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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영역에 총구를 겨누다.
-2부-
월계수의 왕관을 쓸 승자.
Two Hearts
w. 그루잠.
-15# (2/2) House of cards.
오래된 마른 낙엽이 발 아래에서 바스락거렸다. 정체불명의 발자국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푸른 공기의 숲을 하염없이 걸었으나 뿌연 안개만이 날 반긴다. 걸어가면 갈수록 파고들어지는 안개에서는 퀘퀘한 냄새와 함께 꽃 향기가 후각을 자극했다. 점점 낮아지는 나뭇가지들의 위치에 칼로 베며 헤쳐나갔다. 숲의 나무에 피어난 버섯의 냄새가 강했다. 양귀비의 향이 나는 것 같기도. 고동피리 소리가 길을 따라 울려퍼졌다. 그리고 사람들의 환호성. 머리가 어질해진다. 숲이 잠깐 어떤 건물들로 보였다. 중세시대의 유럽의 도시. 마차들의 바퀴가 굴러다니도 벽돌로 깔린 땅. 화려한 레이스가 달린 흰 드레스. 허리가 한 줌인 여자가 까만 양산을 들고 내 옆을 지나쳐갔다. 순간 비쳐진 숲길과 겹쳐보이는 도시 길의 끝. 그 끝에는 거하게 지어진 서커스 천막. 인구가 몰려 삐져나온 사람들이 품위없이 소리를 질러댔다. 빨간 천막을 둘러싼 전구 하나가 깜빡이자 다시 보이는 남색의 숲. 길은 한산하고 적막이 흘렀다. 검은 머리칼을 스쳐지나는 바람이 나무들을 흔든다.
그럼에도 생명체 하나 보이지 않는 숲길의 막바지에 다달았다. 엉망으로 엉킨 넝쿨들을 찢고 길을 뛰쳐나왔다. 그러자 내 망막에 비치는 것들은 은색 더넓은 늪. 늪을 둘러싼 냉대지방의 나무들이 말라 비틀어졌다. 늪을 건너 메말라버린 잔디 언덕이 보인다. 하지만 선으로 보이는 잔디를 밟고자 위험하게 이 늪을 건너야 한다.
내려다 본 늪은 끈적끈적해 보였다. 돌이 구르는 메마른 땅에 푸른 낙엽을 주워 늪 위로 던졌다. 팔랑거리며 수면에 닿은 낙엽은 곧 젖어 가라앉았다. 투명하지 못한 물에 칼을 높게 들었다. 돌아갈 수 없다면 직진. 어떤 위험이 도사리는지 알 수 없다. 칼에 끈적한 액체가 달라붙지 않게 손에 들고 발을 늪으로 내딛었다. 물 안의 바닥에 구두 뒷꿈치가 닿았다. 정장 바지는 늪으로 잠기고 점성이 뛰어난 액체를 가르고 나아갔다. 천천히.
걸음을 옮길 수록 밟히는 것이 걸린다. 맨몸의 무언가가. 썩어 문드러진듯한 살이 밟혔다. 밟고 선 나는 시신의 늪을 걷고 있었다.
동물의 감각으로 알아챘다. 여기까지다.
늪의 반도 오지 못하고 걸음을 멈췄다. 이 물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함정이다. 멀리서 보글보글거리는 물방울이 늪 위로 올라오며 차차 내 주위를 둘러싼다.
다리를 붙잡은 손. 희멀죽죽한 손들이 늪에서 하나둘씩 빠르게 증가하여 내 몸을 감싸 강한 압력을 제공한다. 허리를 감싸며 칼 마저 앗아간 손들이 더 농밀하게 빈틈없이 나를 얽매었다.
몸에 강직하게 힘이 들어가 압력들을 견디려고 하자 한 손이 발을 넘어뜨린다.
풍덩-.
기회를 놓치지 않고 놈들은 나를 이 속으로 끌어내렸다.
