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 ]
[ 저번에 미팅했던 ]
열심히 타자 두드리고 있는데 금방 1이 사라지더니 답장이 왔다.
[ 응 ]
[ 기억하고 ]
[ 있었어 ]
그리고 한 5분 동안을 서로 말이 없었다.
그래, 내가 먼저 얘기하자.
[ 나 때문에 너 핸드폰 액정 나갔다며.. ]
말은 없더니만 보내고 나니 또 금새 1이 사라졌다.
뭐야, 얼른 대답해!
Rrrrr-
"와씨!"
갑자기 강찬희한테서 보이스톡이 왔다.
"여보세요?"
- "아, 미안. 지금 타자치기가 힘들어서. 전화 괜찮아?"
"어? 어~ 근데 진짜 미안… 내가 수리비 줄게…"
- "아냐 아냐. 사실 별 거 아니라서 그냥 얘기 안 꺼냈어."
그렇게 말하니 진짜 별 거가 아닌 게 아닌 것 같았다.
"아냐. 내가 너무 미안해서 그래. 그 날 취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나봐."
- "아… 미안. 나 때문에 계속 마셔서 취하게 해서."
음? 사과받아 내려는 멘트는 아니었는데.
"이러지 마, 제발. 내가 꼭! 수리해서 깨끗한 폰 사용할 수 있게 해줄게. 제발 그렇게 하게 해줘."
- "그럼 너 나한테 밥 살래?"
"…어?"
- "수리비 받는 것도 모양새가 좀 그렇고, 그냥 밥으로 퉁치자."
갑작스러운 약속잡기에 어안이 벙벙했다.
본인이 지금은 본가에 내려와 있어서, 어차피 계절 때문에 방학 때도 서울에 있어야 하니 월요일날 사달라는 것이었다.
- "너 방학 때 서울에 없어?"
"ㅇ, 아니. 있긴 하지…"
- "그래. 그러면 일요일은 시간이 좀 애매하고, 월요일 저녁 괜찮아?"
"으응."
이렇게 눈 깜짝할 새에 약속이 잡혀버리고 말았다.
과사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김인성이 나타났다.
해결할 건 다 됐냐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뭐가 웃긴 지 웃기 시작했다.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렇게 웃냐니까 비밀이라고 한다.
"아, 진짜 안 되는 줄 알고 엄청 떨었어. 이제 좀 마음이 놓이네."
"아니 뭘 신청했길래 그렇게 좋아해? 뭐 장학금? 아니지, 막학긴데 무슨 장학금이야."
"있어, 그런 게. 그나저나 너 그 미팅에서 만난 애 뭐 문제 생겼다더니 어떻게 됐어?"
"나도 나름 잘 해결됐어. 뺨 싸다귀 맞는 상상도 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어."
"기분이다! 와요(*경희대 아이스크림 맛집) 가자. 아이스크림 사줄게."
진짜 거짓말이 아니라 쌍욕 먹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상상했었다.
물론 미팅 때 본 모습으로는 전혀 그럴 사람으로는 안 보였지만서도…
어찌 되었든 별로 기분이 안 좋아보이지도 않았고, 오히려 나한테 술로 갚으라는 건 내 얼굴을 봐도 분노에 차오르지 않는다는 말이니깐? 좋은 거겠지…?
"근데 그 미팅 친구는 무슨 일인데?"
내심 궁금했는 지 김인성이 은근슬쩍 먼저 물어왔다.
"아~ 내가 헤어질 때 걔 핸드폰 떨궈서 액정 개박살났대."
"아주 사고를 치고 다니는 구나."
"아냐! 사후처리 확실히 해준다고 했어!"
내가 발끈하자 김인성은 아무렇지 않게 웃었다.
"주말에 집 다녀오는거야?"
"엉. 한동안 못 내려온다니까 엄마가 배은망덕하다고 주말에라도 내려오래."
"그럼 올라와서 다음 주 월요일부터 같이 계절 기기~ 저녁마다 밥 먹고 공부 빡세게 해서 에이쁠 기기~"
"뭐야, 진짜 들어?"
김인성이 진짜 나와 같은 계절을 듣는다고 했다.
사실 이번 학기까지만 같이 다니고 앞으로는 같이 얼굴 볼 일도 줄겠다 싶어 내심 섭섭하던 찰나에 이게 웬 행운인가 싶었지만 입꼬리 내리느라 애먹었다.
김인성은 아무렇지 않게 우리가 좋아하는 맛의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 * *
오랜만의 1교시라 고역이 따로 없었다.
겨우 강의실에 들어서자 저 멀리 앉아있던 김인성이 단숨에 날 발견하고 손을 흔들었다.
여기 앉으라며 자기 옆자리를 가리켰다.
