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6
"먹혀라... 먹혀 좀.. 제발...."
지원은 한참동안 궐 성벽을 돌아다녔다. 대충 이 정도면 되겠지, 하고 챙겨온 최첨단 장비들은 하나같이 다 먹통이였다. 그래도 괜히 천재는 아닌듯, 하나는 지원이 멀쩡하게 고쳐놓았다. 저번에 이미 한 통은 보냈고, 오늘 두 통째인데, 영 보내지질 않는다. 아니 수십년동안 연구한게 이런거라면서 왜 안되냐고, 왜. 지원이 투덜대며 한숨만 늘어놓았다.
"뭐하냐."
".....?"
목소리만 들어도 '응, 나 구준회.' 하는게 귀에 선명해서, 곧바로 알아챈 지원이 손에 들고 있던걸 황급히 주머니에 쑤셔넣었다. 준회는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듯, 지원의 주머니를 슬쩍 보다 어깨만 으쓱였다.
"뭘 숨겨."
"너 알 거 없어."
"숨겨봤자지, 뭐. 연락하려했지? 타임리프."
"눈치 빠른 새끼."
"안물어, 그리고 안궁금해 그거."
"...... 난 왜 찾아왔냐?"
본론부터 말하라는 지원의 물음에 준회는 잠깐 망설이는 듯 보였다. 그리고는 주변 눈치를 보다 지원에게 말했다.
"저번에 너가 말했던 그 증거-"
"....."
"-그거. 도대체 뭐야."
지원을 처음 마주한 날, 자신이 여길 괜히 온 것이 아니라며, 증거가 있다고 했던 말을 준회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준회는 그 의문의 증거에 대한 확답을 원했다.
"알려줘봤자 너만 손해야."
"......."
"그 증거, 너 돌아가면 바로 보여줄테니까-"
"........"
"-지금은 니 할 것부터 다 처리해."
미드나잇 인 서울
"누구지... 누구냐 넌."
내 방. 자기 방이 있다는건 궐 사람이라는거겠고. 세자궁에 맘대로 들어온 걸 보면, 세자랑 가까운 것 같기도 하고. 혹시 저번에 그 왕자같은 사람인가? 혼자 중얼중얼. 그가 나간 뒤, 방 안으로 들어와서는 계속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그가 누굴지 생각하고 있었다. 꽤나 훈훈하더니만.
'똑똑- 거기 누구 없나?'
"........?"
밖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돌아다니던 것도 멈추고 조심스레 세자 방에서 나와 궁 문 앞까지 다가갔다. 침 한번 꼴깍 삼키고 맞은 편 상대가 다시 입을 열 때까지 기다리는데, 다시 문을 두드리며 그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거기, 미래 있나?'
나를 미래라고 부를 사람. 그리고 꽤나 익숙한 말투의 이 사람. 보나마나-
"- 여깄다, 우리 미래!"
-응, 왕자님. 여깄네, 너의 미래.
.
.
.
.
.
"한빈이네, 한빈이."
"한빈이?"
"응응. 내 동생."
"... 에?"
동생? 한빈이?
왕자라고 말하는 그에게 물으면 답이 나올까해서 아까 보았던 그 사람에 대한 얘기를 하니, 곧바로 한빈이네, 한빈이. 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다. 더군다나 동생이라니. 안닮았던데?!
"안닮았죠?"
"응. 하나도요."
"에이, 그렇지는 않을거야. 어디 한구석은 닮았을걸."
"글쎄..요..."
"나중에 잘 찾아봐요."
딱히, ... 흠. 없는 것 같다. 암만 생각해봐도.
"근데 걔가 미래는 왜 보러 왔대요?"
"아, 나 보러 온거 아니고. 사람 찾으러."
"사람?"
"... 전에 내 옆에 있던 사람, 그 사람."
"아- 그 무섭게 생긴 애?"
그의 대꾸에, 방심했는지 나도 모르게 빵 터지고 말았다. 피부는 하얘가지고 순간 인상을 팍 찡그리며 오물오물 말하는게 '아- 그 무섭게 생긴 애?' 라니. 왕자님 맞네, 왕자님 맞아. 내가 웃는 것에 왜 웃어? 하는 표정으로 날 보는 것에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며 겨우 웃음을 참았다. 아 자꾸 그 잔상이 떠오른다. 오물오물.
"근데 왕자님은 왜 왔는데요?"
"나요?"
"응, 왕자님요."
웃음기 섞인 말투로 그에게 물으니, 나요? 하며 잠깐 고민하는듯 보이던 그가 고개를 돌려 날보더니 활짝 웃으며 답했다.
"나야-"
"........?"
"-미래 보고싶어서 왔죠! 미래한테 볼 일도 있고 해서?"
"저한테요?"
"보여주고 싶은 것도 있고, 묻고 싶은 것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에? 나한테?
그의 말에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으니 그가 벌떡 일어나 내게 손을 뻗는다. 쨍 하고 내리쬐는 햇살은 그가 일어남과 동시에 가려져버리고, 내 눈 앞엔 그의 작고 하얀 손만 보일 뿐이다.