안으로 강제적으로 빠진 나는 늪이 아닌 다른 공간으로 들어왔다. 익숙하고 포근하며 한없이 깊은 곳. …바다다. 향수병을 일으게 하는 산호색 바다. 나는 바다 안에서 헤엄친다. 손에는 칼이 아닌 자유로운 흰동가리가 스쳐갔다. 밝은 태양빛이 바다 안으로 곧게 들어왔다. 다문 입술을 열자 여러개의 물방울이 고르륵 생성된다. 숨을 뱉고도 아무렇지 않은 바다. 숨이 막히지 않았다. 손을 수면 위로 뻗으면 태양의 따뜻함이 전해져 손끝이 달아오른다. 물 안으로 다시 끌어온 손이 물살을 가른다. 서스럼없이 수영을 했다. 정장이 아닌 육지에 있을 적 새하얀 도복을 입은 채로.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만끽한다.
곶으로 추정되는 곳에 가까이 오자 물의 깊이도 얕아졌다. 바다에서 나오니 저 멀리 해변 방파제 뒤로 집이 보였다. 작은 섬. 이곳은 섬이다.
내 고향. 내 집. 내가 태어난 곳. 하늘은 하늘빛. 바다는 바닷빛. 특정 색을 나타내는 이 단어들이 내 고향에 잘 어룰렸다. 축축해진 머리는 검은색. 햇빛을 받고 갈색을 띄었다. 팔에 감겨 있는 붕대에 핏자국이 있었다. 과거에 있는 나는 뭘 해야 됐었는지 잊고 맨발을 해변 위로 올렸다. 저 멀리 섬의 언덕 위로 소규모 주택. 빨간 지붕의 집. 문을 열고 나온 어머니가 나를 향해 웃으며 손짓했다.
"태형아!"
하얀 머리의 아름다운 어머니는 앞치마를 두르고 계셨다. 내게 서두르라, 오라는 손짓을 보내는 어머니는 꽃밭에 물을 주고 다시 들어가셨다. 펄럭이는 빨랫감들이 열기로 말라갔다. 열린 문으로 보이는 신문을 읽고 계신 정장차림의 아버지. 백색의 머리칼. 한 손에 커피잔을 들고 내게 고개를 돌린 그는 깊게 패인 팔자주름이 더 돋보였다.
그들과 상반되게 나는 웃지 못했다. 나도 모르게 올린 한 손이 스르륵 내려갔다. 해변 모래를 밟는 소리에 눈길이 소리를 쫓았다.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내게 달려온 김석진. 형은 내 손을 잡고 집을 향해 달렸다. 내리쬐는 태양빛이 김석진의 백색 머리카락을 금빛으로 물들였다. 반짝이는 모래알처럼. 내가 갖고싶었던 그 머리카락. 갖지 못했던 그 머리카락.
"어서와. 배고프지?"
표정을 잃은 나는 몸이 이끌리는 대로 따랐다.
행복과 기운으로 가득한 따뜻한 가정. 내가 바란, 바랐던 과거가 모든게 늦어버린 지금 펼쳐진다.
넋을 놓은 나는 나무 의자에 앉았다. 좁지 않고 적당한 크기의 부엌. 어머니와 아버지. 생글생글 웃으며 날 맞이했다. 내 옆자리에 앉은 김석진. 형의 머리카락은 어머니를 닮았다. 내게 스프를 내민 어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뒤에서 안았다. 포근하고 안락한 품. 그리고 그녀의 가슴에 핏물이 흘러 어깨를 적셨다. 진심어린 목소리가 얼어버린 가슴을 두드렸다.
태형아, 많이 아팠지? 엄마가 미안해.
신문으로 얼굴을 가리던 아버지는 신문을 치우셨다. 커피잔을 살포시 식탁에 내려놓은 그는 내가 알던 아버지가 아니었다. 앞자리의 아버지는 내게 인자한 미소를 보여준다. 태형아. 자주 집으로 오거라.
그리고 그의 가슴팍에 4개의 총자국이 새겨지며 셔츠에 피가 번졌다.
왜 당신들은 진작에 그 아름다운 미소를 제게 보여주지 못하셨습니까.
다 죽고 나서야 받은 미소는 아무런 역할을 해내지 못했다. 고작 얼은 마음을 녹이는 열조차 되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마음의 문을 닫은 나는 울지 않았다. 병. 이건 병이야. 내 고질병. 울지 못했다란 말이 더 정확했다. 스프를 떠 먹으며 석진의 물컵에 물을 마셨다. 여전히 짜군요. 당신의 사랑도 짰습니다. 어찌 그리 어려웠는지. 어떻게 그렇게 내가 미웠는지. 당신들이 죽을 때 나는 결코 눈물 한 방울 내지 않았습니다. 저는 괴물입니다. 당신과 고래가 낳은 괴물입니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핵을 내포하고 있는 비밀병기요.
