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처음으로 준희가 재현이에게 만나서 이야기 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김비서님 통해서 연락하라고 했는데, 얼굴보고 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이혼절차를 밟고, 서류정리가 끝나는 동안 아무 말 없었던 준희였는데, 재현의 거절 앞에서도 단호하게 나오는 준희였다.
"대표님, 차준희씨 오셨습니다."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아주 깔끔한 호칭정리였다. 이혼을 했으니 이제 사모님도 아니고, 그냥 차준희씨라고 한다.
마주앉아서 한참을 말 없이 커피잔만 내려다 봤다.
"내가 일정이 좀 많아서요. 얼굴 보고 하겠다는 이야기가 뭐죠?"
"참 칼같네요. 다들. 우리가 이혼을 하기는 했나봐요."
"용건만 간단히 하죠. "
“그래요.........바라는 거 없는 사이고 서운한 것도 없는 사이고 보통 부부도 아닌 거 알아요. 나는 아버지 정치자금에 팔려와서 한 결혼이고, 재현 씨한테는 이 결혼이 단순한 언론 플레이 용 사업 수단이었겠죠.”
"..............."
“사랑을 기대하고 한 결혼은 아니지만, 나는 바보 같은 착각을 했었나봐요. 가족한테서 사랑을 받아 본 적 없는 우리가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 줄 수 있겠다.
사람들 앞에서만 이었지만, 재현씨가 내 손을 잡아오고 내가 재현 씨 품에 안길 때면 온기가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내가 사랑 받고 있다고 착각했나 봐요. 그래서 이 사진들 나한테 상처였어요.
이렇게 결혼 이었는데, 나는 꽤나 마음을 썼나봐요. 이렇게 칼같이 정리끝난 사람인데, 너무 힘들었어서 기대고 싶었나봐요..”
".........착각하게 했다면 미안해요."
"전부는 아니었지만, 나는 순간순간 당신과 행복했어요. 그래서 그게 사랑이라 생각했어요."
"정해진 계약관계에 최선을 다해줘서 고마웠어요. 그리고 이렇게 끝내게 돼서 미안해요.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사과는 여기까지예요. 우리 관계가 나한테는 그냥 정략결혼 일뿐이었어요.. "
가시돋힌 재현의 말에 준희는 기어코 참았던 눈물을 흘린다. 울고 싶지 않았는데, 정말 비참해지기 싫었는데
재현은 또 이렇게 마주하고 싶지 않은 말들을 내려놓는다.
"이성적으로 판단하죠 우리. 계약으로 시작된 관계가 한쪽의 계약 불이행으로 끝난거예요."
".............."
"이게 준희씨가 말하는 얼굴보고 해야할 이야기였으면, 앞으로는 변호사 통해서 합시다. "
"줄 게 있어요."
"...... 뭔데요?"
" 찌라시가 돌기 전에 누가 보냈는지 모르는 사진들을 받았어요.....이미 끝내기로 한 결혼 진흙탕 싸움 만들고 싶지 않아요. 이 사진은 재현씨가 가지고 있는 게 마음 편할 것 같아요. 재현씨 한테도, 나한테도요."
울지 말라고, 충분히 사랑 받고 살라고 보내주는 건데,,, 눈 앞의 준희는 눈물을 보인다.
.
.
.
당신이 이렇게 울면, 내가 보내 줄 수가 없잖아.
이제 안아 줄 수도 없는데.
.
.
.
이 사람이 얼마나 아파할지 가늠이 안돼는 말을 뱉아내는 재현의 마음에도 가시가 콕콕 박혔다.
착각했다면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해 줄 수가 없었다.
더 차갑게 ,더 미운 모습만 남겨야 저를 털어버리고 살아갈 테니까.
준희가 내려놓은 서류 봉투 안에는 재현이 스캔들 상태와 다정히 껴안고 웃어주는 사진이 들어 있었다.
누가 보냈는지 모르겠지만, 준희는 이 사진을 받고나서 자신말고는 아무도 본적이 없다고 했다.
사람을 거쳐서 보내면 중간에 새어 나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직접 왔다고 하면서 이미 끝난 결혼을 진흙탕만들기 싫다고 서로를 위해 재현이 가지고 있는게 나을것 같다 말한다.
