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15% 다운이 되는 고래의 사진에 애가 탔다. 요원이 말했다시피 고래에게 신이 내린 선물, 후각은 알파 섬 괴물들에게 모두 내려졌다. 고래와 마찬가지로. 아직 고래에 대해서 일푼도 제대로 모르는 상황. 가오리 괴물을 포착한 순간, 알았다. 피의 냄새와 함께 레몬 향을 풍기는 민탄소에게로 집중하고 있었다. 그녀는 시간을 벌어야하는 탓에 우리가 있던 곳에서 초원의 안쪽 유적지로 뛰어갔다. 저지할 새 없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오직 민탄소에게만 초점을 둔 가오리 괴물은 바퀴벌레 다리를 휘져어 가며 쿵쿵 내 옆으로 확 지나갔고 귀에 붕 소리가 들렸다. 아뿔사, 놈의 꼬리가 굵직하게 휘둘러지는 소리. 뇌보다 몸이 반응해 숙이자 머리 위치의 유적돌담이 산산조각이 나 등 뒤로 흩어졌다. 위험. 머리에서 적색 경보가 왜앵하며 울리기 시작했다. 손에 든 화상무전기가 걸거쳤다. 제일 중요한 것이지만. 꽉 붙잡은 무전기가 애를 태운다. 만약이로소니 유적돌담 뒤로 얼굴을 내밀면 놈의 꼬리가 날아올까 뒤를 보지도 못했다. 민탄소를 향해 죽지말라고 외쳤지만 그마저도 이 상황에선 들릴까말까 할 것. 암적한 초원의 풀소리가 사삭거렸고 민탄소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소리가 아닌 후각으로 민탄소를 찾아낼 것이다. 내 불길한 예감이 맞았는지 벽돌담이 기우는 소리와 함께 쿵, 땅을 울리는 소리가 났다. 숨어있던 돌담에서 나와 상황을 보니
벽돌담이 넘어졌다. 민탄소가 등을 대고 있었던지 뒤로 넘어지는 찰나, 기관총으로 위로 올 대형 가오리의 배 중앙을 향해 몇십방을 날렸다. 예상대로 위로 덮칠려고 했던 가오리는 헛점이 노출되어 총알을 그대로 받아냈다. 충격의 여파로 휘청이던 가오리는 바퀴벌레 다리로 쾅쾅 땅을 짚으며 흔들렸지만 금세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멀쩡해졌다. 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려다 본다. 총을 쥔 그녀의 손에 힘이 풀렸다. 벽처럼 초원에 누워진 민탄소의 머리 바로 옆 땅으로 닿는 두꺼운 바퀴벌레의 다리. 붕붕 위협적인 소리에 위를 올려다보니 장대같은 가오리의 꼬리가 원심력을 받아 돌려지는 게 보였다. 우리가 만난 상어, 아나콘다 괴물처럼 일자로 찢어진 입을 쫘악 벌리는 가오리에 민탄소는 눈을 감았다.
젠장…. 그녀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 놈은 철갑가오리었다.
눈 감지마. 아직 끝난게 아니야. 무전기를 꽈악 쥔 나는 아무 생각 않고 괴물을 향해 달려갔다.
신의 영역에 총구를 겨누다.
-2부-
월계수의 왕관을 쓸 승자.
Two Hearts
w. 그루잠.
-15# (1/2) 개미지옥 2
눈을 감고 최후를 맞이하는데 머리 위로 괴물의 하늘을 찌를듯한 비명이 들렸다. 눈을 뜨자 가오리가 고개를 치켜뜨고 흔드니 놈의 입꼬리에서 피가 쏟아져내렸다. 전정국. 전정국이 가오리의 등에 올라탔다. 나를 잡아먹기 위해 입을 벌린 가오리의 윗입을 잡고 최대한 찢어버려 괴물의 주둥이가 너덜너덜해졌다. 놈의 몸을 꽉 잡고 입을 더 찢어버리자 미친듯이 흔들리는 가오리가 꽤애액거리며 고통을 호소했다. 입을 벌린 가오리에 톱같은 상어이빨이 보였다. 그리고 내 옆으로 화상무전기가 떨어졌다. Loading 20%.