현실과는 정반대인 환상. 내 환상은 내 욕구를 그대로 반영했다.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과 함께 내 공간에서 의미없이 스푼을 움직였다.
사랑받고 싶다가 아니야. 치유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누군가 필요해.
스프를 먹다 앞을 보니 아버지는 온데간데 사라져있었다. 어깨를 감싸던 감촉도 사라졌다. 둘은 바닥에 쓰러져 마지막 내가 그들을 보았던 모습 그대로 내게 보였다.
내가 원한건 이게 아니야. 남은건 김석진과 나. 갈색 머리로 바뀐 김석진은 아무렇지도 않게 스프를 떠먹고 있었다.
어머니가 죽은 후로 바뀐 김석진이 내 옆에 남았다. 크림슨 하트 기지로 가기 전, 김석진의 모습. 형은 바다와 어울리지 않았음에도 바다로 가길 원했다. 가족은 우리 뿐이었다. 그렇게 만든건 김석진. 장본인은 당신이고.
오이디푸스. 오이디푸스 컴플랙스. 어머니를 사랑했고 지키고 싶어했던 김석진은 실수로 어머니까지 죽이고 말았다. 나는 그 광경을 보고 질책하지 않았다. 훈련소에서 살다시피 했던 나는 밤의 울부짖음만 듣기만 하면 됐었다. 어머니의 고함소리와 아버지의 물건을 부수는 소리는 잠으로 덮으면 됐었다. 나는 누구의 아들도 하고 싶지 않아. 내가 자신의 혈족이 아니란걸 알면서도 동생으로 받아준 석진은 나를 동생처럼 사랑했다. 반대로 나는 그들을 배척했다.
내가 유기적이며 생명력이 꿈틀대는 낯선 세계에 태어났을 적, 모두의 환영을 받았다. 사실을 알기 전 까진 난 부모의 자랑이자 귀한 아들이었다. 아마 내가 원하지 않아도 크림슨 하트로 가게 되었을 것이다. 내 운명의 길은 그렇게 정해졌을거야. 피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다. 내 온몸이 바다로 가고 싶어 피가 들끓었다. 처음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가게 된 곳은 어느 한 실험실. 내 피를 뽑고 신체 검사를 하던 흰 가운의 의사들. 해질녘, 소파에 앉아 어머니와 그들의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어릴 때라 알아듣지 못했었다. 혈액이 전대 보스와 99.99% 일치한다는. 난 알지 못했어야 했다. 내가 고래의 아들이어서 그렇다는 걸 알아서는 안 됐어야 했다.
이후 훈련소를 오가던 5살 아이는 검을 잡았고 특출난 능력이 아이의 꿈으로 향하는 발전기가 되었다. 실검을 잡기 전까지 온 나는 훈련소에서 갇혀 매일 몸이 으스러져라 베었다. 몇년만에 집에 들어오자 집은 거의 마굿간이 되어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자 부엌은 부서져 물이 배수관에서 새어나와 물난리. 거실 벽에 걸린 가족사진에는 내 얼굴이 칼집이 나 있었다. 방에서 나온 흰색머리의 아버지는 총을 들고 있었다. 나를 향해 겨냥한 그 총은 부들부들 거렸다. 결국 쏘지 못한 아버지의 얼굴을 또렷하게 기억할 수 밖에 없었다. 쾅. 방으로 들어간 아버지. 그리고 총구와 뒷모습. 그 나이때쯤이면 충격은 쉽게 기억에 남았다. 뒤늦게 문소리를 듣고 뛰어나온 어머니는 뺨에 생채기가 나 있었다. 빛을 잃은 눈으로 올려다 보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게 손 한 번 대지 못하고 주저하다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김석진은 나보다 4살 위. 그는 훈련소에 들어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2층 방으로 들어간 나는 씻고 잠을 깊게 잤다. 그렇게 가족 간 멀어지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아버지는 크림슨 하트의 요원이었다.
