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빚쟁은 그대로 얼어붙어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계속 멘붕상태였어
입으로 나오는 소리라고는 어... 어... 하면서 멍하니 정택운만 보고 있었어
그러니까 이 조선시대 정택운도 정말 그 정택운인걸까
혹시나 이 사람도 시간 여행을 하는 걸까 그런 생각도 들고
그러기엔 너빚쟁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대하니까 아 이건 말도 안된다 하면서
혼자 허허 웃으면서 멍하니 서있었던거야
"찬바람 드니까 거기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여기 와서 앉아보거라"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서있으니까 보다못한 정택운이 저렇게 말했어
그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너빚쟁은 조심스럽게 상을 사이에 두고 택운이 건너편에 앉아
너빚쟁이 자리에 앉자마자 정택운은 자기 이름을 어디서 알았냐고 물어봤어
너빚쟁은 자기가 알던 사람과 너무 닮아서 혹시나 하고 불러본건데 이름도 같았던 거라고 대답했어
그랬더니 정택운이 자기 이름은 어디가서 쉽게 알 수 있는 이름이 아니니까
어디가서 자기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아서는 안된다고 했어
너빚쟁은 궁금한 마음에 왜 이름을 말해서는 안되냐고,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하냐고 물었더니
정택운이라는 이름은 이 집 하인들도 모른다고, 오직 전하와 부모님만이 아시는 이름이라고 대답했어
다른 사람들은 모두 來悟(래오)라고 부르니까 너빚쟁도 래오라고 부르라고 했어
너빚쟁은 뭔지는 몰라도 뭔가 대단한 사람인가보다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어
그렇게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니까 정택운이 그러면 너빚쟁이 이름은 뭐냐고 물었어
"이 별이요. 이 별"
너빚쟁 이름을 들은 정택운은 그 이름 참 슬프다고 하면서도
너같은 게 이씨 성을 쓰는게 어이가 없다고도 했어
그래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그 성은 왕가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것인데
너빚쟁은 도무지 왕가의 후손으로는 안 보인대
욕인지 그냥 하는 말인지 분간이 안되서 속이 부글부글 끓는 느낌이였지만
너빚쟁은 그냥 미래에서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이 많다고 대답해줬어
"미래는 완전히 망조가 깃든 나라구나."
너빚쟁의 이야기를 듣고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은 정택운은
밤이 늦었으니 지난 번 있었던 그 방에서 하룻밤 머물러도 좋다고 얘기했어
너빚쟁은 그곳만큼 편안한 곳도 없으니 좋다고 하고 두 사람은 그 방을 향했어
그리고 저번과 마찬가지로 너빚쟁이 방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정택운은 문을 잠그고 갔어
사실 나무 문이니까 너빚쟁은 마음만 먹으면 그 문을 부수고 나갈 수도 있지만
정택운과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현재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까 그냥 정택운을 따르기로 했어
한편 택운이는 다시 문을 열고 들어온 너빚쟁이 반가웠어
갑자기 사라져서 사실 매우 당황했었는데 이렇게 또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걸 보니까
곤두박질 치던 마음이 다시 돌아오는 기분이였어
그리고 이번에는 모든 문을 다 없애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빚쟁이를 갑자기 어디론가 떠나보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해
왜냐하면 택운이는 반드시 말을 다시 타서 왕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야
아침이 되니까 또 정택운이 문을 열고 밥과 함께 들어와
같이 아침을 먹으면서 정택운은 너빚쟁에게 이것저것 물어왔어
"문만 열면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냐?"
"반드시는 그렇지 않지만 대부분은 그래요"
"네가 마음 먹은 곳이면 어디든 갈 수 있느냐?"
"어딘가로 가고 싶다는 생각으로 문을 열면 그 곳에는 절대 가지 못해요"
"언제부터 그렇게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느냐?"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부모님이 사고로 모두 돌아가시고 나서부터요"
정택운은 너빚쟁의 대답을 듣고 그거 안타깝구나.. 하면서 말을 흐리는데
너빚쟁은 그렇게 큰 상처가 아니니까 신경 쓸 필요 없다고 했어
사실 얼마 전까지는 어떻게 돌아가셨는지도 몰랐다고도 덧붙였어
하지만 이미 아침상 분위기는 축 쳐졌어.