"나 따라올래요?"
"....."
"보여줄게요, 미래가 못 볼 과거."
망설이던 것도 잠시, 난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냥, 그는 왠지 믿음이 갔다.
"형!"
"......?"
윤형이 익숙한 목소리에 대문을 나서려던 발걸음을 멈췄다. 뒤를 돌으니 동생 찬우가 자길 부르며 이쪽으로 오는게 보였다. 어딜 가려는지 고운 색의 한복을 입은 찬우는 자연스레 윤형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자, 형님 갑시다! 아무렇지 않게 따라간다는 찬우의 말에 윤형은 놀라며 얼른 찬우에게서 떨어졌다.
"너 따라가게?"
"에이- 왜요! 오랜만에 형님따라 궐 구경 좀 가겠다는데."
"야 너-"
"-알아요 알아. 내가 그래서 구실까지 다 만들어 놓았죠. 대제학이신 우리 아버지 만나러 간다고 할겁니다."
"아버님은 아시고?"
"알면 어떡해요! 안되죠."
어휴. 윤형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고는 다시 찜찜한 표정을 지었다. 마주쳐서는 안될텐데. 윤형의 중얼거림에도 찬우는 아랑곳않고 먼저 대문 밖을 나섰다. 형님! 얼른 갑시다!
.
.
.
.
.
"뭘 보여주려고..."
"여기다, 여기."
내 손을 여전히 꼭 잡은 채, 다 똑같이 생긴 집들 사이사이를 지나던 그가 어느 순간 멈춰섰다. 아, 아? 여기-
"경희루?"
"어? 아네?"
"당연히 알죠, 내가 여기서-"
'야야 여기! 여기서 사진찍자.'
'아 뭔 또 사진이야-'
'-아 얼른!!'
얼마까지만 해도 사진을 찍었는걸요.
"미래, 왜 그래요?"
"아, 아니예요. 아무것도."
잠깐 멈칫한 날 보며 걱정이 되는 듯 날 보는 것에 정신을 차리고는 그냥 웃어보였다. 그러니 그 또한 따라 웃으며 알겠다는듯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가 경희루. 그래, 얼마까지만 해도 저기 보이는 연못가에서 사람들 바글바글한데 셀카봉으로 잘도 찍었었지. 안그래도 사진빨 안받는데 괜찮은 컷 얻느라 꽤 고생했었더랬다.
"오늘 밤, 화희가 있을거예요."
"화희?"
"어... 뭐라 설명해야할까. 막 화약같은거 하늘로 슈웅슈웅 쏘는거."
"아, 불꽃놀이?"
"어어. 그거."
오, 드라마보면 불꽃놀이 하긴 하더만. 진짜였구나. 꽤나 흥미진진한 얘깃거리에 오오, 하며 그와 손을 잡은 것도 잊은 채, 손뼉을 마구 쳤다. 아차, 하며 손을 슬며시 풀려니까 더욱 꼭 잡아온다. 허허, 왕자님. 손바닥에 땀띠날라.
"자, 저기는 우리 아바마마, 어마마마가 계실거고. 우리는-"
".......!"
여전히 손을 잡은 채로 경희루 밑에서 그가 손가락으로 위쪽을 가리킨다. 저쪽에는 왕과 왕비가 있을거고, 설명을 하던 그가 우리는- 하며 그대로 내 허리를 감싸 경희루를 지탱하고 있는 돌기둥으로 끌어당겼다. 돌기둥에 등이 닿자마자 차가운 기운이 몰려온다.
"-여기. 여기서 만나는거야. 알겠죠?"
갑자기 일어난 상황에 당황하던 것도 모자라 이어지는 그의 말에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그와 눈을 맞추는 순간-
"지금 뭐하냐?"
".......?"
".......!"
한껏 날이 선 말투.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가는 큰일날 것만 같은. 낯선 듯 낯설지 않은 그 목소리.
"말 못 알아들어?"
"- 뭐하냐고, 거기서."
지원, 김지원.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더보기 |
2015년도 끝이 나네요! 조별내를 낼 때만 해도 2월인가 그랬는데 말이죠. ㅋㅋㅋ 아 느낌 이상해요 ㅠㅠ 절대 안올 것 같던 12월 31일 인데 ㅠㅠㅠㅠㅠ
우리 독자님들 한 해 잘 마무리하시고 우리는 2016년에 만나요!♡
그나저나 자꾸 글에서 덕후인거 티내는 것 같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번 글은 진짜 저의 아이콘 앓는 픽입니다, 앓는 픽.
♡오늘도 감사합니다♡
암호닉 (암호닉은 댓글로 신청해주세요♡)
바나나킥 / 김밥빈 / 초록프글 / 뿌득 / 부끄럼 / 준회가 사랑을 준회 / ★지나니★ / 기묭 / 핫초코 / 쪼매 / 한빈아 / 17826 / 각설탕 / 구주네
탸댱해요.
|