몇년 뒤, 작은 훈련소에서 본격적으로 크림슨 하트 요원을 배출해내는 곳으로 옮겨졌다. 기본적인 공부를 가르쳐주고 심화된 훈련을 시켰다. 배움에 중독된 나는 검으로 묵은 감정들을 풀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성격이 생성되었다. 가족이 개입되지 않은 나. 뒤를 받쳐주는건 어머니도, 아버지도 아닐텐데. 내가 뻐꾸기 알이라는 소문을 듣고 참아왔던 것들 폭발시켰다. 그 자리에서 험담을 하던 놈들을 찌르고 자료실로 침입해 나와 관련된 자료들을 모두 쏟아내었다. 흥분으로 가득찬 나는 곁에 있던 전문서적을 수납하는 선반까지 무너뜨렸다. 좌르륵 흩어진 A4 용지들에서 후원자의 서명을 볼 수 있었다. 크림슨 하트의 전대 보스. 그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남자. 그걸 동의한 보호자 사인은 김석진의 것이었다. 칼에 찔렸던 그들은 다시는 뻐꾸기 알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지 않았고 나는 감시 처분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상황이 흘러가자 김석진이 나를 찾아왔다.
혈육을 거부하고 흰 머리에서 갈색 머리로 물들인 김석진. 위에서 내려다보는게 그렇게 배알이 꼴렸다. 내 뒤에서 일을 벌이고 있었던게.
'태형아, 김태형. 나 봐봐.'
'닥쳐.'
'김태형. 형이야.'
'무슨 형. 네가 내 형이야?'
'난 네 형 맞아. 언제까지나 널 지켜줄거야. 넌 내 하나뿐인 가족이니까. 하나밖에 없는 동생,'
'거짓말. 넌 거짓으로 가득찼어. 다 알고 있었지? 모든 걸 다 알고 있었지? 어머니가 전대 보스와 관련된걸. 나만 흰색 머리가 아닌 이유를.'
'그런 건 다 필요없어. 난 너만 바라보고 살거든. 네가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남지 않아.'
'아버지를 죽인 이유가 뭐야.'
'어머니 목을 조르는 걸 봤었어. 그는 미친 망아지나 다름없었고, 나는 선택을 했지. 이렇게 되면 너나, 어머니. 둘 다 잃는 꼴을 봤어야했으니까.'
'아버지도 괴로웠어. 내가 그가 모시던 보스의 아들이란 사실이. 나는 아무 상관이 없었단 말야.'
'달라진 건 없어. 태형아, 피는 상관이 없어. 넌 내게 남은 보물이야.'
그는 창살 너머 닿지 않는 내 얼굴을 눈에 담았다. 오롯이 나만 보는 김석진이 안쓰러웠다. 그 아름다운 섬에서 참혹사. 한 핏덩이때문에 자신의 가정이 파탄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버지를 처리하라 크림슨 하트 살인 요원을 보냈다. 전대 보스의 핏줄을 위협한다는 이유 하나로 가정을 무너뜨릴. 어머니는 아버지를 죽이려드는 놈들을 방해하다 돌아가셨다. 그 시각에 내가 집으로 돌아왔던게 문제였나. 해가 지면서 노란 물이 집안을 채웠고, 피투성이인 부모는 내 시야를 채웠다.
십의 자리 숫자가 1, 일의 자리 숫자는 작은 어린 나이. 분노를 머금은 내게 김석진이 정장 안에서 한 목걸이를 건냈다. 피묻은 목걸이에 박힌 보석이 소소하게 반짝였다. 받아든 나는 목걸이를 열어보곤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내 증명 사진. 어머니의 목걸이 안에는 내가 담겨있었다. 반대쪽에는 김석진의 얼굴이. 낡은 사진에서 가루가 떨어졌다. 붙잡고 흐느끼기만 하는 나는 몸을 웅크렸다. 눈물이, 눈물이 나오지 않아. 울음조차 나오지 않는 상황. 이미 잃어버린 감정에 뇌는 절묘하게 눈물샘을 자극하지 않았다. 흐느낌을 뚝 멈췄다. 그리고 무표정으로 돌아가 슬픔을 툭툭 털어냈다. 이건 내가 의도한게 아니다. 무언가 잃어버렸다. 입에선 망자가 낼듯한 소리가 나왔다. 괴상하게 변하는 표정이 웃음으로 바뀌었다 당황으로 바뀌고 반복했다.