준희가 내려놓은 서류봉투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아는 재현은 속이 찢어진다.
.
.
.
답답할 정도로 착한 이 사람을 어쩌면 좋을까.
.
.
.
다른 여자와 함께 찍혀 있는 사진들을 무기로 쓰라고 보내줬었다.
준희는 모르고 있지만 사진을 찍은 사람도, 찍힌 사람도, 그리고 준희에게 보낸 사람도 모두 재현이었다.
재경그룹 대표이사의 외도현장, 스캔들, 불륜. 사람들의 세간을 집중시키이게 그보다 더 좋은 건 없었다.
누군가게는 뉴스 일면을 장식할 이슈거리 일테고, 누군가에게는 몇십억이 오가는 거래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사진 이었다.
그 사진들로 가장 큰 이익을 챙길 수 있는 건 준희였다.
재현이 다른 여자를 만난다는 찌라시는 있었지만, 스캔들 상대와 찍힌 사진이 없어서 간신히 재경그룹에서 언론사들의 입을 막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 상태에서 이혼이야기가 나왔고, 그 이혼 과정에 준희는 그 사진들을 빌미로 적어도 몇십억을 더 위자료를 챙길 수 있었지만
이혼하는 과정에 잡음하나 없이 그냥 순순히 이혼을 받아들였다.
준희의 손에 쥐어진 사진 한장으로 배경그룹이 입을 수 있는 피해는 환산 할 수 없었고,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 라도 막으려고 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라고 보내준 사진인데, 재현이 생각치 못한 변수는.. 그건 준희의 방법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수십억이 오갈 수 있었던 사진은
제 할일을 하나도 하지 못한체 다시 재현의 손으로 돌아왔고,
둘의 대화는 준희에게 상처로만 남았다.
대표실을 나서서 비서가 건내는 인사에 미처 대답도 하지 못한채 에레베이터에 탔다.
층수도 누르지 못하고 준희는 멍하니 눈물만 흘렸다.
꾹꾹 눌러왔던 감정을 다 터트리고 나니 진이 빠진다.
이 감정은 뭘까..?
함께 노력하던 결혼을 등진 사람에 대한 배신감일까?
아니면 계속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마주한 허탈감일까?
우리가 하는 게 이별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한게 사랑은 맞을까?
따뜻했던 사람인데, 분명 다정했던 사람인데,, 이제는 그 기억들까지 다 착각처럼 느껴진다.
재현은 준희가 나간 자리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속마음을 애써 누르는 일은 힘들었다.
다시 보니 속도없이 좋았고, 얼굴이 헬쓱해 진것같아 걱정이 됐다.
좀처럼 표현에 서툴던 준희에게서 고백아닌 고백을 받았다.
준희의 진심을 이렇게 마주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재현은 다시 준희와의 대화를 곱씹는다.
“사랑을 기대하고 한 결혼은 아니지만, 나는 바보 같은 착각을 했었나봐요. 가족한테서 사랑을 받아 본 적 없는 우리가 서로에게 가족이 되어 줄 수 있겠다.
사람들 앞에서만 이었지만, 재현씨가 내 손을 잡아오고 내가 재현 씨 품에 안길 때면 온기가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내가 사랑 받고 있다고 착각했나 봐요.
그래서 이 사진들 나한테 상처였어요. 이렇게 결혼 이었는데, 나는 꽤나 마음을 썼나봐요. 이렇게 칼같이 정리끝난 사람인데, 너무 힘들었어서 기대고 싶었나봐요.”
재현에게도 처음부터 사랑을 기대하고 결혼은 아니었고, 사업용 수단이 맞았다. 정확히 얼마가 오고 갔는지 모르지만 정확히 갑과 을이 있는 계약으로 시작된 결혼이었다.
손을 잡고, 품에 안고.. 우리는 서로의 온기를 느꼈었다. 그렇게 사랑을 했었다.
당신만의 착각이 아니었는데, 천천히 서로에게 기대는 법을 배우고 서로를 의지하려고 하던 우리였는데.....
"전부는 아니었지만, 나는 순간순간 당신과 행복했어요. 그래서 그게 사랑이라 생각했어요."
"그 순간들이 어떻게 거짓이겠어. 나는 당신을 사랑했는데."
그리고 준희가 내려놓은 서류봉투를 집어들고 만지작 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