나는 정신이 되돌아와 놓은 총을 잡고 다시 배를 향해 총을 쏘자 눈 앞으로 휙 하고 뭔가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 내 배를 강타한다. 아, 맙소사.
땅이 쾅쾅 울리며 눈 앞에서 붕붕 돌려지던 꼬리가. 그래, 채찍. 채찍마냥 굵은 꼬리가 휘둘리다 정확히 내 배를 내리쳤다. 놈을 발견하고 저 꼬리에 맞아 당할 고통을 무서워했던 나는 상상했던 이상으로 고통을 맞이했다.
부서진 총이 파편을 휘날리는게 천천히 보이고 내 입 밖으로 피가 토해졌다. 억소리도 내지 못하고 죽은 사람처럼 눈을 뜨고 숨을 못쉬었다. 내장이 경련을 일으키고 몸을 뻣뻣하게 굳는다. 충격의 여파는 나를 무생물처럼 만들었다.
그러자 밑에서 가격당한 나를 보고 방심했는지 전정국이 미끄러졌다. 놈의 머리로 쏠려서 떨어질려고 하는 전정국을 놓치지 않고 괴물이 머리를 올렸다. 콰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검은 액체들이 솓구쳤다.
상어 이빨사이로 사라진 전정국. 그리고 바깥으로 이빨에 걸린 팔이 보였다. 한 번 제대로 씹혀 이에 박힌 팔. 두려웠다. 정말 잘릴까봐. 다시는 그 팔을 보지 못할까봐. 그럼에도 아무 소리를 못내고 송장처럼 있는 내가 죄스럽다. 주위 초원에 괴물과 전정국의 섞인 피가 물웅덩이를 만들었다. 상어 이빨이 두 개가 박힌 팔에 핏줄이 돋아 놈의 이를 꽉 잡았다. 팔이 붉은 색으로 물들어 갔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으나 펄쩍펄쩍 뛰던 가오리는 팔을 완벽히 씹어 넘기기 위해 다시 입을 쫙 벌렸다. 그리고 내 눈에 이빨로 근육까지 뚫린 팔이 담겼다.
햇빛이 시야에 번쩍하고 빛나는 순간, 놈의 톱니같은 이빨이 닫히려는 찰나
서걱하는 소리와 함께 가오리의 몸이 반동가리가 났다. 멈칫, 이를 맞물리기 전 고동을 멈춘 괴물의 뒷부분이 스스르 내려 앉는다. 고장난 기계처럼 버벅거리는 뒷다리가 머리를 잃고 쿵하고 쓰러졌다. 전정국의 담은 부분이 갈라져 흘러내리는 소화액이 초원을 까맣게 태웠다. 치이익-. 장대같았던 꼬리는 힘을 잃고 조용히 잠들었다. 위태롭게 몸을 기우는 놈은 마지막 식사를 하지 못하고 피를 콸콸 쏟아냈다.
그렇게 느릿하게 감각을 인지한 본체는 내 바로 옆으로 쓰러졌다. 쿵-. 쓰러진 놈 안에서 손이 뻗어져 나왔다. 끈적한 피가 초원에 번지고 만신창이가 된 전정국의 손이 가오리의 입을 열었다. 진득한 곳에서 죽을 뻔 했던 그가 모습을 보였다.
전정국의 왼 팔에 가자미의 상어 아랫이빨 두 개가 박혀 부들거린다. 긴 칼이 철갑가오리의 연한 속살을 가르고 아무데나 내던져졌다. 피로 끈적하게 샤워한 전정국은 억누른 신음소리를 내며 아픈 왼 팔을 끌며 기어왔다. 천천히 무너질듯이. 숨을 쉬지 못하는 내게 도달하자 얼굴을 붙잡고 흔들었다. 희미하게 보이는 피를 흘리는 놈의 얼굴이 반가웠다. 내가 서서히 죽어가는건가.
