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반 분위기가 조금 숙연해졌다.
다름이 아니라, 곧 다가올 중간 고사를 대비하느라 공부하는 분위기가 흐르는 것이다.
그래봤자 나한텐 딱히 해당사항이 없지만.
"너도 필기 좀 들여다 봐!
하다 못해 책이라도 읽든가!"
"됐어 됐어..."
"참 편하게 산다. 커서 뭐 될래?"
"19살."
"으휴...."
친구의 잔소리에도 꿈쩍하지 않고 가만히 옆에서 멍 때리고 있다.
내가 이렇게 여유를 부리며 공책에다 낙서 따위를 할 수 있는 것은 다 시험 기간 덕분이다.
녀석이 똑똑한 덕분에 반 애들의 보충 교사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난 지금 이 순간을 만끽해야만 하는데, 친구 녀석이 시험 준비로 바쁘다.
"....중얼중얼..."
"...뭐가 그렇게 재밌다고 들여다 봐~ 나 심심해..."
"아잇...! 공부나 하라니까."
"...치."
시험 기간에 나만큼 한가한 애도 없는 것 같다.
난 왜 그렇게 다들 시험에 목을 메는 건지 모르겠다.
다들 꿈이 공무원, 대학 교수와 같은 학업 관련 쪽인 걸까?
그저 공부, 공부하는 우리나라 분위기에 맞춰서 불가항력으로 하는 것이라는 걸 난 느낄 수 있다.
...그럼 저 녀석도 같을까.
저 녀석은 집에 돈도 어느 정도 있을 것이다.
그런 걸로 미뤄 보자면, 분명 집안 분위기에 따라서 공부나 하고 있는 거겠지.
그냥 그렇게 해야만 되는 줄 알아서 하는 공부.
얼마전 같았으면, 분명 꿈이 있고 패기 넘치는 소년으로 보였을 테지만
지금은 그저 갑부 집안 도련님의 '경력이나 쌓자' 하는 과정으로 밖엔 보이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재수없게 걸린 난 그저 심심풀이 땅콩이겠지.
"....개XX."
"...뭐라고?"
"어..?.. 아, 너한테 한 거 아니야."
'...잠깐.
그 땅콩이 한 개일까?'
난 갑자기 궁금해졌다.
저렇게 집착이 심한 부잣집 도련님의 장난감이 하나일까?
만약 장난감이라면, 부자라면, 하나일 필요가 없다.
그 도련님의 화려한 겉모습에 반해 졸졸 따라붙는 추종자들도 여럿인데 굳이 하나만 둘 필요는 없지 않은가.
"역시 넌 책 한 권 안 보더라."
"......"
"대체 그 자신감은 어디서 오는 거야?"
"......"
조용한 야자시간의 선도부실.
녀석이 앞에서 뭐라뭐라 떠들어대고 있는데
내 속에선 의심이 피어나, 반사적으로 녀석의 얼굴을 노려보고 있다.
"너도 남 가르치기 바빠서 네 공부 안 하던데."
"다른 사람한테 알려줄 수록, 자신이 모르는 부분이 정확해져."
"...어련하시겠어."
"...왜 그래?"
"......"
녀석은 말없이 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바라본다.
녀석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내 입술로 내려가 서로의 고개가 맞닿으려 할때쯤, 내가 고갤 살짝 빗긴다.
"다른 애한테도... 이래?"
"...?"
"...너 잘났잖아.
나 하나로 성에 찰 필요도 없고."
"......"
"여러명 만나서 해결해. 뭐하러 심심한 나 만나?"
"......"
"...아니면 이미 여럿...... 아!.."
녀석은 나를 확 끌어당겨 입술을 부딪혀온다.
내 입술에 닿았던 것이 목으로 떨어지며 뜨거운 입김을 내뿜는다.
불쾌해지려 하는 내가 녀석을 밀어내려 했지만, 나를 안고 있는 팔이 너무도 단단하다.
버둥대던 내가 얌전해진다.
"...누가 심심해."
"....?"
"난 너같이 재밌는 애 본 적 없어."
".......재밌어..?"
"(웃으며) 그래, 널 보면 재밌어."
"...그것도 그렇게 썩 기분 좋지 않은데."
"......"
녀석이 팔에 힘을 빼고 내 어깨를 꼭 쥐어 조금 떨어뜨린다.
나를 보는 눈이 조금 웃고 있는 듯 한 건 왜일까.
좀 전까지 내 목을 뜨겁게 만들려던 입술이 움직인다.
"너 기분 좋으라고 사탕발림 하는 거 아니야, 착각하지마."
"......"
"...그리고..."
"...?"
"난 잘난 게 아냐.
그저 사회적인 조건에 적합한 인간일 뿐이지."
".....??"
갑자기 조금 진지한 이야기로 넘어간 것 같다.
녀석이 옆 책상에 손을 짚어 팔을 지탱해, 몸을 기댄다.
"...그리고 내껀 너한테 아니면 안 서."
"미......XXX...."
저딴 소리가 입 밖으로 잘도 나오는 게, 정말 보통이 아니다.
난 옆으로 고갤 돌려 당황한 얼굴을 감추려 애썼다.
하지만 녀석의 매의 눈이 내 표정을 금세 발견하고는 가까히 다가온다.
"곤란해하는 얼굴이 제일 섹시해."
"...읍..."
내 입술이 녀석의 입술로 다물린다.
다물렸던 입술이, 또 녀석의 혀로 벌려지며 혀끝이 아린 느낌이 선다.
녀석이 들춘 치마 아래, 또 팬티 아래로 들어온 손가락에 아찔해져서 붙어있던 입술을 떼어버린다.
고갤 돌려 인상을 쓰는 와중인데도, 녀석은 얼굴을 돌려 다시 입을 맞춘다.
뜨거운 입김이 오간다.
점점 다리에 힘이 풀리는 기분에 자세가 점점 낮아지자, 녀석이 내 허리를 꼭 붙든다.
"벌써 힘 풀리면 안되지."
"......"
"여러명 몫을 감당해야지."
"..!..그게 내 탓이야?"
"......"
녀석이 상기된 내 얼굴을 가까히 한다.
"당연하지.
너 때문에 여기가 이렇게 됐잖아."
"..!..이거 놔..!"
녀석이 덥썩 내 손을 집어 그곳에 손을 올려놓았다.
내 씩씩거림이 녀석의 영양제라도 되는 것인지, 녀석의 얼굴이 한층 더 밝은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