이상함을 느낀 김석진은 억지로 창살을 부시고 안으로 들어왔다. 내 어깨를 붙잡고 흔드는 김석진이 목소리 톤을 높여 나를 나무라듯 말했다.
'김태형, 김태형! 나 봐. 나 보라고!'
'…아,아. 아….'
'너 왜이래. 언제부터야, 어?!'
'나도, 몰…몰라.'
'의사 불러와. 어서!'
김석진이 의사를 부르고 나는 그 자리에서 주체할 수 없이 정신병자처럼 웃었다. 정신과 의사들이 몰려드는 가운데 나는 목걸이를 깨트릴 만큼 힘을 내어 꽉 잡았다.
과거를 처음부터 훑던 상상은 의자가 훅 뒤로 넘어가면서 끝이 났다. 장면이 바뀌었다. 처음보다 더 광활한 바다. 산호색 바다 한 가운데에 빠진듯 헤맸다. 허우적거리는 나는 어느 누군가의 존재를 느꼈다.
고대했고, 기다렸고, 하염없이 그리워했던 목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김태형."
정호석.
커다란 고래 한 마리가 나와 같은 바다에 잠겨 헤엄친다. 그리고 그 고래는 셀 수 없는 금빛 나비들로 변하더니 정호석이 되었다. 살아있었다면 그럴듯한 모습. 멀끔한 정호석은 단정한 흰 셔츠와 얇은 정장 자켓, 여름 정장 바지를 입고 중앙에 떠있었다. 나를 맞이하는 그는 나를 오래 기다린듯해 보였다.
헌재는 슬픔을 느끼지 못하는 괴물. 눈물이 나오지 않는 고장난 사람. 남을 존중해줄 줄 알면서 정작 제일 가까운 사람에게는 등을 돌렸다. 김석진에게만 유독 매정하고 차가웠다.그를 포용할 만큼 내게 빈 공간이 없었다. 그것을 위로해주고 치료해줄 사람은 선배뿐이었다.
나와 마주본 사나이는 해맑게 웃으며 숨을 쉬었다. 올라오는 공기방울은 가짜가 아니길.
"오랜만이야. 왜 표정이 그래? 반갑지 않아?"
"…많이 보고 싶었습니다. 선배. 잘 지내셨어요?"
"그럭저럭. 너는 죽을 상이군 그래. 무슨 일 있었어? 상상으로 날 불러오기 까지 하고…. 정말 김태형 뭔 일 있는가보네."
고개를 주억거리자 의자가 나타났고 그 의자에 정호석이 앉았다. 또 무슨 일이실까…. 커피잔이 나타나고 그걸 쥔 정호석은 담긴 커피를 마신다. 그는 명석하고 똑똑한 남자였다. 포용력이 큰 선배는 모두의 휴식지고 그는 공허함을 채워줬다.
항상 그는 내 얘기를 들을 때 커피를 마시곤 했다. 원두향이 강한 커피는 바다에 섞이지 않았다. 완벽한 상상.
환상에서 깨어나오고 싶지 않다. 이곳이야 말로 파라다이스, 나만의 낙원. 모든게 갖추어져 있는 곳. 여기서 죽는대도 머물고 싶다. 현실로 깨어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누군가 빠진 듯 하다. 한 명이 빠졌다. 누구지? 그 사람은 누구? 약하게 스쳐가는 기억. 짧은 칼단발, 흑갈색 머리카락. 올곧게 올려다보는 흰 …. 희고 흰 드레스를 입은 한 여자. 입술이 분홍 글로즈로 덮어져있었다. 태형 선배라 짧게 부르는 입이 억지로 모질게 기억에서 삭제했다.
연달아 눈 앞에 스쳐가는 늪지대. 머리 속에서 개워내려고 눈을 감았다 떴다. 그리고 눈 앞에는 은은한 미소를 내뿜는 정호석이 커피잔을 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무슨 일 있구나."
상관없어. 이곳에서 나가고 싶지 않아.
내 환상 안 바다와 정호석이 있는 한, 나는 깨어날 생각이 없다.
정호석이 자신이 죽은 후, 또 다시 전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 어떤 반응을 할지 두려웠다.