"정신 차려. 정신차리란 말이다. 민탄소, 민탄소…. 정신, 차려."
"……야…."
"뭐라고? 어서 말해."
"약…."
전정국이 피를 뚝뚝 흘리며 흔들어대자 겨우시 말을 할 수 있었다. 약. 어서 줘…. 속삭이는 말을 듣자마자 전정국이 자신의 정장 안 약통을 꺼내 급히 약을 초원 위로 쏟아부었다. 그 중 하나를 내 입 안으로 넣었지만 바람으로 말라버려 목구멍으로 넘어가질 못했다. 눈물 한 줄기가 나도 모르게 관자놀이로 떨어지는게 느껴졌다. 얼굴이 일그러지며 울 듯한 표정을 지은 전정국이 내 얼굴을 붙잡고 키스를 했다. 생사가 걸린 키스의 느낌은 따뜻했다. 포근하고 간절했다.
막상 내게 삐뚤게 말하고 겁주기도 하지만 원초적인 마음은 알 것만 같았다. 들어온 침으로 삼켜진 약은 빠르게 몸으로 흡수됐고 서서히 안정을 찾아왔다. 반면 전정국은 과다출혈로 어질하더니 내 몸 위로 쓰러졌다. 약을 먹었다해도 나는 정상이 아니다. 고통은 온전히 몸 안에서 맴돌지만 뇌에서 잊게 만든 것 뿐. 더이상의 여력이 없는 전정국은 흔들어도 반응하지 않았다. 곯아떨어져 자신의 팔이 무슨 상태인지도 모르고 잠에 빠졌다. 느낌을 망각하고 나은 것처럼 일어나 전정국을 안는다. 그리고 깊게 박힌 이빨들을 힘을 줘서 하나씩 뽑아내니 피가 분수처럼 터져 얼굴에 튀었다.
심각한 출혈. 급하다. 살려야한다. 내 상황과 반대의 생각이 계속 나를 지배하려했다. 살려야 한다고.
그렇게 나는 그 반대의 생각에 지배당했다.
살려야 해.
응급처치로 피가 진득하게 묻은 전정국의 마이를 뒤져 약물 주사기를 찾으려 했는데 그 안 무기들이 쏟아졌다. 12종을 넘는 총기들과 칼. 가량 0.5톤정도 넘었을 무기들을 들고 다녔다니…. 짐작컨데 그는 익숙해져 느끼질 못했을 것이다. 안타까움을 목구멍 뒤로 넘기고 은색 약물이 든 주사기를 꺼냈다. 상처부위 근처에 바로 주사기를 꽂아 투입하자 금방 뚫린 근육들이 차올라왔다. 선홍색 근육들이 두근두근댔고 새하얀 살이 돋기 시작했다. 하지만 배출해낸 피가 너무 많아 급했다. 나도 피를 쏟아낸 상태라 고통만 잊고 내장이 심하게 파열됐을 것이다. 급한 건 전정국이라 정장자켓을 벗고 흰셔츠의 소매를 걷었다. 하얀 손목. 쏟아진 무기들중 작은 칼로 얇고 깊게 그었다. 얇은 선에서 주르륵 나오는 피에 입을 가져다 댔다. 입을 흥건히 채운 피를 가지고 전정국의 입술로 향했다.
입을 맞대고 넣자 끈적하고 따뜻한 피가 전정국의 목 뒤로 막힘없이 넘어갔다. 이것만으로도 부족했다. 계속해서 이 짓을 반복하니 나도 어지러워. 전정국을 조심스레 끌고 한 유적지 평면돌 위로 올렸다. 더러운 괴물로부터 멀어지게 한 후 무기들을 주워 전정국의 머리맡에 옮겼다. 무기들 사이로 내 무전기와 전자시계, 이어폰이 보였지만 회수하지 않았다. 전정국을 믿지 않아. 적을 믿지 않아. 근데 왜 전정국은 나를 살리려고 했고 나는 왜 전정국을 살리려고 하는걸까.
