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알아챈게 3년 전의 일이야.
너빚쟁은 그동안 공간 이동만 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알고보니까 시간도 막 넘나들고 있었던거야
2009년의 뉴욕, 2012년의 서울, 2005년의 런던, 2035년의 시드니, 1998년의 방콕
진짜 말도 안되는 개소리가 너빚쟁한테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일어나고 있었던거야
문만 열면 시공간을 막막 넘나들고 그런게 가능했던거지. 전혀 컨트롤이 안되는게 문제지만
인터넷이랑 전화가 안 터지는 지역이라서 터지지 않았던게 아니고
안 터지는 시절이라서 안 터졌다는 걸 3년 전에야 깨달았던거지
그 사실을 깨닫고 몇 번을 더 여행을 하는 동안 그 남자를 만난 일이 딱 2번 더 있었어
처음은 2년 전이었는데 그 날도 아무 생각없이 문을 열었다가 그 남자를 보게 됐어
2005년. 그 때의 정택운은 그냥 평범한 16살짜리 남자애였어.
어떻게 알아봤냐면 그냥 눈에 딱 들어왔어.
너빚쟁이 떨어진 곳이 미국인 건 알겠는데 도통 어딘지 모르겠는 동네였어.
그런데 담 너머로 보이는 학교 운동장에서 신명나게 놀고 있는 동양인 남자애가 있어서 저절로 눈이 간거야.
보니까 딱 정택운인걸 알겠는거지.
한참 과거로 왔구나 하고 어이없어 하면서 한참을 웃다가 학교 안으로 들어가보려고 교문을 연 순간 또다시 이동
이번에는 한국이었어.
놀란 너빚쟁은 연도를 확인하려고 가게 문을 열자마자 또 다른 곳으로 떨어졌어.
그때 어라? 좀 이상하다? 하고 촉이 온거지
그러다가 한달 전에 드디어 그 남자를 또 만났어.
이번에는 2020년의 정택운.
이십대 중후반으로 넘어들면서 배우로 전향이라도 한건지 아니면 그냥 CF 촬영인건지
어느 한 촬영장이었어.
전에 만났던 20살의 정택운보다 훨씬 성숙한 느낌이 들어서 뭔가 낯선 느낌이 들었어.
그렇게 스태프 사이에 멍하니 서 있는 너빚쟁을 발견한 정택운은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뛰어왔어.
"나 기억해? 너 별이 맞지? 이 별."
정택운은 너빚쟁 팔을 붙잡고 자기를 기억하냐고 이것저것 물어왔어.
너빚쟁이 고개를 끄덕이니까 스태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따로 이야기를 하자고 했어.
"그때 걱정했는데, 왜 그냥 그렇게 갔어. 그 동안 잘 살고 있었어?"
이것저것 물어보는데 너빚쟁은 딱히 설명하기도 어렵고
왜 이렇게 나한테 관심이지; 하면서 당황스러워 했어
물론 너빚쟁도 이렇게 여행을 하며 살면서 두 번 이상 본 사람은 정택운이 처음이라 신기하기는 한데
이 사람 입장에서는 십 년도 전에 잠깐 한 몇 분 본게 전부인데 이렇게 극성일 일인가 하면서 좀 의아한거야.
그래서 일단은 그때 일이 있어서 먼저 가게 됐다고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그냥 여행하면서 살았다고 둘러댔어.
정택운은 뭐 마실거라도 가져다줄까?하는데 너빚쟁이 보기에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게 하는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촬영 마치고 오라고 했어
정택운은 약간 불안한 눈빛으로 선뜻 대답을 못하고 있는데
매니저가 와서 여기서 기다리면 춥고 사람들 눈도 있으니가 같이 차 안에 가서 기다리자고 했어
정택운도 그러는 편이 좋겠다고 하면서 차에서 기다리고 있으라 했어.
그래서 차 안에서 얼마나 기다렸을까.
매니저는 택운이의 촬영을 도우러 잠깐 자리를 비웠고 너빚쟁은 혼자 차 안에 앉아있었어.
그러다 몸이 좀 불편해서 봤더니 문 틈 차이에 옷이 껴있었던거야.
너빚쟁은 옷을 뺄 생각으로 아무 생각 없이 차 문을 열었고 다시 눈 앞에 펼쳐진 곳은
2015년의 한국.
3년 전에 2012년이었고 그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 싶어서 날짜를 세고 있었는데
2015년의 한국이니까 정말 딱 현재로 오게 된거야.
그리고 이번엔 생각보다 오래 한국에 있었어.
사흘 정도.
삼일 째 되는 날 문득 열었던 화장실 문 너머에 있던 건 엉뚱한 곳이었어.
그 때 너빚쟁은 깨닫게 된거야.
정택운을 만나면 현재의 한국으로 돌아갈 수 있고
정택운과 함께 있는 시간만큼 한국에서 머무는 시간이 결정된다는 걸
너빚쟁은 너빚쟁이 이렇게 여행을 하게 된 원인을 알기 위해서는
잃어버린 기억에 대해 찾아야하고 그걸 위해서는 현재의 한국으로 가야한다는 생각을 해.
그래서 그때부터 정택운을 만나기 위해 문을 막 열고 다녔던거야.
문제는 이게 만나자고 바로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막막했지.
근데 생각해보니까 정택운을 만날 때는 진짜 아무 생각없이 문을 열었을 때 인거야.
그동안은 정택운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문을 열어왔으니까 계속 못 만난거고.
그러다가 어쩌다 문을 연 게 2012년 파리 패션위크에 서는 정택운이였고
그 근처 호텔방에 떨어져서 고민하다가 문을 열었더니 농장 한 복판에 떨어진게 어제의 일이야.
정택운을 직접 만난게 아니니 이번에도 꽝이겠다 싶어서
허름한 창고문이라도 열어서 다른데로 가자하고 문을 열었어.
그런데 이번엔 떨어진데가 좀 이상해.
진짜 까마득한 기억 어딘가에 친구들과 함께 소풍을 왔던 우리나라 궁의 모습이야.
그리고 눈 앞에 보이는 건 검정색 도포를 아주 멋들어지게 입고 있는 정택운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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