*
현재 바다. 스크린이 띄워져 있는 가운데 아무도 인공위성을 작동시키지 않았다. 혼자 기지에 남아 지켜보는 것도 내겐 고역이었다. 태형과 탄소를 방해한 전정국. 내게 협상을 요구한 지 하루의 반이 지났다. 전쟁을 시작한지 3일째.
연락이 통 되지 않는 탄소, 햇빛이 내리쬐고 모래가 산 같이 쌓인 곳에 간 지민. 그리고 제일 걱정되는 태형. 델타 섬은 위험하다. 혼자라면 더더욱.
태형과 교류는 물론이요, 지민과는 될듯 말듯 연결이 희미했다. 무전기는 잃어버린게 아닌지. 한 번 연락이 되었는데 지민이 요원들을 상대하는 중이라 실패했다.
기지 맨 위에 서서 날밤을 새었다. 서로 총을 쏘지 않고 대치 상태인 요원들은 각자 패밀리를 보좌하기 위해 섬 주위를 빙빙 돌았다. 배들이 주기적으로 돌아서 내 눈도 도는 것 같았다.
무전기만 꼭 잡고 있는 나는 전쟁이 끝난다면 죄책감에 시달릴지도 모른다. 나만 태평하게 된 전쟁. 애만 타고 생중계만 지켜봐야했다. 그래도 끊임없이 연락을 시도한다. 혹시 그들이 부상 상태라면 더더욱 신경을 세우고 있어야 했다. 혹시라도 올 연락을 기다리며 바깥 상황을 파악한다.
모든 해양 패밀리들이 모여 지켜보는 가운데, 감감 무소식이라 자신의 구역으로 돌아가는 배가 하나 보였다. 이 지대가 위험하기도 했고 관심이 떨어졌다는 것이 보였다.
어느 패밀리지. 나중에 갋아줄거다. 자신의 일과도 관련된건데 눈에 띄게 행동하고 지랄이군. 장총을 잡아 들어 맨 위에 패밀리를 수호하는 요원을 향해 경고를 보냈다. 탕-. 다리를 맞춰 쓰러뜨리니 총알이 날아온 쪽으로 보는 그쪽 보스. 나와 눈이 마주쳤다. 경고를 눈치챈건지 다시 자리로 돌아왔고 그들 역시 총상으로 바빠졌다. 총을 내리고 무전기를 잡자 갑자기 진동이 울렸다. 급히 받자 지민이의 얼굴이 무전기 위 전자막에 떴다. 모래로 가득한 사방. 지민이는 코와 입을 막은 채로 웅얼거렸다.
-보스, 지금 방향감각을 잃었습니다. 모래폭풍이 몇시간동안 일어나서-
"빨간 버튼 눌러서 인공위성으로 연결해. 잠깐 스크린에 모습 비춰봐. 인공위성에 접촉된 걸로 알려줄게."
-잠시만 기다려… 지지직- 지직, 아악! 씨발 이게 뭐야!
"박지민! 어서 누르라고."
흔들리는 전자막. 무전기가 떨어졌는지 모래가 보였다. 그리고 폭신한 모래색 사막여우의 발이 보인다. 네 발이 움직이더니 지민이의 돌고래 소리가 들린다. 제기랄! 꺼진 전자막 위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허탕. 또 연락이 끊겼다. 지민이의 소식이 끊기자 마자 갑자기 스크린에 한 장면이 보였다. 눈을 퍼뜩 뜬 나는 무전기를 들었다. 누군가 인공위성을 켰다. 시작이다. 사자의 고래사냥이 시작되었다. 살이 찢어져라 쥔 주먹에 피가 고였다. 놈들의 발이 빨랐다. 전자파가 제대로 되지 않아 검은 화면이 깜빡이다 누군가의 얼굴이 화면상으로 나타났다. 잘 들리지 않는 대화내용과 수호신의 얼굴. 주먹으로 쇠 난간을 내리쳤다. 씨발, 일 똑바로 안 해?!