답이 나오지 않자 포기했다. 차가운 돌위에 누운 전정국을 일으켜 내 정장자켓을 깔아 다시 눕힌다. 나도 몰라. 나도 모르는거고 네 머릿속도 모른다. 내가 살기위해선 네가 필요하단 것만 확실해.
지친 몸을 일으켜세우고 주위를 둘러봤다. 화상무전기를 찾으러. 엎어져서 죽은 괴물의 눈알 옆 떨어진 화상무전기를 발견했다. 넋을 잃고 터벅터벅 걸어가 화상무전기를 주웠다. 그리고 쏟아진 내 알약들을 주워 통에 담고 품에 넣었다. 전자막을 보았지만 희망이 없었다.
40%. 그리고 렉이 걸렸다. 지지직거리는 화상무전기 위 전자막에 에러로 가득한 사진이 40%만큼만. 딱 일부분만 보이고 멈췄다. 이 곳에서 소통이 어렵다고 말했던 보스의 말이 생각났다. 기후이변으로 자주 끊어지고 연결도 힘들다고 했던 버뮤다 삼각지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감정이 치올랐다. 일그러지는 얼굴은 내 감장을 고스란히 담았고 마른 세수를 했다. 피터지는 전투극에 남는 건 생존뿐. 욕을 읊조른 나는 전정국의 곁에 무전기를 올려다두었다.
치료에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찾으러 주위를 둘러보니 빈 공간이 보였다. 돔의 가장자리를 감싼 두 돌담이 만나는 한 지점. 그 곳에서 노란 등을 킨 반딧불이들이 보였다.
고래.
고래가 이 곳에 있다. 확실하게.
주변에 또 괴물들이 나올것같아 둘러보지만 가오리가 이 초원의 수장이었는지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안심을 하고 전정국 머리맡에 총 하나를 들고 초원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전정국. 조금만 기다리고 있어. 돌담을 짚고 조심히 안으로 들어가자 작은 물소리가 들렸다.
광활한 이 곳에는 남색 암흑이 깔렸다. 천장에는 여김없이 나무들이 하나의 돔을 이룬 상태였지만 징그러움을 사라지게 하는 광원이. 달의 역할을 하는 광원이 계곡 바위 위로 떠있어 어둠을 밝혔다. 주위는 이끼가 낀 바위로 매워졌고 중앙에는 달빛이 비치는 물웅덩이. 그리고 쏟아지는 물들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주변에 초록 줄기들이 바위에서 내려왔고 바위 밑은 알록달록한 수선화가 피어 나를 반겼다. 꿀냄새가 나는 수선화. 바위 바닥을 통통 튀어다니는 작은 물고기 떼들에게도 다리가 있었다. 징그럽지 않고 귀엽고 사랑스러운. 남색 빛이 도는 이 곳에 반딧불이들이 몽롱히 날아올랐다. 작은 새 소리에 위를 보자 새들이 날아다닌다. 노래를 부르는 노란 새들이 달 주위를 날아다니며 바위틈으로 자란 괴상한 나뭇가지에 앉았다. 그리고 몸을 부르르 털며 눈을 껌벅껌뻑 거렸다.
아름답다.
이끼가 낀 바닥의 돌들을 조심히 밟자 노란 형광빛이 번졌다. 혹시 괴물이 나올까 총을 들고 물가로 접근하니 내 발 밑에 뭔가가 부딪힌다.
작은 물고기 한 마리가 피묻은 정장구두에 부딪혀 쓰러졌다. 어리둥절 나를 올려다 보는 잔챙이를 몸을 숙여 일으켰다. 그러자 내 손에 몸을 부비고 도망가는 한 마리를 따라 여러 마리가 뛰어간다. 그런 것이었다.
