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부터 계속 콧물이 흐르고 기침이 나오는 게 감기가 오나 했더니
결국 오늘은 너무 춥고 열이 많이 나서 침대에서 나오지를 못하고 있다.
혼자 사는 탓에 곁에는 아무도 없었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을 그를 신경쓰이게 하고 싶지 않아서,
나와 연락이 되지 않으면 불 같이 화를 내는 그를 알면서도
핸드폰을 들 힘조차 남아있지 않아 연락을 미뤘다.
눈이 점점 감기더니 그렇게 잠이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잠에서 깬 건 우리 집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를 듣고서였다.
핸드폰은 그에게서 온 수 십 수 백의 부재중 전화와 문자 메시지로 가득했다.
놀라서 방문을 열고 나가니 그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어,, 오빠."
"너 집에서 뭐했어? 연락 안 되면 나 화나는 거 알아 몰라."
"그러니까, 그게, 내가 오늘 너무 아ㅍ,"
내 말을 끊고서 한 쪽 입꼬리를 올려 피식 웃으며 날 노려보는 그.
"왜? 집에 남자라도 들였나보지?"
2. 민윤기
윤기와 만난지는 이제 2년이 다 되어 간다.
20대 초반 연애에 2년이면 꽤 오래 만난 거고, 곧 권태기가 올 법도 한데
권태기는커녕 그의 집착만 더 심해지는 것 같아 솔직히 질린다.
아니, 이제 무섭기까지 하다.
엄마가 아프다는 핑계부터 시작해서 안 대본 핑계가 없을 정도로 그와의 만남을 피했다.
눈치를 챈 건지, 이제는 진짜 무슨 일이 있어서 못 만나게 될 때에도 내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 너무 지친 나머지 내가 먼저 이별의 말을 꺼내려고 한다.
"윤기야, 우리 이제."
"그만하자고?"
"어? 어., 그게, 미안."
"뭐가 미안해? 어차피 그만 안 할 건데."
"뭐?"
당황한 내가 얼굴을 살짝 찌푸리며 되묻자 내 얼굴에 바짝 다가오며 속삭인다.
"사랑한다고 말해."
3. 정호석
공부를 안한 것이 평생 후회가 된다는 말이 맞나보다.
피터지게 재수생 생활을 한 끝에 목표했던 4년제 대학에 붙었다.
입학 후 오티를 하기로 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고
오티를 가야 대학 생활이 조금이라도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덥석 가겠다고 했다.
그가 싫어하는 것을 뻔히 알지만,
내 대학 합격 소식에 나보다 더 기뻐했던 그를 떠올리며
내 대학 생활을 위해서라면 그가 허락해주지 않을까 싶은 희망을 가지고 말을 꺼냈다.
"호석아 나 이번에 오티한다는데~, 가도 돼?"
"오티?"
"응! 오티를 가야 친구들이랑도 친해지고, 대학 생활도 편하지 않을까?"
순식간에 그의 얼굴이 굳었다.
"남자애들이랑 같이 가는 거지."
"오티니까 남자애들도 있지. 그래도 우리 과가 여자애들이 더 많은 과라서!"
"안 된다고. 거기 가면 술 마실거고, 그 새끼들이 너한테 무슨 짓 할 지 어떻게 알아?"
"에이 설마 그래두 처음 만난 애들인데,"
"글쎄 안 된다고. 시끄러우니까 이제 그만 얘기하는 게 어때 자기야."
4. 김남준
그와 함께 길을 걷고 있었다.
주말이라서 그런지 평일에는 한적하던 거리도 사람들로 붐볐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스쳐지나가며 힐끗대다가
나와 같은 신발을 신은 남자를 보고 눈길을 멈췄다.
내가 다른 곳을 보고 있는 것을 인지한 그가 내 시선을 따라 그 남자를 보았다.
"어디 봐."
"어? 아니아니, 그냥 나랑 신발이 똑같아서!"
내 말을 무시하고는 그 남자에게 다가가 다짜고짜 주먹으로 치는 그.
"김남준!"
당황해서 뛰어가 그 남자에게 싹싹 빌어 사과를 하고 남준이를 나무랐다.
"남준아 너 왜 그래, 그냥 나랑 신발 똑같아서 쳐다본건데. 너 이러면 나 진짜 무서워."
그제서야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 그.
"다른 남자 쳐다보는 것도 용서 못하겠어. 넌 나만 봐야 하잖아."