정택운은 분위기라도 바꿔보려고 자기와 똑같이 생겼다는 정택운에 대해서 물었어
그렇지만 이 얘기를 하니까 뭔가 분위기는 더 가라앉은 느낌이였어
너빚쟁은 그냥 과거의 자신이 알던 사람이라고만 대답했어
그렇게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식사는 마무리되고
정택운은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오늘도 말타러 같이 가줬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어
너빚쟁이야 어차피 할 일도 없고 정택운이랑 같이 있으면 미래에서의 시간이 늘어나니 좋고
그리고 무엇보다 저번에 말을 탔던 것이 재밌어서 화색이 돌면서 좋다고 대답했어
정택운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 가자고 하는건데 너빚쟁 기분이 좋아보이니까
다행인 듯 하면서 약간 양심이 찔리는 기분이 들어
그 날도 말은 참 잘 달렸어
그리고 그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그 다음의 다음 날도
택운이의 철벽도 그 때부터였어
빚쟁이를 따라다니면서 문을 다 열어주고 심지어는 문도 못 만지게 하고
거의 매일 말을 타러 나가고 빚쟁이한테 이것저것 물어보고
이쯤되니 너빚쟁이 느끼기에 뭔가 이상한거야
자기한테 이렇게 잘해줄 이유가 없는데 다른데로 가지 못하게
문을 철벽마크하면서까지 왜 나를 붙잡아두지?
그래서 택운이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어
자기를 이렇게 붙잡아 두는 이유가 뭐냐고
정택운이 그래서 싫으냐? 하는데 또 그건 아니지만 그래도 궁금하다고 하니까
정택운이 한숨을 푹 쉬면서 뭔가 결심을 한 얼굴로 말을 시작해
택운이네는 원래 유명한 무인 집안이였어
대대로 왕을 지키는 비호 세력이였고
택운이는 어렸을 때부터 왕에게 충성을 바치는 호위 무사가 될거라는 꿈을 가지고 자랐어
무과에서 탁월한 실력으로 당당하게 왕의 호위무사가 되었고
왕권을 강화하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려는 왕 옆에서 든든한 지원자가 되었어
하지만 택운이가 몇 년 전 사고 이후로 말을 못타게 된거야
사고 이후에 택운이는 한동안 몸져 누웠는데 펄펄 끓는 열이 다 가라앉고 눈을 떴을 때는
사고에 대한 기억이 아무것도 없었어. 마치 빚쟁이처럼
게다가 어떻게 사고가 났는지는 집안 사람들도, 왕도, 동료 무사도 모두 함구하니까
알고 싶어도 알 수가 없게 되어버렸어
그래서 그냥 없는 셈치고 살아가기로 했는데
명색이 무인 집안에서 무술하는 사람이 말도 못타게 된거야
가까이 다가가기만 하면 말들이 성이나서 택운이에게 달려들고
추격은 고사하고 이제 왕의 사냥에도 못 따라 나서게 된거야
이런 사실이 알려지니까 택운이네 세력을 저지하기 위한 반대 세력들이
택운이를 호위 무사 자리에서 내쫓아야 된다고 주장했어
그 수는 하나, 둘 늘어났고 결국 왕은 택운이에게서 그 자리를 빼앗을 수 밖에 없었어
대신에 왕은 택운이에게 이름 없이 자신을 지키고 여러 정보를 캐내는 그림자 역할을 해달라고 명했어
그 이후로 정택운이란 사람은 사회에는 없지만 있는 사람이 되고
대신에 래오라는 이름으로 왕의 곁을 지키게 된거야
그런데 이상하게 너빚쟁과 있으면 말을 타도 문제가 없다고 했어
말들이 난리를 치지도 않고 오히려 순해져서
이렇게 매일매일 말을 타도 문제가 생기지 않았잖아
도대체 무엇이 원인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빚쟁이랑 같이 있으면 말이 말을 잘 들으니까
이렇게 매일 매일 같이 말을 타다보면 언젠가는 너빚쟁 없이도 말을 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러면 다시 진짜 왕의 곁을 지키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나 좀 도와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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