이때까지 뛰어온 잔인한 곳과는 달리 고래의 보금자리는 향기로웠고 쓸쓸해보였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괴물들을 앞세워 숨었었나. 이 곳은 여리고 반짝이는 것들로 가득했다. 천국이라고 말해도 거리낌없는. 하늘은 나무들로 인해 막혔지만 달을 만들어 자신만의 하늘을 만들었다. 이 곳은 자신을 해하지 못하는 것들로 가득채워놓고. 사랑받지 못했으나 사랑스러운 것들로 채운 고래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것만은 분명했을 것이다.
고래는 두려웠다. 이용당해서 상처받는, 남들에게 눈에 띄는 것을.
저 계곡 옆에 보이는 큰 동굴에서 그르르르… 잠자는 소리가 들렸다. 조용히 계곡 물로 다가가 구두를 벗고 계곡 물을 마셨다. 갈증. 또 갈증이 샘솟아 계곡 물을 마시게 됐다. 천천히 계곡으로 들어가자 작은 물고기 떼들이 나를 따라 퐁당 계곡으로 들어섰다. 서로에게 발로 물을 튀기며 투닥투닥 노는 것이 보기 좋았다. 젖은 옷에 핏물이 나오고 계곡 물에 흩어졌다. 세수를 하고 있자 갑자기 얼굴에 몰캉하는 것이 닿았다. 깜짝놀라 돌아보니 한 꼬맹이 물고기가 뽀뽀를 한 것이었다. 부끄러운지 퍼더덕 도망치는 물고기.
내가 이 곳에서 살아나간다면 후세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이 곳은 아름다웠니라고.
아, 후세가 없으려나. 그렇다면 내 소중한 사람에게 꼭 말해주겠다.
물에서 나와 바위에 걸터앉고 손목에 낸 상처를 보자 깔끔히 나아있었다. 설마. 다리에 달라붙은 정장바지를 올리고 보니 상어에게 물린 곳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근처의 날카로운 돌을 주워 손목을 다시 긋고 계곡에 담궜다. 그러자 피가 진하게 흩어지더니 다시 살이 아물었다. 고민할 새 없이 급하게 입에 계곡물을 담고 뒤돌자
"…고래인가."
계곡을 울리는 소리가 났다. 큰 동굴 안 암흑에서 알파 섬 주인의 목소리가.
"……."
"고래를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군, 크림슨하트. 여긴 위험한 곳이니 동료를 데리고 떠나라. 내가 오래 잘 수록 좋은 것이니 깨우지 않도록."
"……."
"그런데 어디서 사자의 냄새가 나는군."
굳은 몸이 애꿎은 총만 부서져라 잡았다. 그리고 마지막 소리에 오감이 도망치라고 자극을 보내자 도망치듯 공간을 뛰쳐나왔다.
*
악몽과 함께 눈을 뜨자 달빛이 얼굴을 비췄다. 괴상한 나무들이 얽혀 만들어진 엉성한 천장의 한 가운데에서. 뻣뻣해진 몸으로 주위를 살핀다.
민탄소가 보이지 않았다. 몸을 일으켜세우려고 하자 왼 팔이 움직이지, 않았다. 딱딱해진 팔의 느낌에 내려보자 서서히 석화되어가는 내 팔이 보인다. 겉은 멀쩡히 하얀 살이 돋았지만 돌처럼 빳빳이 굳어갔다. 가오리의 상어 이빨에 독이 들어있었나…. 왼팔을 감은 셔츠를 풀어냈다. 민탄소의 것. 발치에 뒹구는 주사기가 보였다. 날 살리려고 했어? 왜? 넌 날 죽여도 시원치 않을텐데. 한결 가벼워진 몸에 무기들이 사라진걸 알아챘다. 급하게 찾는 오른손이 철컥거리는 것들을 만졌다. 내 머리맡에 고스란히 있는 총들과 칼. 심지어 민탄소의 무전기와 이어폰, 총까지 남아있었다. 전자시계를 들어서 보자 4:4. 아직 아무도 괴물을 죽이지 못했다. 다들 살아서 볼 수는 있으려나.