생각보다 아는 얼굴이 없었다. 사실 김인성 말고는 아는 얼굴이 없었다.
김인성은 눈도 제대로 못 뜬 내 얼굴을 보고는 웃어댔다.
아니, 일교시부터 이렇게 블링블링한 게 더 대단하다고..
교수님이 출석을 부르기 시작하자 김인성은 내가 펼쳐놓은 노트의 끄트머리에 뭐라고 끄적였다.
점심 뭐 먹지??
아직 아침인데여ㅋㅋ
나 공부하다 너랑 저녁도 먹고 갈거임 빨리 메뉴 정하셈
아.. 저녁... 머릿속에서 강찬희가 술게임하던 모습이 휙 지나갔다.
저녁은 좀..
내 글씨를 본 김인성이 잔뜩 실망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괜한 오해하기 전에 빨리 마저 노트에 끄적거렸다.
미팅 친구랑 밥 먹음
마음이 급해서 빨리 쓰다보니 너무 생략을 해 버린 느낌이었다.
사실은 수리비와 깨진 액정의 컬래버레이션이 더 있긴 한데.
김인성은 글씨를 한참동안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니 저 짧은 문장을 왜 저렇게 보는 거지 싶을 만큼.
아무런 표정도 없이 시선을 노트에 내리깐 채 글씨만 보던 김인성을 불러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싶던 찰나에 교수님이 김인성의 출석을 부르셨고,
"네."
그리고 수업 내내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 * *
강찬희를 만나러 회기역으로 향했다.
한겨울이라 그런지 이제 막 저녁 시간인데도 해가 졌다.
오전 수업 시간에 잔뜩 굳은 채 눈도 마주치지 않았던 김인성이 묘하게 거슬렸다.
물론 같이 점심 먹으며 구구절절 같이 밥을 먹게 된 사연을 다 설명하긴 했지만 괜히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럼 밥 먹고 들어갈 때 연락해.'
'그때까지 학교에 있으려구?'
'아냐아냐. 오늘은 좀 피곤해서 집에 일찍 가려고. 전화 정도는 해줄 수 있으니까 심심하면 전화해라~'
매일 나를 데려다 주던 김인성이 학교에 없을 거라고 했다.
김인성이 나를 데려다 주는 게 당연한 것은 절대 아니었지만, 막상 매일 있다가 없다고 생각하니 밀려오는 섭섭함은 어쩔 수 없었다.
배가 불렀구나. 수업도 같이 들으면서 뭐가 또 부족해서 김인성을 더 원하고 있는 지 모르겠다.
그래도 매일매일 보고 싶은 걸 어떡하냐.
김인성을 좋아하기로 인정해버리자 또 다른 문제에 직면해 버린 처지였다.
김인성이랑 매일매일 같이 있고 싶어!
"안녕?"
별 생각을 다 하면서 개찰구 근처에 어슬렁 서 있었는데 뒤에서 누군가 날 불렀다.
강찬희가 어색한 듯 서 있었다.
그 날은 앉아있어서 몰랐는데 얘가 생각보다 키가 크구나. 그래도 김인성 만치는 안 될 것 같기도 하고..
방심한 순간 또 김인성과 연관 시킬 거리를 찾고 있었다.
"안되겠다. 얼른 가서 밥먹자."
내 반응에 어리벙벙해 하는 강찬희를 데리고 1번 출구로 나갔다.
골목진 곳에 위치한 조그마한 파스타 집이었다.
블로그 검색으로 찾은 집이었는데 원래는 김인성한테 가보자고 하려던 집이었다.
어쩌다보니 다른 남자랑 같이 오게 되긴 했지만.. 맛있으면 다음에 또 오면 되지 뭐.
"라구 파스타 맛있대. 너 라구 좋아해?"
"너 먹고 싶은 걸로 시켜."
신나게 주문을 시키고 나서 꼼지락거리며 주위를 둘러보니 가게 분위가 참.. 데이트가 따로 없었다.
괜히 민망해서 물티슈로 손이나 벅벅 닦다가,
"아, 너 폰 어떡해. 봐봐."
"어?"
"폰 보자고. 얼마나 깨졌어?"
"아, 이따가 보자. 코트 주머니에 있어서."
가게 구석에 있는 행거에 걸린 자신의 옷을 가리키길래 알겠다고 했다.
그 뒤로는 별 영양가 없는 얘기들이었다.
서로의 학교 얘기를 나누다, 서로의 방학 계획과, 전공 공부가 얼마나 거지같은 지를 좀 얘기하다가 했다.
그리고 식사가 나왔고 둘은 말없이 식사를 음미하며 먹었다.
잘 먹는 것 같아 마음이 편했다. 입에 안 맞으면 사주는 사람 입장으로써 더 미안할 뻔 했다.
다 먹어가는 분위기에서 강찬희가 말했다.
