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대 뽀뽀나할과
"한소야- 뭐 해? 응? 뭐 해?"
또 시작이다.
김태형은 방 문을 빼꼼 열곤 다가와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내 옆에 쓰러지듯 앉았다.
좀 심심하다, 싶으면 어김없이 나에게 다가와 뭐 하냐고 묻는 김태헝.
물론 정말 뭐 하는지 몰라서 물어보는 건 아니다.
사귄 지 3년이 넘어가건만, 한시도 가만히 못 있는 그 성격은 절대 어디 가지 않는다.
"태형아, 나 이것만 보고. 10분만 기다려."
내 말에 김태형은 풀 죽은 강아지처럼 축, 쳐져서 내 어깨에 얼굴을 기댔다.
이렇게 한가해진 것도 오랜만이라 문학소녀나 돼볼까, 했더니만.
어김없이 방해공작이다.
내가 읽고 있는 페이지를 유심히 쳐다보던 김태형은 내 등에 얼굴을 대며 말했다.
"저번에도 10분, 10분 미루다가 2시간 그냥 갔잖아. 이번에도 그럴 거지?"
아, 걸렸다.
저번 주에 웬일로 눈치 빠른 김태형이 그냥 넘어가나, 했더니만.
괜히 찔린 나는 흠칫 놀라며 혹시 당황한 표정이 보일까 책으로 얼굴을 가리며 더듬거렸다.
"아.. 아니야. 지.. 진짜 딱 10분만."
느껴진다.
날 쳐다보고 있을 김태형의 눈빛이.
"됐어. 책 열심히 읽어. 심심한 애인은 상관 말고."
몇 초간 나를 쳐다보던 김태형은 풀 죽은 목소리로 말하며 터덜터덜, 발을 질질 끌어 옆 소파에 앉았다.
푹, 꽤나 무겁게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는 소파와 이젠 아예 나를 향해 등을 보이며 돌아눕는 그의 모습을 보며 난 느꼈다.
삐졌구나, 삐졌어.
이럴 땐 자기 혼자 풀어질 때까지 가만히 두는 게 상책이다.
역시나 몇 분 지나지 않아 고개를 등 뒤로 힐끔힐끔 돌리던 김태형은 아예 몸을 돌려 두 팔로 다리를 감싸 안은 채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저 행동은 분명 나한테 뭔가 할 말이 있는 거다.
"왜?"
내가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그에게 묻자 그는 아무 말없이 가만히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내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김태형은
"치.."
라며 고개를 왼쪽으로 돌려버렸다.
역시나 몇 초 지나지 않아 김태형은 다시 내 얼굴을 흘끔흘끔 보기 시작했고
어쭈. 이번엔 다리로 팔꿈치를 지탱한 채 두 손으로 꽃받침까지 만들어가며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에 더는 견딜 수 없었던 내가 결국 책에서 눈을 떼 그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왜? 할 말 있어?"
그는 내 반응에 만족했는지 씩, 웃어 보이며 말했다.
"이름 자기야."
"응"
"나... 대학교 다시 다닐까?"
이건 또 뭔 소리래.
대학교 졸업한 지가 언젠데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 나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김태형을 쳐다보며 말했다.
"갑자기 웬 대학교?"
"음..."
생각보다 꽤나 진지하게 고민하는 그의 모습에 궁금해진 내가 책까지 덮고 쳐다보자 김태형은 한껏 신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심심한데."
"... 응?"
대학교 얘기하다 말고 웬 심심 타령? 설마, 심심하니까 대학교를 다니겠다는 건가?
문득 얘라면 충분히 하고도 대학원까지 졸업하겠다, 싶어 심각해진 내가 그를 쳐다보며
"야. 너 대학교 다닐 때는 그렇게 다니기 싫다고 떼를 써놓고. 심지어 너 아직 학자금.."
심각해진 내 표정을 본 김태형이 못 참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음을 터뜨렸고
"아니, 이름 자기야. 심심한데. 모르겠어?"
알 수 없는 말만 반복하며 계속 웃는 김태형을 보며
심각한 얘기는 아니구나,라는 결론에 도달하자 나는 고개를 저으며
"뭐라는 거야."
를 내뱉고 다시금 책을 폈다.
그 뒤로도 한참을 웃던 김태형이 좀 조용해지자 이제 덜 심심해졌나 보네, 싶어 책에 집중하려고 했는데
툭.
언제 온 건지 김태형은 내 앞에 서서 한창 재밌게 읽고 있던 페이지를 그 큰 손으로 가려버렸다.
얘가 또 왜 이러나, 싶어 내가 고개를 들어 그를 올려다보자
그는 굉장히 진지해진 표정으로
"심심한대...뽀뽀나할과"
라며 그대로 내 입술에 뽀뽀를 하곤 활짝 웃으며 내 옆에 앉았다.
그의 웃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자꾸 간질거려 난 책을 덮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내 남자가 심심하다는데. 지금 책이 문제야?
그깟 뽀뽀, 하지 뭐.
책은 대충 옆에 던져두고 그의 얼굴을 내 두 손으로 덥석, 잡자 좋아 죽는 그의 얼굴이 보였고
그 얼굴을 뒤로한 채 난 그대로 그에게 입을 맞췄다.
그래, 같이 가자. 그 대학교.
말씀드린 크리스마스 특별편이에요.
별거 없죠?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크리스마스 잘 보내시라는 저의 선물이에요.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