어디서 시끄러운 소리를 나자 주워든건 민탄소의 화상무전기. 수신을 받은 나는 무전기를 귓가에 가져다 댔다.
-민탄소, 들려? 아버지야.
"…민윤기. 나다, 전정국."
- …….
"협상을 하자. 민탄소와 왕의 자리를 넘기면 전쟁이 끝난 후에도 살려줄게. 박지민, 김태형, 그리고 민탄소. 셋다.
- …….
"솔깃하지 않아? 어짜피 이 전쟁 내가 이긴 거잖아. 이미 괴물은 코 앞이라구. 목숨이라도 부지하는게 나은편아닌가."
- …오만하군.
"당신도 알고 있잖아. 이 전쟁의 끝은 라이언하트가 승리자란 것을. 지금 결론을 내. 시간없어."
-민탄소 어딨어.
"살아있다."
- …그렇게 갖고 싶은 이유가 뭐야. 김남준과 김석진이 협상하라고 하던가?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둘 다 모르고 이건 보스로써 단독 행위다."
- …….
서서히 내 몸이 굳어지는 게 보였다. 이미 왼 팔은 맛이 간 상태고 돌로 변형되어간다. 어서 말해. 시간 없으니까. 침묵이 길게 이어지고 수신은 끊어졌다. 민윤기가 끊은 것인가 기후때문인가. 이미 지나간 일 되짚어서 뭘하나. 그저 남는 건 상처뿐인데.
무전기를 내려두고 왼 팔을 아무리 움직여보려 해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끝인가. 민탄소가 보고 싶다. 끝을 맞이하는 도중 민탄소가 보고싶다.
눈을 감고 달빛에 얼굴을 쬔다.
민탄소 만은 죽일 수 없었다. 내 계획대로라면 민탄소를 임신시키고 김태형에게 몸도 마음도 빼앗아 죽이는 것이었다. 아기랑 함께. 그러면 내 형에게 깊고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입혀줄 줄 알았다. 김석진과 김남준도 민탄소를 죽이길 원했다. 감히 정호석의 자리를 차지한 그녀가 눈엣가시였기때문. 하지만 어째서인지 죽일 수가 없었다. 나와 잠자리를 가진 여자들은 나의 칼을 보곤 다 뒷걸음을 치고 똑같은 말을 뱉었다.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내게 연이 닿길 원했던 여자들은 하나같이 목이 잘려나갔다. 뒤에서 내게 임신을 했다며 발목을 잡는 꼴도 보기 싫었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희열을 느꼈다. 그렇지만 갖고 싶다는 사람은 민탄소가 처음이다.
나는 자라면서 마음이 기형의 형태를 띄었다. 욕구불만. 섹스와 살인으로 풀어나가는 욕구는 채워지지 않았다. 물건이 필요해. 아니, 누군가 필요해. 나는 이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채우고 싶다.
나 몰래 먹는 약은 민탄소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 같았다. 더욱 아프고, 더욱 쓰리게. 모른 척 할래도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다. 밤새 제가 모르게 앓는 소리가 귓가에 팍팍 박혔고 그걸 들은 괴물들이 하나같이 달려들었다. 뭘 숨기는 거야. 민탄소가 일어나자마자 약을 빼앗아 들었다. 말다툼을 하다 들은 짐승소리에 핀트가 나가버렸다.