"너 되게 미팅 나오기 싫은 사람 같았다?"
"뭐야. 어떻게 알았어."
"나 되게 나가기 싫었거든. 사실 나 땜빵이었거든."
그제서야 다른 남자애 둘이 유난히 죽이 잘 맞는 것 같았던 당시의 분위기가 다르게 생각되었다.
"너도 약간 나 같아 보였어. 말도 없고, 웃지도 않고."
"맞아. 나오기 싫었어. 근데 나는 내가 나가고 싶다고 해서 나간거야."
"왜?"
아무 의도 없이 물어본 강찬희의 질문이 훅 내 마음을 쿡 찔렀다.
대답을 않은 채 가만히 있던 내가 계산하고 나가서 알려주겠다며 일어나자 바깥 쪽에 앉아있던 강찬희가 먼저 일어났다.
그러더니 자기가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했다.
"어, 야야!"
"여기요."
"ㅈ, 잠시만요! 카드 여기! 제 걸로!"
허둥지둥 지갑에서 카드를 꺼내려는데 이미 카드를 꺼낸 강찬희가 자기가 먼저 결제를 하고 말았다.
눈 앞에서 결제를 가로챈 강찬희를 빤히 쳐다보는데 강찬희가 크킄 웃으며 나가자고 했다.
"가자. 데려다 줄게."
"아니, 너가 왜 계산을 해. 내가 사주려고 한건데."
그 순간 강찬희가 자기 핸드폰을 내 얼굴에 내밀었다.
아니, 그래. 핸드폰이 깨져서 내가 밥으로 사주려ㄱ... 어? 뭐야. 왜 깨끗해?
"사실 그날 액정이 깨진 게 아니라 강화 필름이 깨진 거야."
"근데 애들이.."
"스티커만 갈면 되는 거라서 먼저 얘기 안 했어. 연락왔을 때 너 친구가 잘못 보고 얘기해줬나 싶었지."
아니 오지랖 뭔데. 동기 얼굴이 떠오르자 갑자기 조금의 빡침이 느껴졌다.
"대신 담에 술 사주기!"
"뭐?"
"나 너한테 술 얻어마시려고 밥 얻어먹은 건데?"
식당에서와 달리 뻔뻔하게 나오는 강찬희에게 어이가 없어져 웃었다.
강찬희는 나를 데려다 주겠다고 했고 나는 질색을 하며 괜찮다고 했다.
그러자 강찬희는 자기 그냥 산책하는 거라며 김칫국 마시지 말라고 했다. 정말 그렇게 말했다.
"아니 왜 굳이 경희대까지 산책을 하니.. 밤에.."
"내 맘이거든? 집 앞까지 안 가~ 그냥 골목만 데려다줄게. 깜깜해져서 불러냈으니까 그 정도는 해야지."
더이상 거절하기도 무안해 할 것 같아 알겠다고 했다.
같이 골목골목을 걸었다.
"아까 그거 말해줘."
"뭐?"
"미팅 나가기 싫었는데 나왔다며."
"아~ 그거. ... 좋아하는 사람 따로 있어서."
어차피 계속 볼 사람도 아니라는 생각에 사실대로 말해버렸다. 마음 한 구석이 시원했다.
그러자 강찬희는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뭐야? 되게 덤덤하네?"
"뭐 사람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 그런 것 가지고."
"와, 너 되게 애늙은이 같다."
"웅."
강찬희의 쿨한 반응에 둘은 웃음이 터졌다. 생각해보면 별 것도 아닌 대화였지만 그 당시에는 너무 웃겨서 진짜 눈물까지 나왔다.
분명 식당 안에서의 대화보다 더 영양가 없는 대화였지만 이상하게 재밌었다.
둘이 하도 웃어서 주민신고 들어오면 어떡하냐는 내 말에 강찬희는,
"나는 여기 안 사는데?"
하고 뻔뻔하게 나왔다.
원래는 자췻방 근처에서 돌려보내려고 했는데 웃다보니 자췻방 바로 앞까지 와 버렸다.
"야, 나 다 옴."
"오키. 들어가셈. ... 잠만."
강찬희가 다시 내 눈앞에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그러더니 번호를 달라고 했다.
"번호 받아놔야 술 사달라는 거 떼 먹고 도망 안 가지."
"와~ 진짜 에바야~"
"아, 장난이야. 친구 하자고, 친구 친구."
강찬희가 부스스하게 웃었고 나는 여전히 얼굴에 웃음을 잔뜩 머금은 채 핸드폰을 건네 받았다.
번호를 찍어주자 간다며 강찬희는 바로 뒤돌아 자기 갈 길을 갔다.
작가의 변 |
미안합니다. 자격증 준비하느라 혼자 상상 속에서만 인성 센빠이 만나고 있었네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