갑자기 해안지진이 일어났다. 난간에서 멀리 떨어져 자리를 고정했다. 떨어지면 정말 좆되는 거야. 그러자 돌풍을 일으키며 바다에서 올라온 리바이어던. 구약성서에 나오는 바다의 푸른 용이 하늘로 솓구쳤다. 스크린 주위를 도는 토네이도가 아찔하게 크림슨 하트 기지를 빗겨나갔다. 용이 바다로 잠식한 후, 서서히 백상아리들이 바다에 모습을 나타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순식간에 일어난 놈들의 공격에 모든 요원들이 카오스에 빠졌다. 배를 공격하던 상어들이 요원들을 물어 죽였다. 장총을 들고 백상아리들을 향해 총을 겨누자 놈들이 행동을 멈춘다. 그리고,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고개를 돌렸다.
그 곳은 알파. 알파 섬이었다. 전정국과 민탄소가 살아있는. 좋지 않은 기운이 한꺼번에 등을 덮쳤다.
상어들의 옆구리 살을 찢고 나온 두 다리. 지켜보던 패밀리들은 경악에 물들었다. 해안에 뜬 모든 상어들이 알파 섬을 향해 두 다리로 비틀거리며 달려갔다.
괴물들이 팔방에서 알파로. 가히 눈으로 세어봤자 스무 마리가 넘었다.
현재 4:4
○ 전정국&민탄소 ○ 김태형
α [알파 island] (고래)-라이언하트 δ [델타 island] (사자)-크림슨하트
크림슨하트 고대의 수호신-다리가 달린 고래(인간의 말을 할 수 있음) 미확인
상어,아나콘다,가오리. 현재 환상에 갇힌 상태.
단서- 이정표. 살아서 움직인다, 마시지 마.
○ 김석진&김남준 [스크린] ○ 박지민
β [베타 island] (고래)-라이언하트 ε [엡실론 island] (사자)-크림슨하트
미확인 미확인
○ ○
γ [감마 island] (고래)-라이언하트 ζ [제타 island] (사자)-크림슨하트
미확인 미확인
○ 민윤기 ○
[크림슨하트 기지] (마지막 고래) [라이언하트 기지] (마지막 사자)
헨리 18세때 만들어진 조직의 크림슨하트 보스 1세대부터 살아온 기지만한 거대한 고래. 미확인
(잠을 자고 있었음. 현재 깨어남. 이번 전쟁으로 처음 깨어나 꼬리를 흔듬. 불안정. 폭력성 없음.)
15(2/2)#-House of cards(완료)
글 쓰기 전에 계획했던 것들이 이번 방탄소년단 컨셉이랑 완벽하게... 일치가 되어서 좀 놀랐지만 내용을 고칠려다가 계속 진행합니다.
웨일리언 52, 하옵카 마씨티(모두가 떠나버린 고향), 버터플라이...(나비) 고엽... 고엽?(태형이가 밟은 낙엽) (예외로 뱁새는 아닌데...)
세상에 왠일이니... 제 글보시면 계속 노래가 생각나신다고 하는데... 저도 컨셉이나 글내용이 같으니 겹치게 보여요. 저는 글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알고 있기때문에... 그런 부분이 더 많아요 큽 제가 오래 계획했던 글을 더 일찍 썼더라면 성지글이 되었을텐데 아쉽네요 ㅋㅋㅋㅋㅋㅋ
제일 겹치는 부분이 호접지몽, 나비가 나인지 내가 나비인지. 태형이가 걸린 환각이 이제 태형이의 목숨을 쥐고 흔들거에요.
슬슬 나오는 과거와 애들의 성격. 1부는 가면, 2부는 내면. 사소한 것까지 방탄과 매치가 돼서 좀 주저하고 있어요.
알파 섬의 고래가 노래 웨일리언 52랑 ...하하ㅜ 다른 말을 하는 고래들. 새우잠을 자는 고래. 이렇게 되면 싸그리 갈아엎어야 되나 싶었는데 그냥 그대로 갑니다.
다시 스토리짜기엔 시간이 없어서 ㅜㅜ
전쟁을 진행한 지는 오래됐는데 다음화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란 말을 하게 되네요.
겉으로 보이는 것은 괴물, 적과 싸우는 전쟁이지만 곧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한계를 넘어서야 하는 이곳, 쉽지 않을 거에요.
지금 이메일 몰아서 보내고 있어요! 기다리시기 힘든 분은 독방에 제 글 치면 바로 눈치채실 거에요.