5. 김태형
그와 함께 길을 걷던 중, 나와 꽤 친하게 지냈던 고등학교 동창 호석이를 만났다.
"어 야 정호석! 완전 오랜만이다, 못 알아볼 뻔 했어."
"맞아, 넌 더 예뻐졌네. 졸업하고 나서 처음 만나는 거잖아."
"빈말이라도 고맙다 야."
"옆은 남자친구? 잘생기셨다."
"어, 어. 내 남자친구 태형이!"
그에게 인사를 건네는 호석이에게 대충 건성으로 고개를 까딱이는 그.
내가 다 무안해서, 웃으며 그가 낯을 많이 가린다고 변명했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던 호석이가 핸드폰을 꺼내 내게 건넸다.
"이렇게 다시 만났는데, 앞으로 자주 보자. 번호 찍어."
핸드폰을 받으려고 손을 뻗었는데, 태형이가 핸드폰을 받아들더니 내동댕이쳤다.
"저 지금까지 참고 기다린 것도 대단한 건데.
얘 옆에는 저만 있어야 되거든요. 아무도 안 되고 저만."
6. 박지민
지연이의 생일을 맞아 가장 친한 친구인 지연, 소희, 수정이와 약속을 잡고 오랜만에 뭉쳤다.
동성 친구들과 만나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그를 알기에
그에게 친구들과 중요한 약속이 있다고, 빠져선 안된다고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문자도 보내 놓았다.
그렇게 친구들과 영화를 보고 쇼핑도 한 후, 저녁 시간이 되어 치킨집에 들어왔다.
치킨과 생맥주를 시키고 수다도 떨며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지연이가 내게 핸드폰을 건네며 말했다.
"야 너 남자친구가 너 걱정 엄청 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소희와 수정이도 각자 핸드폰을 꺼내들며 말했다.
"나도 왔다, 박지민한테. 걔 진짜 너 많이 좋아하나봐."
"그러게, 만날 때마다 연락하네, 끔찍이 생각해주네. 부럽다 야."
친구들은 모두 나를 생각해주고 걱정해주는 박지민이 멋지다며, 내가 부럽다며 말을 했지만
기뻐하고 뿌듯해야 할 나는 막상 소름이 끼쳤다.
그의 문자 내용이 계속해서 각인되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 자기랑 있는 거 맞지? 언제까지 있을 거야? ^^
-지금 우리 여보 뭐 하고 있어 연락이 안 되네
-아 그리고 내가 문자했다고 걔한테 말하면 안 돼, 걔는 무조건 집착으로 받아들여서 말야
7. 전정국
카페에 와서 아메리카노 두 잔을 시키고 마주 앉았다.
아까 살짝 번진 듯한 화장이 계속 신경쓰여서 파우치만을 챙겨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을 고쳤더니 꽤 괜찮은 듯 해서 만족하며 다시 그에게로 향했다.
"정국아, 나 얼굴 괜찮ㅇ,"
내가 말을 다 마치지 못한 건, 아마도 내 핸드폰을 만지고 있는 그 때문이었겠다.
"정국아 뭐해?"
내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도 당당히 내 핸드폰을 계속 보는 그.
"나? 우리 자기 핸드폰 검사하지~."
"검사..?"
이게 말로만 듣던 남자친구의 집착인가 싶어 가슴이 쿵 내려앉았지만
걸리는 게 없기 때문에 핸드폰 검사쯤이야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그 또한 날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웃어 넘겼다.
한참을 계속 핸드폰을 보던 그가 내 핸드폰을 돌려주었고
내 핸드폰에는 부모님과 우리 언니의 번호, 동성 친구들 번호, 그의 번호만이 남아있었다.
"정국아, 네가 다 지운..거야?"
"응, 원래 내 번호만 빼고 다 지우려고 했는데 참을만큼 참은 거야. 알겠어?"
*****사담
1편을 올렸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당황했어요 ㅠ이렇게 감사할 수가..
댓글 중에 다른 주제도 보고 싶다고 하셔서 이렇게 왔는데
주제 고르기가 생각보다 까다롭더라구요.
그래서 혹시 보고 싶은 주제가 있으면 댓글로 신청해주시면 정말정말정말 감사할것같아유!
포인트가 꽤 세니..하핳 댓글 다시고 포인트 돌려받아가시고
가장 중요한 건 읽어주셔서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