그도 내게 그랬었지. 근본없는 짐승새끼라고. 더러운 짐승새끼라고. 몇 년 전의 일. 김남준과 전 보스의 입술이 오버랩되어 정신이 나갔다. 어짜피 죽여야 될 거 목을 조르자 정신을 잃는 네가 보였다. 그러자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네가 김태형과 손잡고 뛰어오던 그날부터 너를 봤던 모든 기억이 눈 앞을 지나갔다. 내 인생에 허용이 되지 않는 '겁'이 덮쳐와 목을 확 놓고 내 손을 바라봤다. 난 무엇을 위해서 견디고 죽여왔는지. 내가 민탄소 너를 죽여야되는지. 죽기 직전에 놓은 손이 더러워보였다. 그리고 잘못을 회피하고 약을 가져간 나는 어떤 이유로 네가 아픈지 알아야했다. 어떤 용도로 쓰이는지.
어릴 때부터 김남준에게 맡겨져 사자처럼 키워진 나는 선배들의 말을 잘 따랐다. 하지만 굳게 마음을 먹는다면 절대로 굽히지 않는 고래고집이 있다.
네가 곁에 있음으로 생긴 한 가지가 전쟁에 걸림돌이 될 것 같다. 그 한 가지는 내가 고대해왔던 소중한. 소중한 퍼즐 하나같았다. 계속되는 충격과 훈련, 고난에 그 퍼즐을 잊어버렸다. 그걸 이곳에서 찾을 수 있을까. 되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잊어버린 퍼즐이 내게 고집 하나를 만들어주었다. 난 민탄소를 죽일 수 없다. 전쟁의 끝, 패배자는 모두 참수형이지만 민탄소 만은 죽일 수 없다. 아프지 마라. 널 살리고 싶어. 그리고 살고 싶다. 그래, 살고 싶다.
풀을 밟으며 땅이 울리는 작은 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 슬슬 다리도 굳어가며 목까지 차오른 독기. 무엇을 보았는지 무서움으로 뒤덮여져 뛰어오는 민탄소. 그리고 딱딱히 돌로 굳어가는 나를 보고 더 급히 달려와 내 품으로 안겼다. 굳어가는 오른 팔로 그녀의 얼굴을 만지자
민탄소는 바로 내 입을 찾아들었다. 얼굴을 붙잡은 채로 입 안으로 가득 들어오는 어떤 물과 혀. 나는 놓치지 않고 다 받아 삼켰다. 심장까지 닿아오는 독기에 더욱 민탄소의 혀를 옭아맸다. 키스를 받는 민탄소는 반항하지 않고 입술을 움직였다. 침과 함께 물이 입술을 타고 새어나와 턱에 맺히고 아래로 떨어졌다. 굳은 오른 손으로 손에 닿는 눈물을 닦아주며 민탄소의 안을 휘영했다.
퍼즐을 찾지 못했지만, 죽기 직전까지 같이 있어서 다행이다. 아직은 내가 살기 위해서 네가 필요해.
전정국과 민탄소 옆, 무기들 사이에 올려진 화상무전기. 그 위 전자막에는 90%. 전정국이 키스를 하며 민탄소를 안아들 때,
'메세지 전송 완료'라고 전자막에 떴다. 사라진 메세지로 꽉찬 사진.
그 사진에 뚜렷하게 보이는건 커다랗게 화면의 반을 차지한 인간의 눈. 우둘투둘 가죽, 남색과 회색을 섞은 듯한 피부와 한 가운데 동그란 까망눈.
핏빛 흰 자의 가운데 검은 홍채가 빛났다.
현재 4:4
○ 전정국&민탄소 ○ 김태형
α [알파 island] (고래)-라이언하트 δ [델타 island] (사자)-크림슨하트
크림슨하트 고대의 수호신-다리가 달린 고래(인간의 말을 할 수 있음) 미확인
상어,아나콘다,가오리. 현재 섬에 갇힌 상태.
치유되는 계곡물. 단서- 이정표. 살아서 움직인다, 마시지 마.