댓글 잘 보고 있어요! 사랑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무슨 말을 해야될지 도통 생각이 안나지만 이거 하나만은 정확해요. 다들 제가 많이 아끼는 걸. 댓글못쓰고 진짜 멍하게 읽는 것 밖에 못하는군요 ㅠㅜ 시간이...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끝까지 쓸려고 한 2,3달...소요할거에요. 아마 크리스마스때부터 휴재하려고 했던 계획은 안 될거 같아요. 곱게 접어 던집니다.
이번편은 좀 짧았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 많으실텐데 질문 하시면 정성을 다해 도와드립니다!
아니면 투하츠 가이드 편 올리는게 더 나을려나요...
투하츠를 보실때 관전 포인트. (꼬인 관계만큼 넘나 많음 주의)
1.석진과 태형, 정국.-triangle, 석진과 태형의 비밀. 태형과 정국의 차이.
2.석진과 윤기.-심해공포증. 붙힐 수 없는 사진.
3.남준과 정국.-남준의 내면세계. 정국의 산산조각난 족보.
4.지민과 태형.-동기.
5.석진과 지민.-부서진 신뢰.
6.남준과 호석, 윤기.-정국이를 사이에 둔 애매한 관계. 굴러온 돌.
7.호석과 윤기.-호석의 일기(석진이 소유하고 있는 일기장), 전대 보스.
8.태형과 호석.-낯선 곳. 베를린 벽을 넘어서.
9.지민과 호석.-존재의 무로 커진 구멍. 새끼손가락에 묶은 호석의 손수건.
10.정국과 호석.-사탕발림. 변종.
11.석진과 호석.-석진은 피와 어울렸나?
12.정국과 탄소.-puzzle. 동갑. 첫만남. 저주.
13.탄소와 호석, 윤기.-혈연. 백발의 남자.
14. 탄소와 태형, 윤기.-백발의 남자. 존경. 몸 안의 핵. 비밀병기. (일부러 삼각관계인 정국은 뺐습니다.)
15. 윤기와 정국. 그리고 전대 보스.-보스와 왕의 자리.
크림슨 하트+ 라이언 하트= 투하츠. 고래vs사자.
마지막 16.모래성이 부서진 방탄에게 현재 간절히 필요한 것은 부재인 호석.-중재자. 대립 해소 중점.
-암호닉-
/망붕/너를 위해/오하요곰방와/탄소1/마틸다/보솜이/윤기모찌/부랑이/레모나/태태뿡뿡/태쁘/윤기융털/곰탱♥/목단/잼잼//아쿠아/닭키우는 순영/버블방탄/죠리뿅/다고쳐/버누/#Real V/효인/정글곰/골드빈/꾸기안녕/4124/말순이/홉달래/막꾹수/민군주님/김까닭/1600/뀨뀨/도우너/침침쿠마/달콤한 방탄♥/흥탄소년단♥/숲/라이언킹/종구부인/영덕대게/꿀윤기/곱창/도로시/흑슙흑슙/뷔몽사몽/아방빠/히지/라뿡까끄/알라/민빠답없/애독자/돼지꽃밤/베네/태꾹/♥/
댛니/뀨뀽/자판기/김데일리/봄봄/냥냥이/태탱쿠키/토요일/상처/도로롱/꾹블리/코카/뽀아/청천을/초딩입맛/민트/핑슙/청량/밀짚모자/태태야/쀼쀼/미시적관점/글로스/됴종이/모니몬/자몽/레모니/멜랑꼴리/방탄이즈뭔들/깨알/깨알친구/득구/blue/이사/꿍따리샤바라/펭귄사탕/하루야채/댐므/넬리/팥빵/다영/두부/♥지인♥/꾸기꾸기/뚱이/이리다/미나리/박듀/작가님 사랑해요/즴늬/콩순이/1031/모찌모찌해/글로스/포뇨뇨/채꾸/설탕맛/빅키트박뿡/딘시/뿌용/첼리/민빠답/꼼데/태정태세/꼬맹/생활과 윤리/정국노래자랑/태태한 침침이/먼지/슈룹/달똥달/미니언/뽐뽐/방탄사랑나라사랑/쿠쿠/콩/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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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치신 분들, 시험 치실 분들. 혹은 바쁘신 분들 제가 많이 응원하고 있어요 ^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