때 순영이 전화기 가까이 귀를 가져다 대고 칠봉이에게 말을 걸었다. 순영아 그거 스피커폰인데.
"김칠봉."
-어? 왜?
"오늘 오신다는 피디님."
-응.
"..남자분은 아니지? 그치?"
-남잔데.
"아.. 씨. 비상이다."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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