○ 김석진&김남준 [스크린] ○ 박지민
β [베타 island] (고래)-라이언하트 ε [엡실론 island] (사자)-크림슨하트
미확인 미확인
○ ○
γ [감마 island] (고래)-라이언하트 ζ [제타 island] (사자)-크림슨하트
미확인 미확인
○ 민윤기 ○
[크림슨하트 기지] (마지막 고래) [라이언하트 기지] (마지막 사자)
헨리 18세때 만들어진 조직의 크림슨하트 보스 1세대부터 살아온 기지만한 거대한 고래. 미확인
(잠을 자고 있었음. 현재 깨어남. 이번 전쟁으로 처음 깨어나 꼬리를 흔듬. 불안정. 폭력성 없음.)
-15 (1/2) 개미지옥 2 (완료)
개미지옥; 전정국과 민탄소가 함정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는 감정을 뜻한다.
드디어 다시 복구했습니다... 아... 생각 안 나는 걸 짜내느라 고생한 나에게 박수를 보낸다!
짝짝 너 이자식... 참 잘했어... 근데 빠자먹은 부분이 있군... 고쳐야지...
또 12시간이 걸렸네요. 원래 4시간 걸렸는데 글을 안 쓰다가 쓰려니 조금 버퍼링이 걸려서 다음부터는 더 빠르게 쓰도록 할게요!
오줌 마려워도 참고 쓴 나에게 머리를 쓰담자. 쓰담쓰담...
이런 실수있어도 자주 자주 올거니까 얼른 시험 잘치고 만나요. 8ㅅ8 독방에서 만나시면... 당황스럽지만 일단 고나리 먼저 합니다.
남준이 석진이 윤기 지민이 태형이 왜 안 나오지...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 꽤 있으실텐데
일단 예상되는 20화까지는 태형이랑 전정국,민탄소 중심으로 돌아가요. 전정국,민탄소 분량이 더 많은 부분인데 글 전개상 둘이 더 많이 나오더라구요. 태형이는 잠잠무소식 끌끌
뒤에 가면 다른 애들 분량 챙기니 걱정 마세요! cheers-☆★
뜨앚 15화 올려서 넘 기뻐요! 이제 푹 자야지...
댓글은 학교에서 짬짬히 쓸게요! 여러분들 너무 좋아요ㅠㅠㅠㅠ왜이러지 새벽감성폭발인가 독자님들 b.
-애끼는 암호닉님들-
/망붕/너를 위해/오하요곰방와/탄소1/마틸다/보솜이/윤기모찌/부랑이/레모나/태태뿡뿡/태쁘/윤기융털/곰탱♥/목단/잼잼//아쿠아/닭키우는 순영/버블방탄/죠리뿅/다고쳐/버누/#Real V/효인/정글곰/골드빈/꾸기안녕/4124/말순이/홉달래/막꾹수/민군주님/김까닭/1600/뀨뀨/도우너/침침쿠마/달콤한 방탄♥/흥탄소년단♥/숲/라이언킹/종구부인/영덕대게/꿀윤기/곱창/도로시/흑슙흑슙/뷔몽사몽/아방빠/히지/라뿡까끄/알라/민빠답없/애독자/돼지꽃밤/베네/태꾹/♥/
댛니/뀨뀽/자판기/김데일리/봄봄/냥냥이/태탱쿠키/토요일/상처/도로롱/꾹블리/코카/뽀아/청천을/초딩입맛/민트/핑슙/청량/밀짚모자/태태야/쀼쀼/미시적관점/글로스/됴종이/모니몬/자몽/레모니/멜랑꼴리/방탄이즈뭔들/깨알/깨알친구/득구/blue/이사/꿍따리샤바라/펭귄사탕/하루야채/댐므/넬리/팥빵/다영/두부/♥지인♥/꾸기꾸기/뚱이/이리다/미나리/박듀/작가님 사랑해요/즴늬/콩순이/1031/모찌모찌해/글로스/포뇨뇨/채꾸/설탕맛/빅키트박뿡/딘시/뿌용/첼리/민빠답/꼼데/태정태세/꼬맹/생활과 윤리/정국노래자랑/태태한 침침이/먼지/슈룹/달똥달/미니언/뽐뽐/방탄사랑나라사랑/쿠쿠/콩/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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